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껑-충 <실크스크린  황흥진>

 

 

영민하고 지혜로운 토끼의 해 계묘년입니다.

맘두신 일들

2023년 계묘년에 모두 이루시고 

만사에 '껑~충'하는 화이팅을 기원합니다.  

황흥진 올림

 

https://youtu.be/RRSPlKFJbWk

황흥진의 세화(歲畵) 판화작품 모두보기
2023계묘년(癸卯年) ‘2023껑-충’
2022임인년(壬寅年) ‘2022늘-건강’
2021신축년(辛丑年) ‘2021음~메’
2020(庚子年)‘2021만복’
2019기해년(己亥年) ‘좋은2019’
2018무술년(戊戌年) ‘행복2018’
2017정유년(丁酉年) ‘꼬끼요2017’
2016병신년(丙申年) ‘신나는2016’
2015을미년(乙未年) ‘2015을미만복
2014갑오년(甲午年)  ‘2014신나고 행복하게’
2013계사년(癸巳年) ‘2013뱀과 꽃비’

 

 

 

세화란?(歲畵)

조선시대에 새해를 송축하고 재앙을 막기 위하여 그린 그림.[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세화)]
내용
질병이나 재난 등의 불행을 사전에 예방하고 한 해 동안 행운이 깃들기를 기원하는 벽사적(辟邪的)이고 기복적(祈福的)인 성격을 띠고 전개되었다. 새해 첫날의 세시풍속의 하나로 이루어졌다. 문짝에 주로 붙이기 때문에 문배(門排) 또는 문화(門畫)라고도 하였다.
중국에서 서기전부터 집안으로 들어오는 악귀를 쫓기 위해 문신을 대문에 그려 붙이던 주술적 관습이 6세기경 정초의 연례행사로 정착되면서 유래된 것이다. 명대(明代)·청대(淸代)를 통하여 연화(年畫)로 크게 유행하였다.
우리 나라에서는 조선 초기부터 풍습화되어 20세기 초반까지 지속되었다. 처음에는 궁중 풍속으로 시작되어 점차 민간층으로 확산되었다. 농촌보다는 정교한 대문을 가진 서울 등의 도시 주택을 중심으로 성행하였다.
그림의 내용으로는 신라시대 이래로 역귀(疫鬼)를 쫓는 벽사신인 처용(處容)이 조선 초기에 제작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주로 중국의 도교와 관련된 문신들이 많이 그려졌다.
대궐문 양쪽에는 당나라 장군인 진숙보(秦叔寶)와 위지공(尉遲恭)에서 유래된 금(金)·갑(甲) 두 장군상을 한 길이 넘는 크기로 그려서 붙였다. 중문과 곁대문 등에는 붉은 도포에 검은 사모(紗帽)를 쓴 위정공(魏鄭公)과 종규(鍾馗)가 귀신 잡는 형상을 붙이기도 하였다.
일반 민간에서는 동물 중에 벽사력을 많이 지닌 것으로 믿어오던 닭과 호랑이를 비롯하여 해태 모양의 사자와 개를 그려 붙였다. 삼재(三災)가 든 해에는 특별히 매 그림[鷹圖]을 대문 등에 붙였다.
그리고 기복적인 송축 등으로는 장수를 상징하는 수성(壽星)과 선녀 그림을 비롯하여 길상적(吉祥的)인 성격을 지닌 인물·화훼·누각 등을 그렸다.
궁중에서 사용하는 것은 도화서(圖畫署)에서 제작하여 12월 20일경 진상하였다. 그리고 이를 우열별로 등급을 나누어 각 전(殿)과 종실, 재상과 근신들에게 하사하였다.
도화서에서 매년 12월에 진상하는 수량은 조선 초기에는 60장 가량이었다. 그러나 연산군 때부터 증가하기 시작하여 중종 연간에 이르러 신하 한 사람당 20장씩 하사할 정도로 많은 양이 제작되었다.
이를 위하여 임시로 고용된 차비대령(差備待令)의 화원이 각각 30장을 그렸다 한다. 그리고 도화서 소속 화원들은 각기 20장씩을 그렸다. 제작 기간은 1, 2개월에서 길게는 3개월이 걸리기도 하였다.
지방 관아에서 소용되는 것은 그곳에 소속된 화원들이 제작하였다. 그리고 일반 민간인들은 지물포 등에서 주로 구입하였다.
짙은 회색을 사용하여 장식성이 강조되었고, 창조성보다는 본보기 그림에 의하여 되풀이되어 그려지면서 도식화된 양식이 인습적으로 계승되었다. 오늘날 세화는 민화의 범주로 분류되고 있으며, 해마다 새로운 것으로 갈아 붙였기 때문에 오래된 유물이 드물다.

https://youtu.be/JFZBKXqUYrU

 

쉽고 재미있는 그림읽기 (어린이강원2014.9.25)

 

 

'엄마, 피카소 그림은 괴물 같아요'

 

 

 

어린이 강원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황흥진 선생님입니다. 오늘부터 선생님은 여러분이 좋아하는 그림이야기를 8회에 걸쳐 함께 하려고 합니다. 목적은 누구나 쉽게 미술을 이해하고 즐길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고요, 또 여러분이 새롭게 깨닫게 된 사실이 있다면, 언니 누나 오빠 부모님께도 그림을 보다 쉽게 전달할 수 있다면 더욱 좋겠네요. 오늘은 그 첫 순서로 세계 미술사에 너무나 유명한 피카소의 작품에 담긴 이야기를 함께 해보겠습니다.

 

 

 

'거울 앞의 여인'

 

 

 

 

피카소 그림은 괴물 같고요'

  선생님이 한번은 미술시간에 우리 반 친구들에게 이렇게 물어 봤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위대한 화가는 누구라고 생각하나요?’ 라는 질문에 우리 친구들이 너무나 잘 알고 있는 피카소를 가장 많이 대답 했는데요 여러분 생각은 어떤가요? 그런데 그 다음 질문의 왜 그렇게 생각하나요?’에는 거의 대답을 못했거나 유명 하니까요’ ‘책에 많이 나와서등 피카소의 작품내용이 구체적으로 무엇이며 왜 유명한가에 대하여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답니다.

 

  그러나 20세기 최고의 미술가 피카소는 우리가 배우는 모든 미술교과서에 소개되어 있고요, 어떤 통계조사를 보니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잘 알고 있는 화가로 뽑혔다고 합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이런 피카소의 작품에 대하여 우리 모두가 너무나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안 것은 3년 전 서울시립미술관에서 피카소전이 열렸을 때 입니다.

 

  관객의 대부분은 학생들이었는데, 선생님은 이 전시장에서 초등학교 4학년쯤 되어 보이는 아이와 엄마와의 대화를 우연히 엿듣게 되었습니다, 그 아이는 전시장의 몇 작품을 보더니

엄마, 피카소 그림은 괴물 같고요” “내 보다 훨씬 못 그린 것 같은데요!”

라며 너무나 직설적으로 말했고, 당황한 엄마는

그러니까 설명을 똑똑히 읽어 보란 말이야

라며 아이의 말을 피해 가는 듯 했습니다. 선생님도 얼른 그림 아래 설명을 읽어 보았지만, 도대체 무슨 말인지 아리송했고, 더군다나 우리 초등학생의 수준에서는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암호와 같았습니다. 그래서 오늘 첫 이야기로 피카소의 작품을 함께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게르니카'

 

 

 

사실적인 표현에 대한 실망

 

 

  자, 그렇다면 피카소는 작품에 무엇을 표현하였기에 그토록 유명한 예술가가 되었을까요?

먼저 피카소의 그림을 자세히 살펴볼까요. 눈은 이쪽에, 귀는 저쪽에, 손이 아래에 있는가 하면 발은 꼭대기에 있고, 입은 오히려 그 아래 있기도 하며, 배꼽이 있어야 할 자리에 눈을 그려 넣는 상식 밖의 피카소 그림에 대하여 괴물이라고 한 그 아이의 평가는 너무나 솔직하였고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봅니다.

 

 

  피카소는 왜 이렇게 괴상한 모습으로 표현하였을까요? 그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피카소의 초기 작품(10-20)을 먼저 살펴보는 것이 도움이 되겠네요. 한번 비교해서 살펴볼까요? 아래 그림을 보면 그의 초기작품은 우리가 알고 있는 피카소의 보통 작품과는 달리 지극히 사실적인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피카소의 초기 젊은 시절에는 대상의 사실적인 표현을 통해 세상의 진실을 나타내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피카소는 20대 후반에 오면서 사실적인 기법으로는 더 이상 대상의 진실을 완전하게 표현할 수 없다며 좌절하고 고민에 빠진답니다. 사람의 눈은 한 면밖에 볼 수 없고 따라서 전체가 아닌 부분만 표현할 수밖에 없다는 당연한 이유를 그는 심각하게 본 것입니다.

 

 

피카소의 초기 사실적인 작품들(10-20)

 

 

 

 

 

 

인간 감각의 무능함과 입체화의 탄생

   그러나 그는 또다시 그의 사랑하는 애인을 대상으로 하고, 완벽하게 화면에 담기 위해 캔버스 앞에 앉았습니다. 하지만 그 날도 역시 인간의 감각으로는 더 이상 대상을 만족하게 표현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애인의 앞모습을 보면 뒷모습이 보이지 않고 뒷모습을 보려고 돌아가면 다시 앞모습을 볼 수 없는 자신, 즉 인간의 시각은 한 면밖에 볼 수 없고, 이런 단면적 감각은 곤충의 더듬이 보다 못하다는 사실에 실망하게 됩니다.

 

  그러나 피카소는 결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사랑하는 애인을 마주하고 고민과 고민을 거듭한 끝에, 애인의 주변을 빙 둘러 사방에 거울을 설치합니다. 바닥과 천정까지 거울을 설치한 그는 거울에 비친 그의 애인을 열정적으로 그려 나갔고 마침내 그는 한자리에서 애인의 위, 아래 좌, , , 뒤 모든 모습을 한 화면에 완성하게 됩니다. 이렇게 탄생한 그림은 일명 입체화로 불리게 되고 피카소만의 독특한 표현방식이 되었답니다.

 

우는 여인

 

 

 

우리의 자화상

  그러나 피카소가 여러 시점의 모습을 한 화면에 겹치고 또 겹쳐 완성한 모습은, 삐뚤고 틀어지고 튀어나와 그 아이의 말처럼 괴물처럼 보이게 된 것이죠. 이것은  한 면 이상을 보지 못하는 인간의 부족과 한계를 억지로 극복하려는 오만과 욕심의 결과가 빚어낸 우리의 자화상이었습니다. 이렇듯 피카소의 진정한 예술적 가치는 천재적인 작가를 뛰어 넘어, 인간이 세상에 대하여 보다 겸손하기를 일러주고 비춰주는 우리의 영원한 거울이 아닌가 합니다.

<동해중앙초 황흥진>



출처: https://hsamnonsul.tistory.com/11079 [황샘블로그]

 

* 쉽고재미있는 그림읽기 어린이강원2018.12.27.>

 

 

 

고래가 비닐을 먹고 죽었대요!

 

삼척에 있는 정라초등학교(교장오세도)어린이들이 한해를 마무리하면서 정말 뜻깊은 전시를 열었습니다. 삼척시청에서 10일간(12.3-12.12)열린, 이 전시는 우리가 그동안 편리하게 사용했던 플라스틱의 심각한 결과를 충격으로 보여 주었는데요, 어린이강원 친구들에게도 소개합니다.

 

 

고래가 비닐을 먹고 죽었습니다’ (정라초 105명의 어린이 협동작품)

 

 

뉴스 -고래를 죽인 비닐봉지<sbs>

 

 

고래를 죽인 범인?’

먼저 2018년 올해의 믿고 싶지 않은 뉴스 몇 개를 살펴볼게요. 11월 인도네시아의 국립공원 바다에서 죽은 채 발견된 고래 뱃속에서 무려 6이나 되는 플라스틱 쓰레기가 나왔답니다. 몸길이 9.5m의 거대한 고래의 죽음의 원인을 찾기 위해 배를 갈라 보니, 고래 뱃속은 마치 플라스틱 쓰레기장 같았다는데요. 플라스틱 컵 115, 플라스틱 조각 1000여 개, 단단한 플라스틱 19, 플라스틱병 4, 플라스틱 백 25개와 심지어 나일론 가방 1개와 슬리퍼 2개도 나왔답니다. 고래가 죽기까지 얼마나 괴로웠을까요?

 

 

 

태국의 사례도 있습니다. 지난 6월 지구환경의 날을 하루 앞두고 치료를 받던 향유 돌고래가 죽었는데요, 고래의 뱃속에서 비닐 80여장이 발견되어 우리를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이렇게 세계 곳곳의 바다는 이미 비닐과 플라스틱 천지가 되었고요, 고래는 물론 바다 새, 거북이 등 해양생물들이 함께 죽어가고 있습니다.

이런 바다오염과 생명을 죽인 주범은 누구일까요? 놀랍게도 지난 60년간 사람들이 무심코 사용한 플라스틱은 20배나 증가했고, 특히 1인당 플라스틱 사용량 세계 1위가 바로 대한민국이랍니다. 심지어 지금 우리 밥상에 올라오는 생선까지 미세 플라스틱에 오염된 경우가 있다고 하니, 우리가 버린 플라스틱 쓰레기를 결국 우리가 먹는 셈이지요.

 

인도네시아의 고래 뱃속에서 나온1000여개의 플라스틱

 

 

쓰레기로 만든 작품

이 비상사태와 같은 현실을 더 이상 침묵할 수 없다는 정라초 친구들은 글, 그림, 판화, 영상미디어 등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하고, 하나로 뭉쳐 시민들에게 호소하고 나섰습니다.

인간의 플라스틱 남용을 뼈저리게 반성하는 의미에서 작품 제작 과정과 재료 전시방법까지 모두 쓰레기와 폐자재만을 사용하였답니다. 그리고 작품은 전시장이 아니라, 시민들이 가장 가까이서 보고 깨달을 수 있는 시청민원실 통로에 전시했고요, 시민들은 더욱 실감나게 공감할 수 있었죠.

 

 

폐자재와 쓰레기로 만든 작품

 

 

 

 

전시장 : 삼척시청 본관 1층 로비

 

어떤 환경운동가는 현대를 석기시대 철기시대를 이어 플라스틱시대로 규정했는데요, 이 플라스틱은 가격이 싸고 편리해서 생활용품에 안 들어가는 곳이 없지만, 생산에 5, 소비에 5, 그러나 완전 분해까지는 무려 500년이나 걸린다고 합니다. 지구를 병들게 하고, 생명을 죽이는 심각한 독입니다.

2019년 새해, 우리 모두 플라스틱을 한 개라도 덜 쓰는 노력에 동참하여, 더 이상 죽어가는 고래가 한 마리도 없으면 좋겠습니다.

 

<황흥진 삼척정라초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