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흘리 할망들 집에 그림 가득... '갤러리' 변신
  •  김나영 기자
  •  승인 2022.10.27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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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망 해방 일지’ 전시
다음 달 5일부터 26일까지 매주 토요일 선흘마을  할머니 자택 일곱 곳
선흘볍씨마을협동조합과 사단법인 소셜뮤지엄 기획
선흘리 거주 홍태옥 할머니의 자택인 홍미술관에서 홍 할머니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4‧3 만나 고생 만니하고/고생 늘 하단보난/8십비 너멌구나/그리고 그림선생 만나 그림 그리고 있구나/무수도 그리고 옷도 그리고 참애도 그리고 오이도 그리고….(김인자 할머니)”

그림 그리는 선흘 할망들의 마당, 창고, 소막 등 자택 속 공간이 ‘미술관’으로 변한다.

선흘볍씨마을협동조합과 사단법인 소셜뮤지엄이 다음 달 5일부터 26일까지 매주 토요일 선흘마을  할머니 자택 일곱 곳(토요 미술관) 일원에서 선보이는 ‘할망 해방 일지’ 전시다.

이번 전시는 선흘볍씨마을협동조합과 소셜뮤지엄이 지난해부터 제주문화예술재단 후원으로 마련한 ‘할머니의 예술창고’ 사업으로 할머니 아홉명이 마을 이주 작가 최소연씨 지도로 자신들 삶을 표현한 그림 160여 점을 할머니들 자택 일곱 곳에서 전시하는 프로젝트다.

강희선 할머니 작 '인주팬티'

80∼90대인 참여 할머니들은 ​그림을 배우는 것이 ‘해방’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들은 여성이라서, 밭일하느라, 4‧3으로 학교가 불에 타 글을 배우지 못해서 등 다양한 이유로 글을 제대로 배울 기회가 없었다.

이런 이들에게 그림은 글로 미처 다 표현하지 못한 자신들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풀어내는 계기가 됐다.

아홉 할머니는 매주 모여 그림을 그렸다.

물감으로 좋아하는 패턴이 담긴 옷가지부터 가장 아끼는 분홍빛 일 모자 등의 물건, 밭 수확물, 정성껏 차려낸 밥상, 선흘 마을의 동식물 등을 따뜻하고도 정겹게 표현했다.

다음 달 공개될 아홉 할머니의 작품 전시는  이들 자택을 무대로 도민, 관광객에게 공개된다.

전시장은 소를 길렀던 소막 두 곳과 마룻간, 안거리, 밖거리, 창고, 마당 등 제주 옛 가옥의 매력을 살렸다.

오가자 할머니 작 콩보리

전시 공간은 ▲소막미술관(강희선 할머니 집, 선흘동2길 45, 3인전) ▲창고미술관(오가자 할머니 집, 소막미술관 앞에 옆집) ▲분농미술관(부희순 할머니 집) ▲마당미술관(조수용 할머니 집, 보건진료소에서 동백상회 가는 길 왼편) ▲인자화실(김인자 할머니 집, 동백상회에서 함덕 가는 길 오른편) ▲올레미술관(고순자 할머니 집 함덕농협 선흘 취급소 건너집) ▲홍미술관(홍태옥 할머니 집) 등이다.

개인 자택에서 마련되는 전시인 만큼 관람은 구글링크 신청

(https://docs.google.com/forms/d/1oM8opsxDdPSficwoXxwPvySDbnXN9oCOudyqnVTyEHY/edit) 

통한 투어 형식으로 이뤄진다.

75세에 그림 시작한 국민화가 모지스 할머니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다

내 삶이 무엇인가를 다시 시작하기에 늦었다고 생각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언제든 다시 시작하라고 하고 싶다. 시간은 내 얼굴에 주름을 만들지만 도전하는 마음이 있다면 영혼에는 영원히 주름살이 생기지 않는다는 말을 기억하며.

 

미국의 국민 화가로 불리는 모지스 할머니. 그녀의 본명은 애너 메리 로버트슨 Anna Mary Robertson, 1860-1961이지만 모두가 그녀를 모지스 할머니Grandma Moses라고 부른다. 그녀는 누군가는 마침표라고 생각하는 나이일지도 모르는 75세경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모지스 할머니의 그림을 보면서 신이 우리 각자에게 준 ‘재능의 씨앗’에 대해 생각해본다. 평생토록 자녀들을 키우느라 자신의 재능 돌보기는 뒷전이었던 그녀는 마흔도, 쉰도 아닌, 일흔이 넘어서 주변의 소담스러운 이야기들을 정성스레 그림에 담아낸다.
 


바느질 모임 The Quilting Bee
모지스 할머니 | 1940-1950


마을의 봄, 여름, 가을, 겨울. 마을의 남녀노소가 모여 치르는 작은 행사, 큰 행사. 그렇게 그녀는 102세까지 사는 동안 많은 그림을 그려냈다. 사람들은 소박하면서도 따뜻한 그림을 그린 그녀에게 미국의 국민 화가라는 별명을 지어준다.


그녀에게는 열 명의 자녀가 있었으나 그중 다섯을 잃었다. 그녀는 평소에 자수 놓는 것이 취미였으나 72세에 남편마저 떠나보내고 관절염이 심해져서 더 이상 바느질을 할 수 없게 되자 공허한 시 간을 그림으로 채우기 시작했다. 우연히 발견된 재능에, 꾸준함의 시간이 쌓이면 그 어떤 재능보다 애잔하게 아름답다. 10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그녀가 남긴 그림들은 사람들에게 여전히 따뜻한 말을 건넨다. 그녀의 그림들은 나에게 졸업반 같은 기분을 주었다. 지금까지 본 모든 명화들이 이 명화를 만나기 위해 존재했던 것처럼, 그녀의 그림은 소소하지만 특별하게 느껴졌다.
 


칠면조 잡기 Catching the Turkey
모지스 할머니 | 1940 | 나무에 유채


“시작하기엔 늦은 때라는 없다”라는 말처럼 우리는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앙리 루소는 마흔 살이 다 되어 본격적으로 화가의 길을 걸었고,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는 ‘비판 3부작’의 첫 책 순수이성비판 을 57세의 나이에 발표했다. 나는 그들이 무엇인가를 시작한 나이를 들었을 때 두 번 놀랐다. 한 번은 일흔 살 이후의 삶은 그저 시간만 때우며 살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나의 어리석음을 깨달아서였고, 또 한 번은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인생의 젊은 시기인 20대와 30대가 아닌 마흔 이후에 새로운 직업이나 꿈을 찾았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세상에는 늦었다고 생각한 나이에 무엇인가를 다시 시작한 사람들이 수없이 존재한다. 그리고 심지어 정말 이제는 마지막이구나 싶은 순간에마저도 도전한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도전 덕분에 우리는 그들이 남긴 기록들을 기억하고 용기를 얻는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천상병 시인의 묘비에 적힌 문구이자 그의 시 〈귀천〉의 한 부분이다. 삶은 우리가 하늘로 돌아가기 전 주어진 유한한 시간 속의 소풍이다. 아름다운 소풍을 보낼지 아닐지 여부는 개인의 마음에 달려 있다. 내 삶이 무엇인가를 다시 시작하기에 늦었다고 생각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언제든 다시 시작라고 하고 싶다. 시간은 내 얼굴에 주름을 만들지만 도전하는 마음이 있다면 영혼에는 영원히 주름살이 생기지 않는다는 말을 기억하며.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

https://youtu.be/0eh_zRAxD6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