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상중 교수 “그림은 삶의 의미를 고민하는 젊은이에게 구원을 줄 것”

이명희 기자 minsu@kyunghyang.com

ㆍ‘구원의 미술관’ 펴낸 강상중 도쿄대학 명예교수

강상중 교수는 “젊은이들의 고뇌에 도움이 될 만한 조언을 제시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글을 쓴다”고 했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강상중 교수는 “젊은이들의 고뇌에 도움이 될 만한 조언을 제시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글을 쓴다”고 했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한국 국적의 재일 정치학자 강상중 도쿄대학 명예교수(66)가 삶의 순간마다 만난 그림들에 관해 자신만의 예술론을 펼쳐냈다. 강 교수가 최근 펴낸 <구원의 미술관>(사계절)은 2009년 4월부터 2년간 진행을 맡았던 일본 NHK의 인기 프로그램 <일요 미술관>의 방송 내용을 기초로 한 책이다.

일본 규슈 구마모토현에서 재일교포 2세로 태어난 강 교수는 1972년 처음 한국을 방문한 뒤 자신의 존재를 새로 인식하고 일본 이름을 버리고 한국 이름을 쓰기 시작했다. 독일 뉘른베르크대학에서 정치학·정치사상사를 전공했고, 1998년 한국 국적자로서는 처음으로 도쿄대 정교수가 됐다. 2013년 도쿄대를 떠난 그는 이듬해 세이가쿠인대학 총장으로 부임했지만 1년 만에 그만뒀다. 현재는 구마모토 현립극장 관장을 맡고 있다.

일본의 근대화 과정과 전후 일본 사회에 통찰력 있는 견해를 펼쳐온 강 교수는 30여년 전 ‘한 장의 그림’과 운명적인 조우를 했다. 그는 최근 경향신문과의 e메일 인터뷰에서 “ ‘자이니치(在日) 코리안’으로서 여러 의문들을 끌어안고 방황하던 청년 ‘강상중’이 도망치듯 향했던 독일에서 알브레히트 뒤러(1471~1528)의 ‘자화상’을 마주하고 주변인으로서 지녔던 불안을 비로소 걷어내는 ‘결정적인 순간’을 맞이했다”고 밝혔다.

“<구원의 미술관>의 일본어 원제 <나는 여기에 있어, 당신은 어디에 서 있는가>는 젊은 시절 ‘자화상’을 처음 봤을 때 받은 느낌에서 비롯됐지요. 당시 ‘자화상’을 마주한 순간 ‘나는 여기 이렇게 있어. 그런데 너는 어디에 있니? 너 스스로를 도대체 뭐라고 생각하니?’라는 말이 들려오는 듯했습니다. 뒤러가 건네는 당당한 결의 앞에서 저는 존경심, 아니 어떤 두려움과 경외감에 사로잡혔지요. 정체성에 대한 아무런 확신 없이 방황하던 제 자신의 한심한 모습에 대한 질타와 격려라는 의미로 당시의 감동을 제목에 넣었습니다.”

강 교수는 “인생의 희로애락을 배운 지금 ‘자화상’ 앞에 다시 서면, 당시 받은 감명의 잔향이 작은 불꽃처럼 내 속 어딘가에 남아있음을 느낀다”며 “이제는 내게 ‘지금 나는 여기에 있다’라고 말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예술 작품은 스스로의 수동성을 통해 보는 이의 모습을 비춘다”며 “절대적인 수동성이 관객과 만나면서 가장 적극적인 창조성으로 변화할 수 있다는 데 예술 작품이 품고 있는 역설적인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예술 작품, 특히 회화는 우리가 봐 주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직접 말을 거는 게 아니라 묵묵히 기다리는 것이지요. 작품을 조용히 바라보면 자신이 그림 속에서 모습을 드러냅니다.”

강 교수는 흰옷을 좋아하는 이유에 대해 “흰색은 색이 없는 것이 아니라 색채가 극한에 달해 넘친 경지, 더 나아가 색채 이전의 세계일 수 있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말했다.

<구원의 미술관>이 일본에서 출간된 것은 2011년이다.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겪은 일본인들이 망연자실하던 때였다. 강 교수는 “인간의 능력으로는 어찌해 볼 도리가 없는 사태에 맞닥뜨렸을 때 인간은 신을 구하거나, 아니면 신마저 사라진 세계의 미학을 추구하게 된다”며 “동일본 대지진을 겪으면서 인간의 삶이 지속되는 한 결코 사라지지 않을 예술의 측면을 절감했다”고 말했다. 그는 “젊은이들은 시대를 반영하는 가장 민감한 거울”이라며 “요즘의 젊은이들은 나름의 깊은 고뇌를 직설적으로 표현해내지 못하는 답답함으로 힘들어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예술은 세대를 넘어 현재의 삶 속에서 생명을 얻습니다. 삶의 의미를 고민하는 젊은이들이 스스로를 구원하는 ‘자신만의 작품’ ‘자신만의 미술관’을 더욱 많이 발견해 내기를 바랍니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8182155025&code=960202#csidx69024005732dc7a8a2e83de3abe04c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