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고 재미있는 그림읽기(3)

'엉성한 그림에 담긴 또렷한 이야기'

 

   각종 미술대회 행사에 참여 해보면 우리 친구들의 그림솜씨에 놀라게 됩니다. 아울러 입상자 선발에도 애를 먹습니다. 이럴 때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되는 것은 역시 자신만의 표현입니다. 이 기준으로 그림을 찾게 되면 선택되는 작품이 별로 없습니다. 다시 말해서 세련되고 잘 그린 그림은 많지만 좋은 그림은 흔치 않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좋은 그림은 의외로 눈에 확 들어오지 않아서 쉽게 놓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가 보다 좋은 작품을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서는 그림의 겉모습보다는 표현의 내용을 보다 세밀하게 관찰할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은 그림이 좀 엉성하고 서툴지만 감동이 담긴 좋은 작품의 사례를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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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그린 그림과 좋은 그림

   먼저 잘 그린 그림과 좋은 그림을 구별하기 위해서, 다리를 대상으로 그린 두 작품을 비교해 보겠습니다. 그림A를 보니 한눈에 봐도 다리를 너무 멋있게 잘 그렸는데요. 원근이 분명하고 비례도 정확하네요. 그림자 처리도 완벽하고 색감도 맑고 깔끔합니다. 투명수채화에 능숙한 초등학교 수준으로는 매우 잘 그린 그림입니다. 하지만 그림B는 비교적 다루기 쉬운 재료 크레파스로 그렸지만 다리의 위, 아래 배경색도 틀리고요, 묘사도 삐뚤삐뚤 어쩐지 여러 가지로 서툴게 보입니다.

 

그림A '다리풍경‘ 6학년

 

그림B ‘119 다리미로초 2학년 홍민기

 

  그런데 여기서 표현이라는 기준을 두고 한번 생각해봅시다. 그림A는 다리의 모습과 형태를 멋있게 나타내는 노력은 분명하지만, 아쉽게도 표현의 주인인 자신의 이야기가 없네요. 그러나 그림B는 형태는 엉성해도 물에 떠내려가는 사람을 보면 즉시 구해준다는 자신의 아이디어를 분명하게 강조하고 있습니다. 잘 그린 그림과 좋은 그림이 어떻게 구별되는지 아시겠죠. 표현의 기준에서 그림B가 훨씬 더 표현적이고 좋은 그림이라는 뜻입니다.

 

연탄에 담긴 할머니

   다음은 선생님과 함께 했던 글과 판화동아리 학생들의 작품들입니다. ‘외할머니의 군밤입니다. 작품 형태만 보면 반대로 찍힌다는 판화의 속성을 깜빡했는지 찍힌 글이 거꾸로 나오는 등 성공한 작품은 아닌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의 작품 의도를 살펴보면, 연탄의 형태묘사보다 연탄에 담긴 외할머니와의 애틋한 이야기가 진한 감동으로 전해집니다.

 

희망

     2007, 우리나라 서해안에서 유조선 충돌사고로 최악의 기름오염이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500만명 이상의 자원봉사자가 노력했지만 아직도 그 흔적은 지울 수가 없고요. 마을사람들은 고통의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바다의 생물들이 살아나려면 수십 년의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TV방송을 보고 판화로 제작한 작품입니다. 작품의 그림과 글을 함께 살펴보죠.

 

    그는 기름으로 뒤덮인 바위 위에 나타난 를 통해 바다가 다시 살아날 수 있다는 희망을 표현했는데요. 글에서 밤톨만한 라고 썼습니다. 하지만 는 밤톨만 한 것이 아니라 사람 머리보다 더 크게 표현되었고요. 두 팔을 번쩍 들었다고 했는데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의 다리는 하나 밖에 안보입니다. 작가는 그의 생명 회복의 간절한 희망을 강조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사실과 다르게 나타냈음을 알 수 있답니다.

  오늘 감상한 작품들을 다시 한번 살펴볼까요. 잠자리에서 자유의 기쁨을, 건너다니는 다리에서 구조하는 다리까지, 연탄에서 할머니의 사랑을, 게를 통해 간절한 희망을 보았습니다. 그 형태와 모습은 모두 엉성하고 실재와 달랐지만 담겨있는 작가의 생각은 무엇보다 또렷하고 선명합니다. ‘쉽고 재미있는 그림읽기그 방법은 그림의 겉모습이 아니라 내용을 보다 더 자세히 관찰하는 것이랍니다.

 

<다음 호는 세상을 바꾼 그림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