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동 한 그릇<구리 료혜이>

 

해마다 섣달 그믐날이 되면 우동집으로서는 일년 중 가장 바쁠 때이다.

북해정도 이날만은 아침부터 눈코뜰새 없이 바빴다.

보통 때는 밤12시쯤이 되어도 거리가 번잡한데 이날만큼은 밤이 깊어질수록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의 발걸음도 빨라지고 10시가 넘자 북해정의 손님도 뜸해졌다.

사람은 좋지만 무뚝뚝한 주인보다 오히려 단골손님으로 부터 주인아줌마라고 불리우고 있는 그의 아내는 분주했던 하루의 답례로 임시 종업원에게 특별 상여금 주머니와 선물로 국수를 들려서 막 돌려보낸 참이었다.

마지막 손님이 가게를 막 나갔을 때, 슬슬 문 앞의 옥호(屋號) 막을 거둘까 하고 있던 참에, 출입문이 드르륵, 하고 힘없이 열리더니 두명의 아이를 데리고 한 여자가 들어왔다. 6세와 10세 정도의 사내애들은 새로 준비한 듯한 트레이닝 차림이고, 여자는 계절이 지난 체크무늬 반코트를 입고 있었다.

 

"어서 오세요!"라고 맞이하는 여주인에게, 그 여자는 머뭇머뭇 말했다.

"저 우동 일인분만 주문해도 괜찮을까요?" 뒤에서는 두 아이들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쳐다보고 있었다.

"네 네. , 이쪽으로." 난로 곁의 2번 테이블로 안내하면서 여주인은 주방 안을 향해,

"우동, 1인분!" 하고 소리친다.

주문을 받은 주인은 잠깐 일행 세 사람에게 눈길을 보내면서,

"!" 하고 대답하고, 삶지 않은 1인분의 우동 한 덩어리와 거기에 반 덩어리를 더 넣어 삶는다. 둥근 우동 한 덩어리가 일 인분의 양이다. 손님과 아내에게 눈치 채이지 않은 주인의 서비스로 수북한 분량의 우동이 삶아진다. 이윽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먹음직스러운 우동 그릇이 테이블에 나왔다. 우동 그릇을 가운데 두고, 이마를 맞대고 먹고 있는 세 사람의 이야기 소리가 카운터 있는 곳까지 희미하게 들린다.

"맛있네요."라는 형의 목소리.

"엄마도 잡수세요."하며 한 가닥의 국수를 집어 어머니의 입으로 가져가는 동생.

이윽고 다 먹자 150엔의 값을 지불하며,

"맛있게 먹었습니다." 라고 머리를 숙이고 나가는 세 모자에게,

"고맙습니다. 새해엔 복 많이 받으세요!" 라고 주인 내외는 목청을 돋워 인사했다.

 

신년을 맞이했던 북해정은 변함없이 바쁜 나날 속에 서 한해를 보내고, 다시 1231일을 맞이했다.

지난해 이상으로 몹시 바쁜 하루를 끝내고, 10 시를 막 넘긴 참이어서 가게를 닫으려고 할 때 드르륵, 하고 문이 열리더니 두 사람의 남자아이를 데리고 한 여자가 들어왔다.

여주인은 그 여자가 입고 있는 체크 무늬의 반코트를 보고, 일년 전 섣달 그믐날의 마지막 그 손님들임을 알아보았다.

"저 우동 일인분입니다만 괜찮을까요?"

"물론입니다. 어서 이쪽으로 오세요." 여주인은 작년과 같은 2번 테이블로 안내하면서,

"우동 일 인분!" 하고 커다랗게 소리 친다.

"네엣! 우동 일 인분!" 라고 주인은 대답하면서 막 꺼버린 화덕에 불을 붙인다.

"저 여보, 서비스로 3인분 내줍시다." 조용히 귀엣말을 하는 여주인에게,

"안돼요. 그런 일을 하면 도리어 거북하게 여길 거요." 라고 말하면서 남편은 둥근 우동 하나 반을 삶는다.

"여보, 무뚝뚝한 얼굴을 하고 있어도 좋은 구석이 있구료."

미소를 머금는 아내에 대해, 변함없이 입을 다물고 삶아진 우동을 그릇에 담는 주인이다.

 

테이블 위의 한 그릇의 우동을 둘러싼 세 모자의 얘기 소리가 카운터 안과 바깥의 두 사람에게 들려온다.

"... 맛있어요" "올해도 북해정의 우동을 먹게 되네요?“

"내년에도 먹을 수 있었으면 좋으련만... "다 먹고 나서, 150엔을 지불하고 나가는 세 사람의 뒷모습에 주인 내외는. "고맙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그날 수십 번 되풀이했던 인사말로 전송한다.

그 다음 해의 섣달 그믐날 밤은 여느 해보다 더욱 장사가 번성하는 중에 맞게 되었다. 북해정의 주인과 여주인은 누가 먼저 입을 열지는 않았지만 9시 반이 지날 무렵부터 안절부절 어쩔 줄을 모른다.

10시를 넘긴 참이어서 종업원을 귀가시킨 주인은, 벽에 붙어 있는 메뉴 표를 차례차례 뒤집었다.

금년 여름에 값을 올려 '우동 200'이라고 씌어져 있던 메뉴표가 150엔으로 둔갑하고 있었다.

2번 테이블 위에는 이미 30분 전부터 <예약석>이란 팻말이 놓여져 있다. 10시 반이 되어, 가게 안 손님의 발길이 끊어지는 것을 기다리고 있었기나 한 것처럼, 모자 세 사람이 들어왔다. 형은 중학생 교복, 동생은 작년에 형이 입고 있던 점퍼를 헐렁하게 입고 있었다. 두 사람 다 몰라볼 정도로 성장해 있었는데, 그 아이들의 엄마는 여전히 색이 바랜 체크 무늬 반코트 차림 그대로였다.

"어서 오세요!" 라고 웃는 얼굴로 맞이하는 여주인에게, 엄마는 조심조심 말한다.

". 우동 이 인분인데도 괜찮겠죠?" "네 어서요. 자 이쪽으로."

라며 2번 테이블로 안내하면서, 여주인은 거기 있던 <예약석>이란 팻말을 슬그머니 감추고 카운터를 향해서 소리친다.

"우동 이 인분!" 그걸 받아,

"우동 이 인분!" 이라고 답한 주인은 둥근 우동 세 덩어리를 뜨거운 국물 속에 집어넣었다.

두 그릇의 우동을 함께 먹는 세 모자의 밝은 목소리가 들리고, 이야기도 활기가 있음이 느껴졌다.

카운터 안에서, 무심코 눈과 눈을 마주치며 미소짓는 여주인과 예의 무뚝뚝한 채로 응 응, 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주인이다.

 

"형아야, 그리고 쥰아. 오늘은 너희 둘에게 엄마가 고맙다고 인사하고 싶구나."

"고맙다니요 무슨 말씀이세요?"

"실은, 돌아가신 아빠가 일으켰던 사고로, 여덟 명이나 되는 사람이 부상을 입었잖니. 보험으로도 지불할 수 없었던 만큼을, 매월 5만엔씩 계속 지급하고 있었단다."

"음 알고 있어요." 라고 형이 대답한다.

여주인과 주인은 몸도 꼼짝 않고 가만히 듣고 있다.

"지불 약속은 내년 3월까지로 되어 있었지만, 실은 오늘 전부 지불을 끝낼 수 있었단다."

"! 정말이에요? 엄마!"

"그래, 정말이지. 형아는 신문 배달을 열심히 해주었고, 쥰이 장보기와 저녁 준비를 매일 해준 덕분에, 엄마는 안심하고 일할 수 있었던 거란다. 그래서 정말 열심히 일을 한 덕택에 회사로부터 특별 수당을 받았단다. 그것으로 지불을 모두 끝마칠 수 있었던 거야."

"엄마! ! 잘됐어요! 하지만, 앞으로도 저녁 식사 준비는 내가 할 거예요."

"나도 신문 배달, 계속할래요. 쥰이하고 나, 엄마한테 숨기고 있는 것이 있어요. 그것은요 11월 첫쩨 일요일, 학교로부터 쥰이의 수업 참관을 하라는 편지가 왔었어요. 그때 쥰은 이미 선생님으로부터 편지를 받아 놓고 있었지만요. 쥰이 쓴 작문이 북해도의 대표로 뽑혀, 전국 콩쿠르에 출품하게 되어서 수업 참관일 에 이 작문을 쥰이 낭독하게 되었대요. 선생님이 주신 편지를 엄마에게 보여드리면 무리를 해서라도 회사를 쉬실 걸 알기 때문에 쥰이 그걸 감췄어요. 그걸 쥰의 친구들한테 듣고 내가 참관 일에 갔었어요."

"그래 그랬었구나 그래서?"

"선생님께서, 너는 장래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라는 제목으로, 전원에게 작문을 쓰게 하셨는데, 쥰은 <우동 한그릇>이라는 제목으로 써서 냈대요. 지금부터 그 작문을 읽어 드릴께요.“

<우동 한그릇>이라는 제목만 듣고, 북해정에서의 일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에 사실은 쥰 녀석 무슨 그런 부끄러운 얘기를 썼지! 하고 속으로 생각했었죠. 작문은 아빠가 교통 사고로 돌아가셔서 많은 빚을 남겼다는 것, 엄마가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일을 하고 계시다는 것, 내가 조간 석간 신문을 배달하고 있다는 것 등 전부 씌어 있었어요. 그리고서 1231일 밤 셋이서 먹은 한 그릇의 우동이 그렇게 맛있었다는 것 셋이서 다만 한 그릇밖에 시키지 않았는데도 우동집 아저씨와 아줌마는, 고맙습니다! 새해엔 복 많이 받으세요! 라고 큰 소리로 말해 주신 일.

그 목소리는 지지 말아라! 힘내! 살아갈 수 있어! 라고 말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고요.

그래서 쥰은, 어른이 되면, 손님에게 '힘내라!' '행복해라!' 라는 속마음을 감추고, '고맙습니다!' 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 제일의 우동집 주인이 되는 것이라고, 커다란 목소리로 읽었어요."

 

카운터 안쪽에서, 귀를 기울이고 있을 주인과 여주인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카운터 깊숙이에 웅크린 두 사람은, 한 장의 수건 끝을 서로 잡아당길 듯이 붙잡고, 참을 수 없이 흘러나오는 눈물을 닦고 있었다.

 

"작문 읽기를 끝마쳤을 때 선생님이, 쥰의 형이 어머니를 대신해서 와주었으니까, 여기에서 인사를 해달라고 해서..."

"그래서 형아는 어떻게 했지?"

"갑자기 요청받았기 때문에, 처음에는 말이 안 나왔지만 여러분, 항상 쥰과 사이좋게 지내줘서 고맙습니다. 동생은 매일 저녁 여러분에게 폐를 끼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방금 동생이 <우동 한 그릇>이라고 읽기 시작했을 때 나는 처음엔 부끄럽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가슴을 펴고 커다란 목소리로 읽고 있는 동생을 보고 있는 사이에, 한 그릇의 우동을 부끄럽다고 생각하는 그 마음이 더 부끄러운 것이라고 깨달았습니다.

그때 한 그릇의 우동을 시켜주신 어머니의 용기를 잊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형제가 힘을 합쳐, 어머니를 보살펴 드리겠습니다. 앞으로도 쥰과 사이좋게 지내 주세요, 라고 말했어요."

차분하게 서로 손을 잡기도 하고, 웃다가 넘어질 듯 이 어깨를 두드리기도 하고, 작년까지와는

달라진 즐거운 그믐날 밤의 광경이었다.

우동을 다 먹고 300엔을 내며 '잘 먹었습니다.' 라고 깊이깊이 머리를 숙이며 나가는 세 사람을, 주인과 여주인은 일 년을 마무리하는 커다란 목소리로, '고맙습니다! 새해엔 복 많이 받으세요!'라며 전송했다.

 

다시 일년이 지났다. 북해정에서는, 9시가 지나서부터 <예약석>이란 팻말을 2번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기다리고 기다렸지만, 그 세모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다음 해에도, 또 다음 해에도, 2번 테이블을 비우고 기다렸지만, 세 사람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북해정은 장사가 번성하여, 가게 내부 수리를 하게 되자, 테이블이랑 의자도 새로 바꾸었지만 그 2번 테이블만은 그대로 남겨 두었다. 새 테이블이 나란히 있는 가운데에서, 단 하나 낡은 테이블이 중앙에 놓여 있는 것이다.

'어째서, 이것이 여기에?' 하고 의아스러워 하는 손님에게, 주인과 여주인은 <우동 한 그릇>의 일을 이야기하고, 이 테이블을 보고서 자신들의 자극제로 하고 있다, 어느 날인가 그 세 사람의 손님이 와줄지도 모른다. 그때 이 테이블로 맞이하고 싶다. 라고 설명하곤 했다.

그 이야기는, '행복의 테이블'로써, 이 손님에게서 저 손님에게로 전해졌다. 일부러 멀리에서 찾아와 우동을 먹고 가는 여학생이 있는가 하면, 그 테이블이 빌 때까지 기다렸다가 주문을 하는 젊은 커플도 있어 상당한 인기를 불러일으켰다.

 

그러고 나서 또, 수년의 세월이 흐른 어느 해 섣달 그믐의 일이다.

북해정에는, 같은 거리의 상점회 회원이며 가족처럼 사귀고 있는 이웃들이 각자의 가게를 닫고 모여들고 있었다.

북해정에서 섣달 그믐의 풍습인 해 넘기기 우동을 먹은 후, 제야의 종소리를 들으면서 동료들과 그 가족이 모여 가까운 신사(神社)에 그해의 첫 참배를 가는 것이 5,6년 전부터의 관례가 되어 있었다.

그날 밤도 9시 반이 지나 생선가게 부부가 생선회를 가득 담은 큰 접시를 양손에 들고 들어온 것이 신호라도 되는 것처럼, 평상시의 동료 30여명이 술이랑 안주를 손에 들고 차례차례 모여들어 가게 안의 분위기는 들떠 있었다. 2번 테이블의 유래를 그들도 알고 있다. 입으로 말은 안 해도 아마, 금년에도 빈 채로 신년을 맞이 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섣달 그믐날 10시 예약석'은 비워둔 채 비좁은 자리에 전원이 조금씩 몸을 좁혀 앉아 늦게 오는 동료를 맞이했다. 우동을 먹는 사람, 술을 마시는 사람, 서로 가져 온 요리에 손을 뻗히는 사람, 카운터 안에 들어가 돕고 있는 사람, 멋대로 냉장고를 열고 뭔가 꺼내고 있는 사람 등등으로 떠들썩했다.

바겐 세일 이야기, 해수욕장에서의 에피소드, 손자가 태어난 이야기 등, 번잡함이 절정에 달한

10시 반이 지났을 때, 입구의 문이 드르륵, 하고 열렸다. 몇 사람인가의 시선이 입구로 향하며 동시에 그들은 이야기를 멈추었다.

오버코트를 손에 든 정장 슈트 차림의 두 청년이 들어왔다. 다시 얘기가 이어지고 시끄러워졌다. 여주인이 죄송하다는 듯한 얼굴로 '공교롭게 만원이어서'라며 거절하려고 했을 때 화복(일본옷) 차림의 부인이 깊이 머리를 숙이며 들어와서, 두 청년 사이에 섰다.

가게 안에 있는 모두가 침을 삼키며 귀를 기울인다. 화복을 입은 부인이 조용히 말했다.

".... 우동..3 인분입니다만.... 괜찮겠죠?" 그 말을 들은 여주인의 얼굴이 변했다. 십수 년의 세월을 순식간에 밀어젖히고, 그날의 젊은 엄마와 어린 두 아들의 모습이 눈앞의 세 사람과 겹쳐진다.

카운터 안에서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고 있는 주인과 방금 들어온 세 사람을 번갈아 가리키면서,

".... .... 여보 !" 하고 당황해 하고 있는 여주인에게 청년 중 하나가 말했다.

"우리는, 14년전 섣달 그믐날 밤, 모자 셋이서 일인분의 우동을 주문했던 사람입니다. 그때의 한 그릇의 우동에 용기를 얻어 세 삶이 손을 맞잡고 열심히 살아갈 수가 있었습니다.

그 후, 우리는 외가가 있는 시가현으로 이사했읍니다. 저는 금년, 의사 국가시험에 합격하여 교오또(京都)의 대학병원에서 소아과의 병아리 의사로 근무하고 있습니다만, 내년 4월부터 삿뽀로의 종합병원에서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그 병원에 인사도 하고 아버님 묘에도 들를 겸해서 왔습니다. 그리고 우동집 주인은 되지 않았습니다만 교오또의 은행에 다니는 동생과 상의해서, 지금까지 인생 가운데에서 최고의 사치스러운 것을 계획했습니다.

그것은, 섣달 그믐날 어머님과 셋이서 삿뽀로의 북해정을 찾아와 3인분의 우동을 시키는 것이었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면서 듣고 있던 여주인과 주인의 눈에서 왈칵 눈물이 넘쳐흘렀다.

입구에서 가까운 테이블에 진을 치고 있던 야채 가게 주인이, 우동을 입에 머금은 채 있다가 그대로 꿀꺽하고 삼키며 일어나,

"여봐요 여주인 아줌마 ! 뭐하고 있어요 ! 십년간 이날을 위해 준비해 놓고 기다리고 기다린, 섣달 그믐날 10시 예약석이잖아요, 어서 안내해요. 안내를 !"

야채 가게 주인의 말에 번뜩 정신을 차린 여주인은

"잘 오셨어요...자 어서요... 여보! 2번 테이블 우동 3인분 !"

 

예기치 않은 환성과 박수가 터지는 가게 밖에서는 조금 전까지 흩날리던 눈발도 그치고,

갓 내린 눈에 반사되어 창문의 빛에 비친 <북해정>이라고 쓰인 옥호막이

한발 앞서 불어 제치는 정월의 바람에 휘날리고 있었다.

[리딩엠의 독서논술] 서·논술형 평가 대비는 초등학생 때부터 준비해야
  • 이상준 ‘책읽기와 글쓰기 리딩엠’ 직영교육센터 총괄원장
입력 2024.10.23 09:48
- 서·논술형 평가 확대 예정
  • 지난해 12월 교육부가 확정 발표한 2028 대학입시제도 개편안에는 고교 내신체제 개편에 관한 내용이 담겨 있다. 지식암기 위주의 5지선다형 평가를 지양하는 대신 사고력·문제해결력을 평가할 수 있는 서·논술형 평가를 확대해 나가겠다는 것이 그 골자다. 앞으로 단순 개념암기 방식만으로는 학교 시험에 필요한 경쟁력을 갖추기 어려워지므로 서·논술형 평가가 요구하는 능력을 키우는 게 중요하다. 그런데 서·논술형 평가 준비는 단기간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므로 그 의미와 방법을 정확히 알고 미리 준비할 필요가 있다.학교 시험은 크게 선택형 문항과 서답형 문항으로 나뉜다. 선택형 문항은 흔히 객관식으로 불리는 5지선다형이다. 서답형 문항은 학생이 직접 그 답안을 글로 작성하는 유형으로서 크게 서술형 문항과 논술형 문항으로 구분된다.논술형 문항은 서술형 문항에 비해 한 차원 높은 수준의 글쓰기를 요구한다. 별도로 정해진 답안의 양식은 없으나 최소 한 문단 이상의 길이로 논리적 완결성을 갖춘 답안을 작성해야 한다. 이때 서론-본론-결론이나 도입-전개-결말, 상황-문제제시-대안1-대안2-기대효과 등의 구성 단계는 글의 갈래에 따라 자유롭게 정하되 탄탄한 짜임새를 갖추어야만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
  • 서술형 문항은 개념이나 원리를 얼마나 이해했는가를 평가하는 데에 필요하다. 답안의 길이는 한 문장 이상으로 논술형 문항에 비해 짧은데, 서술 요소나 방식에는 조건이 붙는다. 즉 긴 분량의 글보다는 요구 내용이 모두 담긴 정확도 높은 답안을 작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 ◇ 서·논술형 문항의 의미와 차이점
  • 이상준 ‘책읽기와 글쓰기 리딩엠’ 직영교육센터 총괄원장.
  • ◇ 서·논술형 평가에 대비하는 방법두 번째 방법은 원론적인 이야기지만 꾸준한 독서다. 서·논술형 문항에서 제시하는 자료를 읽고 주어진 시간 내에 발문의 의미를 정확히 해석하려면 높은 수준의 문해력이 있어야 한다. 따라서 초등 때부터 하루에 삼십 분이라도 책 읽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필요하다. 시간이 남을 때나 할 일이 없을 때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독서를 하루의 가장 중요한 일과로 잡고 문학과 비문학, 신문 등을 오가며 다양한 글을 읽고 이해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
  • 세 번째 방법은 발표와 토론이다. 발표나 토론 수업 중 학생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정리하는 데에 공을 들인다. 친구들에게 소리 내어 말할 시간이 예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때 학생들이 보여 주는 집중력은 글쓰기 수업 중 고쳐쓰기를 수행할 때와는 또 다르다. 실제로 발표나 토론 수업을 진행하다 보면 자신이 정리한 글을 말로 옮길 때 주춤하는 학생들이 많다. 자신의 글에서 미처 포착하지 못했던 허점을 뒤늦게 발견한 탓이다. 이처럼 발표와 토론은 문장이나 문단을 견고히 설계하는 논리력을 키우는 데에 특효다.
  • 서·논술형 평가에 대비하는 첫 번째 방법은 서·논술형 글쓰기를 많이 연습하는 것이다. 이때 질문의 내용인 ‘발문’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필자가 서·논술형 글쓰기 수업을 진행하다 보면 열심히는 쓰고 있으나 질문에 맞지 않는 답안을 작성하는 학생들을 흔히 발견한다. 그런 경우에는 출발선으로 돌아와서 발문의 의미를 정확히 짚은 후 다시 글쓰기를 시작해야 한다. 특히 논술형 문항에서는 글감을 생성하고 짜임새 있게 조직하여 통일성 있는 답안을 완성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글감 생성 및 조직의 단계를 거치지 않고 바로 답안 작성에 돌입하면 완성도 높은 짜임새의 답안은 기대하기 어렵다.
  • ◇ 서·논술형 평가 대비는 초등 때부터이처럼 서·논술형 평가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려면 다양한 능력이 요구된다. 질문을 정확히 이해하는 문해력과 글감 생성에 활용되는 풍부한 배경지식, 글감을 조직하고 표현하는 논리력 등 말이다. 따라서 서·논술형 평가 대비는 초등 때부터 시작해야 한다. 책 읽기와 글쓰기는 결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 비단 국어나 사회 교과에 한정된 이야기가 아니다. 과학이나 수학 교과에서도 서·논술형 문항이 출제될 수 있다. 특히 수학 교과에 있어 서·논술형 평가는 풀이 과정의 요소별, 단계별로 채점이 이루어지게 된다. 따라서 문제 풀이의 과정을 단계별로 나눈 뒤 글로 자세히 옮기는 연습, 문제를 해결하는 여러 방법을 각각 구분하여 논리적으로 서술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수학 문제는 잘 풀 수 있으나 정작 그 과정을 글로 옮기지 못한다면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할 수도 있다.

종이책, 독해력 8배 높여…“읽는 동안 뇌는 재창조된다”

[건강한겨레] 인터뷰
‘읽기 뇌’ 분야 세계적 연구자 메리앤 울프

윤은숙기자
  • 수정 2024-10-25 18:15
  • 등록 2024-10-25 07:00
기사를 읽어드립니다
7:54
읽기 뇌 분야의 세계적 연구자이자 인지신경학자인 메리언 울프는 한겨레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몰입해서 읽는 독서는 뇌의 비판적 사고 능력을 향상시켜준다고 강조했다. 로드 시어시 제공

책을 읽는다는 것은 사람의 뇌 안에 이미 생리적, 인지적으로 돌이킬 수 없는 변화가 일어났음을 의미한다.

‘독서’가 부활했다.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에 한국 출판계가 오랜만에 활기를 띠고 있다. 독서 열풍은 한국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도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영국에서는 6억6900만 권의 종이책이 판매됐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독서는 섹시하다’(Reading is so sexy)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종이책 열풍을 다뤘다. 또한 뉴욕타임스 등 외신도 미국에서 ‘독서 파티’가 새로운 사회적 커뮤니티로 떠오르고 있다고 전했다.

독서에 대한 찬사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오랫동안 독서는 인간의 지적 능력을 키우는 최고의 방법으로 칭송받아왔다.

읽기 뇌 분야의 세계적 연구자이자 인지신경학자인 메리앤 울프는 한겨레와의 전자우편 인터뷰에서 “독서는 인류 역사상 최고의 발명품으로, 인간의 인지 발달을 변화시켜 사고 능력을 확장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왔다”고 강조했다. ‘책 읽는 뇌’ ‘다시 책으로’ 등의 저서로 유명한 울프는 디지털 기기의 확산으로 인해 책에 몰입하는 경험이 줄어들고 있으며, 이러한 변화가 주의 집중과 깊이 있는 사고를 저해한다고 우려했다.

광고

책 읽은 뒤 며칠 동안 뇌 연결성 계속 증가

많은 이가 독서를 자연스러운 활동이라고 생각하지만, 읽기는 유전적으로 타고나는 능력이 아니라 배워야 습득할 수 있다. 울프는 “새로운 것을 배울 때마다 뇌 속에 있는 신경세포는 새로운 연결과 경로를 만들어내는 뇌의 가소성 덕분에 독서가 가능해졌다”고 설명했다.

책을 읽을 때마다 뇌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짧은 시간 안에 다중적이고 동시다발적인 활동을 한다. 글자를 보고, 의미를 이해하며, 문맥을 파악하고, 감정과 상상력을 동원해 이야기를 그려낸다. 이 과정에서 뇌의 여러 영역이 협력하고 새로운 신경 회로가 형성되거나 강화된다.

광고
 
광고

대표적으로 독서에 관여하는 뇌 영역으로는 시각피질, 측두엽, 브로카 영역, 각회, 상각회, 그리고 백질 경로가 있다. 이들 영역은 시각적 인식, 음운 인식, 문법적 이해 등을 담당하며, 서로 협력해 독해 과정을 원활하게 한다. 울프는 “책을 읽는다는 것은 사람의 뇌 안에 이미 생리적, 인지적으로 돌이킬 수 없는 변화가 일어났음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독서가 깊어질수록 두뇌의 복잡한 회로와 신호 네트워크는 더욱 강력하고 정교해진다. 게티이미지뱅크

독서의 효과를 연구한 과학자들은 뇌의 복잡한 회로와 신호 네트워크가 독서 능력과 관련이 깊다고 밝혔다. 연구에 따르면, 독서가 성숙할수록 이 네트워크는 더욱 강력하고 정교해진다. 2013년 미국 에머리대학 연구팀은 소설 읽기가 뇌에 미치는 영향을 측정하기 위해 ‘기능적 뇌 자기공명영상’(fMRI) 스캔을 사용했으며, 독서 뒤 며칠 동안도 뇌 연결성이 증가하는 현상을 관찰했다. 9일간 소설을 읽었던 연구 참가자들의 뇌는 이야기가 긴장감 있게 전개될수록 여러 영역이 활발한 움직임을 보였다. 특히 움직임과 통증 같은 신체 감각에 반응하는 뇌의 일부인 ‘체성감각 피질’의 변화가 활발했다. 

광고

몰입이 관건…뇌에서 더 정교한 회로 생겨나

울프는 특히 몰입해서 읽는 경험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는 “몰입해서 독서할 경우 우리의 뇌는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 복잡하고 정교한 회로를 만들어낸다”며 “몰입 독서의 경험을 통해 독자는 글의 의미를 깊이 이해하고, 이를 통해 비판적으로 사고할 수 있게 된다. 이미 알고 있던 정보와 새로운 정보를 연계하거나 표면적으로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은 내용을 추론하는 등, 글과 독자가 풍부한 상호작용을 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또한 “프랑스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1871~1922)가 독서에 대해 ‘저자의 지혜를 넘어 우리의 것을 발견한다’고 말했듯이, 몰입 독서를 통해 자신을 성찰할 기회를 얻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울프는 디지털 기기 확산에 대한 우려도 밝혔다. 최근 확산하는 디지털 기기에서의 읽기는 짧고 빠른 정보 처리에 적합한 방식으로 이루어지며, 속도와 효율성만 부각되기 때문이다. 울프는 “이런 환경에서 독자들이 깊이 읽기에 필요한 시간을 충분히 할애하지 못하고, 글을 빠르게 스캔하고 넘기는 경향이 생긴다. 이는 독서의 깊이를 얕게 만들 수 있다”며 “이런 피상적 읽기 방식이 지속되면 ‘정교한 뇌 회로의 발달’이 저해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어린이나 청소년의 경우, 디지털 기기 사용 시간이 많아질수록 집중력은 더 떨어지고 성적도 하락할 수 있다. 올해 ‘미국의사협회지’(JAMA)에 실린 싱가포르의 새 연구에 따르면, 0~8살 아이들이 디지털에 많이 노출될수록 학교에서의 집중력과 성적이 더 나빠진다. 

독서인구 연도별 추이

짧은 글 빠르게 읽는 세상에서 깊이 읽는다는 것

지난해 스페인 발렌시아대학의 리디아 알타무라 연구팀은 2000년부터 2022년까지의 디지털 독서와 종이책 독서의 효과를 비교한 선행 연구들을 메타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는 30개국에서 47만 명이 참여한 25편의 연구를 기반으로 했다. 분석 결과, 종이책 독서가 디지털 독서보다 독해력 향상에 더 큰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광고
 

특히 초등학생과 중학생의 경우, 디지털 독서는 오히려 독해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고, 고등학생과 대학생은 디지털 독서와 독해력 사이에 약간의 긍정적 연관성을 보였지만 그 효과는 미미했다. 연구팀은 종이책 독서가 디지털 독서보다 독해력을 6~8배 더 효과적으로 높인다고 분석했다.

연구팀은 디지털 기기가 주의를 산만하게 하고, 온라인 글들이 어휘나 내용 면에서 종이책에 비해 미흡한 점이 독해력 향상을 방해하는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디지털 독서를 자주 하는 아이들은 학문적인 어휘 발달이 더딜 수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따라서 연구진은 디지털 독서가 완전히 부정적이지는 않지만, 종이책 독서만큼의 장점을 제공하지는 않는다고 강조했다.

한편, 울프 박사는 또한 한국 문화에서 두드러지는 예술에 대한 관심이 지속되길 원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해서 매우 기쁘다”면서 “문학뿐만 아니라 음악, 드라마, 영화, 춤 등 많은 분야에서 한국은 놀라운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 이런 예술 중시 흐름이 더욱 강화돼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깊이 있는 독서는 마음과 예술 모두를 풍요롭게 만든다. 또한 공감과 성찰을 키우고, 철학자 한병철이 논한 ‘머무르는 사유’를 가능하게 한다”고 덧붙였다.

울프는 비판적 사고와 관점을 키우기 위해서는 깊이 있는 독서가 필수라면서 “기본적으로 깊이 있는 독서 과정을 완전히 학습할 때까지는 인쇄물로 읽는 것이 중요하며, 이 과정을 신중하게 디지털 등 다른 매체로 ‘전이’시키기 위해서는 잘 훈련된 교사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동시에 “프로그래밍과 코딩을 배우는 과정은 디지털 기기를 통해 이루어질 수 있지만, 소셜미디어 등에서처럼 이러한 디지털 기기들이 학습 과정에 전면적으로 도입돼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윤은숙 기자 sugi@hani.co.kr

관련기사

https://www.youtube.com/watch?v=WpdLKjqRXM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