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침하게 흐린 품이 눈이 올 듯하더니, 눈은 아니 오고 얼다가 만 비가 추적추적 내리었다.
이날이야말로 동소문 안에서 인력거꾼 노릇을 하는 김첨지에게는 오래간만에도 닥친 운수 좋은 날이었다. 문 안에(거기도 문밖은 아니지만) 들어간 답시는 앞집 마나님을 전찻길까지 모셔다 드린 것을 비롯하여 행여나 손님이 있을까 하고 정류장에서 어정어정하며 내리는 사람 하나하나에게 거의 비는 듯한 눈길을 보내고 있다가, 마침내 교원인 듯한 양복장이를 동광학교(東光學校))까지 태워다 주기로 되었다.
첫 번에 삼십 전, 둘째 번에 오십 전 --- 아침 댓바람에 그리 흉하지 않은 일이었다. 그야말로 재수가 옴붙어서 근 열흘 동안 돈 구경도 못한 김첨지는 십 전짜리 백통화 서 푼, 또는 다섯 푼이 찰깍하고 손바닥에 떨어질 제 거의 눈물을 흘릴 만큼 기뻤었다. 더구나 이날 이 때에 이팔십 전이라는 돈이 그에게 얼마나 유용한지 몰랐다. 컬컬한 목에 모주 한 잔도 적실 수 있거니와, 그보다도 앓는 아내에게 설렁탕 한 그릇도 사다줄 수 있음이다.
그의 아내가 기침으로 쿨룩거리기는 벌써 달포가 넘었다. 조밥도 굶기를 먹다시피 하는 형편이니 물론 약 한 첩 써본 일이 없다. 구태여 쓰려면 못쓸 바도 아니로되, 그는 병이란 놈에게 약을 주어 보내면 재미를 붙여서 자꾸 온다는 자기의 신조(信條)에 어디까지 충실하였다. 따라서 의사에게 보인 적이 없으니 무슨 병인지는 알 수 없으나, 반듯이 누워 가지고 일어나기는커녕 새로 모로도 못 눕는 걸 보면 중증은 중증인 듯. 병이 이대도록 심해지기는 열흘 전에 조밥을 먹고 체한 때문이다. 그때도 김첨지가 오래간만에 돈을 얻어서 좁쌀 한 되와 십 전 짜리 나무 한 단을 사다 주었더니 김첨지의 말에 의하면, 오라질년이 천방지축(天方地軸)으로 남비에 대고 끓였다. 마음은 급하고 불길은 닿지 않아 채 익지도 않은 것을 그 오라질년이 숟가락은 고만두고 손으로 움켜서 두 뺨에 주먹덩이 같은 혹이 불거지도록 누가 빼앗을 듯이 처박질하더니만 그날 저녁부터 가슴이 땅긴다, 배가 켕긴다 하고 눈을 홉뜨고 지랄을 하였다. 그때 김첨지는 열화와 같이 성을 내며,
“에이, 오라질년, 조랑복은 할 수가 없어, 못 먹어 병, 먹어서병, 어쩌란 말이야! 왜 눈을 바루 뜨지 못해!”
하고 앓는 이의 뺨을 한 번 후려갈겼다. 홉뜬 눈은 조금 바루어졌건만 이슬이 맺히었다. 김첨지의 눈시울도 뜨끈뜨끈하였다.
환자가 그러고도 먹는 데는 물리지 않았다. 사흘 전부터 설렁탕 국물이 마시고 싶다고 남편을 졸랐다.
“이런 오라질 년! 조밥도 못 먹는 년이 설렁탕은. 또 처먹고 지랄병을 하게.”
라고 야단을 쳐보았건만, 못 사주는 마음이 시원치는 않았다.
인제 설렁탕을 사 줄 수도 있다. 앓는 어미 곁에서 배고파 보채는 개똥이(세살먹이)에게 죽을 사줄 수도 있다. ---팔십 전을 손에 쥔 김첨지의 마음은 푼푼하였다
그러나, 그의 행운은 그걸로 그치지 않았다. 땀과 빗물이 섞여 흐르는 목덜미를 기름 주머니가 다 된 왜목 수건으로 닦으며, 그 학교 문을 돌아 나올 때였다. 뒤에서 “인력거!”하고 부르는 소리가 났다. 자기를 불러 멈춘 사람이 그 학교 학생인 줄 김첨지는 한번 보고 짐작할 수 있었다. 그 학생은 다짜고짜로,
“남대문 정거장까지 얼마요?”
라고 물었다. 아마도 그 학교 기숙사에 있는 이로 동기 방학을 이용하여 귀향하려 함이로다. 오늘 가기로 작정은 하였건만, 비는 오고 짐은 있고 해서 어찌 할 줄 모르다가 마침 김첨지를 보고 뛰어나왔음이리라. 그렇지 않다면 왜 구두를 채 신지 못해서 질질 끌고, 비록 ‘고꾸라’ 양복일망정 노박이로 비를 맞으며 김첨지를 뒤쫓아 나왔으랴.
“남대문 정거장까지 말씀입니까?”
하고, 김첨지는 잠깐 주저하였다. 그는 이 우중에 우장도 없이 그 먼곳을 칠벅거리고 가기가 싫었음일까? 처음 것, 둘째 것으로 고만 만족하였음일까? 아니다. 결코 아니다. 이상하게도 꼬리를 맞물고 덤비는 이 행운 앞에 조금 겁이 났음이다. 그리고 집을 나올 제 아내의 부탁이 마음에 켕기었다. 앞집 마나님한테서 부르러 왔을 제 병인은 그 뼈만 남은 얼굴에 유월의 샘물 같은 유달리 크고 움푹한 눈에다 애걸하는 빛을 띄우며,
“오늘은 나가지 말아요. 제발 덕분에 집에 붙어 있어요. 내가 이렇게 아픈데…….”
하고 모기 소리같이 중얼거리며 숨을 걸그렁걸그렁하였다. 그래도 김첨지는 대수롭지 않은 듯이.
“압다, 젠장맞을 년. 빌어먹을 소리를 다 하네. 맞붙들고 앉았으면 누가 먹여 살릴 줄 알아.”
하고 훌쩍 뛰어나오려니까 환자는 붙잡을 듯이 팔을 내저으며,
“나가지 말라도 그래, 그러면 일찍이 들어와요.”
하고 목메인 소리가 뒤를 따랐다.
정거장까지 가잔 말을 들은 순간에 경련적으로 떠는 손, 유달리 큼직한 눈, 울 듯한 아내의 얼굴이 김첨지의 눈앞에 어른어른하였다.
“그래, 남대문 정거장까지 얼마란 말이요?”
하고 학생은 초조한 듯이 인력거꾼의 얼굴을 바라보며 혼잣말같이,
“인천 차가 열한 점에 있고, 그 다음에는 새로 두 점이던가.”
라고 중얼거린다.
“일 원 오십 전만 줍시요.”
이 말이 저도 모를 사이에 불쑥 김첨지의 입에서 떨어졌다. 제 입으로 부르고도 스스로 그 엄청난 돈 액수에 놀래었다. 한꺼번에 이런 금액을 불러라도 본 지가 그 얼마 만인가! 그러자, 그 돈 벌 용기가 병자에 대한 염려를 사르고 말았다. 설마 오늘 안으로 어떠랴 싶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제일 제이의 행운을 곱친 것보다도 오히려 갑절이 많은 이 행운을 놓칠 수 없다 하였다.
“일 원 오십 전은 너무 과한데.”
이런 말을 하며 학생은 고개를 기웃하였다.
“아니올시다. 잇수로 치면 여기서 거기가 시오리가 넘는답니다. 또 이런 진날에는 좀 더 주셔야지요.”
하고 빙글빙글 웃는 차부의 얼굴에는 숨길 수 없는 기쁨이 넘쳐흘렀다.
“그러면 달라는 대로 줄 터이니 빨리 가요.”
관대한 어린 손님은 그런 말을 남기고 총총히 옷도 입고 짐도 챙기러 갈 데로 갔다.
그 학생을 태우고 나선 김첨지의 다리는 이상하게 가뿐하였다. 달음질을 한다느니보다 거의 나는 듯하였다. 바퀴도 어떻게 속히 도는지 군다느니보다 마치 얼음을 지쳐나가는 스케이트 모양으로 미끄러져가는 듯하였다. 언땅에 비가 내려 미끄럽기도 하였다.
이윽고 끄는 이의 다리는 무거워졌다. 자기 집 가까이 다다른 까닭이다. 새삼스러운 염려가 그의 가슴을 눌렀다.
“오늘은 나가지 말아요. 내가 이렇게 아픈데.”
이런 말이 잉잉 그의 귀에 울렸다. 그리고 병자의 움쑥 들어간 눈이 원망하는 듯이 자기를 노려보는 듯하였다. 그러자 엉엉 하고 우는 개똥이의 곡성도 들은 듯싶다. 딸국딸국하고 숨 모으는 소리도 나는 듯싶다.
“왜 이러우? 기차 놓치겠구먼.”
하고, 탄 이의 초조한 부르짖음이 간신히 그의 귀에 들려왔다. 언뜻 깨달으니 김첨지는 인력거 채를 쥔 채 길 한복판에 엉거주춤 멈춰 있지 않은가.
“예, 예”
하고 김첨지는 또다시 달음질하였다. 집이 차차 멀어 갈수록 김첨지의 걸음에는 다시금 신이 나기 시작하였다. 다리를 재겨 놀려야만 쉴새없이 자기의 머리에 떠오르는 모든 근심과 걱정을 잊을 듯이……
정거장까지 끌어다 주고 그 깜짝 놀란 일 원 오십 전을 정말 제 손에 쥠에 말마따나 십리나 되는 길을 비를 맞아가며 질퍽거리고 온 생각은 아니하고, 거저 얻은 듯이 고마웠다. 졸부나 된 듯이 기뻤다. 제 자식뻘밖에 안 되는 어린 손님에게 몇번 허리를 굽히며,
“안녕히 다녀옵시요.”
라고, 깎듯이 재우쳤다.
그러나 빈 인력거를 털털거리며 이 우중에 돌아갈 일이 꿈 밖이었다. 노동으로 하여 흐른 땀이 식어지자 굶주린 창자에서 물 흐르는 옷에서 어슬어슬 한기가 솟아나기 비롯하매 일 원 오십 전이란 돈이 얼마나 괜찮고 괴로운 것인 줄 절실히 느끼었다. 정거장을 떠나는 그의 발길은 힘 하나 없었다. 온몸이 옹송그려지며 당장 그 자리에 엎어져 못 일어날 것 같았다.
“젠장맞을 것! 이 비를 맞으며 빈 인력거를 털털거리고 돌아를간담. 이런 빌어먹을, 제 할미를 붙을 비가 왜 남의 상판을 딱딱 때려!”
그는 몹시 홧증을 내며 누구에게 반항이나 하는 듯이 게걸거렸다. 그럴 즈음에 그의 머리엔 또 새로운 광명이 비쳤나니, 그것은 ‘이러구 갈 게 아니라 이 근처를 빙빙돌며 차 오기를 기다리면 또 손님을 태우게 될는지도 몰라.’란 생각이었다. 오늘 운수가 괴상하게도 좋으니까 그런 요행이 또 한번 없으리라고 누가 보증하랴. 꼬리를 굴리는 행운이 꼭 자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내기를 해도 좋을 만한 믿음을 얻게 되었다. 그렇지만 정거장 인력거꾼의 등살이 무서워 정거장 앞에 섰을 수가 없었다. 그래 그는 이전에도 여러 번 해본 일이라 바로 정거장에서 조금 떨어져서 사람 다니는 길과 전찻길 틈에 인력거를 세워 놓고, 자기는 그 근처를 빙빙 돌며 형세를 관망하기로 하였다. 얼마만에 기차는 왔고 수십 명이나 되는 손이 정류장으로 쏟아져 나왔다. 그 중에서 손님을 물색하던 김첨지의 눈에 양머리에 뒤축 높은 구두를 신고 망토까지 두른 기생 퇴물인 듯, 난봉 여학생인 듯한 여편네의 모양이 띄었다. 그는 슬근슬근 그 여자의 곁으로 다가들었다.
“아씨, 인력거 아니 타시랍시요?”
그 여학생인지 뭔지가 한참은 매우 때깔을 빼며 입술을 꼭 다문 채 김첨지를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김첨지는 구경하는 거지나 무엇같이 연해연방 그의 기색을 살피며,
“아씨 정거장 애들보담 아주 싸게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댁이 어디신가요?”
하고 추근추근하게도 그 여자의 들고 있는 일본식 버들고리짝에 제 손을 대었다.
“왜 이래? 남 귀찮게.”
소리를 벽력같이 지르고는 돌아선다. 김첨지는 어랍시요 하고 물러섰다.
전차가 왔다. 김첨지는 원망스럽게 전차 타는 이를 노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예감을 틀리지 않았다. 전차가 빡빡하게 사람을 싣고 움직이기 시작하였을 제 타고 남은 손 하나가 있었다. 굉장하게 큰 가방을 들고 있는 걸 보면 아마 붐비는 차안에 짐이 크다 하여 차장에게 밀려 내려온 눈치였다. 김첨지는 대어 섰다.
“인력거를 타시랍시요.”
한동안 값으로 실랑이를 하다가 육십 전에 인사동까지 태워다 주기로 하였다. 인력거가 무거워지매 그의 몸은 이상하게도 가벼워졌고 그리고 또 인력거가 가벼워져서 몸은 다시금 무거워졌는데, 이번에는 마음조차 초조해온다. 집의 광경이 자꾸 눈앞에 어른거리어 이젠 요행을 바랄 여유도 없었다. 나무 등걸이나 무엇만 같고 제 것 같지도 않은 다리를 연해 꾸짖으며 갈팡질팡 뛰는 수밖에 없었다. 저놈의 인력거꾼이 저렇게 술이 취해 가지고 이 진 땅에 어찌 가노 하고, 길 가는 사람이 걱정을 하리만큼 그의 걸음은 황급하였다. 흐리고 비오는 하늘은 어둠침침한 게 벌써 황혼에 가까운 듯하다. 창경원 앞까지 다다라서야 그는 턱에 닿는 숨을 돌리고 걸음도 늦추잡았다. 한 걸음 두 걸음 집이 가까워올수록 그의 마음은 괴상하게 누그러졌다. 그런데 이 누그러짐은 안심에서 오는 게 아니요, 자기를 덮친 무서운 불행이 박두한 것을 두려워하는 마음에서 오는 것이다. *
그는 불행이 닥치기 전 시간을 얼마쯤이라도 늘리려고 버르적거렸다. 기적에 가까운 벌이를 하였다는 기쁨을 할 수 있으면 오래 지니고 싶었다. 그는 두리번두리번 사면을 살피었다. 그 모양은 마치 자기 집, 곧 불행을 향하고 달려가는 제 다리를 제 힘으로는 도저히 어찌할 수 없으니 누구든지 나를 좀 잡아다고, 구해다고 하는 듯하였다.
그럴 즈음에 마침 길가 선술집에서 친구 치삼이가 나온다. 그의 우글우글 살진 얼굴은 주홍이 오른 듯, 온 턱과 뺨을 시커멓게 구레나룻이 덮이고, 노르탱탱한 얼굴이 바짝 말라서 여기저기 고랑이 파이고 수염도 있대야 턱밑에만, 마치 솔잎 송이를 거꾸로 붙여 놓은 듯한 김첨지의 풍채하고는 기이한 대상을 짓고 있었다.
“여보게 김첨지, 자네 문 안 들어갔다 오는 모양일세 그려, 돈 많이 벌었을테니 한 잔 빨리게.”
뚱뚱보는 말라깽이를 보는 말맡에 부르짖었다. 그 목소리는 몸짓과 딴판으로 연하고 싹싹하였다. 김첨지는 이 친구를 만난 게 어떻게 반가운지 몰랐다. 자기를 살려준 은인이나 무엇같이 고맙기도 하였다.
“자네는 벌써 한 잔 한 모양일세 그려. 자네도 재미가 좋아 보이.”
하고 김첨지는 얼굴을 펴서 웃었다.
“압다. 재미 안 좋다고 술 못 먹을 낸가. 그런데 여보게, 자네 왼몸이 어째 물독에 빠진 새앙쥐 같은가? 어서 이리 들어와 말리게.”
선술집은 훈훈하고 뜨뜻하였다. 추어탕을 끓이는 솥뚜껑을 열 적마다 뭉게뭉게 떠오르는 흰 김, 석쇠에서 빠지짓 빠지짓 구워지는 너비아니 구이며, 제육이며, 간이며, 콩팥이며, 북어며, 빈대떡…….이 너저분하게 늘어 놓은 안주 탁자에 김첨지는 갑자기 속이 쓰려서 견딜 수 없었다. 마음대로 할 양이면 거기 있는 모든 먹음 먹이를 모조리 깡그리 집어삼켜도 시원치 않았다. 하되, 배고픈 이는 우선 분량 많은 빈대떡 두 개를 쪼이기로 하고 추어탕을 한 그릇 청하였다. 주린 창자는 음식 맛을 보더니 더욱더욱 비어지며 자꾸자꾸 들이라들이라 하였다. 순식간에 두부와 미꾸리 든 국 한 그릇을 그냥 물같이 들이키고 말았다. 첫째 그릇을 받아들었을 제 데우던 막걸리 곱빼기 두 잔이 더 왔다. 치삼이와 같이 마시자 원원이 비었던 속이라 찌르르 하고 창자에 퍼지며 얼굴이 화끈하였다. 눌러 곱빼기 한 잔을 또 마셨다.
김첨지의 눈은 벌써 개개 풀리기 시작하였다. 석쇠에 얹힌 떡 두개를 숭덩숭덩 썰어서 볼을 볼록거리며 또 곱빼기 두 잔을 부어라 하였다.
치삼은 의아한 듯이 김첨지를 보며,
“여보게 또 붓다니, 벌써 우리가 넉 잔씩 먹었네. 돈이 사십 전일세.”
“아따 이놈아, 사십 전이 그리 끔찍하냐? 오늘 내가 돈을 막 벌었어. 참 오늘 운수가 좋았느니.”
“그래 얼마를 벌었단 말인가?”
“삼십 원을 벌었어, 삼십 원을! 이런 젠장맞을, 술을 왜 안 부어……괜찮다, 괜찮아. 막 먹어도 상관이 없어. 오늘 돈 산더미같이 벌었는데.”
“어, 이사람 취했군, 그만두세.”
“이놈아, 이걸 먹고 취할 내냐? 어서 더 먹어.”
하고는 치삼의 귀를 잡아치며 취한 이는 부르짖었다. 그리고, 술을 붓는 열다섯 살 됨직한 중대가리에게로 달려들며
“이놈, 오라질놈, 왜 술을 붓지 않아.”
라고 야단을 쳤다. 중대가리는 희희 웃고 치삼이를 보며 문의하는 듯이 눈짓을 하였다. 주정꾼이 이 눈치를 알아보고 화를 버럭내며,
“에미를 붙을 이 오라질 놈들 같으니, 이놈 내가 돈이 없을 줄 알고?”
하자마자 허리춤을 훔척훔척하더니 일 원짜리 한장을 꺼내어 중대가리 앞에 펄쩍 집어던졌다. 그 사품에 몇 푼 은전이 잘그랑 하며 떨어진다.
“여보게 돈 떨어졌네, 왜 돈을 막 끼얹나.”
이런 말을 하며 일변 돈을 줍는다. 김첨지는 취한 중에도 돈의 거처를 살피는 듯이 눈을 크게 떠서 땅을 내려다보다가 불시에 제 하는 짓이 너무 더럽다는 듯이 고개를 소스라치자 더욱 성을 내며,
“봐라 봐! 이 더러운 놈들아, 내가 돈이 없나, 다리 뼉다구를 꺾어 놓을 놈들 같으니.”
하고 치삼이 주워주는 돈을 받아,
“이 원수엣 돈! 이 육시를 할 돈!”
하면서 팔매질을 친다. 벽에 맞아 떨어진 돈은 다시 술 끓이는 양푼에 떨어지며 정당한 매를 맞는다는 듯이 쨍하고 울었다.
곱빼기 두 잔은 또 부어질 겨를도 없이 말려가고 말았다. 김첨지는 입술과 수염에 붙은 술을 빨아들이고 나서 매우 만족한 듯이 그 솔잎 송이 수염을 쓰다듬으며,
“또 부어, 또 부어.”
라고 외쳤다.
또 한 잔 먹고 나서 김첨지는 치삼의 어깨를 치며 문득 껄껄 웃는다. 그 웃음 소리가 어찌나 컸던지 술집에 있는 이의 눈이 모두 김첨지에게로 몰리었다. 웃는 이는 더욱 웃으며,
“여보게 치삼이, 내 우스운 이야기 하나 할까? 오늘 손을 태우고 정거장에까지 가지 않았겠나.”
“그래서?”
“갔다가 그저 오기가 안됐데 그려, 그래 전차 정류장에서 어름어름하며 손님 하나를 태울 궁리를 하지 않았나. 거기 마침 마나님이신지 여학생이신지, 요새야 어디 논다니와 아가씨를 구별할 수가 있던가. 망토를 잡수시고 비를 맞고 서 있겠지. 슬근슬근 가까이 가서 인력거를 타시랍시요 하고 손가방을 받으랴니까 내 손을 탁 뿌리치고 핵 돌아서더니만 ‘왜 남을 이렇게 귀찮게 굴어!’그 소리야말로 꾀꼬리 소리지, 허허!”
김첨지는 교묘하게도 정말 꾀꼬리 같은 소리를 내었다. 모든 사람은 일시에 웃었다.
“빌어먹을 깍쟁이 같은 년, 누가 저를 어쩌나, ‘왜 남을 귀찮게굴어!’ 어이구 소리가 체신도 없지, 허허”
웃음소리들은 높아졌다. 그런 그 웃음소리들이 사라지기 전에 김첨지는 훌쩍훌쩍 울기 시작하였다.
치삼은 어이없이 주정뱅이를 바라보며,
“금방 웃고 지랄을 하더니 우는 건 무슨 일인가?”
김첨지는 연해 코를 들여마시며,
“우리 마누라가 죽었다네.”
“뭐, 마누라가 죽다니, 언제”
“이놈아 언제는. 오늘이지.”
“예끼 미친놈, 거짓말 말아.”
“거짓말은 왜, 참말로 죽었어…… 참말로. 마누라 시체를 집에 뻐들쳐 놓고 내가 술을 먹다니, 내가 죽일 놈이야 죽일 놈이야.”
하고 김첨지는 엉엉 소리 내어 운다.
치삼은 흥이 조금 깨어지는 얼굴로,
“원 이사람아 참말을 하나, 거짓말을 하나. 그러면 집으로 가세, 가.”
하고 우는 이의 팔을 잡아당기었다.
치삼의 끄는 손을 뿌리치더니 김첨지는 눈물이 글썽글썽한 눈으로 싱그레 웃는다.
“죽기는 누가 죽어.”
하고 득의 양양.
“죽기는 왜 죽어, 생떼같이 살아만 있단다. 그 오라질년이 밥을죽이지. 인제 나한테 속았다.”
하고 어린애 모양으로 손뼉을 치며 웃는다.
“이 사람이 정말 미쳤단 말인가. 나도 아주먼네가 앓는단 말은 들었었는데.”
하고 치삼이도 어떤 불안을 느끼는 듯이 김첨지에게 또 돌아가라고 권하였다.
“안 죽었어, 안 죽었대도 그래.”
김첨지는 홧증을 내며 확신있게 소리를 질렀으되 그 소리엔 안 죽은 것을 믿으려고 애쓰는 가락이 있었다. 기어이 일 원어치를 채워서 곱빼기를 한 잔씩 더 먹고 나왔다. 궂은 비는 의연히 추적추적 내린다.
김첨지는 취중에도 설렁탕을 사가지고 집에 다다랐다. 집이라 해도 물론 셋집이요, 또 집 전체를 세든 게 아니라 안과 뚝 떨어진 행랑방 한 간을 빌어든 것인데 물을 길어대고 한 달에 일 원씩 내는 터이다. 만일 김첨지가 주기를 띠지 않았던들 한 발을 대문에 들여놓았을 제 그곳을 지배하는 무시무시한 정적(靜寂)---폭풍우가 지나간 뒤의 바다 같은 정적에 다리가 떨렸으리라. 쿨룩거리는 기침 소리도 들을 수 없다. 그르렁거리는 숨소리조차 들을 수 없다.. 다만 이 무덤 같은 침묵을 깨뜨리는, 깨뜨린다느니보다 한층 더 침묵을 깊게 하고 불길하게 하는 빡빡거리 그윽한 소리, 어린애의 젖 빠는 소리가 날 뿐이다. 만일 청각이 예민한 이 같으면, 그 빡빡소리는 빨 따름이요, 꿀떡꿀떡하고 젖 넘어가는 소리가 없으니, 빈 젖을 빤다는 것도 짐작할는지 모르리라.
혹은 김첨지도 이 불길한 침묵을 짐작했는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으면 대문에 들어서자마자 전에 없이,
“이 난장맞을 년, 남편이 들어오는데 나와 보지도 않아. 이 오라질년.”
이라고 고함을 친 게 수상하다. 이 고함이야말로 제 몸을 엄습해오는 무시무시한 증을 쫓아 버리려는 허장성세(虛張聲勢)인 까닭이다.
하여간 김첨지는 방문을 왈칵 열었다. 구역을 나게 하는 추기 --- 떨어진 삿자리 밑에서 나온 먼지내, 빨지 않은 지저귀에서 나는 똥내와 오줌내, 가지각색 때가 켜켜이 앉은 옷내, 병인의 땀 섞은 내가 섞인 추기가 무딘 김첨지의 코를 찔렀다.
방안에 들어서며 설렁탕을 한구석에 놓을 사이도 없이 주정꾼은 목청을 있는 대로 다 내어 호통을 쳤다.
“이 오라질년, 주야장천(晝夜長川) 누워만 있으면 제일이야! 남편이 와도 일어나지를 못해.”
라는 소리와 함께 발길로 누운 이의 다리를 몹시 찼다. 그러나 발길에 채이는 건 사람의 살이 아니고 나무등걸과 같은 느낌이 있었다. 이때에 빽빽 소리가 응아 소리로 변하였다. 개똥이가 물었던 젖을 빼어놓고 운다. 운대도 온 얼굴을 찡그려 붙어서 운다는 표정을 할 뿐이다. 응아 소리도 입에서 나는 게 아니고, 마치 뱃속에서 나는 듯하였다. 울다가 울다가 목도 잠겼고 또 울 기운조차 시진한 것 같다.
발로 차도 그 보람이 없는 걸 보자 남편은 아내의 머리맡으로 달려들어 그야말로 까치집 같은 환자의 머리를 껴들어 흔들며,
“이년아, 말을 해, 말을! 입이 붙었어, 이 오라질년!”
“……”
“으응, 이것 봐, 아무말이 없네.”
“……”
“이년아, 죽었단 말이냐, 왜 말이 없어?”
“……”
“으응, 또 대답이 없네, 정말 죽었나보이.”
이러다가 누운 이의 흰 창이 검은 창을 덮은, 위로 치뜬 눈을 알아보자마자,
“이 눈깔! 이 눈깔! 왜 나를 바루 보지 못하고 천정만 바라보느냐, 응”
하는 말끝엔 목이 메이었다. 그러자 산 사람의 눈에서 떨어진 닭똥 같은 눈물이 죽은 이의 뻣뻣한 얼굴을 어룽어룽 적시었다. 문득 김첨지는 미친 듯이 제 얼굴을 죽은 이의 얼굴에 한데 비벼대며 중얼거렸다.
“설렁탕을 사다 놓았는데 왜 먹지를 못하니, 왜 먹지를 못하니……괴상하게도 오늘은 운수가 좋더니만……” 끝.
1. 다음 낱말의 뜻을 쳇 GPT 등으로 찾아 보고 낱말의 앞, 뒤 문장을 고려하여 써보세요.
조랑복
첨지
오라질년
달포
푼푼하였다.
댓바람
재겨
버들고리짝
너비아니
주야장천
육시
허장성세
2. 1-2쪽에서 알 수 있는 김첨지의 성격을 2가지 측면에서 말해보세요. 그 근거도 써보세요.
3. 김첨지의 1쪽에서 마음이 푼푼한 이유를 2가지 써보시오.
4. 김첨지는 기뻤지만 불길한 예감도 들었다. 이런 상황을 묘사한 글을 써 보세요.(2쪽에서)
5. 2쪽의 오른편 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끄는 이의 다리는 무거워졌다.
다시금 신이 나기 시작하였다.
6. ‘운수 좋은 날’에 어울리는 김첨지의 오늘 상황 3개를 순서대로 써 보세요.(1-2쪽에서)
7. 김첨지의 가족 구성은 어떻게 되나요?
8. 김첨지의 겉으로 드러난 거친 성격과 마음 속의 정이 담긴 글을 찾아 쓰세요.<2쪽>
9. 글 1쪽-2쪽에서 1920년대라는 시대적 배경을 짐작할 수 있는 어휘(단어)5개 이상 찾아 쓰세요.
10. 김첨지가 자신의 궁핍한 처지에 대하여 변명 같은 생각을 담은 글을 찾아 써보세요.<1쪽>
11. 5-6쪽에서 김첨지의 비참한 가정 상황을 청각적으로 묘사한 글을 옮겨 써보세요.
12. 5-6쪽에서 김첨지의 비참한 가정 상황을 후각적으로 묘사한 글을 옮겨 써보세요.
13. 이 소설의 줄거리를 4-5문장으로 추려서 말해보세요.
14. 작가가 ‘운수 좋은 날’ 이라는 이야기를 통해 우리(독자)에게 말하고 싶은 내용(주제)은 무엇일까요?
수난이대<하근찬> 진수가 돌아온다. 진수가 살아서 돌아온다. 아무개는 전사했다는 통지가 왔고, 아무개는 죽었는지 살았는지 통 소식이 없는데, 우리 진수는 살아서 오늘 돌아오는 것이다. 생각할수록 어깻바람이 날 일이다. 그래 그런지 몰라도 박만도는 여느 때 같으면 아무래도 한두 군데 앉아 쉬어야 넘어설 수 있는 용머리재를 단숨에 올라채고 만 것이다. 가슴이 펄럭거리고 허벅지가 뻐근했다. 그러나 그는 고갯마루에서도 쉴 생각을 하지 않았다. 들 건너 멀리 바라보이는 정거장에서 연기가 물씬물씬 피어오르며 삐익 기적 소리가 들려 왔기 때문이다. 아들이 타고 내려올 기차는 점심때가 가까워 도착한다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니다. 해가 이제 겨우 산등성이 위로 한 뼘 가량 떠올랐으니, 오정이 되려면 아직 차례 멀은 것이다. 그러나 그는 공연히 마음이 바빴다. 까짓것, 잠시 앉아 쉬면 뭐할 기고. 손가락으로 한쪽 콧구멍을 누르면서 팽! 마른 코를 풀어 던졌다. 그리고 휘청휘청 고갯길을 내려가는 것이다.
내리막은 오르막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대고 팔을 흔들라치면 절로 굴러 내려가는 것이다. 만도는 오른쪽 팔만을 앞뒤로 흔들고 있었다. 왼쪽 팔은 조끼 주머니에 아무렇게나 쑤셔 넣고 있는 것이다. 삼대 독자가 죽다니 말이 되나. 살아서 돌아와야 일이 옳고말고. 그런데 병원에서 나온다하니 어디를 좀 다치기는 다친 모양이지만, 설마 나같이 이렇게사 되지 않았겠지. 만도는 왼쪽 조기 주머니에 꽂힌 소맷자락을 내려다보았다. 그 소맷자락 속에는 아무것도 든 것이 없었다. 그저 소맷자락만이 어깨 밑으로 덜렁 처져 있는 것이다. 그래서 노상 그쪽은 조끼 주머니 속에 꽂혀 있는 것이다. 볼기짝이나 장딴지같은 데를 총알이 약간 스쳐갔을 따름이겠지. 나처럼 팔뚝 하나가 몽땅 달아날 지경이었다면 그 엄살스런 놈이 견뎌 냈을 턱이 없고말고. 슬며시 걱정이 되기도 하는 듯 그는 속으로 이런 소리를 주워섬겼다. 내리막길은 빨랐다. 벌써 고갯마루가 저만큼 높이 쳐다보이는 것이다 산모퉁이를 돌아서면 이제 들판이다. 내리막길을 쏘아 내려온 기운 그대로, 만도는 들길을 잰걸음 쳐 나가다가 개천 둑에 이르러서야 걸음을 멈추었다. 외나무다리가 놓여 있는 조그마한 시냇물이었다. 한여름 장마철에는 들어설라치면 배꼽이 묻히는 수도 있었지마는 요즈막엔 무릎이 잠길 듯 말듯 한 물인 것이다. 가을이 깊어지면서부터 물은 밑바닥이 환히 들여다보일 만큼 맑아져 갔다. 소리도 없이 미끄러져 내려가는 물을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으면 절로 잇속이 시려온다. 만도는 물 기슭에 내려가서 쭈그리고 앉아 한 손으로 고의춤을 뜯어 헤쳤다. 오줌을 찌익 갈기는 것이다. 거울면처럼 맑은 물위에 오줌이 가서 부글부글 끓어오르며 뿌우연 거품을 이루니 여기저기서 물고기 떼가 모여든다. 제법 엄지 손가락만씩한 피리도 여러 마리다. 한 바가지 잡아서 회쳐 놓고 한잔 쭈욱 들이켰으면……. 군침이 목구멍에서 꿀꺽했다. 고기 떼를 향해서 마른 코를 팽팽 풀어 던지고, 그는 외나무다리를 조심히 디뎠다. 길이가 얼마 되지 않는 다리었으나 아래로 몸을 내려다보면 제법 아찔했다. 그는 이 외나무다리를 퍽 조심한다. 언젠가 한번, 읍에서 술이 꽤 되어가지고 흥청거리며 돌아오다가, 물에 굴러 떨어진 일이 있었던 것이다. 지나치는 사람이 없었기에 망정이지, 누가 보았더라면 큰 웃음거리가 될 뻔했었다. 발목 하나를 약간 접쳤을 뿐, 크게 다친 데는 없었다. 이른 가을철이었기 때문에 옷을 벗어 둑에 널어놓고 말릴 수는 있었으나 여간 창피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옷이 말짱 젖었다거나 옷이 마를 때까지 발가벗고 기다려야 한다거나 해서가 아니었다. 팔뚝 하나가 몽땅 잘라져 나간 흉측한 몸뚱이를 하늘 앞에 드러내 놓고 있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지나치는 사람이 있을라치면, 하는 수없이 물 속으로 뛰어 들어가서 얼굴만 내놓고 앉아 있었다. 물이 선뜩해서 아래턱이 덜덜거렸으나, 오그라붙는 사타구니를 한 손으로 꽉 움켜쥐고 버티는 수밖에 없었다. "흐흐흐…….“ 그때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곧 웃음이 터져 나오는 것이다. 하늘로 쳐들린 콧구멍이 연방 벌름거렸다.
개천을 건너서 논두렁길을 한참 부지런히 걸어가노라면 읍으로 들어가는 한길이 나선다. 도로변에 먼지를 부옇게 덮어 쓰고 도사리고 앉아 있는 초가집은 주막이다. 만도가 읍네 나올 때마다 꼭 한 번씩 들르곤 하는 단골집인 것이다. 이 집 눈썹이 짙은 여편네와는 예사로 농을 주고받는 사이다. 술방 문턱을 들어서며 만도가, "서방님 들어가신다."하면, 여편네는, “아이 문둥아 어서 오느라." 하는 것이 인사처럼 되어 있었다. 만도는 여간 언짢은 일이 있어도 이 여편네의 궁둥이 곁에 가서 앉으면 속이 절로 쑥 내려가는 것이었다.
주막 앞을 지나치면서 만도는 술방 문을 열어 볼까 했으나, 방문 앞에 신이 여러 켤레 널려 있고, 방안에서 웃음소리가 요란하기 때문에 돌아오는 길에 들르기로 했다. 신작로에 나서면 금시 읍이었다. 만도는 읍 들머리에서 잠시 망설이다가, 정거장 쪽과는 반대되는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장거리를 찾아가는 것이었다. 진수가 돌아오는데 고등어나 한 손 사가지고 가야 될 거 아닌가, 싶어서였다. 장날은 아니었으나, 고깃전에는 없는 고기가 없었다. 이것을 살까 하면 저것이 좋아 보이고 그것을 사러 가면 또 그 옆의 것이 먹음직해 보이고 그것을 사러 가면 또 그 옆의 것이 먹음직해 보였다. 한참 이리저리 서성거리다가 결국은 고등어 한 손이었다. 그것을 달랑달랑 들고 정거장을 향해 가는데, 겨드랑 밑이 간질간질해 왔다. 그러나 한쪽밖에 없는 손에 고등어를 들었으니 참 딱했다. 어깻죽지를 연방 위아래로 움직거리는 수밖에 없었다. 정거장 대합실에 들어선 만도는 먼저 벽에 걸린 시계부터 바라보았다. 두시 이십분이었다. 벌써 두시 이십분이니 내가 잘못 보나? 아무리 두 눈을 씻고 보아도 시계는 틀림없는 두시 이십분이었다. 한쪽 걸상에 가서 궁둥이를 붙이면서도 곧장 미심쩍어 했다. 두시 이십분이라니, 그럼 벌써 점심때가 겨웠단 말인가? 말도 아닌 것이다. 자세히 보니 시계는 유리가 깨어졌고 먼지가 꺼멓게 앉아 있었다. 그러면 그렇지. 엉터리였다. 벌써 그렇게 되었을 리가 없는 것이다. "여보이소 지금 몇 싱교?" 맞은편에 앉은 양복장이한테 물어 보았다. "열시 사십분이오." "예, 그렁교." 만도는 고개를 굽실하고는 두 눈을 연방 껌벅거렸다. 열시 사십분이라, 보자 그럼 아직도 한 시간이나 나마 남았구나. 그는 안심이 되는 듯 후유 숨을 내쉬었다. 궐련을 한 깨 빼 물고 불을 댕겼다. 정거장 대합실에 와서 이렇게 도사리고 앉아 있노라면, 만도는 곧잘 생각키는 일이 한 가지 있었다. 그 일이 머리에 떠오르면 등골을 찬 기운이 좍 스쳐 내려가는 것이었다. 손가락이 시퍼렇게 굳어진 이끼 낀 나무토막 같은 팔뚝이 지금도 저만큼 눈앞에 보이는 듯했다.
바로 이 정거장 마당에 백 명 남짓한 사람들이 모여 웅성거리고 있었다. 그 중에는 만도도 섞여 있었다. 기차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었으나, 그들은 모두 자기네들이 어디로 가는 것인지 알지를 못했다. 그저 차를 타라면 탈 사람들이었다. 징용에 끌려 나가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십 이삼년 옛날의 이야기인 것이다. 북해도 탄광으로 갈 것이라는 사람도 있었고 틀림없이 남양군도로 간다는 사람도 있었다. 더러는 만주로 가면 좋겠다고 하기도 했다. 만도는 북해도가 아니면 남양군도일 것이고, 거기도 아니면 만주겠지, 설마 저희들이 하늘 밖으로사 끌고 가겠느냐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그 들창코로 담배 연기를 푹푹 내뿜고 있었다. 그러나 마음이 좀 덜 좋은 것은 마누라가 저쪽 변소 모퉁이 벚나무 밑에 우두커니 서서 한눈도 안 팔고 이쪽만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는 주머니 속에 성냥을 두고도 옆사람에게 불을 빌리자고 하며 슬며시 돌아서 버리곤 했다. 플랫포옴으로 나가면서 뒤를 돌아보니 마누라는 울 밖에 서서 수건으로 코를 눌러대고 있는 것이었다. 만도는 코허리가 찡했다. 기타가 꽥꽥 소리를 지르면서 덜커덩! 하고 움직이기 시작했을 때는 정말 덜 좋았다. 눈앞이 뿌우옇게 흐려지는 것을 어쩌지 못했다. 그러나 정거장이 까맣게 멀어져 가고 차창 밖으로 새로운 풍경이 휙휙 날라들자, 그만 아무렇지도 않아지는 것이었다. 오히려 기분이 유쾌해지는 것 같기도 했다. 바다를 본 것도 처음이었고, 그처럼 큰 배에 몸을 실어 본 것은 더구나 처음이었다. 배 밑창에 엎드려서 꽥꽥 게워내는 사람들이 많았으나, 만도는 그저 골이 좀 띵했을 뿐 아무렇지도 않았다. 더러는 하루에 두 개씩 주는 뭉치 밥을 남기기도 했으나, 그는 한꺼번에 하룻 것을 뚝딱해도 시원찮았다. 모두 내릴 준비를 하라는 명령이 떨어진 것은 사흘째 되는 날 황혼 때었다. 제가끔 봇짐을 챙기기에 바빴다. 만도도 호박덩이만한 보따리를 옆구리에 덜렁 찼다. 갑판 위에 올라가 보니 하늘은 활활 타오르고 있고, 바닷물은 불에 녹은 쇠처럼 벌겋게 출렁거리고 있었다. 지금 막 태양이 물위로 뚝딱 떨어져가는 것이었다. 햇덩어리가 어쩌면 그렇게 크고 붉은지 정말 처음이었다. 그리고 바다 위에 주황빛으로 번쩍거리는 커다란 산이 둥둥 떠 있는 것이었다. 무시무시하도록 황홀한 광경에 모두들 딱 벌어진 입을 다물 줄 몰랐다. 만도는 어깨마루를 버쩍 들러 올리면서, 히야 고함을 질러댔다. 그러나, 섬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숨막히는 더위와 강제 노동과 그리고, 잠자리 만씩이나 한 모기 떼…….그런 것뿐이었다. 섬에다가 비행장을 닦는 것이었다. 모기에게 물려 혹이 된 자리를 벅벅 긁으며, 비오듯 쏟아지는 땀을 무릅쓰고, 아침부터 해가 떨어질 때까지 산을 허물어 내고, 흙을 나르고 하기란, 고향에서 농사일에 뼈가 굳어진 몸에도 이만저만한 고역이 아니었다. 물도 입에 맞지 않았고, 음식도 이내 변하곤 해서 도저히 견디어 낼 것 같지가 않았다. 게다가 병까지 돌았다. 일을 하다가도 벌떡 자빠지기가 예사였다. 그러나 만도는 아침저녁으로 약간씩 설사를 했을 뿐, 넘어지지는 않았다. 물도 차츰 입에 맞아갔고, 고된 일도 날이 감에 따라 몸에 배어드는 것이었다. 밤에 날개를 차며 몰려드는 모기 떼만 아니면 그냥저냥 배겨내겠는데, 정말 그놈의 모기들만은 질색이었다.
사람의 일이란 무서운 것이었다. 그처럼 험난하던 산과 산 틈바구니에 비행장을 다듬어 내고야 말았던 것이다. 허나 일은 그것으로는 끝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더 벅찬 일이 닥치는 것이었다. 연합군의 비행기가 날아들면서부터 일은 밤중까지 계속되었다. 산허리에 굴을 파들어 가는 것이었다. 비행기를 집어넣을 굴이었다. 그리고 모든 시설을 다 굴속으로 옮겨야 하는 것이었다. 여기저기 다이너마이트 튀는 소리가 산을 흔들어댔다. 앵앵앵 하고 공습경보가 나면 일을 하던 손을 놓고 모두가 굴 바닥에 납작납작 엎드려 있어야 했다. 비행기가 돌아갈 때까지 그러고 있는 것이었다. 어떤 때는 근 한 시간 가까이나 엎드려 있어야 하는 때도 있었는데 차라리 그것이 얼마나 편한지 몰랐다. 그래서 더러는 공습이 있기를 은근히 기다리기도 했다. 때로는 공습경보의 사이렌을 듣지 못하고 그냥 일을 계속하는 수도 있었다. 그럴 때는 모두 큰 손해를 보았다고 야단들이었다. 어떻게 된 셈인지 사이렌이 미처 불기 전에 비행기가 산등성이를 넘어 달려드는 수도 있었다. 그럴 때는 정말 질겁을 하는 것이었다. 가장 많은 손해를 입는 것도 그런 경우였다. 만도가 한쪽 팔뚝을 잃어버린 것도 바로 그런 때의 일이었다.
여느 날과 다름없이 굴속에서 바위를 허물어 내고 있었다. 바위 틈서리에 구멍을 뚫어서 다이너마이트를 장치하는 하는 것이었다. 장치가 다 되면 모두 바깥으로 나가고, 한 사람만 남아서 불을 당기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터지기 전에 얼른 밖으로 뛰어나와야 되었다. 만도가 불을 당기는 차례였다. 모두 바깥으로 나가 버린 다음 그는 성냥을 꺼냈다. 그런데 웬 영문인지 기분이 께름직했다. 모기에게 물린 자리가 자꾸 쑥쑥 쑤시는 것이다. 걱즉걱즉 긁어댔으나 도무지 시원한 맛이 없었다. 그는 이맛살을 찌푸리면서 성냥을 득 그었다. 그래 그런지 몰라도, 불은 이내 픽 하고 꺼져 버렸다. 성냥 알맹이 네 개째에서 겨우 심지에 불이 당겨졌다. 심지에 불이 붙는 것을 보자 그는 얼른 몸을 굴 밖으로 날렸다. 바깥으로 막 나서려는 때였다. 산이 무너지는 소리와 함께 사나운 바람이 귓전을 후려갈기는 것이었다. 만도는 정신이 아찔했다. 공습이었던 것이다. 산등성이를 넘어 달려든 비행기가 머리 위로 아슬아슬하게 지나가는 것이었다. 미처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또 한 대가 뒤따라 날라드는 것이 아닌가. 만도는 그만 넋을 잃고 굴 안으로 도로 달려들었다. 달려 들어가서 굴 바닥에 아무렇게나 팍 엎드러져 버리고 말았다. 고 순간이었다. 꽝! 굴 안이 미어지는 듯 하면서 다이너마이트가 터졌다. 만도의 두 눈에서 불이 번쩍 났다. 만도가 어렴풋이 눈을 떠 보니, 바로 거기 눈앞에 누구의 것인지 모를 팔뚝이 하나 놓여있었다. 손가락이 시퍼렇게 굳어져서, 마치 이끼 낀 나무토막처럼 보이는 것이었다. 만도는 그것이 자기의 어깨에 붙어 있던 것인 줄을 알자, 그만 으아! 하고 정신을 잃어버렸다. 재차 눈을 땠을 때는 그는 폭삭한 담요 속에 누워 있었고, 한쪽 어깻죽지가 못 견디게 쿡쿡 쑤셔댔다. 절단 수술(切斷手術)은 이미 끝난 뒤였다.
꽤액 --- 기차 소리였다. 멀리 산모퉁이를 돌아오는가 보았다. 만도는 앉았던 자리를 털고 벌떡 일어서며, 옆에 놓아두었던 고등어를 집어 들었다. 기적 소리가 가까워질수록 그의 가슴은 울렁거렸다. 대합실 밖으로 뛰어나가 홈이 잘 보이는 울타리 쪽으로 가서 발돋움을 하였다. 째랑째랑 하고 종이 울자, 한참 만에 차는 소리를 지르면서 달려들었다. 기관차의 옆구리에서는 김이 픽픽 풍겨 나왔다. 만도의 얼굴은 바짝 긴장되었다. 시꺼먼 열차 속에서 꾸역꾸역 사람들이 밀려 나왔다. 꽤 많은 손님이 쏟아져 내리는 것이었다. 만도의 두 눈은 곧장 이리저리 굴렀다. 그러나 아들의 모습은 쉽사리 눈에 띠지 않았다. 저 쪽 출찰구로 밀려가는 사람의 물결 속에, 두 개의 지팡이를 의지하고 절룩거리며 걸어 나가는 상이군인이 있었으나, 만도는 그 사람에게 주의를 기울이지는 않았다. 기차에서 내릴 사람은 모두 내렸는가 보다. 이제 미처 차에 오르지 못한 사람들이 플랫폼을 이리저리 서성거리고 있을 뿐인 것이다. 그 놈이 거짓으로 편지를 띄웠을 리는 없을 건데……. 만도는 자꾸 가슴이 떨렸다. 이상한 일이다, 하고 있을 때였다. 분명히 뒤에서. "아부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만도는 깜짝 놀라며, 얼른 뒤를 돌아보았다. 그 순간, 만도의 두 눈은 무섭도록 크게 떠지고 입은 딱 벌어졌다. 틀림없는 아들이었으나, 옛날과 같은 진수는 아니었다. 양쪽 겨드랑이에 지팡이를 끼고 서 있는데, 스쳐가는 바람결에 한쪽 바짓가랑이가 펄럭거리는 것이 아닌가. 만도는 눈앞이 노오래지는 것을 어쩌지 못했다. 한참 동안 그저 멍멍하기만 하다가, 코허리가 찡해지면서 두 눈에 뜨거운 것이 핑 도는 것이었다. "에라이 이놈아!" 만도의 입술에서 모지게 튀어나온 첫마디였다. 떨리는 목소리였다. 고등어를 든 손이 불끈 주먹을 쥐고 있었다. "이기 무슨 꼴이고, 이기." "아부지!“ "이놈아, 이놈아……" 만도의 들창코가 크게 벌름거리다가 훌쩍 물코를 들이마셨다. 진수의 두 눈에서는 어느 결에 눈물이 꾀죄죄하게 흘러내리고 있었다. 만도는 모든 게 진수의 잘못이기나 한 듯 험한 얼굴로, "가자, 어서!" 무뚝뚝한 한 마디를 내던지고는 성큼성큼 앞장을 서 가는 것이었다. 진수는 입술에 내려와 묻는 짭짤한 것을 혀끝으로 날름 핥아 버리면서, 절름절름 아버지의 뒤를 따랐다. 앞장 서 가는 만도는 뒤따라오는 진수를 한 번도 돌아보지 않았다. 한눈을 파는 법도 없었다. 무겁디무거운 짐을 진 사람처럼 땅바닥만을 내려다보며, 이따금 끙끙거리면서 부지런히 걸어만 가는 것이다. 지팡이에 몸을 의지하고 걷는 진수가 성한 사람의, 게다가 부지런히 걷는 걸음을 당해 낼 수는 도저히 없었다. 한 걸음 두 걸음씩 뒤지기 시작한 것이, 그만 작은 소리로 불러서는 들리지 않을 만큼 떨어져 버리고 말았다. 진수는 목구멍을 왈칵 넘어오려는 뜨거운 기운을 꾹 참노라고 어금니를 야물게 깨물어 보기도 하였다. 그리고 두 개의 지팡이와 한 개의 다리를 열심히 움직여대는 것이었다. 앞서 간 만도는 주막집 앞에 이르자, 비로소 한 번 뒤를 돌아보았다. 진수는 오다가 나무 밑에 서서 오줌을 누고 있었다. 지팡이는 땅바닥에 던져 놓고, 한쪽 손으로는 볼일을 보고, 한쪽 손으로는 나무 둥치를 감싸 안고 있는 모양이 을씨년스럽기 이를 데 없는 꼬락서니였다. 만도는 눈살을 찌푸리며, 으음! 하고 신음 소리 비슷한 무거운 소리를 내었다. 그리고 술 방 앞으로 가서 방문을 왈칵 잡아당겼다. 기역자판 안에 도사리고 앉아서 속옷을 뒤집어 까고 이를 잡고 있던 여편네가 킥하고 웃으며 후닥딱 옷섶을 여몄다. 그러나 만도는 웃지를 않았다. 방 문턱을 넘어서며도 서방님 들어가신다는 소리를 지르지 않았다. 아마 이처럼 무뚝한 얼굴을 하고 이 술 방에 들어서기란 처음일 것이다. 여편네가 멋도 모르고, "오늘은 서방님 아닌가배." 하고 킬킬 웃었으나, 만도는 으음! 또 무거운 신음 소리를 했을 뿐 도시 기분을 내지 않았다. 기역자판 앞에 가서 쭈그리고 앉기가 바쁘게, "빨리 빨리." 재촉을 하였다. "핫다, 어지간히도 바쁜가배. "빨리 꼬빼기로 한 사발 달라니까구마." "오늘은 와 이카노?" 여편네가 쳐주는 술 사발을 받아 들며, 만도는 휴유 --- 하고 숨을 크게 내쉬었다. 그리고 입을 얼른 사발로 가져갔다. 꿀꿀꿀, 잘도 넘어가는 것이다. 그 큰 사발을 단숨에 말려 버리고는, 도로 여편네 눈 앞으로 불쑥 내밀었다. 그렇게 거들빼기로 석 잔을 해치우고사 으으윽! 하고 개 트림을 하였다. 여편네가 눈을 휘둥굴해 가지고 혀를 내둘렀다. 빈속에 술을 그처럼 때려 마시고 보니, 금 새 눈두덩이 확확 달아오르고, 귀뿌리가 발갛게 익어 갔다. 술기가 얼큰하게 돌자, 이제 좀 속이 풀리는 성 싶어 방문을 열고 바깥을 내다보았다. 진수는 이마에 땀을 척척 흘리면서 다 와 가고 있었다. "진수야!"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리 들어와 보래. "…………." 진수는 아무런 대꾸도 없이 어기적어기적 다가왔다. 다가와서 방문턱에 걸터앉으니까, 여편네가 보고, "방으로 좀 들어 오이소." 하였다. "여기 좋심더." 그는 수세미 같은 손수건으로 이마와 코 언저리를 싹싹 닦아냈다. "마 아무데서나 묵어라. 저 --- 국수 한 그릇 말아 주소. "야." "꼬빼기로 잘 좀 ……. 참지름도 치소, 알았능교?" "야아." 여편네는 코로 히죽 웃으면서 만도의 옆구리를 살짝 꼬집고는, 소쿠리에서 삶은 국수 두 뭉텅이를 집어 들었다. 진수가 국수를 훌훌 끌어넣고 있을 때, 여편네는 만도의 귓전으로 얼굴을 갖다 댔다. "아들이가?" 만도는 고개를 약간 앞뒤로 끄덕거렸을 뿐, 좋은 기색을 하지 않았다. 진수가 국물을 훌쩍 들어 마시고 나자, 만도는, "한 그릇 더 묵을래?" 하였다. "아니 예." "한 그릇 더 묵지 와." "고만 묵을랍니더." 진수는 입술을 싹 닦으며 뿌시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막을 나선 그들 부자는 논두렁길로 접어들었다. 아까와 같이 만도가 앞장을 서는 것이 아니라, 이번에는 진수를 앞세웠다. 지팡이를 짚고 찌긋둥찌긋둥 앞서 가는 아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팔뚝이 하나밖에 없는 아버지가 느럿느럿 따라가는 것이다. 손에 매달린 고등어가 대구 달랑달랑 춤을 추었다. 너무 급하게 들어마셔서 그런지, 만도의 뱃속에서는 우글우글 술이 끓고, 다리가 휘청거렸다. 콧구멍으로 더운 숨을 훅훅 내불어 보니 정신이 아른해서 역시 좋았다. "진수야!" "예." "니 우째다가 그래 됐노?" "전쟁하다가 이래 안 됐심니꼬. 수류탄 쪼가리에 맞았심더." "수류탄 쪼가리에?" "예." "음." "얼른 낫지 않고 막 썩어 들어가기 땜에 군의관이 짤라 버립디더. 병원에서예. 아부지!" "와?" "이래 가지고 우째 살까 싶습니더." "우째 살긴 뭘 우째 살아? 목숨만 붙어 있으면 다 사는 기다. 그런 소리 하지 말아." "……" "나 봐라. 팔뚝이 하나 없어도 잘만 안 사나. 남 봄에 좀 덜 좋아서 그렇지, 살기사 왜 못 살아." "차라리 아부지같이 팔이 하나 없는 편이 낫겠어예. 다리가 없어놓니, 첫째 걸어댕기기에 불편해서 똑 죽겠심더." "야야. 안 그렇다. 걸어댕기기만 하면 뭐하노, 손을 지대로 놀려야 일이 뜻대로 되지." "그러까예?" "그렇다니, 그러니까 집에 앉아서 할 일은 니가 하고, 나댕기메 할 일은 내가 하고, 그라면 안 대겠나, 그제?" "예" 진수는 아버지를 돌아보며 대답했다. 만도는 돌아보는 아들의 얼굴을 향해 지긋이 웃어주었다. 술을 마시고 나면 이내 오줌이 마려워지는 것이다. 만도는 길가에 아무데나 쭈그리고 앉아서 고기 묶음을 입에 물려고 하였다. 그것을 본 진수는, "아부지, 그 고등어 이리 주소,"하였다. 팔이 하나밖에 없는 몸으로 물건을 손에 든 채 소변을 볼 수는 없는 것이다. 아버지가 볼일을 마칠 때까지, 진수는 저만큼 떨어져 서서 지팡이를 한쪽 손에 모아 쥐고, 다른 손으로 고등어를 들고 있었다. 볼일을 다 본 만도는 얼른 가서 아들의 손에서 고등어를 다시 받아 든다. 개천 둑에 이르렀다. 외나무다리가 놓여 있는 그 시냇물이다. 진수는 슬그머니 걱정이 되었다. 물은 그렇게 깊은 것 같지 않지만, 밑바닥이 모래흙이어서 지팡이를 짚고 건너가기가 만만할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외나무다리는 도저히 건너갈 재주가 없고……. 진수는 하는 수 없이 둑에 퍼지고 앉아서 바짓가랑이를 걷어 올리기 시작했다. 만도는 잠시 멀뚱히 서서 아들의 하는 양을 내려다보고 있다가, "진수야, 그만두고, 자아 업자."하는 것이었다. "업고 건너면 일이 다 되는 거 아니가. 자아, 이거 받아라." 고등어 묶음을 진수 앞으로 민다. "……." 진수는 퍽 난처해하면서, 못 이기는 듯이 그것을 받아 들었다. 만도는 등허리를 아들 앞에 갖다 대고, 하나밖에 없는 팔을 뒤로 버쩍 내밀며, "자아, 어서!" 진수는 지팡이와 고등어를 각각 한 손에 쥐고, 아버지의 등허리로 가서 슬그머니 업혔다. 만도는 팔뚝을 뒤로 돌리면서, 아들의 하나뿐인 다리를 꼭 안았다. 그리고 "팔로 내 목을 감아야 될 끼다."했다.
진수는 무척 황송한 듯 한쪽 눈을 찍 감으면서, 고등어와 지팡이를 든 두 팔로 아버지의 굵은 목줄기를 부둥켜안았다. 만도는 아랫배에 힘을 주며, '끙!' 하고 일어났다. 아랫도리가 약간 후들거렸으나 걸어갈 만은 했다. 외나무다리 위로 조심조심 발을 내디디며 만도는 속으로, 이제 새파랗게 젊은 놈이 벌써 이게 무슨 꼴이고. 세상들 잘못 만나서 진수 니 신세도 참 똥이다, 똥. 이런 소리를 주워섬겼고, 아버지의 등에 업힌 진수는 곧장 미안스러운 얼굴을 하며, '나꺼정 이렇게 되다니, 아부지도 참 복도 더럽게 없지, 차라리 내가 죽어 버렸더라면 나았을 낀데…….'하고 중얼거렸다. 만도는 아직 술기가 약간 있었으나, 용케 몸을 가누며 아들을 업고 외나무다리를 조심조심 건너가는 것이었다. 눈앞에 우뚝 솟은 용머리재가 이 광경을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보통 때는 밤12시쯤이 되어도 거리가 번잡한데 이날만큼은 밤이 깊어질수록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의 발걸음도 빨라지고 10시가 넘자 북해정의 손님도 뜸해졌다.
사람은 좋지만 무뚝뚝한 주인보다 오히려 단골손님으로 부터 주인아줌마라고 불리우고 있는 그의 아내는 분주했던 하루의 답례로 임시 종업원에게 특별 상여금 주머니와 선물로 국수를 들려서 막 돌려보낸 참이었다.
마지막 손님이 가게를 막 나갔을 때, 슬슬 문 앞의 옥호(屋號) 막을 거둘까 하고 있던 참에, 출입문이 드르륵, 하고 힘없이 열리더니 두명의 아이를 데리고 한 여자가 들어왔다. 6세와 10세 정도의 사내애들은 새로 준비한 듯한 트레이닝 차림이고, 여자는 계절이 지난 체크무늬 반코트를 입고 있었다.
"어서 오세요!"라고 맞이하는 여주인에게, 그 여자는 머뭇머뭇 말했다.
"저 우동 일인분만 주문해도 괜찮을까요?" 뒤에서는 두 아이들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쳐다보고 있었다.
"예 !" 하고 대답하고, 삶지 않은 1인분의 우동 한 덩어리와 거기에 반 덩어리를 더 넣어 삶는다. 둥근 우동 한 덩어리가 일 인분의 양이다. 손님과 아내에게 눈치 채이지 않은 주인의 서비스로 수북한 분량의 우동이 삶아진다. 이윽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먹음직스러운 우동 그릇이 테이블에 나왔다. 우동 그릇을 가운데 두고, 이마를 맞대고 먹고 있는 세 사람의 이야기 소리가 카운터 있는 곳까지 희미하게 들린다.
"맛있네요."라는 형의 목소리.
"엄마도 잡수세요."하며 한 가닥의 국수를 집어 어머니의 입으로 가져가는 동생.
이윽고 다 먹자 150엔의 값을 지불하며,
"맛있게 먹었습니다." 라고 머리를 숙이고 나가는 세 모자에게,
"고맙습니다. 새해엔 복 많이 받으세요!" 라고 주인 내외는 목청을 돋워 인사했다.
신년을 맞이했던 북해정은 변함없이 바쁜 나날 속에 서 한해를 보내고, 다시 12월 31일을 맞이했다.
지난해 이상으로 몹시 바쁜 하루를 끝내고, 10 시를 막 넘긴 참이어서 가게를 닫으려고 할 때 드르륵, 하고 문이 열리더니 두 사람의 남자아이를 데리고 한 여자가 들어왔다.
여주인은 그 여자가 입고 있는 체크 무늬의 반코트를 보고, 일년 전 섣달 그믐날의 마지막 그 손님들임을 알아보았다.
"저 우동 일인분입니다만 괜찮을까요?"
"물론입니다. 어서 이쪽으로 오세요." 여주인은 작년과 같은 2번 테이블로 안내하면서,
"우동 일 인분!" 하고 커다랗게 소리 친다.
"네엣! 우동 일 인분!" 라고 주인은 대답하면서 막 꺼버린 화덕에 불을 붙인다.
"저 여보, 서비스로 3인분 내줍시다." 조용히 귀엣말을 하는 여주인에게,
"안돼요. 그런 일을 하면 도리어 거북하게 여길 거요." 라고 말하면서 남편은 둥근 우동 하나 반을 삶는다.
"여보, 무뚝뚝한 얼굴을 하고 있어도 좋은 구석이 있구료."
미소를 머금는 아내에 대해, 변함없이 입을 다물고 삶아진 우동을 그릇에 담는 주인이다.
테이블 위의 한 그릇의 우동을 둘러싼 세 모자의 얘기 소리가 카운터 안과 바깥의 두 사람에게 들려온다.
"음... 맛있어요" "올해도 북해정의 우동을 먹게 되네요?“
"내년에도 먹을 수 있었으면 좋으련만... "다 먹고 나서, 150엔을 지불하고 나가는 세 사람의 뒷모습에 주인 내외는. "고맙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그날 수십 번 되풀이했던 인사말로 전송한다.
그 다음 해의 섣달 그믐날 밤은 여느 해보다 더욱 장사가 번성하는 중에 맞게 되었다. 북해정의 주인과 여주인은 누가 먼저 입을 열지는 않았지만 9시 반이 지날 무렵부터 안절부절 어쩔 줄을 모른다.
10시를 넘긴 참이어서 종업원을 귀가시킨 주인은, 벽에 붙어 있는 메뉴 표를 차례차례 뒤집었다.
금년 여름에 값을 올려 '우동 200엔'이라고 씌어져 있던 메뉴표가 150엔으로 둔갑하고 있었다.
2번 테이블 위에는 이미 30분 전부터 <예약석>이란 팻말이 놓여져 있다. 10시 반이 되어, 가게 안 손님의 발길이 끊어지는 것을 기다리고 있었기나 한 것처럼, 모자 세 사람이 들어왔다. 형은 중학생 교복, 동생은 작년에 형이 입고 있던 점퍼를 헐렁하게 입고 있었다. 두 사람 다 몰라볼 정도로 성장해 있었는데, 그 아이들의 엄마는 여전히 색이 바랜 체크 무늬 반코트 차림 그대로였다.
"어서 오세요!" 라고 웃는 얼굴로 맞이하는 여주인에게, 엄마는 조심조심 말한다.
"저. 우동 이 인분인데도 괜찮겠죠?" "네 어서요. 자 이쪽으로."
라며 2번 테이블로 안내하면서, 여주인은 거기 있던 <예약석>이란 팻말을 슬그머니 감추고 카운터를 향해서 소리친다.
"우동 이 인분!" 그걸 받아,
"우동 이 인분!" 이라고 답한 주인은 둥근 우동 세 덩어리를 뜨거운 국물 속에 집어넣었다.
두 그릇의 우동을 함께 먹는 세 모자의 밝은 목소리가 들리고, 이야기도 활기가 있음이 느껴졌다.
카운터 안에서, 무심코 눈과 눈을 마주치며 미소짓는 여주인과 예의 무뚝뚝한 채로 응 응, 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주인이다.
"형아야, 그리고 쥰아. 오늘은 너희 둘에게 엄마가 고맙다고 인사하고 싶구나."
"고맙다니요 무슨 말씀이세요?"
"실은, 돌아가신 아빠가 일으켰던 사고로, 여덟 명이나 되는 사람이 부상을 입었잖니. 보험으로도 지불할 수 없었던 만큼을, 매월 5만엔씩 계속 지급하고 있었단다."
"음 알고 있어요." 라고 형이 대답한다.
여주인과 주인은 몸도 꼼짝 않고 가만히 듣고 있다.
"지불 약속은 내년 3월까지로 되어 있었지만, 실은 오늘 전부 지불을 끝낼 수 있었단다."
"넷! 정말이에요? 엄마!"
"그래, 정말이지. 형아는 신문 배달을 열심히 해주었고, 쥰이 장보기와 저녁 준비를 매일 해준 덕분에, 엄마는 안심하고 일할 수 있었던 거란다. 그래서 정말 열심히 일을 한 덕택에 회사로부터 특별 수당을 받았단다. 그것으로 지불을 모두 끝마칠 수 있었던 거야."
"엄마! 형! 잘됐어요! 하지만, 앞으로도 저녁 식사 준비는 내가 할 거예요."
"나도 신문 배달, 계속할래요. 쥰이하고 나, 엄마한테 숨기고 있는 것이 있어요. 그것은요 11월 첫쩨 일요일, 학교로부터 쥰이의 수업 참관을 하라는 편지가 왔었어요. 그때 쥰은 이미 선생님으로부터 편지를 받아 놓고 있었지만요. 쥰이 쓴 작문이 북해도의 대표로 뽑혀, 전국 콩쿠르에 출품하게 되어서 수업 참관일 에 이 작문을 쥰이 낭독하게 되었대요. 선생님이 주신 편지를 엄마에게 보여드리면 무리를 해서라도 회사를 쉬실 걸 알기 때문에 쥰이 그걸 감췄어요. 그걸 쥰의 친구들한테 듣고 내가 참관 일에 갔었어요."
"그래 그랬었구나 그래서?"
"선생님께서, 너는 장래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라는 제목으로, 전원에게 작문을 쓰게 하셨는데, 쥰은 <우동 한그릇>이라는 제목으로 써서 냈대요. 지금부터 그 작문을 읽어 드릴께요.“
<우동 한그릇>이라는 제목만 듣고, 북해정에서의 일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에 사실은 쥰 녀석 무슨 그런 부끄러운 얘기를 썼지! 하고 속으로 생각했었죠. 작문은 아빠가 교통 사고로 돌아가셔서 많은 빚을 남겼다는 것, 엄마가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일을 하고 계시다는 것, 내가 조간 석간 신문을 배달하고 있다는 것 등 전부 씌어 있었어요. 그리고서 12월 31일 밤 셋이서 먹은 한 그릇의 우동이 그렇게 맛있었다는 것 셋이서 다만 한 그릇밖에 시키지 않았는데도 우동집 아저씨와 아줌마는, 고맙습니다! 새해엔 복 많이 받으세요! 라고 큰 소리로 말해 주신 일.
그 목소리는 지지 말아라! 힘내! 살아갈 수 있어! 라고 말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고요.
그래서 쥰은, 어른이 되면, 손님에게 '힘내라!' '행복해라!' 라는 속마음을 감추고, '고맙습니다!' 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 제일의 우동집 주인이 되는 것이라고, 커다란 목소리로 읽었어요."
카운터 안쪽에서, 귀를 기울이고 있을 주인과 여주인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카운터 깊숙이에 웅크린 두 사람은, 한 장의 수건 끝을 서로 잡아당길 듯이 붙잡고, 참을 수 없이 흘러나오는 눈물을 닦고 있었다.
"작문 읽기를 끝마쳤을 때 선생님이, 쥰의 형이 어머니를 대신해서 와주었으니까, 여기에서 인사를 해달라고 해서..."
"그래서 형아는 어떻게 했지?"
"갑자기 요청받았기 때문에, 처음에는 말이 안 나왔지만 여러분, 항상 쥰과 사이좋게 지내줘서 고맙습니다. 동생은 매일 저녁 여러분에게 폐를 끼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방금 동생이 <우동 한 그릇>이라고 읽기 시작했을 때 나는 처음엔 부끄럽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가슴을 펴고 커다란 목소리로 읽고 있는 동생을 보고 있는 사이에, 한 그릇의 우동을 부끄럽다고 생각하는 그 마음이 더 부끄러운 것이라고 깨달았습니다.
그때 한 그릇의 우동을 시켜주신 어머니의 용기를 잊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형제가 힘을 합쳐, 어머니를 보살펴 드리겠습니다. 앞으로도 쥰과 사이좋게 지내 주세요, 라고 말했어요."
차분하게 서로 손을 잡기도 하고, 웃다가 넘어질 듯 이 어깨를 두드리기도 하고, 작년까지와는
달라진 즐거운 그믐날 밤의 광경이었다.
우동을 다 먹고 300엔을 내며 '잘 먹었습니다.' 라고 깊이깊이 머리를 숙이며 나가는 세 사람을, 주인과 여주인은 일 년을 마무리하는 커다란 목소리로, '고맙습니다! 새해엔 복 많이 받으세요!'라며 전송했다.
다시 일년이 지났다. 북해정에서는, 밤 9시가 지나서부터 <예약석>이란 팻말을 2번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기다리고 기다렸지만, 그 세모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다음 해에도, 또 다음 해에도, 2번 테이블을 비우고 기다렸지만, 세 사람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북해정은 장사가 번성하여, 가게 내부 수리를 하게 되자, 테이블이랑 의자도 새로 바꾸었지만 그 2번 테이블만은 그대로 남겨 두었다. 새 테이블이 나란히 있는 가운데에서, 단 하나 낡은 테이블이 중앙에 놓여 있는 것이다.
'어째서, 이것이 여기에?' 하고 의아스러워 하는 손님에게, 주인과 여주인은 <우동 한 그릇>의 일을 이야기하고, 이 테이블을 보고서 자신들의 자극제로 하고 있다, 어느 날인가 그 세 사람의 손님이 와줄지도 모른다. 그때 이 테이블로 맞이하고 싶다. 라고 설명하곤 했다.
그 이야기는, '행복의 테이블'로써, 이 손님에게서 저 손님에게로 전해졌다. 일부러 멀리에서 찾아와 우동을 먹고 가는 여학생이 있는가 하면, 그 테이블이 빌 때까지 기다렸다가 주문을 하는 젊은 커플도 있어 상당한 인기를 불러일으켰다.
그러고 나서 또, 수년의 세월이 흐른 어느 해 섣달 그믐의 일이다.
북해정에는, 같은 거리의 상점회 회원이며 가족처럼 사귀고 있는 이웃들이 각자의 가게를 닫고 모여들고 있었다.
북해정에서 섣달 그믐의 풍습인 해 넘기기 우동을 먹은 후, 제야의 종소리를 들으면서 동료들과 그 가족이 모여 가까운 신사(神社)에 그해의 첫 참배를 가는 것이 5,6년 전부터의 관례가 되어 있었다.
그날 밤도 9시 반이 지나 생선가게 부부가 생선회를 가득 담은 큰 접시를 양손에 들고 들어온 것이 신호라도 되는 것처럼, 평상시의 동료 30여명이 술이랑 안주를 손에 들고 차례차례 모여들어 가게 안의 분위기는 들떠 있었다. 2번 테이블의 유래를 그들도 알고 있다. 입으로 말은 안 해도 아마, 금년에도 빈 채로 신년을 맞이 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섣달 그믐날 10시 예약석'은 비워둔 채 비좁은 자리에 전원이 조금씩 몸을 좁혀 앉아 늦게 오는 동료를 맞이했다. 우동을 먹는 사람, 술을 마시는 사람, 서로 가져 온 요리에 손을 뻗히는 사람, 카운터 안에 들어가 돕고 있는 사람, 멋대로 냉장고를 열고 뭔가 꺼내고 있는 사람 등등으로 떠들썩했다.
바겐 세일 이야기, 해수욕장에서의 에피소드, 손자가 태어난 이야기 등, 번잡함이 절정에 달한
10시 반이 지났을 때, 입구의 문이 드르륵, 하고 열렸다. 몇 사람인가의 시선이 입구로 향하며 동시에 그들은 이야기를 멈추었다.
오버코트를 손에 든 정장 슈트 차림의 두 청년이 들어왔다. 다시 얘기가 이어지고 시끄러워졌다. 여주인이 죄송하다는 듯한 얼굴로 '공교롭게 만원이어서'라며 거절하려고 했을 때 화복(일본옷) 차림의 부인이 깊이 머리를 숙이며 들어와서, 두 청년 사이에 섰다.
가게 안에 있는 모두가 침을 삼키며 귀를 기울인다. 화복을 입은 부인이 조용히 말했다.
"저.... 우동..3 인분입니다만.... 괜찮겠죠?" 그 말을 들은 여주인의 얼굴이 변했다. 십수 년의 세월을 순식간에 밀어젖히고, 그날의 젊은 엄마와 어린 두 아들의 모습이 눈앞의 세 사람과 겹쳐진다.
카운터 안에서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고 있는 주인과 방금 들어온 세 사람을 번갈아 가리키면서,
"저.... 저.... 여보 !" 하고 당황해 하고 있는 여주인에게 청년 중 하나가 말했다.
"우리는, 14년전 섣달 그믐날 밤, 모자 셋이서 일인분의 우동을 주문했던 사람입니다. 그때의 한 그릇의 우동에 용기를 얻어 세 삶이 손을 맞잡고 열심히 살아갈 수가 있었습니다.
그 후, 우리는 외가가 있는 시가현으로 이사했읍니다. 저는 금년, 의사 국가시험에 합격하여 교오또(京都)의 대학병원에서 소아과의 병아리 의사로 근무하고 있습니다만, 내년 4월부터 삿뽀로의 종합병원에서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그 병원에 인사도 하고 아버님 묘에도 들를 겸해서 왔습니다. 그리고 우동집 주인은 되지 않았습니다만 교오또의 은행에 다니는 동생과 상의해서, 지금까지 인생 가운데에서 최고의 사치스러운 것을 계획했습니다.
그것은, 섣달 그믐날 어머님과 셋이서 삿뽀로의 북해정을 찾아와 3인분의 우동을 시키는 것이었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면서 듣고 있던 여주인과 주인의 눈에서 왈칵 눈물이 넘쳐흘렀다.
입구에서 가까운 테이블에 진을 치고 있던 야채 가게 주인이, 우동을 입에 머금은 채 있다가 그대로 꿀꺽하고 삼키며 일어나,
"여봐요 여주인 아줌마 ! 뭐하고 있어요 ! 십년간 이날을 위해 준비해 놓고 기다리고 기다린, 섣달 그믐날 10시 예약석이잖아요, 어서 안내해요. 안내를 !"
지난해 12월 교육부가 확정 발표한 2028 대학입시제도 개편안에는 고교 내신체제 개편에 관한 내용이 담겨 있다. 지식암기 위주의 5지선다형 평가를 지양하는 대신 사고력·문제해결력을 평가할 수 있는 서·논술형 평가를 확대해 나가겠다는 것이 그 골자다. 앞으로 단순 개념암기 방식만으로는 학교 시험에 필요한 경쟁력을 갖추기 어려워지므로 서·논술형 평가가 요구하는 능력을 키우는 게 중요하다. 그런데 서·논술형 평가 준비는 단기간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므로 그 의미와 방법을 정확히 알고 미리 준비할 필요가 있다.학교 시험은 크게 선택형 문항과 서답형 문항으로 나뉜다. 선택형 문항은 흔히 객관식으로 불리는 5지선다형이다. 서답형 문항은 학생이 직접 그 답안을 글로 작성하는 유형으로서 크게 서술형 문항과 논술형 문항으로 구분된다.논술형 문항은 서술형 문항에 비해 한 차원 높은 수준의 글쓰기를 요구한다. 별도로 정해진 답안의 양식은 없으나 최소 한 문단 이상의 길이로 논리적 완결성을 갖춘 답안을 작성해야 한다. 이때 서론-본론-결론이나 도입-전개-결말, 상황-문제제시-대안1-대안2-기대효과 등의 구성 단계는 글의 갈래에 따라 자유롭게 정하되 탄탄한 짜임새를 갖추어야만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
서술형 문항은 개념이나 원리를 얼마나 이해했는가를 평가하는 데에 필요하다. 답안의 길이는 한 문장 이상으로 논술형 문항에 비해 짧은데, 서술 요소나 방식에는 조건이 붙는다. 즉 긴 분량의 글보다는 요구 내용이 모두 담긴 정확도 높은 답안을 작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 서·논술형 문항의 의미와 차이점
이상준 ‘책읽기와 글쓰기 리딩엠’ 직영교육센터 총괄원장.
◇ 서·논술형 평가에 대비하는 방법두 번째 방법은 원론적인 이야기지만 꾸준한 독서다. 서·논술형 문항에서 제시하는 자료를 읽고 주어진 시간 내에 발문의 의미를 정확히 해석하려면 높은 수준의 문해력이 있어야 한다. 따라서 초등 때부터 하루에 삼십 분이라도 책 읽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필요하다. 시간이 남을 때나 할 일이 없을 때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독서를 하루의 가장 중요한 일과로 잡고 문학과 비문학, 신문 등을 오가며 다양한 글을 읽고 이해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
세 번째 방법은 발표와 토론이다. 발표나 토론 수업 중 학생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정리하는 데에 공을 들인다. 친구들에게 소리 내어 말할 시간이 예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때 학생들이 보여 주는 집중력은 글쓰기 수업 중 고쳐쓰기를 수행할 때와는 또 다르다. 실제로 발표나 토론 수업을 진행하다 보면 자신이 정리한 글을 말로 옮길 때 주춤하는 학생들이 많다. 자신의 글에서 미처 포착하지 못했던 허점을 뒤늦게 발견한 탓이다. 이처럼 발표와 토론은 문장이나 문단을 견고히 설계하는 논리력을 키우는 데에 특효다.
서·논술형 평가에 대비하는 첫 번째 방법은 서·논술형 글쓰기를 많이 연습하는 것이다. 이때 질문의 내용인 ‘발문’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필자가 서·논술형 글쓰기 수업을 진행하다 보면 열심히는 쓰고 있으나 질문에 맞지 않는 답안을 작성하는 학생들을 흔히 발견한다. 그런 경우에는 출발선으로 돌아와서 발문의 의미를 정확히 짚은 후 다시 글쓰기를 시작해야 한다. 특히 논술형 문항에서는 글감을 생성하고 짜임새 있게 조직하여 통일성 있는 답안을 완성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글감 생성 및 조직의 단계를 거치지 않고 바로 답안 작성에 돌입하면 완성도 높은 짜임새의 답안은 기대하기 어렵다.
◇ 서·논술형 평가 대비는 초등 때부터이처럼 서·논술형 평가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려면 다양한 능력이 요구된다. 질문을 정확히 이해하는 문해력과 글감 생성에 활용되는 풍부한 배경지식, 글감을 조직하고 표현하는 논리력 등 말이다. 따라서 서·논술형 평가 대비는 초등 때부터 시작해야 한다. 책 읽기와 글쓰기는 결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비단 국어나 사회 교과에 한정된 이야기가 아니다. 과학이나 수학 교과에서도 서·논술형 문항이 출제될 수 있다. 특히 수학 교과에 있어 서·논술형 평가는 풀이 과정의 요소별, 단계별로 채점이 이루어지게 된다. 따라서 문제 풀이의 과정을 단계별로 나눈 뒤 글로 자세히 옮기는 연습, 문제를 해결하는 여러 방법을 각각 구분하여 논리적으로 서술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수학 문제는 잘 풀 수 있으나 정작 그 과정을 글로 옮기지 못한다면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