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해척주비

조선 현종 2(1661) 때 삼척 부사를 지낸 허목(15951682) 선생과 관련이 있는 2기의 비이다. 허목 선생은 성리학을 발전시켰으며 제자백가와 경서연구에 전념하였고 특히 예학에 뛰어난 인물이었다 한다.

 

척주동해비는 정상리 육향산에 자리하고 있다. 원래 정라진앞 만리도에 세워 놓았던 것을 비가 파손되자 숙종 36(1710) 이곳으로 옮겨온 것이다. 당시 이 지방은 파도가 심하여 바닷물이 마을까지 올라오고 홍수가 지면 주민의 피해가 극심하였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허목이 신비한 뜻이 담긴 글을 손수 짓고 독특한 필체로 비문을 새겨 이 비를 세웠는데, 신기하게도 바다가 잠잠해지고 그후로 주민들의 피해도 없었다고 한다. 문장이 신비하면서 물리치는 능력도 지녔다 하여 퇴조비라고도 불리우며, 전서체(篆書體)에서 동방의 제1인자로 불리우는 허목 선생의 기묘한 서체로 인해 더욱 유명한 비이다.

 

*죽서루

이 건물은 창건자와 연대는 미상이나 <동안거사집>에 의하면, 1266(고려 원종 7)에 이승휴가 안집사 진자후와 같이 서루에 올라 시를 지었다는 것을 근거로 1266년 이전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 뒤 조선 태종 3(1403)에 삼척부의 수령인 김효손이 고쳐 세워 오늘에 이르고 있다.

 

()란 사방을 트고 마루를 한층 높여 지은 다락형식의 집을 일컫는 말이며, '죽서'란 이름은 누의 동쪽으로 죽장사라는 절과 이름난 기생 죽죽선녀의 집이 있어 죽서루라 하였다고 한다.

 

이 누각에는 율곡 이이 선생을 비롯한 여러 유명한 학자들의 글이 걸려 있다. 그 중 제일계정(第一溪亭)’은 현종 3(1662)에 허목이 쓴 것이고, ‘관동제일루(關東第一樓)’는 숙종 37(1711)에 이성조가 썼으며 해선유희지소(海仙遊戱之所)’는 헌종 3(1837)에 이규헌이 쓴 것이다.

 

주변 두타산의 푸른 숲, 삼척시의 서쪽을 흐르는 오십천이 내려다 보이는 절벽 위에 있어 예로부터 관동팔경의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삼척대이리너와집

동서로 길게 뻗은 계곡의 서측 산등성이 아래에 자리잡은 너와집으로, 현 소유주의 11대조가 병자호란(1636)때 이곳으로 피난와서 지은 것이라 한다. 동남향한 너와집의 왼쪽에 굴피로 지붕을 이은 곳간채가 있고 남쪽에 측간이 있다.

 

대문을 들어서면 가운데에 마루와 도장방이 있고, 좌우로 사랑방과 안방이 있다. 안방과 사랑방 구석에는 관솔가지를 태워 난방과 조명의 역할을 하는 '코클'이 있다. 마루와 부엌 앞쪽에는 흙바닥으로 된 통로 같은 공간이 있고, 대문간 왼쪽으로 외양간채를 붙여 돌출시켰다. 외양간의 위는 다락을 꾸몄다. 부엌문을 열고 나가면 안마당이 있고, 마당에 한데부엌으로 솥 하나를 걸어놓았다. 벽은 흙벽이나 남쪽벽은 판자벽이고, 지붕은 널판으로 이은 너와집이다. 내부의 지붕속은 그대로 개방하여 집안의 연기들이 지붕 양쪽 까치구멍으로 나가도록 되어 있다.

 

코클·시렁·뒤주 등 생활모습을 보여주는 설비들이 잘 보존되어 있으며, 지금 남아 있는 너와집 중 가장 오래되고 보존상태도 양호한 자료이다.

 

*준경묘

준경묘·영경묘의 묘역(墓域)과 재실(齋室), 목조대왕구거유지(舊居遺趾)등으로 구성된 삼척 준경묘·영경묘는 조선 태조의 5대조(목조의 부모, 즉 양무장군과 그 부인 이씨)의 능묘로 비록 왕의 능침은 아니지만 조선 왕조가 인정한 선조의 묘역이다.

 

삼척 준경묘·영경묘는 남한지역에 소재하고 있는 조선 왕실 선대(先代)의 능묘로서 조선 왕조태동의 발상지로서의 역사성뿐만 아니라 풍수지리적 가치 등 중요한 역사적·학술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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