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람용’ 텃밭 아니라 ‘교육형’ 텃밭입니다

등록 :2018-06-18 20:50수정 :2018-06-18 2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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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하는 교육] 텃밭 잘 활용하는 학교들

지난 6월12일 서울북한산초등학교 학생들이 학교텃밭에서 지렁이에게 먹이를 주고 있다.
지난 6월12일 서울북한산초등학교 학생들이 학교텃밭에서 지렁이에게 먹이를 주고 있다.
“얘들아! 이게 뭘까?”

“케이크요!”

“냄새 맡아봐.”

“어? 냄새가 고소한데…. 깨 냄새가 나요. 깨”

지난 6월12일 오전 10시. 서울 은평구 북한산국립공원 입구에 자리 잡은 서울북한산초등학교 텃밭은 왁자지껄했다. 2학년 1반 29명이 60평 정도 학교 텃밭에서 창체(창의적체험)활동 중이었다. 이명주 우리동네텃밭협동조합(이하 조합) 활동가가 아이들에게 보여준 건 깻묵. 도시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이 깻묵을 알 리가 없다. 직경 30㎝, 높이 10㎝ 정도 원반형 갈색 덩어리는 아이들 눈에 영락없이 케이크였다. 이날 깻묵은 미강(왕겨 안쪽의 고운 속겨), 술지게미 등과 섞은 뒤 물을 뿌려 액비(액체비료)를 만들기 위해 준비한 거였다.

여러 학교에서 텃밭을 가꾸고 있으나 자칫하면 농작물이 자라는 모습을 아이들에게 구경시켜 주는 정도에 그치기 십상이다. 북한산초등학교는 텃밭을 생태계가 어떻게 순환하는지 보여주는 학습 공간(생태텃밭 순환학교)으로 활용한다. ‘관람용’ 텃밭이 아니라 ‘교육형’ 텃밭인 셈이다.

이날 아이들이 제일 먼저 한 건 지렁이에게 먹이주기였다. 길이 140㎝, 너비 50㎝, 높이 40㎝ 크기의 나무 상자 2개에서 지렁이가 자라고 있었다. 지렁이가 음식 쓰레기를 먹고 배출한 배설물(분변토)은 농사에서 최고로 치는 거름이다.

아이들은 집에서 남은 밥?달걀 껍질·과일 껍질 같은 음식쓰레기를 가져왔다. 윤지아양은 “지렁이에게 먹이를 주기 위해 과일 껍질을 가져 왔어요. 알림장 보고 엄마가 챙겨 줬어요”라고 말했다.

지렁이 분변토는 강낭콩?상추?감자?가지?당근?고구마?토마토 등이 크고 있는 텃밭에 뿌릴 계획이다. 장수옥 조합 활동가는 “이 학교의 텃밭 가꾸기는 남은 음식물을 재활용해 거름?퇴비를 만들고 다시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활동을 함께한다”며 “텃밭 가꾸기를 통해 자연이 순환한다는 걸 아이들이 깨닫는다”고 설명했다.

태양빛을 받아 식물이 광합성을 하고, 이 식물을 초식동물이 먹고, 초식동물은 육식동물이 먹고 이 과정에서 동물의 사체나 똥?오줌은 다시 땅으로 돌아가 식물의 영양분이 된다. 자연은 순환 그 자체다.

장 활동가는 “아이들은 음식물 쓰레기를 무조건 버리는 게 아니라 하나의 자원으로 인식할 수 있다”며 “친환경·환경보존을 책에서만 배우는 게 아니라 텃밭을 가꾸면서 몸으로 체험하게 된다”고 했다.

관람용 되기 쉬운 학교 텃밭
지렁이 키우고 퇴비 만들며
생태계 순환 아이들이 알게 해
배추 키워 직접 김장 체험
경로당 보내고 학교급식 사용
흡연, 태도 불성실한 ‘불량학생’
금연·정서교육에도 활용

■ ‘자연은 순환 그 자체’ 스스로 체득하게 해

이날 수업시간에는 식초도 등장했다. 달걀껍데기를 부스러뜨려 식초와 섞어 2주 정도 놔두면 칼슘성분이 풍부하게 나온다. 이걸 물로 희석해 밭에 뿌리면 훌륭한 비료(난각칼슘)가 된다.

액비·난각칼슘 만들기, 지렁이 키우기 등을 통해 아이들은 우리 입으로 들어가는 곡물?야채가 자연의 순환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다는 걸 깨우칠 수 있다.

자신들이 직접 키워서일까? 아이들은 학교 텃밭에서 크고 있는 식물에 대한 애착이 컸다. 정예닮군은 한 강낭콩 줄기를 가리키며 “이 콩은 제가 키운 건데 식물이 잘 자라서 기분이 너무 좋아요”라며 기뻐했다.

텃밭을 잘 활용하고 있는 학교 가운데 하나가 광주광역시 서구에 있는 양동초등학교다. 텃밭은 50평 정도. 전교생이 71명으로 한 학년이 한 반에 불과한 것에 비하면 꽤 크다. 양동초는 텃밭에서 배추를 길러 11월 중하순에 학생들이 김장을 한 뒤 부근 경로당에도 보내고 학교급식에도 쓴다.

김경화 영양교사는 “여름방학이 끝나고 개학하면 배추 모종을 300개 정도 심는다. 물론 농약은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며 “250포기 정도 수확하는데 11월 중하순에 김장을 해서 학교 주변 경로당 3곳과 다문화지원센터 등에 절반 정도 보낸다. 나머지는 학교급식으로 사용한다”고 밝혔다.

아이들은 깨?감자?시금치?상추?열무?아욱?고추 등을 보면서 ‘텃밭 식물 관찰 기록지’도 작성하고 수확 뒤 요리도 한다. 감자샌드위치도 만들고 학교 안에 있는 매실나무에서 열매를 따 아이들과 선생님이 함께 진액을 만들어 요리에도 사용하고 음료로도 먹는다.

김 교사는 “채소가 자라는 걸 직접 관찰하고 따서 먹으니까 건강에 좋고 맛있다는 걸 아이들이 잘 안다. 특히 편식하지 않는다”며 “거기에다 학교에 대한 자부심과 감사하는 마음도 가진다”고 설명했다.

광주광역시 북구 용봉초등학교는 기존에 있던 화단을 텃밭으로 사용한다. 김주현 영양교사는 “텃밭이 교실에서 좀 떨어져 있으면 일부 열심히 하는 학생들만 물을 주는 등 관심이 제한될 수도 있다”며 “화단은 아이들이 자주 지나는 곳에 있고 가까이서 볼 수 있다. 그래서 접근성이 좋은 곳에 텃밭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이 학교 역시 11월 중하순에 배추 100포기 정도를 수확한다. 아이들과 함께 김장을 해 동사무소를 통해 독거노인들에게 전달하고 일부는 아이들 가정에서도 맛보게 한다. 김 교사는 “요즘 아이들은 김치를 잘 안 먹는 경향이 있는데 우리 학교 아이들은 자기 손으로 김장을 하니까 애착이 남다르다. 김치를 참 잘 먹는다”며 “집에 가져간 김치가 맛있다고 부모님이 칭찬해줬다고 말하는 아이들이 많다”고 소개했다. 두 학교는 식생활교육 광주네트워크로부터 텃밭 가꾸는 데 일부 예산을 지원받았다.

■ “텃밭 가꾸면서 아이들 스스로 정서 순화돼”

부산 남구 대연중학교 권외숙 교사는 학교 텃밭을 이른바 ‘불량학생’을 교화하는 데 활용한다. 학교생활부장인 권 교사는 흡연하는 아이 10여명을 어떻게 교육할까 고민하다가 텃밭을 일구게 됐다.

생활부장을 맡은 뒤 제일 먼저 한 건 아이들에게 아침밥 해주기였다. 가정 사정으로 이 아이들이 아침밥을 굶는다는 것을 안 권 교사는 전기밥솥을 마련해 학교에서 아침 식사를 해줬다.

권 교사는 “이 학생들은 맨날 지각을 했다. 제가 아이들에게 ‘아침밥을 먹여줄 테니 시간 맞춰 학교에 오라’고 권유했다”며 “처음에는 한두 명만 아침 일찍 오더니 나중에는 다 시간에 맞춰 학교에 왔다. 아침밥을 먹여주니까 지각이 없어졌다”고 말했다.

그는 “더 나아가 아이들 담배도 끊게 하고 정서적으로 안정시킬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다가 학교 텃밭을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식생활교육 부산네트워크로부터 일부 예산을 지원받아 텃밭 20평 정도를 일궜다. 아이들은 처음에 지렁이를 보고 기겁했으나 곧 적응해갔다.

권 교사는 “이 아이들은 가정에서 제대로 사랑을 받지 못하고 컸다”며 “텃밭에서 함께 땅을 파고 모종도 심으면서 서로 정을 나누고, 수확한 농작물로 함께 음식도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마음이 열리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아이들은 마침내 담배를 다 끊었고 모두 잘 졸업해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올해 권 교사는 학교폭력에 관련된 학생들을 데리고 텃밭을 일구고 있다. 아이들은 방과 후에 또는 토요일에 텃밭을 가꾼다.

“교육이라는 게 누가 시킨다고 쉽게 되는 게 아니다. 교육은 스스로 깨우치고 정화되는 게 가장 효과적이다. 텃밭 일이 고되지만, 아이들이 잘 자라는 나무와 작물을 보면서 스스로 정서가 많이 순화된다. 이게 학교 텃밭의 효과다.”

김태경 <함께하는 교육> 기자 ktk7000@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society/schooling/849618.html?_fr=mt3#csidx62036e186d0d5d897319d6dafb0cc7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