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워팰리스 디자이너 최시영의 경기도 비닐하우스 아지트

공간 디자이너 최시영 씨는 30년째 리빙계 ‘트렌드 세터’로 손꼽힌다. 그의 작품만 해도 타워팰리스,
롯데월드타워, 스카이팜 등이 있다. 최시영 씨의 아지트이자 사무실인 ‘비닐하우스’에서 그를 만났다.

     

    입력 : 2017.01.17 17:19

    [Creator의 공간: 공간 디자이너 최시영씨의 廣州 정원형 농장]
     

    세상이 정신없이 변한다지만 변화를 이끄는 사람들은 있게 마련이다. 세상의 트렌드를 바꾸는 이들에게 영감을 불어넣는 공간은 어떤 모습일까. 그 안에서 그들은 어떻게 상상력을 갈고닦을까. 창의적인 사람의 ‘아지트’를 찾아가는 ‘크리에이터의 공간’을 연재한다. 첫 회는 ‘타워팰리스’ ‘전경련 회관 스카이팜’을 디자인한 최시영(61·리빙엑시스 대표)씨. 농사에 푹 빠진 그의 새 아지트가 된 특별한 ‘비닐하우스’를 찾아갔다.
    이미지 크게보기/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초록 비닐하우스에서 빨갛게 感이 영글죠

    타워팰리스·전경련 ‘스카이팜’ 디자인한 30년 ‘트렌드 세터’
    “농사 지으며 계절이 바뀌길, 꽃이 피길 기다리는 법 배워”

    하루아침에도 세상이 휙휙 변한다. 유행엔 점점 가속이 붙어 얼마 전 얘기 잘못했다간 ‘아재’ 소리나 듣는다. 의식주 관련된 라이프 스타일 유행 사이클도 빨라졌다. 그런데, 이 남자 30년 넘게 라이프 스타일 최전선 디자인계에서 ‘트렌드 세터’로 불린다.

    1990년대 초 홍대 앞에 ‘아티누스’를 만들어 ‘북 카페’란 개념을 선보였다. 1999년 최고급 주상복합 타워팰리스를 설계(이종환·민영백 공동 설계)해 주거 문화를 바꿨다. 1년 전엔 여의도 전경련 회관 꼭대기 50~51층을 정원 콘셉트 외식 공간(스카이 팜)으로 변신시켰다. 스타 공간 디자이너 최시영(61·리빙엑시스 대표)씨 얘기다. 퐁퐁 샘솟는 상상력, 맨질맨질 녹슬지 않는 감(感)의 원천은 어딜까. 그의 공간이 궁금해졌다.

    “우리 비닐하우스로 와요.” 집, 아니면 사무실을 생각했는데 웬걸 ‘비닐하우스’란다. “신년에 만들었어요. 따끈따끈해요. 내 아지트!(웃음)”

    이미지 크게보기서양식 정원의 온실처럼 생긴 ‘비닐하우스’ 외관.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타워팰리스’를 만든 사람이다. 어찌 된 일인가.

    “사실 내가 우리나라 최고급 주상복합 문화의 정점에 있던 사람 아닌가. 주택 업계가 치열한 곳이다. 늘 새로운 걸 만들어야 하고, 빨리 해야 하고. 그 일을 30년 하니 지긋지긋하더라. 예전엔 한 30년 하면 은퇴하겠지 싶었다. 그런데 세상이 바뀌었다. 고령화 사회가 되면서 예순 넘었는데 계속 일을 하고 있다. 탈출, 힐링이 필요했다. 삶의 패러다임을 한번 바꿀 필요가 있었다. 그게 ‘농사’였다.”

    ―왜 하필 농사였나.

    “디자인은 속도가 생명이다. 아파트 도면도 맘에 안 들면 밤새 뚝딱 바꿨다. 순발력이 좋았다. 비결을 묻는데 자랑이 아니라, 나는 한번 보면 견적이 나오는 스타일이었다. 속도에 지쳤는데 4년 전 우연히 15년 넘게 내버려둔 아버지 소유의 광주 땅(6611㎡·2000평)에 꽃과 나무를 심어 봤다. 일 없는 토요일마다 왔다. 내 일과는 결이 다른 일이었다. 디자인은 수시로 바꿀 수 있었는데 식물은 내 맘대로 안 됐다. 계절이 바뀌기를 기다리고, 꽃이 피길 기다리고. 천천히 사는 법을 배웠다. 그렇게 빠져들어 갔다.”

    최시영의 주요 작품 ❶1999년 디자이너 오종환, 건축가 민영백과 최시영이 공동 설계한 도곡동 타워팰리스. 국내 아파트 중 처음으로 설계자 이름을 내걸고 분양했다. ‘가족실’을 처음 도입했고 천장 몰딩을 없애는 파격을 시도했다. ❷테트리스 조각을 끼운 듯한 외관이 인상적인 서울 수색의 쌍둥이 오피스텔 건물 ‘두빌’ (2014년). 독일의 iF 디자인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❸1년 전 여의도 전경련 회관 50~51층에 만든 정원 콘셉트의 외식 공간 ‘스카이 팜’. 예약 없이 가기 힘든 명소가 됐다.

    ―최시영이 하는 농사는 다를 거란 기대가 있다.

    “농사에 눈 돌리니 왜 우리네 밭은 이렇게 휑한가 싶었다. 추수하고 나면 허허벌판이다. 우리 농촌 풍경은 유럽 시골처럼 예쁠 수 없는 건가 싶었다. 그러다 ‘밭 디자인’에 관심을 가졌다. 지난해 작은아들을 데리고 ‘가드닝’의 본고장인 영국에 갔다. 13일 동안 글래스고부터 콘월까지 종단하면서 유명하다는 밭과 정원을 일일이 찾아다녔다. 그걸 보고 수로(水路)를 만들고, 펜스도 쳤다. 시각적으로 색깔이 어울리도록 50여 가지 꽃을 심었다. 조경 강연회도 쫓아다닌 덕에 잡초 관리 노하우를 배웠다.”

    ―비닐하우스는 새로운 형태다.

    “겨울 지나면 우리 농촌은 무채색이 된다. 거기 허연 비닐하우스가 떡하니 있다. 영구적이지도 않다. 때 되면 비닐을 갈아야 한다. 디자이너로서 새로운 모델을 제시할 수 없을까 싶었다. 그래서 형태도 예쁘고, 지열 난방을 쓰는 신개념 비닐하우스를 만들어봤다. 누군가 따라 해서 많이 퍼져 갔으면 좋겠다. 우리 농가에 디자인이라는 감성 언어를 심고 싶다. 내 디자인 인생의 마지막이자, 가장 보람 있는 일이 될 거다.”

    이미지 크게보기이게 비닐하우스라고? 진짜다. 녹색 철제 뼈대에 유리가 아닌 비닐을 두른 집이다. 유럽 정원의 온실 같다. 디자이너 최시영씨가 이달 초 경기도 광주에 있는 자신의 농장 ‘파머스 대디’ 안에 만든 신개념 ‘비닐하우스’다. 30년 넘게 리빙 트렌드를 이끌고 있는 베테랑 디자이너 최씨의 ‘창의력 충전소’다.

    ―남다른 안목이 농장에서도 보인다. 심미안을 어떻게 길러야 하나.

    “많이 봐야 한다, 그리고 사야 한다. 작은 소품이라도 사다 보면 뭐가 어울리는지 안 어울리는지 보는 눈이 생긴다. 나는 매년 열리는 아시아프(ASYAAF) 같은 아트페어에 꼭 가서 젊은 예술가 작품을 산다. 여기 비닐하우스 안엔 그간 여기저기서 사 모은 것들을 디스플레이해뒀다. 그런데 말이 좋아 ‘믹스&매치’지 막상 하려면 어렵다. 인테리어할 때 실패하더라도 과감히 저질러야 한다. 안 그러면 아예 못 한다.”

    ―새 트렌드를 어떻게 찾나.

    “발로 공부한다. 책상머리 공부보다는 현장주의자다. 모로코 여행에서 배운 인테리어를 한때 주거에 적용했었다. 몸으로 정원을 가꾸면서 배운 노하우를 전경련 ‘스카이 팜’에 적용했다.”

    최시영의 ‘비닐하우스’에서 배우는 인테리어 팁 ❶원목 판 사이에 작은 조명 끼워 연출한 ‘펜던트’ 조명. ❷나무 사과 박스를 쌓아 만든 장식장. ❸서울 보광동 빈티지 가게에서 산 낡은 저울을 장식으로 썼다. ❹미니 화분으로 꾸민 오래된 원목 책장.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그래도 영감의 원천이 있을 텐데.

    “의외라고들 하는데 꼭 신문을 정독한다. 인터넷이 정보의 바다라지만 그건 세상의 단면이다. 디자이너의 관점에서 보면 신문엔 정보의 켜가 있다. 한 장 안에 많은 이들의 고려와 생각이 담겨 있다. 건축·디자인에서 중요한 게 숨과 호흡인데 신문이 그렇다. 그걸 짚다 보면 새로운 생각을 하게 된다.”

    ―또 다른 실험이 기다릴 것 같다.

    “내게 없는 재능을 가진 ‘젊은 선수’들과 일하려 한다. 식물 패턴을 활용한 패브릭 디자이너, 수제 잼·간장 만드는 청년 등 숨어 있는 젊은 선수들에게 비닐하우스를 전시장 겸 매장으로 내줄 생각이다. 따뜻해지면 주변 농가의 농산물을 가져와 ‘팜 파티(Farm Party)’도 해볼 생각이다.” 이 남자의 상상력은 끝이 없었다.

    최시영이 말하는 Creator's Tip

    ― 일과 결이 다른 취미를 만들라.

    ― 신문을 정독하라. 신문은 세상의 팝업북. 인터넷엔 없는 정보의 켜사이로 새로운 틈이 보인다.

    ― 안목을 기르려면 많이 보고 많이 사야 한다. 남의 것일 때와 내 것일 때보이는 게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