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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잎·씨앗…아낌없이 주는 ‘동백’ 덕에 피어난 웃음꽃
입력 : 2025-02-09 14:00
 
수정 : 2025-02-09 22:30
[주제가 있는 마을] (25) 제주동백마을 
연구회 세워 동백기름 등 생산·판매 본격화 
화장품 제조업체 납품…지속 교류 ‘상생’ 
비누 만들기 등 다양한 체험프로그램 진행
“우리 마을이 짠 동백기름 맛 좀 보세요.” 오동정 회장(맨 왼쪽부터), 최혜연 사무국장을 비롯한 제주동백마을 동백고장보전연구회 회원들이 마을 방앗간에서 직접 짠 기름을 들어 보이고 있다.

동백은 세번 피는 꽃으로 불린다. 나무에서 한번, 땅에 떨어져 또 한번, 꽃을 본 사람 마음속에 다시 한번. 제주 서귀포시 남원읍 신흥2리에선 동백 씨앗까지도 주민들 얼굴에 웃음꽃을 피운다.

신흥2리의 또 다른 이름은 제주동백마을이다. 2644㎡(800평) 규모의 동백나무 군락이 있고 마을 사람들이 동백을 이용해 수입을 얻기 때문이다. 마을에 동백이 심긴 건 300여년 전부터다. 기록에 따르면 옆 마을에 살던 김명환이라는 사람이 1706년 신흥2리에 처음 정착했다고 한다. 그렇게 마을이 생겨났고 사람들은 방풍림으로 동백나무를 심었다. 시간이 만든 울창한 동백나무 숲은 1973년 ‘신흥 동백나무 군락’이란 이름으로 제주도 기념물로 지정됐다.

동백꽃과 씨앗을 주워 활짝 웃고 있는 마을 할머니들.

주민들은 초봄이면 꽃을 감상하고, 가을이면 씨앗을 주워 가족이 먹을 만큼의 기름을 짜며 동백을 활용했다. 그러던 2007년, 마을 청년회에서 동백을 주제로 마을을 브랜딩하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이후 동백고장보전연구회(이하 연구회)를 세워 동백나무 심기, 동백기름 생산 등을 이어오고 있다.

연구회는 주민 누구나 자유롭게 가입할 수 있다. 지금은 주민 500여명 가운데 35명이 가입해 있다. 이들은 연구회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의무를 지니며, 일한 만큼 급여를 받는다. 대부분 귤농사를 짓고 있어 작업은 저녁이나 농한기에 이뤄진다. 청년회를 시작으로 연구회 총무까지 맡고 있는 한봉식씨(50)는 “사람들이 힘을 합쳐 마을을 점점 발전시켜 나가는 모습을 보면 뿌듯하다”고 말했다.

동백기름 생산은 하나부터 열까지 주민 손을 거친다. 동백 씨앗이 여물어 떨어지는 10월이면 마을 할머니들은 이를 주워 연구회에 판다. 회원들은 씨앗을 깨끗하게 씻고 말린 뒤 품질이 낮은 것을 솎아낸다. 남은 알짜를 고온에 볶은 뒤 압착하면 고소한 냄새를 풍기는 동백기름이 쪼르르 나온다. 동백기름은 마을 매장과 온라인에서 판매하고 있다. 진하게 짠 생식용, 그보다 연한 가열 요리용, 몸에 바르는 오일까지 세 종류다. 최혜연 연구회 사무국장은 “동백기름엔 나쁜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춰주는 올레산이 풍부하게 들어 있다”며 “먹어도 좋고 몸에 발라도 좋다”고 자랑스레 말했다.

다양한 사이즈로 판매 중인 동백기름 세 종류(생식용·요리용·보습용).

마을 수입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화장품 제조기업 아모레퍼시픽이 사들이는 물량이다. 마을은 2010년부터 아모레퍼시픽과 협약을 해 동백 꽃·잎·씨앗을 납품한다. 이들은 화장품과 꽃차로 다시 태어난다. 지난해에는 꽃·잎·씨앗을 합쳐 5t을 계약했다. 모두 주민들이 하나하나 수확한 것이다. 아모레퍼시픽은 마을이 판매하는 동백기름 패키지와 마을 로고를 디자인해 제공하기도 했다. 또 마을에서 창립기념 행사, 신입사원 연수를 개최하고 동백나무도 심는다. 2022년엔 전문 인력을 마을 방앗간에 파견해 동백기름 라이브 커머스(실시간 상거래)를 진행했다. 오동정 연구회 회장은 “아모레퍼시픽 덕분에 동백기름을 돋보이게 하는 예쁜 병이 생겼다”며 “동백 납품을 넘어 꾸준히 교류하며 상생할 수 있어 기쁘다”고 전했다.

동백기름을 넣은 비누와 마을 로고. 서귀포=김도웅 프리랜서 기자, 동백고장보전연구회

동백을 활용해 다양한 체험활동도 운영한다. 동백기름을 넣은 비누와 화장품, 고사리 파스타를 직접 만들어볼 수 있다. 제주산 농산물과 동백기름으로 조리한 비빔밥·샐러드·전 등이 나오는 ‘동백비빔밥 한상차림’도 인기 만점이다. 메뉴는 마을 주민들이 함께 맛보며 개발했다. 상주 근무자가 최 사무국장밖에 없어 체험 프로그램은 10명 이상 단체 예약을 받아 진행한다.

연구회의 지난해 매출은 약 2억원. 수익 대부분은 동백을 주워 오는 어르신들과 기름을 짜는 회원들의 인건비로 사용한다. 5%는 마을 발전기금으로 기부한다. 이처럼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마을 경제활동에 참여하고, 나무 심기를 통해 지속가능한 생태계를 이뤄가는 점을 인정받아 2023년 유엔세계관광기구(UNWTO) 최우수 관광마을로 선정됐다. 동백마을의 다음 목표는 ‘은퇴자 마을’ 만들기다. 오 회장은 “노년층은 물론 퇴사 후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는 젊은이들이 동백나무 숲에서 쉬며 제2의 인생을 계획하는 걸 도우려 한다”고 밝혔다.

서귀포=황지원 기자 support@nong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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