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리스트
글
* 동해시의 마을 지명과 전해오는 이야기
효가동 : 조선시대 이 마을의 조산대부(군수급 벼슬) 김겸은 모친이 위급할 때 손가락을 잘라 병을 낫게했고, 부친이 사망하자 매일 시묘를 올리니 벌레들도 슬퍼하였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들은 선조는 무인년에(1578) 효자의 교지를 내렸다. 그 후 이 마을 이름은 김겸의 호 '효가'를 따서 효가리라고 불렀다.
천곡동 : 물맛이 좋기로 소문난 샘이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약천마을 : 고려 때 남쪽의 어떤 선비가 신병이 있어 물 좋은 곳을 찾아다니다가 이 곳 심곡 마을에와 물을 먹고 몸이 나았고, 서울로 가서 높은 벼슬까지 얻었다고 하여, 동네에서는 이 우물을 약천이라 하였으며, 마을 이름도 약천동이라 하였다.
백봉령 : 백봉령은 복령이라는 약초가 있는데, 이중에서도 흰 복령이 많이 자생한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묵호 : 이곳의 물도 검고 바다도 검고 물새도 검으니 먹묵(墨)자를 써서 묵호(墨湖)라고 부르게 되었다.
더 상세한 자료보기 (출처 동해시문화원)
동해시의 마을별 지명유래
1. 괴란동
*두암[斗岩, 두마암] → 마을 입구에 있는 서낭당에서 왼쪽인 남쪽으로 길게 이어진 골과 그 안에 있는 마을, 마을에는 돌이 많이 있는데 땅 어디를 파도 돌이 많이 나온다. 마을로 흐르는 물줄기는 큰 형제봉 밑 신방골, 선담골에서 흘러내린다. 옛말에 이 마을에는 열성받이가 살았다 하는데 지금도 열성받이를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마을에는 남양 홍 씨들이 많이 산다.
*신방골[심방골] → 마을 입구에서 두암으로 들어가면서 왼쪽에 있는 큰 골, 골로 넘어가 면 만우동이 된다.
* 금단이[琴丹, 黔丹] → 괴란동 마을 입구에서 서쪽[오른쪽]에 큰 골이 있는데 이곳에서 다시 북서쪽[오른쪽]으로 들어간 마을, 옻재에서 내려온 줄기에 감싸여 있는데 이 재를 넘으면 강릉시 옥계면 남양리 옻밑 마을이 된다. 마을에 玉女彈琴形의 묘자리가 있어서 생긴 이름이다. 마을 가운데 서낭당이 있다.
* 옻밑[올밑] → 금단이 입구에서 그 안쪽 끝에 있는 마을, 옻재 밑에 있어 생긴 이름이다. 마을에서 왼쪽으로 가면 예림재가 되고, 오른쪽으로 들어가면 옻재가 된다. 마을에서낭당이 있다.
* 샛말[間村] → 옻밑 마을 앞에 있는 마을로 길 옆에 서낭당이 있다. 조선시대 역원제도 당시 옥계에 있는 낙풍역과 북평 평릉역 사이에 잠시 쉬던 간이역이 있었다고 한다.
2. 대진동
* 大津(대진)→ 대진 전체 이름, 옛날부터 이 곳에 고깃배가 드나드는 큰 나루가 있어서 한나루라 했는데 ‘한나루’가 줄어 들어서 ‘한날’이 되었다.
* 개태미 → 한날과 북쪽에 있는 망상동 놀미 사이에 있는 바닷불, 이 곳 바닷불에 있는 모래가 희고 깨끗한데 그 생김새가 개의 형국으로 되어 있다고 한다.
* 배민골 → 봉화산에서 마을 쪽으로 내려온 골. 골이 쭉 빠져나와 마치 배를 내민 것처럼 생겨 이름이 붙혀졌다.
3. 만우동
* 본말 → 버스종점이 있는 마을. 마을로 흐르는 내에 신계교, 만우1교가 있고, 숲속에는 서낭당이 있다. 마을 앞으로는 곧은골에서 흘러내린 물이 흐르고 있다. 만우에서 제일 중심이 되는 마을로 이곳엔 약65가구가 살고 있다. 마을에 수백년 묵은 느티나무 고목이 있었으나 일제 강점기때 일본 사람들이 재목으로 쓰기 위해 베어 일본으로 가져갔다고 한다.
* 양짓말 → 본말 북쪽 양지쪽에 있는 마을로 마을 서낭당이 있다.
* 음짓말 → 본말 남쪽 음지쪽에 있는 마을로 마을 뒤에 느릅재(느릇재)가 있다.
* 생계골[신기골, 신계골, 심개골] → 본말에서 곧은골로 들어가면서 오른쪽에 있는 큰 골, 옛날 이 마을은 삼척 심씨들이 개척하여 살았다고 하여 심개(沈開, 沈起)골이라 했는데 나중에 음이 변해 신계골, 생계골로 되었다. 옛날 이 골안에 있는 고목에 서낭을 모셨으나 지금은 사람들이 살지 않아 서낭이 없어 졌다. 이 골엔 강릉 김씨 망상파 시조인 金始振의 묘와 재실이 있다.
* 내매골[南野] → 본말에서 느릅재로 가다가 왼쪽으로 논이 많이 있는 골. 옛날 영양 남 씨들이 이 들에 와서 농사를 지으며 많이 살았다고 한다.
* 조낼골[鳥來] → 본말 뒤쪽에서 괴란리로 넘어가는 골. 옛날 이 골은 땅이 비옥하여 곡식을 심어 놓으면 잘 자라서 새들이 많이 날라와 곡식을 쪼았다고 한다. 옛날 이 골안 에서 울리며 산 남평 문씨들이 자기 밭에 자라는 곡식을 새들이 하도 많이 날라와 곡식을 쪼아 먹으니 새를 쫓기 위해 선대의 내력을 쓴 白碑를 조상묘 앞에 세웠다. 그랬더니 새는 날아오지 않았으나 그 집안들은 망했다고 한다. 새는 곡식만 쪼아먹는 것 이 아니라 그 집안에 복도 가져다 주는데 새를 쫓아내니 새와 더불어 복도 함께 쫓아낸 것이라고 한다.
* 장밭[長田] → 만우동 입구에 있는 마을, 이 마을은 만우동, 괴란동, 심곡동, 초구동 사이가 된다. 괴란동과 만우동 본말에서 흘러온 냇물이 마을 앞에 와서 만나 초구동, 심곡동, 망상동으로 흐르면서 마상천을 이룬다. 마을에 넓은 밭이 있어 생긴 이름이다.
* 덕둥골 → 장밭에서 제일 위쪽에 있는 골, 골을 넘으면 괴란동 두암이 된다. 옛날 어린아이가 전염병[천연두, 장질부사]을 앓으면 이곳에 얼럭[장대]을 세우고 그 위에 요람을 만들고 어린아이를 갖다 놓는다. 어린아이가 전염병에 걸리면 이웃이나 다른 아이에게 전염이 되기 때문에 격리하여 수용하기 위해 이곳에 다 놔두었다. 이곳은 인적이 드문산골이여서 덕둥을 만들어 놓았는데 네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어린아이가 누워 있을 수 있도록 요람을 만들어 놓고, 기둥에다 소나무 가지를 매달어 짐승이 올라가지 못하도록 한다. 이렇게 해놓고 부모는 아침, 저녁으로 어린아이의 병의 진행을 살펴보는데 어린아이가 죽으면 땅속에다 묻어버리고, 살아 있으면 전염병이 사라진 것으로 알고 집으로 데리고 온다. 옛날 의술이 발달되지 않았을 때 어린아이가 전염병에 걸리면 다른 아이와 이웃에 전염이 되지 않도록 각별한 배려를 했던 것이다. 만약 이런 덕둥을 세운것을 이웃 사람들이 알면 마을에 큰 소동이 벌어지기 때문에 이웃 어느 누구도 모르게 비밀로 했다고 한다.
4. 망상동
* 석둘[朽谷] → 동해고속도로 ‘동해휴게소’ 남쪽에 있는 마을. 동해시에서 제일 북쪽에 있는 마을로 강릉시 옥계면 도직리와 경계가 된다. 마을에는 30여가구가 있고, 이웃에 있는 터일과 서낭을 같이 모시고 있다.
* 터일[基谷] → 석둘 남쪽에 있는 마을. 마을 앞으로 동해고속도로가 지나가고 도로 동쪽 바닷가에 터일[基谷] 해수욕장이 있고, 주위에는 소나무 숲이 우거졌다. 옛부터 이 마을 은 남향받이여서 집터로서는 좋은 곳이 여서 생긴 이름이다. 마을에는 30여가구가 있고 이웃 석둘과 같이 서낭을 모신다.
* 웃골[??? → 터일에서 심곡리 약천동으로 넘어가는 골로 터일 위쪽이 된다. 심곡리 약천동 사람들이 약천동 뒤에 있는 마을(뒤+ㅁ+실)이란 뜻에서 뒤는 뒤쪽이고, ‘ㅁ’는 명사형 어미 이고, 실은 고을를 나타내는 말이다.
* 沙峰 → 망상기차역 부근으로 옛날 이곳에 모래가 쌓여 생긴 봉우리가 있어 생긴 이름이다. 예전에는 이 마을에도 서낭당이 있었으나 지금은 없어졌다.
* 들축나무거리 → 망상초등학교와 망상 기차역 사이로 국도 옆에 있는 논가를 말한다. 고려 때 강원 감찰사로 부임한 강감찬 장군이 강원도 동해안 지방을 순행하기 위해 강릉에서 방재를 넘어 이곳에 와 쉴 때 들축나무 그늘 아래에 앉았다. 들축나무 그늘에서 쉬고 있는데 개미들이 몰려와 장군의 허벅지를 자꾸 물어뜯었다. 그래서 장군은 개미들이 무니 귀찮아서 몰려들지 않게 하기 위해 들고 있던 지팡이로 금을 빙 그었다. 그랬 더니 금 안으로 개미가 모여들지 않고 혹 금 안으로 들어온 개미는 물지 않아서 편히 쉬고 갔다고 한다. 일설에는 지금도 이곳에 있는 개미는 물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이 부근에서 일을 하다가 쉴 때 들축나무 그루 밑에 와 쉬었는데 서로 그 자리에서 쉴려고 다투었다고 한다. 들축나무는 축나무 일종이다.
* 솔밑 → 망상 기차역 아래 바닷가 쪽 일대. 옛날 이곳에 소나무가 많이 있었는데 그 소나무가 있는 아래 마을이란 뜻이다.
* 놀미[魯峰] → 솔밑 건너편에 있는 마을로 마상천 하구에 있는 마을. 중국 노나라 때 공 자가 태어난 노산 7봉 가운데 하나인 泥丘山을 일명 노산이라 하는데 이곳이 魯山과 비슷하다고 하여 생긴 이름이다. 서낭당은 마을 뒤 산기슭에 있다.
* 大洞 → 망상초등학교에서 서쪽에 있는 마을. 고속도로 서쪽 마을. 망상의 중심 마을이면서 제일 큰 마을이다. 서낭은 마을 뒤 산 기슭에 있다.
* 큰서당터 → 매밑 줄기 끝으로 둔벵이굼 부근이 된다. 옛날 이곳에 망상에서 제일 큰 서당이 있었는데 그 서당은 강릉 향교의 분교 구실을 하였다. 이곳 서당에서 공부하고 강릉향교에 가서 예비시험을 걸쳐서 실력을 점검하고 그리고 나서 과거 시험을 보았다 고 한다. 옛날 이곳에서 훈장을 하던 분이 학문은 깊었으나 벼슬에 뜻이 없어 과거에 응하지 않고 학생들을 가르쳤는데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 스승의 학문적 업적을 존경하 며 스승에게 과거보기를 권유 했다. 그래서 스승이 과거시험을 보고 급제하자 제자는 자기 집터를 스승에게 주고 다른 데로 옮겼다고 한다.
5. 묵호진동
* 안묵호 → 진리의 전체 이름으로 묵호 시가지 안쪽에 있어서 생긴 이름이다.
* 먹호 → 진리의 옛 이름, 마을에 검은 개가 있어서 생긴 이름이다. 항구가 개발되면서 삼척지역에서 캔 무연탄을 수출하였는데 이 때 이곳으로 수송한 무연탄이 개를 검게 하여 생긴 이름이다.
* 논골 → 묵호항 북쪽에 있는 마을로 산 중턱이 되는데 옛날 산 중턱에 논이 있어서 생긴 이름이다.
* 산지골 → 논골 서쪽에 있는 마을. 옛날 이곳에 제당이 있어 산제를 지냈다고 한다.
* 괴구석[게구석] → 산지골 남쪽에 있는 마을, 마을 앞에 포구가 생기기 전에는 이곳까지 바닷물이 들어왔는데 그때 바위틈 사이에 게들이 많이 있었다고 한다.
6. 발한동
* 큰바란이 → 사뭇재 말랑에서 서쪽 골안에 있는 마을. 마을엔 11가구가 살고 있고 서낭이 있었으나 지금은 서낭제를 지내지 않는다.
* 작은바란이 → 묵호 초등학교 뒤에 있는 마을, 밭 가운데 마을 서낭당이 있다.
* 밤나무골 → 묵호 초등학교 앞 내 건너 언덕 마을, 옛날 이곳에 밤나무가 많이 있었는데 지금은 주택들이 들어 섰다.
* 지리골 → 묵호 천주교회 뒤에 있는 골.
* 양짓말 → 현 동호동 사무실 아랫쪽에 있는 골로 새말 서북쪽 양지쪽이 된다.
* 붉은 언데기 → 묵호 기차 정거장에서 옛 국도를 따라 남쪽으로 나가는 길 언덕. 옛날 이 곳 언덕 일대가 붉은 진흙 땅이여서 생긴 이름이다.
* 비석거리[비선거리] → 붉은 언데기 중심지역으로 이곳에 비석이 있어 생긴 이름이다. 이 비석은 고려 충혜왕때 禮儀判書를 낸 삼척 심씨의 시조인 眞珠君 沈東老의 신도비다.
* 골말 → 동호 초등학교 뒤에서 만우동으로 넘어가는 골. 학교 앞에서 내를 따라 들어간 마을, 지리골 옆이 되고 느릅골 아랫쪽이 된다.
* 거리묵호 → 현 시가지 중심 지역. 강원은행, 한일은행 등 상가가 있는 길거리. 1931년 축항이 개항되면서부터 삼척지역에서 생산되는 무연탄 수송을 위해 무연탄을 집산하면서 번성하기 시작했다.
* 새말 → 묵호중학교 동쪽에 있는 마을. 느릅내[東湖川]가 이 마을 가운데로 지나간다.
* 일월문터[日月門] → 향로봉 아랫쪽에 있는 큰 바위터. 동해바다에서 비치는 햇빛이나 달빛이 이 바위사이를 통해 부곡에 있는 진주군 심동로의 묘에 비치므로 심씨들이 신기하게 여겨 해와 달이 넘나드는 의미에서 일월문터라 했다. 그런데 이 바위는 묵호 항구를 만들 때 축항에 쓸 돌을 만들기 위해 향로봉과 같이 헐어서 없어졌다.
7. 부곡동
* 개맬[개말, 가매말] → 묵호고등학교 앞으로 고속도로 동쪽 마을 일대. 부곡동의 중심마을이 된다. 초록봉에서 흘러 내려오는 물이 승지동을 거쳐 마을을 지나 바다로 흘러 가는데 “갯가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생긴 이름이다.
* 도두동 → 개맬 동남쪽에 있는 마을.
* 돌담 → 도두동에서 내[부곡천]를 따라 내려가면서 기차 철길이 있는 부근으로 남호초 등학교가 있는 마을 일대. 옛날 이 곳에 돌이 담을 이룬 듯 지천에 많이 있어서 생긴이름이다. 옛날 부곡천 하류에 넓은 장광이 있었는데 이곳에 돌이 많이 널려 있었다고 한다.
* 새마을 → 도두고개 동쪽으로 동호초등학교 앞 언덕 일대.
* 承旨洞 → 묵호고등학교 안쪽 마을. 옛 수원지 안쪽에 있는 마을로 40여 가구가 살고 있는데 마을 가운데 내가 흐르고, 마을은 초록봉에서 내려온 줄기에 포근히 쌓여 있다. 옛날 승지벼슬을 한 사람이 이곳에 와 살았다고 하고, 또 이곳에 살던 선비가 승지원 내직으로 들어가 벼슬을 했다고 하여 생긴 이름이라고도 한다.
8. 심곡동
* 매밑[梅底] → 심곡마을 가운데로 지나는 산줄기 끝 맨밑이 되어 ‘맨밑’이 변해 매밑이 되었다. 그런데 심곡마을의 형국이 매화꽃이 땅에 梅花落地型으로 생겨 마을이 그 밑에 있어 생긴 이름이라고도 한다. 마을은 전형적인 背山臨流型으로 되어 있는데 마을 앞으로 넓은 마상평이 펼쳐지고 그 옆으로 마성천이 흐른다. 마을 뒤로는 마누르봉에서 동쪽으로 내려온 줄기가 지나가다가 망상지역으로 가면서 동해 고속도로가 지나가기 때문에 끊어졌다.
* 제당거리 → 서낭 앞에 있는 길거리. 옛날 마을 사람들이 여름에 김을 다매고 질먹을 때 서늘한 이곳에 모여 질을 먹고 망상바다로 해목을 갔다고 한다. 서낭 주위는 담이 쌓여있고 굵은 소나무(300~400년생)가 여러 그루 있고, 그 앞이 평평하여 놀기에 아주 좋은 곳이다.
* 댄말[대앞말] → 매밑 위쪽에 있는 마을. 마을 앞으로는 마상천이 흐르고 마을 뒤로는 산줄기(대고개)가 지나간다. 옛날 마을에 대(줄기가 가느다란 시눌대)가 많이 자라서 생긴 이름이고 마을 입구에 서낭당이 있고, 그 옆엔 반공청년 김기권(참의공 김종호의 후손)의 비석이 있다.
* 대슨말[대숲말] → 대고개 동북쪽에 있는 마을로 마을에 큰 숲이 있어 생긴 이름이다. 이 마을에는 300여년이 넘은 은행나무가 있다
* 댐지실[대암지실, 대앞지실] → 장안골 위쪽에 있는 마을로 만우동 장밭 건너편[북쪽]에 있는 마을이다. 마을 앞으로 내려 온 산줄기 기슭에 큰 바위인 大岩이 있어 대암 기슭이란 말이 변해 대암지실이 되었다고한다. 옛날 이 마을에 강릉 김씨가 울리며 살았다고 하는데 하루는 중이 동냥을 왔을 때 동냥을 주지 않고 박대하여 쫓아내고서 망하고 마을을 떠났다고 한다. 김씨가 떠나고 박씨가 그 집터에 살다가 어느 해 장마에 기와집이 떠내려 갔다고 한다.
* 약천말[藥泉, 影堂] → 매밑 마을과 댄말 사이 골 안쪽에 있는 마을, 초구에서 마상천을 건너 안쪽[서북쪽]에 있는 마을, 마을 앞 논 가운데에 우물이 유달리 많이 있는데 이 우물이 약천이다. 조선조 숙종때 영의정을 지낸 약천 남구만이 이 마을에 귀양을 와 일년동안 머물면서 유생들에게 글을 가르치고 갔는데 그후 그의 제자들이 노곡서원[약천사] 이란 서원을 만들어 약천의 영정을 모시고 봄 가을로 제사를 지냈다. 약천 남구만의 영 정을 모신 영당이 있어 영당말 이라고도 한다. 마을은 댄말에서 내려온 줄기와 매밑에 있는 보름재 줄기가 입새에서 감싸고 있는데 그 줄기가 좌청룡 우백호의 형상을 하고 있다. 청룡 끝에 해당되는 보름재가 거북형상으로 되어 있는데 거북은 물속에 살며 물을 다스리는 짐승이다. 그래서 이 동네는 물이 풍부한 우물이 많이 있고, 또 물이 좋아 서 나그네들을 상대로 술을 빚어 팔던 주막도 있었다. 이 마을은 매밑 마을과 서낭제를 같이 지내는데 서낭제를 지낼 때 쓰는 물은 모두 약천의 물을 떠와 쓴다. 마을 동쪽에 서 해가 떠오르고, 남쪽에는 앞재가 있다.
* 上村 → 약촌 마을에서 길을 따라 안쪽으로 들어가 있는 마을, 시밀에서 제일 안쪽에 있는 마을. 마을 입구에 강릉 김씨의 재실이 있다. 마을 앞 내건너 숲속에 마을 서낭이 있다.
9. 어달동
* 어랠 → 어달리 전체 이름.
* 본마을 → 어랠의 중심마을, 마을 앞에 해수욕장과 동사무소가 있다.
* 도리끝 → 마을과 진리 사이 바닷가, 묵호 진리 등대에서 내려온 산줄기 끝 부레기, 시 내에서 어달리 쪽으로 가면서 ‘산 부레기로 돌아가는 끝’이라는 뜻이다.
10. 초구동
* 갈밭둔지 → 초구에서 제일 위쪽에 있는 마을로 만우동 장밭마을과 내를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다. 옛날 이 마을에 갈대가 많이 있었는데 ‘갈대가 많이 있는 언덕 마을’이 란 뜻이다.
* 새들[本洞] → 초구동의 본동으로 마을 서낭당이 있는 마을. 옛날 이곳 들에 새(풀)가 많이 자라고 있어서 생긴 이름이다.
* 골말 → 본동 서낭당에서 안으로 들어가서 서쪽으로 보이는 골, 골로 계속 들어가면 발 한동 큰 바란이가 된다.
* 돌꼬지[立石] → 사뭇골 초입이 되고, 초구동 초입도 된다. 지금으로부터 약 200여년 전에 마을 사람들끼리 친목을 도모하기 위해 계를 형성하고, 그 계에서 좋은 일을 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비석을 세웠는데 동해 고속도로 공사 및 7번 국도 확장 공사 때 비석을 노봉으로 옮겼다. 옛날 사뭇골 안쪽에서 흘러내리는 물 줄기가 이곳을 지나 마상천 하류로 흘러 갔는데 그 때 산부레기 앞으로 길이 있어 내를 건너 초구 마을로 다녔다. 옛날 돌꼬지 옆 7번 국도에 있던 석벽에 구멍이 뚫려 있었는데 지나가는 사람들이 이곳에다 돌을 던져 돌이 얹히면 재수가 좋았고, 또 아들을 낳지 못한 사람이 돌을 던져 돌이 얹히면 아들을 낳았다고 한다. 그런데 이 석벽은 국도 확장 공사 때 깨 냈다.
* 비석거리[주막거리] → 돌꼬지에 비석이 있던 거리. 이 비석은 옥계(玉契) 계원들이 후 세에 그들의 모임을 널리 알리고자 길이가 두 길 정도 되는 막돌로 비석을 세웠다. 이러한 비석은 마을 입구 신성한 지역에 세워 잡인들의 접근을 막고 여러 사람들에게 경계의 의미를 알리기도 했다. 또 이 부근에 주막이 있어서 오가는 나그네들이 쉬어 갔다고 한다.
11. 구미동
* 모젱이[毛場洞] → 바깥 구미 남쪽에 있는 넓은 들로써 옛날 이곳에 팥을 갈았는데 팥은 자라지 않고 그 대신 풀만 털처럼 많이 자랐다고 하여 생긴 이름이다.
* 안구미 → 구미 마을 안쪽에 있는 마을.
12. 구호동
* 요과골 → 마을 가운데에 있던 요과산 밑에 있던 골.
* 달밭굼 → 작은 요과골에서 고개를 넘으면 나타나는 산줄기로 이곳에 억새처럼 생긴‘달’이란 풀이 많아서 생긴 이름이다.
* 재골 → 달밭굼 동쪽에 있는 골로써 골안에 있는 흙이 점토여서 옛날 이곳에서 기와를 구웠다고 한다.
13. 귀운동
* 귀운골 → 마을에서 남서쪽으로 들어간 골로 마을의 중심지. 마을에 파평 윤씨가 16대째 살고 있다.
* 거릿말 → 귀운골 서쪽 길거리에 있는 마을.
* 큰골 → 귀운골 안에 있는 큰 골.
14. 나안동
* 건넌말 → 마을의 전체 이름으로 뒷뜨루에서 내 건너에 있어서 생긴 이름이다.
15. 내동
* 규장골 → 마을 오른쪽에 있는 큰 골. 마을 서쪽에 있는 규장산으로 들어가는 골이다.
* 바다리 → 마을 왼쪽에 있는 큰 골. 지형이 양쪽으로 갈라져 마치 방아다리처럼 생겨 이름이 생겼다.
16. 단봉동
* 봉정동 → 마을에서 도계로 가는 길가에 있는 마을. 마을이 봉황의 날개 형국으로 생겼는데 이 곳에 숲이 우거져 마치 그 숲이 정자를 이룬 듯 하다고 하여 생긴 이름이다.
* 옹구점 → 봉정마을 서남쪽에 있는 마을. 옛날 이곳에서 옹구를 구웠다고 한다.
* 단실 → 영동선(기차) 남쪽에 있는 마을.
17. 달방동
* 거리모텡이 → 길거리에 있던 마을로 지금은 달방 댐 속에 잠겼다.
* 서낭들 → 아랫달방 서낭뒤에 있는 넓은 들.
* 아랫달방 → 달방마을의 중심 마을.
18. 대구동
* 도드미 → 대구동 입구에 있는 마을. 마을이 약간 언덕진 곳에 있어서 마치 흙을 돋아 서 마을을 만든 것 같다고 하여 생긴 이름이다.
* 계동 → 도드미 서쪽 마을. 옛날 마을에 계수나무가 있어서 생긴 이름인데 이 마을에 달이 뜨면 마을이 굉장히 밝았다고 한다.
* 굴미실 → 도드미 북쪽에 있는 마을.
* 학곡 → 마을과 호현 마을과 경계지역에 있는 마을. 옛날 이 마을에 소나무가 우거져 학들이 많이 날라 왔다고 한다.
19. 동회동
* 신당무 → 마을 동북쪽에 있는 마을.
* 방축골 → 옷 바위골 아랫쪽에 있는 골.
* 객당 → 바람재 밑에 있는 야트막한 언덕.
* 신당 → 마을에서 가장 동쪽으로 효가리와 경계되는 곳에 있는 도랑.
* 옷바위[衣岩] → 동위동 막바지골에 있는 바위.
* 솔골 [松谷]→ 광희중고등학교 뒤에 있는 조그마한 골로 객당 아랫쪽에 된다. 소나무가 많이 자라고 있어 생긴 지명이다
20. 북평동
* 뒷뜨루 → 마을 전체 이름. 삼척부 북쪽에 있는 넓은 들이란 뜻이다. 우리는 북방계 민족이라 남쪽을 앞이라 하고, 북쪽을 뒤라고 한다.
* 구장터 → 북평 초등학교 길 옆에서 이도동까지 넓은 들. 옛날 면주재소가 있었을 때 이곳에 장이 섰다고 한다.
* 새모텡이 → 구장터 서쪽 마을.
21. 비천동
* 빈내 → 마을 전체 이름으로 마을 가운데로 흐르는 내가 가파르러서 물이 흐를 때 물줄기들이 세차게 흐르면서 바위에 부딪치면 빛이 난다고 하여 ‘빛나는 내’라는 뜻인 빛내 光川가 변하여 빈내로 되었다.
* 장재터 → 光川齋가 있는 마을. 옛날 이곳에 큰 부자가 살았던 터라는 뜻이다.
* 윗빈내 → 마을 윗쪽에 있는 작은 마을.
* 아랫빈내 → 마을 아랫쪽에 있는 작은 마을.
* 큰말 → 마을에서 제일 중심이 되는 마을.
22. 삼화동
* 웃삼화 → 마을 위쪽에 있는 작은 마을.
* 삼화 → 쌍용시멘트 후문 위쪽에 있는 마을로 삼화 중심에 있는 마을.
* 아랫삼화 → 마을 아랫쪽에 있는 작은 마을.
* 쇠금골 → 마을에서 이기동으로 가는 골. 옛날 이곳에서 쇳돌이 많이 나왔다고 한다.
23. 송정동
* 골말 → 동해 항구 부두 북쪽 마을로 마을의 중심지.
* 나래앞 → 옛날 송정초등학교가 있던 부근. 지금은 바다속으로 들어갔다.
* 담안 → 골말 남쪽 마을로 마을의 지형이 마치 담을 친 것처럼 생겼는데 그 안에 있는 마을이란 뜻이다.
* 솔안끝 → 마을 서쪽 끝으로 옛날 이 부근에 소나무가 많이 자라 숲을 이뤘는데 그 소 나무 숲 안쪽이란 뜻이다.
* 서당구비 → 송정 우체국이 있는 마을 일대. 옛날 이곳에 송음서당이 있어서 생긴 이름이다.
* 射場 → 동해역 동편 솔 숲. 옛날 이곳에 과녁터가 있어서 생긴 이름이다.
* 앞섬 → 북평항구 북부두 일대. 마을 앞에 섬처럼 외따로 떨어진 마을이란 뜻이다.
24. 쇄운동
* 나운들 → 일명 낙운들 이라고도 하는데 용산서원 앞에 있는 대동아파트 단지가 들어선 일대.
* 언당골 → 영일 정씨 재실이 있는 마을. 북평에 들어온 영일 정씨의 시조 ‘도’의 증손인 ‘증’의 호가 彦堂이다.
* 용산 → 용산서원이 있는 마을. 이곳은 영일 정씨의 시조인 ‘도’ 의 묘가 있는 곳에서 볼 때 이곳이 좌청룡에 해당되어 생긴 이름이다.
* 왯두들 → 용산서원 앞에 있는 넓은 들.
* 설운골(서운골) → 장승골 앞내[전천] 남쪽에 있는 깊은 골, 취병산과 고제병 사이에 있는 골로 깊이가 20여리나 된다
25. 신흥동
* 도화동 → 백봉령에서 마을로 내려 오면서 첫 마을. 마을 형상이 ‘복숭아꽃이 땅에 떨어지는 형국(桃化落地型)’이라 하여 도화동(桃花洞)이라 하는데 일명 복성골 이라고도 한다. ‘복성’이란 복숭아의 변형된 말이다.
* 관마을 → 삼흥초등학교가 있는 마을. 조선조 때 이곳에 신흥역이 있어서 관원이 이곳 에서 쉬어 갔다고 한다.
* 샛말 → 도화동과 관마을 사이에 있는 마을.
* 棲鶴洞 → 관마을 앞 내 건너 마을로 옛날 마을 입구에 있던 서낭당에 숲이 우거져서 학들이 날라와 집을 짓고 살았다고 하여 생긴 이름이다.
26. 용정동
* 鳳梧洞 → 동해초등학교가 있는 마을 일대. 옛날 이곳에 오동나무가 숲을 이뤄 봉황새가 많이 날라와서 놀았다고 하여 생긴 이름이다.
* 뫼밑 → 동부산업이 있는 곳 그 위쪽 일대, 산밑에 있는 마을이란 뜻이다.
* 당말재 → 동해초등학교 서쪽으로 옛날 이곳에 서낭당이 있었고, 그 옆에 돌을 쌓아둔 돌무덤인 국시뎅이가 있었다고 한다.
27. 이기동
* 장재터 → 이기동으로 들어 오면서 첫 번째 마을. 옛날 이곳에 돈 많은 부자[長者]가 살 았다고 하여 생긴 이름이다.
* 거릿말 → 이기동 중심 마을로 마을이 거리에 있어서 생긴 이름이다.
* 귀터 → 거릿말 안쪽 언덕에 있는 마을. 멀리 남쪽으로 두타산이 보이는데 두타산이 머 리에 해당되고, 이 곳이 귀에 해당되어 생긴 이름이다.
28. 이도동
* 섬안마을 → 이원동 저수지가 있는 마을. 마을 뒤[북쪽]로는 전천이 흐르고, 마을 앞 남 쪽으로는 귀운골에서 흘러오는 내가 흘러 마을이 섬안으로 되어 있어 생긴 이름이다.
* 배골 → 이도동의 중심 마을.
29. 이로동
* 돌우[巨上] → 달방댐 바로 밑에 있는 마을, 마을 위쪽에 있어서 생긴 이름이다.
* 뇌비름 → 월평 남쪽에 있는 마을로 내를 사이에 두고 있다. 옛날 숲이 우거져 백로가 많이 날라와 생긴 이름으로 鷺飛音이라고도 한다.
* 매내골 → 노비름 안쪽에 있는 마을. 옛날 이 골에서 삼을 많이 재배하여 麻落이라 하다가 변해서 매내가 되었다고 한다.
* 월평[이름말] → 이로동의 중심 마을. 마을에 달이 비치면 굉장히 밝아서 月坪이라고 한다. 올밭들이라고도 하는데 마을에서 가장 넓은 들이 있기 때문이다.
* 동막 → 이름말 아랫쪽으로 이로동 첫 마을이 된다. 동쪽이 막힌 마을이란 뜻이다.
* 홍도 → 동막 앞 내 건너 남쪽에 있는 마을로 옛날 이곳에 붉은 복숭아 나무[紅桃]가 많이 자랐다고 한다.
* 초록당 → 초록봉에 밑에 있는 마을.
* 竹林 → 북쪽으로 높은 산이 있고, 남쪽으로는 나즈막한 남산이 있다. 올밭골 아랫쪽에 있는 마을로 마을에 대밭이 있어서 생긴 지명이다.
30. 지가동
* 柯原 → 지가동 본동 마을. 옛날 저수지 가에 있는 언덕진 마을이여서 생긴 이름으로 ‘가두들, 가두루’라 하다가 음차하여 가원이 되었다. ‘가’는 옆, ‘드들, 두루’는 얕은 언덕을 나타낸다.
* 池上 → 가원 위쪽 마을로 저수지 위쪽에 있는 마을이란 뜻이다.
31. 지흥동
* 분토골 → 초록봉에서 동쪽으로 내려온 기슭에 있는 마을. 이 골에 흰 흙이 많이 났는데 옛날 이 동네 처녀들이 시집을 갈 때 이 흙을 파서 채에 받쳐 잘 골라서 기초화장을하고, 그 위에 연지,곤지를 찍었다고 한다.
* 골말 → 분토골 북쪽에 있는 마을.
* 숯골 → 분토골 북동쪽에 있는 골. 옛날 이곳에서 참나무로 숯을 구웠다고 한다.
* 쟁골 → 북삼초등학교가 있는 골. 옛날 골이 작아서 ‘작은골’이라 하였는데 음이 변해서 생긴 이름이다.
32. 천곡동
* 샘실 → 천곡동을 칭하며 옛날 고을에 물맛이 아주 좋은 샘이 있어서 생긴 이름이다.
* 찬물내기 → 샘실 동쪽 찬샘이 있는 마을. 이 샘물은 여름에는 이가 시릴 정도로 차고, 겨울에는 김이 모락 모락 나서 미지근 하다.
* 가싯양지 → 찬물내기 양지쪽에 있는 마을.
* 덕골 → 초록봉에서 샘실로 내려 오면서 남쪽에 있는 제일 큰 골.
* 항골 → 샘실 중앙에 있는 마을.
* 묘골 → 덕골과 한골 사이에 있는 골로 고속도로가 지나가기 때문에 반으로 갈라졌다.
33. 추암동
* 科洞 → 추암마을 서쪽으로 지금은 마을이 없어졌다. 조선조 선조때 홍확(洪確)이란 분이 이곳에서 공부하여 과거에 급제 하였다고 한다.
* 탄막 → 과동 남쪽에 있는 마을. 옛날 이곳에 갈탄이 많이 났었는데 그때 이곳에다 움 막을 짓고 탄을 캤다고 하여 생긴 이름이다.
34. 평릉동
* 上坪 → 초록봉쪽에 있는 마을. 동해 시외버스 터미널 북쪽에 있는 마을. 마을이 위쪽에 있어 생긴 이름이다.
* 下坪 → 바닷가쪽에 있는 마을. 영동 병원 앞에 있는 넓은 들로 바다까지 이어진 마을. 마을이 아랫 쪽에 있어 생긴 이름이다.
35. 호현동
* 진밸 → 마을의 옛 이름.
* 셍겔 → 마을 제일 위쪽에 있는 골.
* 범고개 → 대구동과 경계지역으로 고개 형상이 범이 누워있는 것처럼 되어 있다.
36. 효가동
* 효거리 → 마을 전체 이름. 효자 金謙(김겸)의 정려가 있어서 생긴 이름이다. 효가는 김겸의 호다
* 양짓말 → 마을 양지쪽에 있는 마을. 【金 起 卨】
37. 약천마을
약천이라는 이름은 신라 고려 때 남쪽의 어떤 선비가 신병이 있어 물좋은 곳을 찾아다니다가 이 곳 심곡 마을에와 물을 먹고 몸이 낳아 서울 가서 높은 벼슬을 얻었다고 하여, 동네에서는 이 우물을 약천이라 하였으며, 마을 이름도 약천동이라 하였다.
후에 약천 남구만 선생이 이곳에 왔다가 자기의 호와 같은 지명이 있는 것을 즐거워하여 이곳에 머물게 되었다고 한다.약천 샘물은 위의 약천과 아래 약천이 있고, 위의 약천은 '구움물'이라 하고 옛날 그 시대에는 먹었는데, 어느때 인가 거기서 흉사가 있어 지금은 식수로 사용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현 약천사 앞 샘물 길 건너편의 샘물 주변에는 1970 년대까지 큰 느티나무(버드나무) 두 그루가 있어 길손들의 쉼터 역할도 하었으나 지금은 베어지고 없다.아래 약천은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시원하며 물 맛이 좋아 수리하여 마을 20 여 가구의 식수로 사용하고 있다.
'초등자료(2015개정이전) > 사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동해시의 자랑스러운 일 -축제와 행사 (0) | 2012.05.20 |
---|---|
동해시의 관광지-볼거리 해수욕장 (0) | 2012.05.20 |
동해시의 관광지도(동해시청2011.2월기준) (0) | 2012.05.19 |
동해시의 문화재, 명승지 살펴보기 (0) | 2012.05.19 |
동해시 도로명 주소찾기 (0) | 2012.05.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