2023.11.9(목) 감성활동으로 건강지키기-엄마, 우리 가족 (동물,식물) 그려보기
<동기유발>
* 미로면 삼거리마을
[명칭 유래] 삼거리 지역은 세 갈래의 길이 갈라지는 곳이라 하여 본래 세거리, 삼거리라 했다. 방언에 따라 삼가리(三街里)라고도 하였다. 이후 와전되어 삼거리(三巨里)가 되었다.
[형성 및 변천] 조선 중종 (재위: 1506년 ~ 1544년) 때 양천만(梁天萬)과 주시립(朱始立)이 이주하여 집안 간에 서로 혼인하였고, 인조 때 하거노리로부터 박씨가 이주하였다.
호구 수는
1916년 54호 254명,
1962년 50호 336명,
1982년 49호 251명,
1995년 43호 171명이다.
[자연환경] 삼거리는 미로면의 서부에 위치하여 동쪽은 하거노리, 서쪽은 하장면, 북쪽은 고천리, 남쪽은 상사전리에 각각 접한다. 동서 10㎞, 남북 6㎞이다. 서쪽에 두타산이 솟아 있고, 구룡곡의 용소(龍沼)가 있어 가뭄이 들면 구룡곡 용소에서기우제를 지낸다. 저수지를 축조하였으며, 이때 축조된 저수지는 고천(古川) 유역의 영농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참고문헌]
* 삼척 척주동해비 陟州東海碑
미수 허목
허목은(1595(선조 28)∼1682(숙종 8))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양천(陽川), 자는 문보(文甫)·화보(和甫), 호는 미수(眉叟)이다. 아버지는 현감 허교(許喬)이며, 어머니는 정랑 임제(林悌)의 따님이다. 1660년 삼척부사에 임명받았다. 여기서 그는 향약을 만들어 교화에 힘썼으며, 『척주지(陟州誌)』를 편찬하는 한편, 『정체전중설(正體傳重說)』을 지어 삼년설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하였다.
건립 연원
삼척 척주동해비 비문은 삼척 부사 허목이 지은 것으로 비의 규모는 높이 170cm, 높이 76cm, 두께 23cm이다. 현종 3년(1662)에 건립한 척주동해비는 일명 퇴조비(退潮碑)라 불리듯이 조류(潮流)의 피해를 막기 위해 건립되었으며, 당초에는 만리도에 건립되었다. 이후 숙종 34년(1708) 풍랑으로 비석이 부러져 바다에 잠겼던 것을 동왕 35년 부사 홍만기가 문을 본떠서 다시 새겼으며, 동왕 36년 삼척 부사 박내정이 죽관도 동쪽에 다시 건립하였다가 1969년 12월 6일 현재의 위치인 육향산 산정에 이건하였다.
척주동해비 내용
瀛海漭瀁 큰 바다 끝없이 넓어
百川朝宗 온갖 물이 모여드니
其大無窮 그 큼이 무궁하네
東北沙海 동북쪽은 사해라서
無潮無汐 밀물도 없고 썰물도 없어
號爲大澤 대택이라 일렀네
積水稽天 무진장 많은 물 하늘까지 닿아
浡潏汪濊 출렁댐이 넓고도 아득하니
海動有曀 바다가 일렁이고 음산하네
明明暘谷 밝디밝은 양곡에는
太陽之門 태양의 문이라서
羲伯司賓 희백이 공손히 해를 맞고
析木之次 석목의 위차요
牝牛之宮 빈우의 궁으로
日本無東 해가 돋는 동쪽의 끝이로다
鮫人之珍 교인의 보배와
涵海百産 바다에 가득한 온갖 산물
汗汗漫漫 한없이 많으며
奇物譎詭 기이한 물건 변화하여
宛宛之祥 너울대는 그 상서는
興德而章 덕을 일으켜 나타나도다
蚌之胎珠 조개의 태에 든 진주는
與月盛衰 달과 더불어 성하고 쇠하며
旁氣昇霏 대기를 따라 김이 올라가고
天吳九首 천오와 구수
怪夔一股 외발 달린 기는
颷回且雨 폭풍을 일으키고 비를 내린다네
出日朝暾 아침에 돋은 햇살
轇軋炫煌 둥글게 올라 휘황찬란 빛나니
紫赤滄滄 자줏빛 붉은빛 가득하여라
三五月盈 십오일 둥실 뜬 달
水鏡圓靈 하늘에 밝은 거울 되니
水鏡圓靈 뭇 별들 빛을 감추도다
扶桑沙華 부상과 사화
黑齒麻羅 흑치와 마라
撮髻莆家 상투 튼 보가며
蜒蠻之蠔 굴을 따는 연만
爪蛙之猴 원숭이 많은 조와
佛齊之牛 소를 중시하는 불제는
海外雜種 바다 밖 잡종으로
絶黨殊俗 종류도 풍속도 다른데
同囿咸育 같은 세상에 함께 살도다
古聖遠德 옛 성왕 덕화가 멀리 미쳐
百蠻重譯 오랑캐들 중역 거쳐 찾아오니
無遠不服 복종하지 않은 곳 없었네
皇哉煕哉 크고도 빛나도다
大治廣博 그 다스림 넓고 커서
遺風邈哉 유풍이 오래가리라.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