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5년 새해가 밝았다. 올해는 을미(乙未)년, 양띠해다. 물론 음력 설이 지나야 진짜 양띠해가 되지만 그래도 미리 양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십이지지(十二地支)는 자(子·쥐), 축(丑·소), 인(寅·호랑이), 묘(卯·토끼), 진(辰·용), 사(巳·뱀), 오(午·말), 미(未·양), 신(申·원숭이), 유(酉·닭), 술(戌·개), 해(亥·돼지)의 열두 띠 동물들을 가리킨다. 이 동물들은 한국과 중국, 일본에 많은 이야기를 남겼다. 한·중·일 삼국은 모두 십이지지를 시간과 방위 개념으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올해의 띠동물인 양(未)은 12지의 여덟 번째 동물이다. 시각으로는 오후 1시에서 3시, 달(月)로는 음력 6월, 방향으로는 남남서를 가리킨다.
우리나라·일본에는 양 관련 설화 드물어
유교의 영향을 받고 한자를 사용하는 동아시아 문화권에서 양은 천지신명이나 종묘에 모신 선조 왕들, 공자를 비롯한 유교의 성인들에게 제사 지낼 때 제물로 올리는 신성한 동물로 여겨졌다. 살이 쪄서 큰(大) 양(羊)은 제물로 바치기에 아름답다. 아름다울 미(美)자가 만들어진 원리이다. 이런 식으로 양이 들어간 한자들은 대부분 좋은 뜻이다. 착할 선(善), 옳을 의(義), 상서로울 상(祥)자에도 양이 있다. 상(祥)자 왼편에 있는 시(示)자는 신을 의미하기에 상서로운 양은 하늘이 내려준 권력과도 관계가 있다. 한고조 유방의 양꿈이 그 예다. 유방이 한나라를 세워 왕이 되기 전의 일이다. 그는 큰 양을 쫓아가 양을 잡자마자 뿔을 뽑아 버리고 꼬리는 잘라 버리는 꿈을 꾸었다. 꿈에서 깨어난 유방이 해몽을 부탁하자 주위에서는 왕이 될 꿈이라고 했다. 양(羊)자에서 뿔과 꼬리를 없애면 임금 왕(王) 자가 되기 때문이다. 과연 그는 항우를 물리치고 중국의 왕이 되었다. 이 양꿈 이야기는 우리나라에도 있다. 이성계가 유방이 꾼 것과 똑같은 양꿈을 꾸자 무학대사가 해몽해 준다. 이성계는 곧 조선 태조가 된다. 이는 이성계 추종 세력이 중국 고사의 권위를 빌어 역성혁명을 정당화하려는 의도에서 꾸며낸 이야기라고 보기도 한다. 여하튼 그만큼 양이 우리나라에서도 상서로운 동물로 여겨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중국에 비해 우리나라와 일본에 전해지는 양 이야기는 적은 편이다. 흔히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와 일본은 초원이 드문데다 계절풍 기후여서 여름에 비가 많이 내리기 때문에 양을 대규모로 키우기 어렵다. 양이 있기는 했지만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하얀 털이 복슬복슬한 면양이 아니라 산양, 즉 염소였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는 양띠를 염소띠라고 부르기도 했다. 양과 염소를 같은 동물로 여긴 증거는 윷놀이에도 있다. 도개걸윷모는 각각 돼지·개·양·소·말이다. 양이 걸이 된 이유는 새끼양과 염소를 다 고(羔)라고 썼는데 이것이 ‘걸’로 변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과거 우리나라는 북방 유목민족들과 교류하거나 이따금 제례용 양을 사들여왔기에 양이 좀 알려진 편이었지만 일본은 상상의 동물인 용보다 양이 되려 낯선 짐승이었다. 19세기 후반 메이지유신 이후 일본 정부가 군복 제작에 필요한 양모를 생산하기 위해 홋카이도에서 대규모로 양을 사육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일본은 1930년대에는 우리나라 북부 지역 농민들에게도 양 사육을 강제했다. 전쟁 물자를 강탈하기 위해서였는데 이를 남면북양정책(南棉北羊政策)이라 부른다. 이렇듯 근대 이전까지 우리나라와 일본 사람들에게 양은 쉽게 볼 수 없는 동물이었다. 개화기 때 기독교를 포교하기 위해 선한 목자와 양 이야기를 했다가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해 서양 선교사들이 난감해했다는 일화가 전해질 정도다.
양은 불교와도 관련이 있다. 불교의 발상지인 인도·네팔 지역에는 양이 흔한 가축이어서 불교 설화나 종교화에 종종 등장한다. 우리나라 전라남도 장성의 백양사에는 불교의 영향을 받은 양 이야기가 전해진다. 조선 선조 때 한 스님이 금강경을 설법하자 하얀 양이 내려와서 며칠 동안 사람들과 함께 들었다. 법회가 끝난 날 밤 스님의 꿈에 흰 양이 나타나 “덕분에 깨달음을 얻어 업에서 풀려나 환생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다음날 스님이 법회 장소에 가 보니 흰 양 한 마리가 죽어 있었다. 그때부터 원래 백암사였던 절의 이름을 백양사로 바꿔 불렀다고 한다.
다음은 일본의 유일한 양 전설이다. 695년 양띠해(未年, 미년)에 현재 군마현 지역에 태어난 사람이 있었다. 그는 미년 미월 미일 미시에 태어나 히츠지사마 라고 불렸다. 말을 타고 하늘을 날아 당시 일본의 수도였던 나라에 있는 궁정에 출근하던 어느 날, 수행하던 동자가 낮잠을 자는 사이에 히츠지사마는 동자의 옆구리에 있는 날개를 뽑아 버렸다. 그러자 동자는 더 이상 빠르게 달릴 수 없게 되었다. 히츠지사마도 수도에 갈 수 없게 되었다. 나라에서는 그가 오지 않자 반역을 의심하여 토벌군을 보냈다. 결국 히츠지사마는 자살하고 만다. 날개 달린 동자가 등장하는 점에서 이 이야기는 우리나라의 아기장수 설화와 비슷하다. 그런데 중앙 권력에 희생당하는 주인공 이름이 양사마인 것을 보면 양이 희생의 상징인 것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마찬가지인 것 같다.
동서양 막론하고 제물로 바쳐졌던 신성한 동물

하지만 양과 곡식이 늘 경쟁상대였던 것은 아니다. 곡식 농사의 기원을 알려주는 중국 설화를 보자. 곡식이 없어서 사람들이 늘 굶주리는 것을 불쌍히 여긴 착한 양이 하늘나라 옥황상제의 밭에서 몰래 곡식 이삭을 훔쳐다 준다. 이 이야기는 농경 정주민족과 유목민족의 상호 영향으로 이뤄진 중국 역사를 반영하고 있다. 한편, 여기서 알 수 있는 중요한 사실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양은 식물의 신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양뿔 모양은 식물 줄기의 모양과 유사하기 때문에 학자들은 농경이 시작되던 신석기 시대 토기에 있는 소용돌이 문양을 양뿔 문양이자 식물 덩굴 문양으로, 양신을 식물신으로 보고 있다. 이는 고대 이집트에서 양신인 아리에스(aries)에게 풍요를 비는 봄의 의식을 치른 점과도 관련이 있으며 현재에도 기독교문화권의 봄축제인 부활절로 이어진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아르고스 원정대 이야기에서도 양이 풍요의 상징임을 찾아 읽을 수 있다. 이아손은 왕위를 계승하기 위해 헤라클레스 등 50여 명의 영웅들이 참가하는 원정대를 구성하여 아르고스 호를 타고 보물을 찾으러 간다. 그 보물은 용이 지키고 있는 떡갈나무에 걸려 있는 황금양털이다. 양털과 양가죽은 고대 중근동에서 풍요의 상징으로 등장한다. 히타이트 설화에는 영원히 푸른 신성한 나무에 알곡과 포도주 등이 가득 찬 양가죽 자루가 걸려 있는 이야기가 있다. 양은 농경의 신이기도 했던 것이다.
지금까지 숨차게 올해의 띠동물인 양 이야기를 했다. 위에 나왔던 이야기들보다 더 익숙한 양 이야기는 아마 이솝 우화에 나오는 양치기 소년 이야기일 것이다. 그 이야기의 교훈은 거짓말을 하지 말라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한편, 궁금하다. 왜 소년은 거짓말을 해서라도 사람들이 자신에게 몰려오게 하고 싶었을까? 서양의 전통 농가는 농경과 목축을 병행한다. 집집마다 몇 마리씩 키우는 양은 마을의 고아나 가난한 집 아이에게 수고비를 주고 풀을 뜯겨 달라고 맡기곤 했다. 일종의 사회복지 개념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어린 아이가 혼자 들판에서 양떼만 바라보고 지내는 것은 너무 외로운 일이었다. 그래서 양치기 소년은 늑대가 나타났다는 거짓말을 한 것 아닐까? 너무 외로워서, 사람이 그리워서 말이다. 그렇다면 양치기 소년 이야기가 주는 교훈을 다른 방향으로도 생각해볼 일이다. 과연 도덕적으로 비난 받아야 할 사람이 외로운 양치기 소년인지, 아니면 생각이 짧았던 마을 어른들인지를.
이야기를 마치며, 나는 기원한다. 양띠해인 올해가 그저 양처럼 순하게 지나가기만 할 것이 아니라 사회 곳곳에 있는 가난하고 외로운 양치기 소년의 마음까지 살펴보는 한 해가 되기를. 새해에도 이야기의 숨은 배경을 찾는 이 코너는 계속된다. 독자 여러분의 성원에 미리 감사 드린다.
박신영 『백마탄 왕자들은 왜 그렇게 떠돌아다닐까』 저자, 역사에세이 작가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왜 12간지의 양이 기분 좋은 양일까?오마이뉴스15.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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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년 청양해를 맞이해 중국 각종 그림 사이트에서 공유되고 있는 그림 | |
ⓒ 쥐투왕聚圖網 |
2015년 새해가 밝았다. 해가 뜨고 저물고 달이 솟고 사라지는 하루가 어디 오늘뿐이겠는가? 천지 만물이 생기고 세상의 온갖 동물이 인간과 더불어 살기 시작하자 털조차 눈처럼 정겨운 양이 한눈에 들어왔다. 양은 고기가 됐고 똥오줌은 밭을 가꾸었고 가죽은 인간의 피부를 감싸주었으며 뿔로는 술을 따르고 노래를 부르도록 악기가 됐다. 그래서 양은 토템이 되기도 했고 양의 피는 하늘에게 바치는 경배로 승화했다.
동한시대 학자 허신이 평생 심혈을 뿌리며 연구한 한자의 교본 <설문해자說文解字>를 펼치면 양은 곡 양(祥)이라 해설하고 있다. 경사가 날 정도로 운이 좋아 행복하다고 해야 할길상이자 매우 기쁘고 좋은 징조인 상서이다. 이보다 더좋은 뜻이 또 있을까? 양의 해를 맞아 덕담으로 꽤 믿음직한 동물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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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한시대 학자 허신許愼의 한자 교본 <설문해자說文解字> | |
ⓒ 오성서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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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羊의 고대 글자체, 왼쪽부터 예서??(전국시대), 소전小篆(진나라), 금문金文(주나라), 갑골문甲骨文(상나라), 골각문骨刻文(뼈에 새긴 상형) | |
ⓒ 바이두 |
우리의 가깝고도 쓸모 많은 친구 '양'
왜 12간지의 양이 기분 좋은 양일까? 그 힌트는 시礻/示에게 있다. 상(商)나라의 거북이 껍데기에 긁은 갑골문이나 주나라의 청동기에 새긴 금문 모두 '횡으로 모양을 하고 있는 제사장이 제물을 앞에 두고 행하는 제사'를 뜻하는 상형 문자임을 기억해두고 있다. 우리의 가깝고도 쓸모 많은 친구가 그 자리에 드러누워 있었을 것이 100% 분명하다. 양은 스스로 인내하며 맑은 눈을 감으며 나약하고 '사악'한 인간을 대신해 천지신명에 드리는 제사의 희생양이 된 것이다.
양과 비슷한 등급의 한자는 수없이 많다. 분봉(分封) 국가 주나라가 창안했으며, 장자인 '대종大宗의 세습과 소종小宗의 분화'로 상징되는 종법제도의 '종宗'은 조상이자 가족, 숭배의뜻이기도 한데 한마디로 말하면 제사 지내는 집이자 종묘다. 하늘의 신 '신神'과 땅의 신 '기祇'에도 당연히 제사 행위가 착 달라붙은 것이다.
▲ 산동 곡부의 공자사당 공묘孔廟에서 공자에 대한 봉공 제사의식을 올리는 중. 제사는 고대에 '희생양'을 두고 올리던 전통이 이어진 것이다. | |
ⓒ 최종명 |
무엇보다도 가장 멋진 양을 위한 '제사'의 언어는 '축복祝福'이다. '축'은 주문을 비는 주咒을 뜻하고 '복'은 양손으로 술을 술잔에 따르며 제사를 지내는 뜻이라고 갑골문에 새겨져 있다. 역시 갑골문에 나타나는 '제祭'는 위 왼쪽 상형은 희생된 고기이며 위 오른쪽 又는 손(手)이었다. 제사상에 올려진 고기를 어루만지는 행동이니 당연히 양이 주인공이었을 것이다. 이렇듯 갑골문이나 금문에서 두 개이상의 상형이 어우러진 글자를 회의자라고 한다.
▲ 하북 성 공중초원에서 만난 양 떼 | |
ⓒ 최종명 |
▲ 하남성 개봉 야시장에서 본 양고기 꼬치 파는 회족 아가씨 | |
ⓒ 최종명 |
2015년을 책임질 양의 가장 기분 좋은 회의자는 미(美)다. 양羊과 대大가 하나로 결합한 글자가 '아름답다'이니 정말 아름다운 글자가 아닐 수 없다. '양이 크다'거나 '커다란 숫양' 같은 개념을 고대인이 생각했다면 착각이고 평범한 해석이다.
정말 '아름다운' 이유는 지금껏 위에서 설명한 주인공의 희생정신과 더불어 큰 대자를 품고 있다는 점이다. 갑골문에서 형상하는 것은 사람이 정면으로 서 있는 모습으로 손과 발이 펼쳐진 모양새를 이야기해주고 있다. 양을 앞에 두고 사람이 서 있는 모습이다. 사람 인이 갑골문에서 그저 두 손을 모으고 예를 올리는 모양새인 것에 비해 대大가 내포한 뜻은훨씬 크고 '신앙적'이고 아름답다.
대大자가 '크다'라는 뜻이 된 것은 제사를 지내는 사람의 모습이 위대하기 때문이니 바로 제사장을 보고 새겼을 것이다. 생물학적으로 남자냐 여자냐의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모계사회의 전통이라면 제사장은 여자일 수도 있다.
사마천이 남긴<사기史記> 중 오吳나라 군주태백과 후세를 기록한 '오태백세가吳太伯世家'에는 여러 번 미美를 경탄하고 있다. 오나라계찰季札이 사신으로 주유하는 도중 주 나라 왕실의 음악과 춤을 듣고(아마 만찬이라도 했을 터) 수 없이 "아름답구나美哉!"라고 했다. 사마천은 계찰의 입을 통해 맛味, 색깔色, 소리聲, 모양態이 좋은(好) 것이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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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 민화는 양을 소재로 길상(경사)가 오길 바라는 주제의 대길상도大吉羊?로 중국민화로 옥션에서 쉽게 구매할 수 있다. (약 인민폐 3만위안), 오른쪽 삽화는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 ‘오태백세가吳太伯世家’에는 마음속으로 다짐한 약속을 지킨다는 심허心許, 계찰괘검季札掛劍의 고사가 기록돼 있다. 아름답다는 미美에 대한 표현이 아주 많이 등장하기도 한다. | |
ⓒ 상해숭원예술, <사기史記> |
오 나라의 공자로 아버지와 형들과 조카까지 왕위를 주려고 했으나 끝내 사양했던 계찰이 첫 사신의길로 나섰을 때 서徐나라를경유하게 됐는데 서왕이 자신의 보검을 갖고 싶어하지만 감히 말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검은 주유 중에꼭 필요하므로 귀국하는 길에 주고자 마음 먹었는데 다시 서나라를 찾았을 때는 이미 서왕은 죽고 없었다. 그럼에도 계찰은 검을 풀어 서왕 무덤 옆 나무에 걸어놓았다. 마음속으로 다짐한 약속을 지킨다는 심허心許는 계찰괘검季札掛劍의 고사에서 나온 것이다. 신의의 상징 계찰이 칭송한 아름다움이 그 이상인 것은 이런 사람 됨됨이가 전해져서 일 것이다.
새해에는 양띠거나 아니거나, 가정이나 사회, 기업, 나라의 대통령부터 민초에 이르기까지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 많으면 좋겠다. 양은 인류의 탄생부터 옆에서 줄곧 신의를 지켜왔기에 아름다운 존재로 남아있는 것이 아닌가? 하여간 양이 출연한 무대는 아름답다는 뜻이다. 제사는 축제였기에 위대한 사람이 주관하는 행사는 아름다운 불꽃축제였을 수도 있고씨족 모두가 함께 즐겁게 노는 행사였다. 사마천이 말하고 싶었던 것도 먹고 마시고 노래 부르고 춤추는'아름다운 축제'가 아니었을까?
▲ 흙탕물을 건너고 있는 양 떼들. 하북성 파상초원?上草原의 아침 | |
ⓒ 최종명 |
중국, 사방에서 양을 만나다
중국을 다니다 보면 온 사방에서 양 떼와 만난다. 물론어스름 저녁 무렵에는 야시장에서 맥주 한 잔에 양고기 꼬치를 안주 삼기도 한다. 초원에 가노라면 양바비큐 한 마리도 여럿이 주문해 파티를 열기도 한다. 2년 전 하북 성 공중초원空中草原 산장에서 하룻밤을 묵을 때였다. 윈도 바탕화면에 나올 듯한 멋진 초원에서 양 떼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었다.
사람이 가까이 다가가도 토끼처럼 도망 가지도 않고 소처럼 노려보지도 않는다. 저녁에 양 한 마리를 주문하고 나서 갑자기 양을 어떻게 잡는지 궁금해졌다. 주인이 양 떼를 몰아 우리로 몰아가더니 제일 나중에 문으로 들어가던 놈의 목덜미를 꽉 잡았다. 주인이 하는 말이 양들도 자신의 친구가 희생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을 것이라 하더라.
양을 보면 참으로 감사하다. 양과 함께 있으면 고개가 저절로숙여지는 글자가 하나 더 있는데 바로 모태에서 생명의 탄생을 응원하는 양수羊水가 아닐까 싶다. <역경易經>의 천일생수天一生水는 세상은물이 근원이라는 뜻이니 양과 만나 참으로 놀랍고도 경이로운 낱말이다. 양수는 음양이론과 서로 연결되며 양수와 서로 통하며 발음도 같다. 인류생명의 시작과 함께 양과 뗄 수 없다고 고대인들이 생각했던 것이다.
인류의 탄생과 성장을 도와준 든든한 친구이자 생명의 상징이기도 한 양! 2015년 해가 돋는 날을 맞아 사람에게 아름다움을 선사하고 축제는 물론 상서로운 행복을 주는 양에게 감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