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치유농업] 하루에 한 명, 다양한 농장활동으로 치유효과 높여

  • 기자명 이병성, 이현우, 최영진 기자 
  •  승인 2024.07.19 17:31
  •  신문 3603호(2024.07.23)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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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사회적 약자 품는 농장
-벨기에 빌라르덴호프


[한국농어민신문 이병성 이현우 최영진 기자] 

 

 

농장 기반 ‘그린케어’ 병행 활발
모종심기, 농산물 세척·선별 등 참여
농장주와 ‘함께 일하는 즐거움’ 만끽

복지기관과 연계해 체계적 운영 
그린케어팜 농민단체에 소속
지방정부는 관련 예산지원 ‘든든’

매주 화요일 마다 벨기에 그린케어 농장인 빌라르덴호프(Wilaardenhof)를 찾는 브렌다 코엔(Brenda Coen). 이 농장에서 만난 그녀는 수확한 신선채소를 다듬고 세척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브렌다는 농장에 방문하면 농산물 세척 외에도 모종 옮겨심기, 농기계 청소 등 농장의 여러 일을 처리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브렌다는 환한 웃음을 지으며 농장에서 보내는 일과가 매우 즐겁다고 말한다. 벨기에에는 빌라르덴호프와 같은 그린케어 농장이 북부 지방인 플랜더스를 중심으로 1021개(2023년 기준)에 달한다.
 

(왼쪽부터) 그린케어를 받고 있는 브렌다 코엔과 농장주인 샥 베르허스트, 그의 부인 마틴 반 히즈가 농장 간판 앞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브렌다와 샥 사이에는 케어팜을 의미하는 네모난 간판이 위치했다.

사실 브렌다는 라임병 환자다. 라임병은 진드기가 사람을 무는 과정에서 보렐리아균이 신체에 침범해 여러 기관에 병을 일으킬 수 있는 감염질환이다. 라임병에 걸린 후 그녀는 사회생활이 쉽지 않았고 직장 구하는 것도 어려워졌다. 그래서 정서적으로 불안 증세도 나타났다. 심신이 지친 브렌다가 문을 두들긴 곳이 그린케어 농장인 빌라르덴호프다. 빌라르덴호프는 브뤼셀에서 북쪽으로 80km 정도 떨어진 우스트베젤이라는 농촌지역에 위치해 있다.

이곳에서 그린케어(치유농업)를 하고 있는 그녀의 만족도는 매우 높다. 브렌다 코엔은 “몇 년 동안 라임병으로 집에서 홀로 고립돼 지냈다. 그런 상황에서 찾은 빌라르덴호프에서의 생활이 아주 만족스럽다. 내가 하고 싶은 활동이었다”면서 “일하는 것 자체도 만족스럽지만 농장의 부부인 샥 베르허스트(Sjack Verhulst) 마틴 반 히즈(Martine Van Hees)와 함께 일해서 좋다”고 강조했다.
 

브렌다는 벨기에의 그린케어 프로그램에 대한 만족도가 높다고 강조한다. 농장 일을 강요하지 않는 것은 물론 함께 하는 농장 부부가 편하게 그녀를 대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사진은 농산물 세척 모습.

브렌다가 매주 방문하는 빌라르덴호프는 2012년부터 그린케어를 시작한 곳이다. 토마토 등 다양한 농작물을 생산하고 있는 빌라르덴호프는 농업 활동을 통해 치유하고 사회 또는 학교에서 남들과 어울리며 생활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농장주인 샥 베르허스트는 “아내의 가족 중에서 학교생활을 잘 적응하지 못하는 학생들을 돕는 센터에서 일하는 사람이 있었다. 가족 모임 때마다 그런 학생들을 치유농장에서 돌보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꾸준히 나눴고 우리도 한 번 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그린케어를 시작하게 됐다”고 회상했다.
 

12년 전부터 그린케어를 실시하고 있는 빌라르덴호프의 농장주, 샥 베르허스트.

벨기에에선 치유농업을 ‘그린케어(Green Care)’라고 말한다. 벨기에 북부지방인 플랜더스에서 그린케어가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으며, 2023년 기준 1021개가 운영되고 있다. 그린케어를 전문으로 하기 보다는 농작물을 재배하는 농장을 기반으로 그린케어를 병행하는 유형이 대부분이다.

그린케어 현장인 빌라르덴호프에서 인터뷰를 가진 벨기에 그린케어팜지원센터 윌름 롬바우트 정책고문은 “그린케어팜지원센터가 2004년 설립됐고, 플랜더스 지방정부가 2006년부터 그린케어를 지원하면서 빠르게 확산됐다”며 “벨기에의 그린케어팜에는 하루에 한명이 방문해 농업활동을 하면서 치유한다. 그렇기 때문에 농장에서 많은 것을 경험할 수 있고, 방문자 욕구를 충족시켜는 것은 물론 치유 효과를 더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그린케어팜지원센터는 농민단체의 일원으로 소속돼 있어 농업경영자들과 긴밀한 관계를 갖고 있다”며 “따라서 농민들은 센터의 도움을 받아 그린케어에 적극 참여할 수 있다. 센터 또한 농민 입장에서 그린케어가 운영될 수 있도록 역할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벨기에 그린케어지원센터의 윌름 롬바우트 정책고문.

지난 12년 동안 그린케어를 병행하고 있는 빌라르덴호프에서도 현재 브렌다 코엔을 포함한 3명이 이곳에서 치유를 하고 있다. 단, 하루에 한 명만 방문한다. 벨기에의 상당수 치유농장들은 농업경영을 하고 있어 농산물 생산을 우선하면서 그린케어로 하루에 1명 정도만 방문객을 맞이하는 편이다. 그래서 빌라르덴호프에는 월요일과 수요일에는 자폐증을 앓고 있는 13살 청소년이, 다른 날에는 브렌다와 경증 장애를 가진 47세 남성이 각각 하루씩 농장을 찾는다.

샥 베르허스트는 “12년 전 처음으로 그린케어를 시작하면서 치유하러 오는 사람이 지금도 매주 한 번씩 방문한다. 47세인 그는 장애인 고용회사에서 도시 공원의 조경 관련 업무를 맡았다. 하지만 행동이 느려지고 일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면서 더 이상 일반 회사를 다니기 힘들어졌다. 그래서 그린케어팜지원센터와의 상담을 통해 농장을 추천 받아 이곳에 오게 됐다”고 설명했다.

또 “자폐 등의 이유로 매일 등교하는 것이 어려운 아이들이 있다. 이런 아이들이 일주일에 1~2번 학교 대신 농장을 갈 수 있는 타임아웃시스템이라는 제도가 있다. 13살 아이도 이 제도를 통해 작년부터 우리 농장에 오게 됐다. 방문하는 날에는 함께 농장 일도 하지만 같이 산책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며 “우리는 농장을 찾는 사람들이 일을 하기 보단 농장에서 시간을 잘 보낼 수 있도록 돕는다”고 덧붙였다.

윌름 롬바우트 고문은 “그린케어팜에 오는 횟수는 방문자에 따라 반나절에서 일주일 내내 올 수도 있다. 방문 기간과 횟수를 직접 조정할 수 있다”며 “그러나 이용자가 케어팜과 직접 연락하는 것이 아닌 이용자의 복지기관을 통해 연계한다. 그린케어팜지원센터는 복지기관과 케어팜 사이에서 체계적으로 운영되도록 징검다리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중요한 두 가지 원칙이 있는데 첫 번째는 복지기관과 이용자 간에 합의를 통해 케어팜에 다니는 것을 결정한다”며 “또 다른 하나는 농장이 전문 케어기관이 아니기 때문에 복지기관이 농장을 서포트하면서 이용자에 대한 전반적인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복지지관 직원이 관심을 갖고 관리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세 사람이 세척을 마친 농산물을 보여주며 환하게 웃고 있다.

벨기에에선 그린케어에 대한 이용객들의 만족도가 높은 것은 물론 농장 방문객과 농장주 상호간에 도움을 주고받는 관계가 형성돼 있다.

윌름 롬바우트 고문은 “그린케어팜 이용자들은 사회통합화, 개인적 발전, 자기주장과 책임, 휴식, 상황 대처와 문제에 대한 대화 등을 농장에서 활동을 통해 대응력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샥 베르허스트는 “경증 장애를 가진 남성은 처음에는 시내에 있는 장애 거주시설에 다녔지만 자신과 맞지 않으면서 그린케어팜센터를 통해 우리 농장에 오게 됐다. 시내 시설에 다녔을 때보다 훨씬 행복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어제(6월 24일)는 농장을 찾아오는 청소년과 나란히 앉아서 오이 선별작업을 진행했다. 작업을 하는 동안 계속 대화를 나눴다. 이런 부분이 아이에게 (치료에) 도움이 됐을 것”이라며 “선별작업을 혼자 했다면 오랜 시간이 걸렸겠지만 그가 도와준 덕분에 시간을 절약했다. 무엇보다 아이가 직접 참여해 함께 농장 일을 했다는 점도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샥 베르허스트는 농장을 찾은 사람들이 달라지고 발전하는 모습이 그린케어를 지속하게 되는 동기부여가 된다고 강조한다. 그는 “타임아웃프로그램을 통해 일주일에 3번씩 방문했던 아이가 있었다. 처음 왔을 땐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채 앉아만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농장을 다니지 않아도 될 만큼 상태가 상당히 좋아졌다”며 “얼마 전에는 그래픽 디자이너 자격증을 획득했다는 소식을 듣게 됐다. 이 같은 사례가 그린케어를 지속하게 하는 동기부여가 된다”고 말했다.

벨기에에선 그린케어가 농업의 다원적 기능, 지역활성화, 농업 이미지 개선 등을 위한 측면도 강하다. 플랜더스 지방정부가 그린케어 관련 예산을 세우고 그린케어팜을 지원하는 것도 바로 여기에 있다.

윌름 롬바우트 고문은 “플랜더스 지방정부의 농수산부가 2006년부터 그린케어팜에 하루 40유로를 지원하고 있다. 농업인들에게 다양한 활동을 권장하기 위한 것도 있고, 농업경영을 다각화하기 위한 측면도 있다”며 “특히 벨기에 인구 중 농업인의 비중이 1.2%로 적다. 벨기에 국민들을 대상으로 농업의 이미지를 높이기 위한 목적도 있다”고 밝혔다.

벨기에 우스트베젤 =이병성 이현우 최영진 기자 leebs@agrinet.co.kr

※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