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_서현(書峴)을 찾다

옥선갤러리 개관기념展 2011_0613 ▶ 2011_0710

초대일시 / 2011_0613_월요일_05:00pm

참여작가 / 박선기_이광택_정광식_차규선_홍지윤

관람시간 / 10:30am~06:30pm

옥선갤러리 Oksun Gallery 경기 성남시 분당구 서현동 145-8번지 Tel. +82.31.708.7792

풍경이 아름다운 분당 서현 저수지 옆에 옥선갤러리가 개관합니다. 그 첫 전시로 3-40대의 왕성한 창작활동을 하는 박선기, 이광택, 정광식, 차규선, 홍지윤 의 작품 20여 점이 전시됩니다. 개관전의 전시제목 『예술가_서현(書峴)을 찾다』는 인간의 가장 오래된 지적 놀이였던 미술을 대하는 현대 예술가들의 관점과 또 그것을 바라보는 관람객의 시선으로 새로이 개관하는 갤러리의 빈 공간을 채우는 전시입니다. 여기에는 박선기의 원근법적 조각, 춘천의 고향을 배경으로 하는 이광택의 그림, 정광식의 회화적 조각, 자연의 이미지를 색이 아닌 선을 통해 새롭게 이미지화 하는 차규선, 시와 그림으로 삶의 희로애락을 그려내는 홍지윤의 작품이 함께 합니다. 상대적으로 문화의 향유 기회가 적은 분당에 새로이 개관하는 옥선갤러리가 지역의 문화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많은 관심과 성원 부탁 드립니다. ■ 옥선갤러리

박선기_A play of point of view 1202_합판, 혼합매체_80×150×13cm_2010

나의 작업에서 모든 것은 존재 문제로 귀결 되어진다. 작품에 표현되어 나타나는 존재라는 의미는 참으로 광범위해진다. 서구의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로 따지자면 눈으로 보이고, 감각 되어지고, 한 공간을 확보 할 때 존재한다고 인정하는 사고와, 우리의 눈으로 보이지 않는 부분인, 하지만 항상 우리의 삶과 함께 공존하는 내적 사고, 즉 인간의 사고, 의식, 정신 등등 이러한 무 존재로서의 존재‘까지도 포함하고 있다. 나는 이 존재문제를 여러 가지로 표현하고 있다. 무 존재로서의 존재인 내적 사고를 표현하기도하고, 현 시대를 문화적으로 해석하기도 하고, 물질이 가지는 성질을 비교, 대조도 하면서 여기에 공간과 시간과 개념을 포함 시키게도 한다. 너무나 근본적인 어느 누구도 쉽사리 결론 내리지 못할 부분이기에 나는 의미론적으로 이 문제에 접근해가고 있다. 시간이 갈수록 작업에 표출 되어지는 것은 시각적으로 단순하고, 가벼운 소재로 전이되고 잇다는 점이며, 나는 이 점을 전통적인 조각개념으로부터의 완전한 탈피로 보며 더 한층 개념적으로 20세기 현대미술에 접근해가고 있음을 시사함이라 생각한다. ■ 박선기

이광택_친구들 찾아오는 숲 속 공부방_캔버스에 유채_65×115cm_2009

숲과 나 ● 언제부턴가 나는 숲을 그리기 시작했다. 숲! 나와 숲은 참 더할 나위 없는 친구라는 생각이 든다. 한 사내로 태어날 때부터 나이 오십에 접어든 지금 이때까지 숲은 늘 내 곁에 있었으니까 말이다. 그래서인지 나의 어린 시절은 언제나 아슴한 연두물빛으로 아른거리고, 청년시절은 벗처럼 찾아오는 솔바람소리의 여운으로 아련했다. 되돌아 과거를 바라보면 정말, 숲은 내 삶의 갈피갈피에 정갈한 빗질자국을 한없는 물결로 남겨놓은 듯하다. 근거 없는 외로움, 적막이 산처럼 쌓이면 자기의 속살을 열어 산벚꽃 연분홍 빛깔로 어루만져 주었고 질그릇처럼 아슬아슬, 뜨거운 마음을 주체 못할 때는 웅숭깊은 숲 그늘의 어스름에 나를 풀어 보듬어 주었다. 어디 그뿐인가. 아직도 나는 세상의 헝클어진 집착에 갈팡질팡하며 숲 주변을 기웃기웃 한다. 그만큼 숲은 내게 지친 마음을 기대는, 육친과도 같은 존재이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숲의 이미지는 사부자기 내 마음속에 연두, 초록, 파랑의 색채로 각인돼 있다. 최근 내가 가장 많이 쓰는 색들인데 계절로 치면 그야말로 봄이다. 그래서 왠지 숲 하면 '참으로 고요하고 깨끗한 것' '억지로 이루어지는 것이 없으며 무엇 하나 거슬리는 것이 하나 없는 것'이 연상된다. 현대의 물질문명에 부득불 수반되는 어떤 극악스러움 때문에 숲은 보통사람들의 몸속에 심지처럼 존재하는 피로를 자근자근 다독거려주는 피안이 되는 것인가 보다. 언젠가 라디오에서 "우리말에서 가장 아름다운 낱말은 바로 숲이 아닐까 해요."라는 멘트를 들은 기억이 난다. "정말 맞다"하며 고개를 여러 차례 끄덕였다. 그때 라디오방송의 여성 진행자는 "숲은 종국에 인류를 구하는 구원이 되지 않을까요?"했지만 나는 그렇게 거창한 말은 삼가겠다. 대신 이렇게 말하고 싶다. "내가 숲을 자꾸 그리는 것은 착하게 살고 싶어서인 것 같다."라고. 착하게 산다는 것! 삶에서 정말 그렇게 중요한 것도 없지 않겠는가. ■ 이광택

정광식_View_오석, 아크릴칼라_42.5×90×2cm_2011

나에게 있어 '돌' 이란 자연이 만들어준 캔버스다. 그라인더로 깎거나, 그리기와 같은 행위로 표현 해낼 수 있는 캔버스이다. 나는 그것에 시점, 관점을 부여하여 현대의 삶속에 널려있는 상하구조나 관계를 좀 더 거시적 안목으로, 평등한 시선으로, 순수한 마음으로 보길 바라는 마음이다. 누구나 비행기를 타고 내려다보거나 높은 곳에 올랐을 때를 기억 할 것이며, 순수한 마음을 품고 있기에 내가 만들어낸 'view'- 바다, 강, 도시, 섬, 산등은 좀 더 멀리, 좀 더 높은 시점에서 서서히 zoom in 되어 보여 질것이다. ■ 정광식

차규선_梅花_혼합재료_91×72.7cm_2011

차규선 작업은 세 가지 측면에서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우선 표현소재사이에 팽팽한 긴장감을 유발하는 역동적인 공간이다. 그가 구성한 화면에 등장하는 소나무는 마치 조선후기의 한편의 문인화를 보는 듯한 독특한 인상과 여운이 감돌지만 표현 소재 사이의 긴장감을 유발하는 역동성은 소재에 대한 모더니즘적 해석에 기인하는 것이다. 이는 전통에 대한 깊은 이해와 현대적 해석을 바탕으로 시각과 기법의 끊임없는 혁신을 통해 자기언어를 만든 결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화면전체를 메우는 자유롭고 날카로운 선묘들이다. 이는 그가 주로 사용하는 도구에서 얻어진 독특한 효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캔버스 위에 바른 흙과 분장으로 바른 물감이 마르기 전에 내적 이미지를 토해내기에는 붓보다는 끝이 부스러진 나뭇가지와 나무토막이 날카로운 선묘의 효과를 드러내고, 무작위로 동원하는 손놀림의 순간에 이루어지는 자유로운 필선이 만들어낸 결과들이다. 다음으로 삶의 토양으로서의 자연의 색감을 들 수 있다.흙을 재료로 사용한 색감에는 모든 것이 스며들고 융화되는 흙 자체가 가지는 친화적 속성이 담겨져 있다. 특히 분청사기의 발색을 담아낸 색감은 향토자연의 풍경을 객관적 대상으로서의 자연이 아니라 삶의 토양으로서의 자연으로 전환시키는데 일익을 담당하고 있어 차규선 작업의 독특성을 더욱 빛나게 하고 있다. 그가 그리는 자연은 단순한 풍경으로서의 자연이 아니라 흙냄새 풍기는 우리의 삶의 토대로서의 자연이며 친화감으로 다가온다. 마치 조선의 분청사기가 우리의 생활 속에서 우리의 일상에 녹아 있었듯이. ■ 하정화

홍지윤_Yellow flower in the sky_C-print Mounted on Plexiglas_80×120cm_2008_2008

… 누군가 '인생의 겨울에 봄은 없다'고 말했다. 봄날 아지랑이를 보듯, 써 내려간 듯 얹어 놓은 자유롭고도 유연한 홍지윤의 붓질은 작가 특유의 자유로운 영혼을 자신의 삶에, 우리네 고독한 영혼과 고단한 삶에 전하는 희망의 몸짓에 다름 아니다. 시(詩)•서(書)•화(畵)의 현대적 외화에 능한 작가의 자유로운 영혼을 유감없이 드러내고 있다. ● 이렇듯 주관과 객관을 종합하는 홍지윤의 숨바꼭질은 꿈의 무지개가 필 때까지, 우리네 삶이 활짝 피어날 때까지, 꿈이 이루어질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세상 가득 총천연색 무지개를 펼쳐 보일 것이다… ■ 박천남

Vol.20110613c | 예술가_서현(書峴)을 찾다 - 옥선갤러리 개관기념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