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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돌
김창기展 / KIMCHANGKI / 金昌基 / sculpture 2010_1229 ▶ 2011_0125

- 김창기_흐르는 돌 100525_자연석, 철_38×70×15cm
초대일시_2011_0119_수요일_05:00pm_갤러리 라메르
2010_1229 ▶ 2011_0104 관람시간 / 09:00am~10:00pm
부평아트센터 갤러리 꽃누리 BUPYEONG ARTS CENTER 인천시 부평구 십정동 166-411번지 Tel. +82.32.500.2000 www.bpart.kr
2011_0119 ▶ 2011_0125 관람시간 / 10:00am~06:30pm
갤러리 라메르 GALLERY LAMER 서울 종로구 인사동 194번지 홍익빌딩 Tel. +82.2.730.5454 www.gallerylamer.com
자연, 공간, 순환하다 ● 조각은 건축이나 회화처럼 공간 속에 구축되는 '조형적․시각적 예술'이다. 조각은 공간적인 예술인 동시에 촉감의 예술이다. 조각 역시 회화처럼 허구적인 공간을 이용하지만, 완전한 허구보다는 현실과 연결되어 있는 공간을 이용한다. 이러한 말들은 현대 이전의 조각 개념들에는 해당되지만, 초현실주의의 마네킹, 칼더(A. S. Calder)의 모빌, 데이비드 스미스(David Smith)의 스테인리스 조각과 같은 현대 조각에는 더 이상 적용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현대 조각은 과거의 규정, 틀을 하나씩 해체해 나감으로써 회화, 건축, 음악, 문학 등과 연관되기 때문에 그것들의 보편적인 규정을 만들기는 힘들다. 그래서 조각만의 이론적 담론을 만들기란 불가능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대 조각의 개념이 이런 것이다 하고 규정하기는 힘들다.

- 김창기_흐르는 돌 100525_자연석, 철_38×70×15cm_부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전시에서 김창기가 선보이는 조각은 공간에 대한 깊은 사유를 이끌어내어 그의 작품의 이론적 담론을 만들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롭다. 즉 그의 조각은 허구의 공간과 현실의 공간을 동시에 포괄하며 마침내 우리를 '자연/인공'이라는 이항적인 대립 개념을 연상시키는 차원에서 '들여다봄/느끼는 것'의 차원까지 이끌고 있다. ● 마지막 개인전으로부터 무려 4년의 공백기 동안 김창기는 조각의 본래적 의미와 직접적으로 맞닥뜨리는 인고의 과정을 감내한 것으로 보인다. 그 본래적 의미란 다름 아닌 작가 스스로 납득할 만한 작품의 내용과 형식에 대한 추구를 통해 얻어내는 자신만의 개념의 도출이었다. 여기서 말하는 '자신만의 개념'이란 현대미술이 추구하는 자기 동질성 내지 동시대성의 추구와 다르지 않다. 애초 내놓았던 매끈한 대리석을 이용한 운동성의 실험으로부터 시작한 그의 지난한 작업과정은 이제 다시 돌이라는 재료로 환원되고 있다. 그러나 지금의 돌은 지난날의 돌과는 전혀 다른 의미와 질감일 수밖에 없다. 즉 그는 이제 윤기 흐르는 매끈한 대리석이 아닌 자신의 주위에 지천으로 널린 울퉁불퉁한 돌로써 동시대성을, 더 나아가 자기 동질성을 담아내려 한다는 것이다.

- 김창기_흐르는 돌 100615_자연석, 철_26×75×33cm
앞서 말한 김창기가 표현하는 허구의 공간과 현실의 공간이 가지는 순환적 구조에 대해 말할 차례인 것 같다. 회화에서 재현, 창조하는 공간이 허구적이라는 명제는 상식에 속하는 바, 조각의 공간 역시 동일한 성질을 가진다. 그의 조각은 전시장이라는, 일상성이 거세된 무균(無菌)의 공간(허구의 공간)에 놓인다는 점에서 모더니즘을 지향한다고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한편 그가 이번에 선보이는 조각이 내적인 내러티브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또한 그 내러티브가 그가 현재 당면하고 있는 내재적, 실제적인 현실을 지향하고 있다는 점에서 반 모더니즘적이라고도 부를 수 있다. 충북 제천의 폐교를 개조한 그의 작업실은 그 자체로만 설명하기에는 너무도 많은 함의를 가지고 있다. 그곳에서 매일 직면하는 자연과 그것을 해석하는 작가로서의 사유가 거친 돌과 쇠를 통해 발언되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단순히 작품의 외형을 넘어서는 어떤 것이 있는 것이다. 생활의 장에서 발견한 돌과 쇠가 창작의 모티브가 되어 전시장에 놓인다는 것은 어찌 보면 그의 예술이 생활과 다르지 않은 차원으로 이동하는 중일지도 모른다. 이는 곧 예술과 삶이 만나는 지점을 형성하는데, 이러한 태도는 그의 초기작에서는 좀처럼 발견할 수 없는 덕목이다. 그런 점에서 그가 제시하는 자연과 인공의 이항대립은 사실 동일한 본질을 가지고 순환하는 것으로 보인다.

- 김창기_흐르는 돌 100622_자연석, 철_30×35×23cm
자연 상태의 보잘 것 없는 돌을 작가의 미학적 기준에 의해 선택하는 순간을 '발견'이라고 한다면, 거기에 쇠라는 인공적인 부가물을 장인적 기술로 더함으로써 그는 자연과 인공의 접합점을 찾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작가의 말대로 돌과 쇠는 동일한 본질을 가진 자연의 일부로, 동일한 성질을 지녔으되 현상적으로만 구분될 뿐이다. 이렇게 놓고 본다면 돌과 쇠는 자연을 상징하고, 그는 그것을 만나게끔 하는 매개 역할에 그쳤을 뿐이다. 이처럼 그는 이제 자연을 적극적으로 변화시켜 인공의 냄새를 풍기게 했던 전작과는 달리 자연과 자연이 만나게끔 하는 매개자적 입장으로 선회한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그의 태도로 만든 조각이 전시장에 들어오게 되면 대체로 미니멀 아트의 형태를 갖게 되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미니멀 아트는 알려진 바와 같이 '초월적, 재현적 의미의 부재'를 통해 '사물로서의 실제성(literalness)'을 드러내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그것은 달리 말하면 어떤 재현적 기의(signifié)도 기생해 있지 않은 '비재현적 기표(signifiant)'로 만들어줌으로써 '순수한 기표 자체'를 드러내준다는 것인데, 미니멀 작가들의 잘못된 출발점은 그러한 비재현적 기표(즉 미니멀한 작품)는 바로 기존의 예술 속에 존재하는 "재현적 기표"들에 대해 대립되는 양상을 가질 때 실현된다고 본 점이다. 그러나 흥미로운 점은 김창기가 만들어낸 이번 전시의 조각을 '비재현적 기표(signifiant)'로 읽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즉 그가 제시하는 조각의 형태는 비록 미니멀적 스타일素(styléme)를 띨 수도 있으나, 실상은 자연과 그가 조우하는 순간의 이야기와 그것을 '발견'한 그만의 미학적 기준 그리고 이질적으로 보이는 두 물질을 매개하는 의미가 뒤섞인, 매우 복잡다단한 내러티브 구조가 내재된 작품으로 읽어야 할 것이다. 또한 김창기라는 작가가 온전히 자연에만 파묻혀 사는 것이 아니라 그의 일상이 있는 도회를 근거로 한다는 점도 기억해 둘 필요가 있다. 이 점은 그에게, 혹은 그의 조각을 읽어내는 데에 매우 유효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도회적 감각으로 발견하고 해석하는 자연이라는 점은 그의 조각에서 또 다른 순환의 이미지를 읽어낼 수 있는 근거로 작용하는 것이다. 즉 도시와 자연, 자연과 도시가 순환하는 구조는 그의 생활 속에서도 발견되는 면이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 김창기_흐르는 돌 100705_자연석, 철_30×35×23cm
다른 관점으로 그의 작품을 파악한다면, 이제 그의 조각은 단순히 '들여다보는 것(seeing-in)'이 아니라 우리의 신체적인 감각과 자연에 대한 저마다의 시각이 투영되어 '느끼는 것(feeling-in)'이 된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이제 더 이상 그의 작품을 미니멀 아트의 선상에 놓고 봐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논리적인 사고로 작품마다에 내재한 룰을 찾기보다는 그가 제시하는 자연에 대한 그의 감수성과 그것을 표현하기 위한 내적 형식을 찾아야 하는 당위성도 바로 여기에 존재하는 것이다.

- 김창기_흐르는 돌 100812_자연석, 철_40×37.5×20cm
한 작가의 행보는 그가 가진 사유의 단편을 보이기 마련이다. 바꾸어서 말하자면 사유가 바뀌지 않는다면 행보 역시 달라지지 않는다. 예술의 본령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많은 논의가 지금 이 시각에도 행해질 테지만, 적어도 사람들의 생각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데에는 대체로 이견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 점에서 남다른 사유를 바탕으로 쉼 없이 새로운 내용과 형식을 고민하는 것은 예술가의 숙명이다. 하지만 그렇게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예술가를 찾아보기 힘들다는 사실은 일종의 역설을 우리에게 던져준다. ● 김창기가 여덟 번째로 여는 이번 전시는 또 다른 변화의 시도를 우리에게 보여준다. 일곱 번에 걸친 사유의 변화가 이번에는 '순환'이라는 화두를 가지고 다시 새롭게 시작되고 있다. 끝으로 그의 일곱 번째 개인전 서문을 대신한 졸필을 다시 인용하고자 한다. ● 조형적 완결성보다는 사유와 의식의 흐름을 따르게 하는 과정을 중시하고, 예술을 짓누르는 관념과 정신주의보다는 일상과 삶을 중심으로 새롭게 질문하기에 의미를 둔다면, 그의 (개념)미술은 지속될 것이다. (개념)미술은 사조로서가 아니라, 어떤 태도와 시각의 문제로 바라볼 일이기 때문이다. ■ 박석태

- 김창기_흐르는 돌 101014_자연석, 철_29×50×17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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