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요, 저요!”
지난 20일 오전, 경남 창원 전안초 3학년 4반 학생들의 손이 바쁘게 움직였다. 담임 차승민 교사는 “잠깐만”, “기다려봐” 하며 아이들을 달래기 바빴다.
영상 매체 익숙한 아이들 향해
수업시간 활용해 영화 보여주며
다양한 질문 던져보는 교사들
마음속 이야기 펼쳐놓게 하고
교과공부 도움 주는 학습도구
교실속 실제 사례 영화로 만들며
‘상징’ 개념 등도 배울 수 있어
학생들에게 차 교사가 던진 질문은 ‘나에게 가장 소중한 것과 그것을 꼽은 이유’. 언뜻 보면 쉬운 질문이지만 사실 쉽게 대답이 나오긴 어렵다. 차 교사는 그 지점을 놓치지 않는다. 아이들이 “친구”라고 답하면 “가장 소중한데 왜 싸웠지?”, “가족”이라고 답한 경우에는 “가족이 영원한가?” 하고 되묻는다.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듯 학생들은 우물쭈물했지만, 그런 친구들을 본 다른 학생들은 더욱 높이 손을 들었다. 더 나은 대답을 위해 열심인 모양새였다.
학생들은 차 교사와 함께 디즈니 애니메이션 <주먹왕 랄프>를 봤다. ‘다고쳐 펠릭스’라는 오락실 게임에서 건물을 계속 부수는 악당으로 등장하는 주인공 ‘랄프’가 모두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에 자신의 게임을 떠나 메달을 찾으러 가는 여정을 그린 영화다. 이날 이야기는 랄프가 소중히 여기는 ‘메달’을 중심으로 시작됐다. 아이들과 영화를 본 차 교사는 다양한 질문으로 학생들의 생각을 깨웠다.
차 교사는 15년째 수업시간에 아이들과 함께 영화를 본다. 영화를 볼 때는 한편을 한 번에 다 본다. 처음에는 학부모들이나 동료 교사로부터 ‘수업은 않고 영화만 본다’는 핀잔도 들었다. 하지만 차 교사는 “영화를 함께 보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아이들은 교과공부도 잘할 수 있게 된다”고 강조했다.
“아이들은 영화를 보면서 인물의 표정, 대사, 자막 등 다양한 것을 한꺼번에 읽어야 합니다. 자연스럽게 독서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줘요. 자연히 국어 수업 같은 경우는 진도 나가기 편합니다. 아이들이 지문을 빨리 이해하고, 쓰기의 경우 표현의 폭이 넓어집니다. 덕분에 영화 수업을 하더라도 학과 지도에 영향을 받지 않아요. 또 영화 속 인물의 행동을 관찰하면서 옆 친구에 대한 이해도 커지죠. 교과와 인성 교육 모두에 효과적이에요.”
차 교사 말고도 교육현장에는 영화 교육을 연구하는 교사들이 있다. 미디어나 영상매체가 보편화되면서 아이들은 활자보다 영상을 즐겨 본다. 영화 교육을 연구하는 교사들은 아이들에게 친근한 영상매체를 활용하면서 ‘재미’ 이상의 교육적 효과가 나도록 노력한다. 부산지역을 중심으로 모인 어린이 미디어 교육연구회 ‘사각형 프리즘’의 교사들은 영화 교육에 활용할 수 있는 BIC 모델을 개발하기도 했다. BIC란, ‘아름다움’(Beauty), ‘정체성 찾기’(Identity), ‘창의성’(Creativity)을 뜻하는 말이고, BIC 모델은 저 세 단계를 통해 영화를 해석하는 방법을 말한다. 인간-인간, 인간-자연 등 영화에 등장하는 관계의 아름다움을 찾아 자신이 맺고 있는 관계와 비교해보고, 이를 통해 자신이 맺고 있는 관계를 표현하고 설명해보는 방식이다. 영화의 내용과 유사한 사건을 다룬 신문 기사를 이용하거나, 영화 제목에 숨은 의미를 해석해보는 활동도 할 수 있다.
교실에서 영화 교육을 진행하는 교사들이 공통적으로 꼽는 영화 교육의 장점은 ‘소통’이다. 사각형 프리즘에서 활동하는 동일초 이태윤 교사는 “영화를 보기 전부터 영화를 보고 난 후까지가 영화 교육의 시간”이라고 강조한다.
“영화만 보여주는 것은 영화 교육이라 보기 어렵습니다. 사전에 어떤 영화를 볼지 고르는 순간부터 영화를 본 후 영화에 대한 생각을 서로 나누는 시간까지가 영화 교육이지요. 그래야 제대로 된 대화가 됩니다. 아이들에게만 생각을 묻지 말고 어른들도 아이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주어야 합니다.” 차 교사도 “영화 교육의 출발은 함께 영화를 즐기는 것”이라며, “아이와 어른이 모두 재미있어하는 영화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좋은 영화 교육의 비결”이라고 말했다.
가능하다면 영화를 직접 만들어 보는 것도 좋다. 광주 경양초 이해중 교사가 아이들과 함께 만든 <약한 학교>는 지난해 서울 국제어린이영화제 본선에 진출했다. 영화는 지난해 1학기 말 학생들과 함께 ‘모두가 풀어보고 싶은 교실 속 이야기’를 고민하다가 떠올린 소재로 만들었다. 인원수대로 받는 우유가 매일 하나씩 남았던 실제 상황에 착안해 만든 이야기로 당번인 아이가 남은 우유를 들고 친구들을 찾아다니며 ‘우유의 진짜 주인’을 찾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교사는 “영화를 직접 만들어 본 뒤 아이들이 예술 작품에서의 ‘상징’ 같은 개념을 훨씬 빨리 이해하는 것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소소한 이야기일 수 있지만 교실 안에서 찾을 수 있는 재미있는 소재였어요. 누군가는 ‘먹었다’고 거짓말을 했고, 누군가는 그런 거짓말을 감싸줬죠. 무상으로 받는 아이도 있고, 돈을 낸 아이도 있고요. 소재를 최종 선택한 건 교사였지만, 촬영이나 시나리오 작업은 아이들이 거의 다 했어요. 이런 경험은 영화를 함께 볼 때도 도움이 됩니다. ‘상징’과 같은 어려운 개념도 금방 이해하고, 이야기 속 인물뿐 아니라 촬영을 한 사람에게도 관심을 갖죠.”
차 교사는 10년이 넘도록 ‘영화’를 매개로 영화 교육을 해 온 비결을 담아 2013년 <영화를 함께 보면 아이의 숨은 마음이 보인다>(전나무숲)를 펴냈다. 지난 8월31일부터는 경기 신장초 엄성수, 이해중 교사와 함께 팟캐스트 ‘영화, 교육을 만나다’를 진행하고 있다. 팟캐스트에서는 아이들과 함께 보기 좋은 영화에 대한 이야기는 물론 ‘애정 신이 있을 때는 어떻게 지도해야 할까?’, ‘자막이 있는 영화는 언제부터 볼 수 있을까?’ 등 영화 교육을 할 때 유용한 팁들도 준다.
창원/글·사진 정유미 기자
ymi.j@hanedu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