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날’ 첫 제안 주인공 찾았다
입력: 2006년 05월 15일 07:16:32
“가슴이 아픕니다. 너무 안타까워요.” 1963년 청소년적십자(JRC·현 RCY) 충남협의회 활동을 통해 스승의 날 제정을 주도한 윤석란 수녀(60·당시 충남 강경여고 3년)와 유재숙씨(59·대전 거주)는 스승의 날을 하루 앞둔 14일 ‘촌지방지를 위한 초·중·고 휴무 사태’에 대해 착잡한 마음을 드러냈다. 윤수녀는 “해마다 5월이 되면 기도합니다. 모든 게 바람직하게 되도록 해달라고요”라고 덧붙였다.

경향신문은 고교졸업 후 행방이 묘연했던 윤수녀와 유씨를 오랜 수소문 끝에 최근 찾아냈다. 윤수녀와 유씨는 지난 12일 42년 만에 극적으로 해후했다. 윤수녀는 당시 강경여고(현 강경고) JRC 회장으로 1963년 10월 12차 JRC중앙학생협의회에서 강경지역의 스승존경 활동사례를 발표한 뒤 ‘은사의 날’ 제정을 제안, 전국적 운동으로 확산시킨 인물이다. 은사의 날은 64년 ‘스승의 날’로 명칭이 바뀌어 전국 초·중·고에서 기념식이 치러졌다. 정부는 82년 이날을 공식기념일로 제정했다.

윤수녀는 현재 이해인 수녀와 같은 성 베네딕토 수녀회 소속인 경북 안동시 용상동 ‘용상성당’에서 생활하고 있다. 40여년 만에 언론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윤수녀는 “60년대 당시 스승의 날 제정은 (정부나 학교 등의 간섭도 없이)학생들의 순수한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온, 기쁨과 존경의 표시였다”고 여고시절을 회상했다. 그러면서 “학교가 없었던 시절, 옛날 향교나 서당 시절에도 스승에 대한 제자들의 마음은 다 똑같았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스승의 날은 내가 추진한 게 아니다. 나는 스승을 존경하는 수많은 학생들 가운데 하나였을 뿐”이라고 덧붙였다.

유씨는 “여고시절 생각했던 스승의 날 취지는 ‘1년 내내 가르치시느라 고생하시는 선생님들을 위해 하루 정도는 우리가 편하게 모셔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며 “지금처럼 학부모들이 나서 수십만원씩 촌지를 주는 것은 생각조차 못했던 일”이라고 말했다. 유씨는 “64년 첫번째 스승의 날에 학생들이 십시일반 모은 돈으로 마련한 손수건 선물을 들고 활짝 웃으시던 선생님 얼굴을 잊을 수 없다”고 소회를 밝혔다.

두 사람은 현재의 교육현장이 촌지와 교권침해 등으로 얼룩져 있다고 해도 스승과 제자 사이의 믿음과 희망은 잃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수녀는 “교단이 황폐화됐다고들 하지만 학교는 여전히 정말 아름답고 훌륭한 선생님들이 많다. 학생들 역시 너무나 선한 존재들이다. 샘물의 물(선생님 가르침)이 마르지 않는다면 언젠가 마른 흙(학생)도 생명을 얻고 되살아나게 되는 이치”라고 강조했다.

〈정혁수기자 overall@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