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성 키우려면 학교·직장도 유치원처럼 돼야”

주영재 기자 j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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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지고 놀면서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게 하는…
‘평생유치원’ 한국어판 출간 미첼 레스닉 MIT 교수

미첼 레스닉 MIT 미디어랩 석좌교수가 지난 15일 서울 봉은사 근처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 중 아이들의 창의성을 키울 디지털 기술을 설명하고 있다. 이상훈 선임기자 doolee@kyunghyang.com

미첼 레스닉 MIT 미디어랩 석좌교수가 지난 15일 서울 봉은사 근처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 중 아이들의 창의성을 키울 디지털 기술을 설명하고 있다. 이상훈 선임기자 doolee@kyunghyang.com

업무시간 20%를 개인 일에 쓰는 ‘구글 방식’도 도입해 볼 만
교사·학부모는 지도와 훈육보다 스스로 생각하게 도와줘야

창의성은 인간이 기계에 뺏기지 않을 최후의 보루로 여겨진다. 인공지능(AI) 시대를 맞아 창의적인 소프트웨어 인재를 키워야 한다는 강박감은 코딩교육에 대한 높은 관심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본질은 어디 갔는지 한국에서의 코딩교육은 기존 지식 전달 위주의 주입식 방식으로 이뤄지기 일쑤다. 전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사용되고 있는 어린이 코딩교육 프로그램 ‘스크래치’로 만든 프로그램들을 공유하는 웹사이트에 한국 어린이 30명이 만든 30개의 프로그램이 동일했다는 것은 획일화된 코딩교육의 실례를 보여준다. 

미첼 레스닉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MIT) 미디어랩 석좌교수(62)는 지난 15일 서울 봉은사 인근에서 경향신문과 만나 이 같은 사례를 언급하며 “교사와 부모가 정보와 지식을 전달하려 하기보다 아이들이 새로운 방식으로 생각하게끔 돕는 촉매제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레스닉 교수는 ‘스크래치의 아버지’로 불린다. 그가 이끌고 있는 MIT 미디어랩의 ‘평생유치원(Lifelong Kindergarten)’그룹에서 개발한 코딩교육 프로그램이 스크래치이다.

그래픽 기반이라 배우기 쉬워 150개국, 2500만명의 아동들이 스크래치를 이용해 자신만의 다양한 프로젝트를 만들고 있다. 창의적 학습 방법론을 담은 저서 <미첼 레스닉의 평생유치원>의 한국어 출간에 맞춰 지난주 방한한 그는 게임업체 스마일게이트가 후원하는 스크래치 워크숍에도 참여해 한국 아이들을 직접 지도했다. 

레스닉 교수는 “아이들이 창의성을 발휘하고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도구로 활용하도록 하는 것이 디지털 기술교육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존 진부한 교과과정과 교수법을 그대로 두고 기술을 지식 전달의 도구로만 활용하는 것은 그저 “호박에 줄을 긋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런 점에서 “대부분의 디지털 기술이 창의적 사고나 표현을 위해서가 아니라 지식을 전달하거나 오락을 위해 설계된 점을 불행하게 여긴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막연하게 기술 회의론자가 되는 것도 경계했다. 신기술을 제대로 설계하고 적절한 지원과 함께 제공하면 아이들에게 실험하고, 탐구하고,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아이들을 창의적인 두뇌로 키울 수 있는 기술이란 어때야 할까?

레스닉 교수는 ‘낮은 문턱’과 ‘높은 천장’, ‘넓은 벽’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초보자도 쉽게 시작할 수 있게 하고, 시간이 지나면서 더 복잡한 프로젝트를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넓은 벽은 아이들이 다양한 프로젝트를 시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런 특성은 스크래치에서 잘 드러난다. 스크래치는 게임뿐만 아니라 대화형 이야기, 미술, 음악, 애니메이션 같은 다양한 프로젝트를 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그는 “창의성을 키우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아이들이 놀이하는 것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동료들과 협력해 프로젝트에 열정을 가지고 빠져들도록 지원하는 것”이며 “연령을 불문하고 모두가 창의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하는 방법을 배우도록 학교와 직장이 유치원처럼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주입식·강의형 교육에서 직접 만지고 놀면서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 때 세상을 가장 잘 이해한다는 교감형 교육 모델을 만든 유치원이 지난 1000년간 가장 큰 발명품”이라고도 했다.

그러나 초등학교부터 모든 교육과정이 대학 입시에 초점을 둔 한국의 현실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레스닉 교수는 급진적이면서도 점진적인 변화를 주문했다. 먼저 직원들의 전체 업무시간의 20%를 그들 스스로의 프로젝트에 사용하도록 하는 구글 방식을 도입해보자고 제안했다. 그는 “이 시간이 조금 지나서는 25%, 30%로 늘어날 것이고 이렇게 조금씩 바뀌어나가는 과정처럼 결국 모든 학교도 그렇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구글 방식을 도입하는 것 자체가 급진적 시도라면 이후 변화는 점진적으로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는 이어 “학교와 같은 전통 교육기관의 틀을 벗어난 방과후 학습, 프로젝트 기반의 워크숍 등에서 이런 변화가 먼저 일어날 것”이라며 “아이들이 이런 곳에서 창의성과 기쁨을 경험하면 그들 스스로 변화의 촉매자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교실의 수동성에 좌절한 아이들은 오래된 교육 방식을 받아들이지 않고 변화를 추구할 것”이라면서 이런 점에서 그는 자신이 단기적으로 비관주의자, 장기적으로 낙관주의자라고 말했다. 

레스닉 교수는 “교사와 학부모의 역할도 바뀌어야 한다”며 “교사는 지식 전달과 훈육이 아니라 아이들이 새롭게 생각하게끔 하는 촉진자로서의 역할로 재정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부모는 아이들이 모험하고 실험하고 자신만의 프로젝트를 디자인할 수 있도록 조언자가 되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창의성을 인간의 본질로 봤다. 창의성은 경제적 부를 주기도 하지만 인간이 인간답게 살도록 하는 데 필수적 요소로 그 자체가 삶에 기쁨과 의미, 목적을 부여한다.

 

그는 “기계가 인간을 대신해 창조적인 일을 하는 시대는 먼 미래의 일이고, 그때도 사람들이 통찰력을 갖고 하는 일을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상상력과 창의력은 인간만이 지닌 특별한 능력이라는 것이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810182042045&code=100100#csidx38f1235347465569739db53935943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