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흥’ 임인년, 전문가들이 추천하는 ‘호랑이 그림책’은?

입력: 2022.01.31 09:34 수정: 2022.01.31 09:34

주디스 커 ‘간식을 먹으러 온 호랑이’부터 이지은 ‘팥빙수의 전설’까지

호랑이는 유난히 우리 문화와 깊은 인연이 있는 동물이다. 지금은 야생에서 모습을 감췄지만, 호랑이는 청동기 시대 그려진 울주 반구대 암각화에도 그려져 있고 삼국사기에도 등장한다. 우리나라 신화, 민담, 전설 속에서도 호랑이는 으뜸가는 단골 소재다. 설화 속 호랑이는 효를 중요시하고 은혜를 갚을 줄 아는 존재로 그려진다. 때론 어리석고 멍청한 존재로 등장하기도 한다. 그림책 속 호랑이는 다정한 존재였다가 웃긴 대상이 되기도, 희생을 감수하는 존재가 되기도 한다. ‘검은 호랑이의 해’ 임인년을 맞아 아동문학 전문가들이 추천하는 호랑이 그림책과 설 연휴를 보내는 건 어떨까.

김지은 동화평론가는 ‘간식을 먹으러 온 호랑이’와 ‘호랑이와 효자’를 추천했다.

▲ 간식을 먹으러 온 호랑이
보림 제공

 
‘간식을 먹으러 온 호랑이’는 1968년 출간된 주디스 커의 첫 번째 책으로 그림책의 고전이 된 작품이다. ‘소피’라는 아이가 엄마와 차를 마시고 있는데, 딩동 초인종 소리가 울린다. 커다란 호랑이가 찾아와 빵과 우유, 냉장고에 음식을 모조리 먹어버린다. 김 평론가는 “호랑이와 인간의 우정이 다정한 색감으로 그려져 있고 이웃과의 관계에 대해 돌아보게 하는 작품”이라며 “1960년대 동아시아 이주자들에 대한 은유로도 읽을 수 있다”고 말했다.

▲ 호랑이와 효자
이야기꽃 제공

‘호랑이와 효자’는 서울과 경기 고양시 사이 북한산 자락에 전해 오는 ‘북한산 호랑이와 효자 박태성 전설’을 재탄생 시킨 작품이다. 김장성 작가가 글을 썼고 백성민 화백이 그림을 그렸다. 김 평론가는 “한반도 우리 호랑이가 가진 역동성을 가장 잘 표현한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이루리 북극곰 출판사 편집장은 추천 그림책으로 ‘팥빙수의 전설’, ‘행복한 줄무늬 선물’을 꼽았다.

▲ 팥빙수의 전설
웅진주니어 제공

‘팥빙수의 전설’은 지난해 ‘이파라파냐무냐무’로 볼로냐 라가치상 코믹스-유아 그림책 대상을 받은 이지은 작가가 2019년 펴낸 그림책이다. 여름날 가장 생각 나는 음식 중 하나인 팥빙수에 대한 엉뚱 발랄한 상상을 담았다. 이 편집장은 “호랑이에게 유머 감각과 명예를 되찾아준 그림책”이라고 말했다.

▲ 행복한 줄무늬 선물(친절한 호랑이 칼레의)
봄볕 제공

야스민 셰퍼의 ‘행복한 줄무늬 선물’은 친절하고 다정한 호랑이 칼레가 자신의 줄무늬를 하나하나 꺼내 동물 친구들에게 나눠 주면서 벌어지는 따뜻한 소동을 담은 그림책이다. 호랑이 칼레는 어려움에 빠진 친구들에게 자신의 소중한 줄무늬를 아낌없이 나눠준다. 결국 줄무늬가 하나도 남지 않았지만, 대신 아름다운 새 무늬를 얻게 된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 편집장은 “호랑이에 대한 편견을 깨뜨려주는 그림책”이라며 “역시 외모가 아니라 영혼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고 설명했다.
 

 
박은덕 보림 출판사 주간은 ‘반쪽이’와 ‘줄줄이 꿴 호랑이’를 추천했다.

▲ 반쪽이
보림 제공

‘반쪽이’는 옛이야기를 그림책으로 옮긴 책으로 창작 그림책 1세대 작가인 이억배 작가가 그리고 이미애 작가가 썼다. 눈도 귀도 팔도 다리도 하나씩밖에 없는 ‘반쪽이’는 겉모습 때문에 형들에게조차 따돌림당하고 온전한 대접을 받지 못한다. 하지만 반쪽이는 자신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주어진 상황에 최선을 다하는 인물이다.

▲ 줄줄이 꿴 호랑이
사계절 제공

2005년 출판된 ‘줄줄이 꿴 호랑이’는 우리에게 익숙한 옛이야기를 유아의 눈높이에 맞춰 재구성한 책이다. 온종일 꼼짝 않는 게으름뱅이 아이가 밤새 한 줄에 꿰인, 온 산 호랑이를 다 잡게 된 사연을 들려준다.

박 주간은 “‘반쪽이’에 등장하는 이억배 작가의 호랑이는 무서운데도 익살스러움이 있고 권문희 작가의 ‘줄줄이 꿴 호랑이’의 호랑이는 표지부터 어리숙해 보인다는 점에서 매력적이고 재미있다”고 소개했다.



윤수경 기자

그림책, 세상을 그리다

[그림책, 세상을 그리다] 낯선 나라에 정착해야 하는 이들에게 나침반을 쥐어주다

입력 2018.07.20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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숀 탠 '도착'. 사계절출판사 제공

큰 가방을 든 남자가 이상한 동물과 마주쳤다. 표정에 당혹감이 역력하다. 이 그림책의 표지다. 남자는 어딘가 낯선 땅에 ‘도착’한 것. 그렇다면 떠나온 곳도 있으리라. 어디일까, 왜 어떻게 떠나왔을까? 그리고 그가 도착한 이곳은 어디인가? 한 장 한 장 숨을 참아가며 그린 듯 섬세한 연필그림 852점이 한 마디 말없이 긴 사연을 들려준다.

남자가 떠난 곳은, 남루하지만 아내와 딸과 함께 살던 따뜻한 보금자리. 종이학, 멎은 시계, 빈 냄비, 깨진 주전자와 이 빠진 찻잔, 그리고 가족사진이 놓여 있다. 긴 이별인 듯 남자는 옷가지와 가족사진을 큰 가방에 넣고 집을 나서는데, 시간을 알 수 없이 암울한 도시는 거대한 짐승에게 점령당한 듯 거리마다 불길하고 긴 꼬리들이 넘실거린다. 그 거리를 지나 닿은 기차역에서 가족은 눈물로 인사를 나누고, 남자는 도시를 떠난다.

배... 대양을 건너는 거대한 배에 남자와 처지가 같아 보이는 이들이 가득한데, 불안처럼 구름이 수십 번 모양을 바꾸는 사이 배는 어느 항구에 닿는다. 생전 처음 보는 새들이 날아다니는 곳. 심사는 까다롭고 말은 불통이니 남자는 손짓발짓에 가족사진까지 꺼내 들고 처지를 설명하느라 진땀을 뺀다. 배 타고 온 모두가 그럴 것이다. 마침내 입국허가를 받은 남자는 머물 곳을 찾아간다. 이제 일자리를 구해 생존의 조건을 마련해야 하리라.

과정에서 마주치는 모든 것이 낯설다. 말도 글도 풀과 나무도 날짐승 길짐승도 음식과 제도도... 낯섦은 공포를 낳고, 공포는 굴종으로 이어지나 종종 폭력을 부르기도 하니, 숙소에서 낯선 동물을 마주친 남자는 몽둥이부터 집어 든다. 알고 보니 저 살던 세상의 강아지 같은 동물인데. 그가 묵게 된 숙소 건물에는 그처럼 굴종과 방어적 폭력 사이 복잡한 심경이 깃든 창문들이 수없이 많다. 이 남자의 이야기는 그들 모두의 이야기인 것이다.

이 낯선 땅에서 두려움을 이길 수 있도록 누가 이들의 적응을 돕는가? 남자가 버스표 사는 것을 도와준 이는 아동노동에 시달리던 고향 땅을 탈출해 이곳에 정착한 여성이었고, 식료품 구입을 도와준 이는 인종청소를 피해 온 일가족이었으며, 어렵게 취직한 공장에서 짧은 휴식 시간에 물 한 잔을 건네준 이는 전쟁에 동원되어 숱한 동료들과 한쪽 다리를 잃은 뒤 고국을 떠난 늙은 상이 병사였으니, 이 그림책은 ‘난민의, 난민에 의한, 새 세상 적응기’인 셈이다.

숀 탠의 '도착'. 사계절출판사 제공

그렇게 적응한 남자는 이윽고 슬픈 고향의 가족에게 일자리와 머물 곳을 마련했다는 소식과 약간의 돈을 담은 기쁜 편지를 띄운다. 그러고도 네 번의 계절이 바뀐 뒤에야 아내와 딸이 이곳을 찾아오니, 재회의 순간 낯선 새들과 낯선 짐승과 낯선 공기마저 잠시 숨을 멈추고 이들을 축복해 준다.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으리라. 그들의 새 보금자리에, 두고 온 것들과는 다른 이곳의 종이학과 이곳의 시계와 이곳의 음식 대접, 이곳의 주전자와 찻잔이 놓여 있다. 그리고 변함없이 단란한 가족사진. 이제 익숙해진 딸아이가 식료품 가게로 심부름을 다녀오는 길에, 두리번거리는 여자를 보고 다가가 길을 안내해 준다. 표지의 남자처럼 여자도 큰 가방을 들고 있고 이상한 동물도 그 앞에 있는데, 그 사이에 배려가 있어서인가 여자의 표정은 당혹스럽지 않다.

도착

숀탠 지음

사계절출판사 발행ㆍ136쪽ㆍ2만3,000원

난민 몇 백 명이 이 땅에 도착했다고 논란이 분분하다. 섬보다도 고립된 분단의 땅에 살아와 낯선 존재들에 대한 공포가 큰 탓일까. 그러나 난민들에게 우리와 이 땅이 훨씬 낯설고 두려우리라. 오랜 세월 숱한 침략전쟁과 식민지배를 겪어오면서 우리 또한 난민 혹은 잠재적 난민으로 살아왔다. 재난을 피해 생존을 찾아온 그들이 이곳의 종이학을 접으며 변함없이 가족을 지켜갈 수 있도록, 다가가 길을 일러줌이 인지상정 아닐까.

김장성 그림책 작가ㆍ출판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