퓰리처상 이란?

저널리스트는 물론 문학인이나 음악인들에게

퓰리처상 수상의 영예는 ‘더 이상 바랄수 없는 최고의 경지’

라는 수식어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1917년 퓰리처상은 19세기 미국을 대표하는 언론인,

조지프 퓰리처가 컬럼비아 대학에 2백만 달러를 기부하여 시작됐었습니다.

그는 기부금을 언론학과와 장학제도의 설립,

‘공공봉사, 공공윤리, 미국문학, 교육진흥을 장려하는 상’을 만드는 데

사용해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이에 따라 매년 4월 그해의 퓰리처상 수상자가 발표되고 5월에 시상식이 열립니다.

수상자에게는 1만 달러의 상금이 지급되며,

특히 공공봉사 부분을 수상한 신문사에게 수여되는 퓰리처상 메달은

해를 거듭하면서 퓰리처상을 대표하는 아이콘으로 자리잡았습니다.

생명의 키스

1967년 플로리다에서~

전기공사작업중 동료가 감전되었는데,

" 친구야 살아야해~~ "

필사적으로 인공호흡하는 동료.. 결국 목숨을 건졌다고...

남매의 키스도 게이의 키스도 아닌 진정 생명의 키스,,,, 68년 퓰리처상 수상.

찌는 듯한 무더위로 미국 플로리다 주의 에어컨 사용이 급증했다.

순간 전력 사용량이 치솟자 전기 시스템에 과부하가 걸리며 잭슨빌시 일대가 정전됐다.

전신주에 올라가 한창 수리를 하던 전기공사 직원들 중 한 명이 비명을 질렀다.

4160볼트 전기에 감전된 전기기사 랜덜 챔피언이었다.

근처를 지나던 '잭슨빌 저널'의 로코 모라비토 기자가 카메라를 들었을때,

챔피언은 정신을 잃고 안전벨트에 매달린 채 축 늘어져 있었다.

동료인 J D 톰슨이 달려와 인공호흡을 하며 구급차를 기다리는 동안

모라비토 기자는 계속 사진을 찍으며 기도했다.

마침내 톰슨이 소리쳤다.

“그가 숨을 쉬어요~~~~ ”

구장을 떠나던 날의 베이브 루스

1949 베이브루스 등번호 3번을 은퇴하다.

왠지 사람도 많고 시끌벅적한 야구장이 적막하게만 보이네요.

그리고쓸쓸해 보이는 뒷모습도 안타까워 버리고요.

저 등번호 3번은 영구결번이라지요.

.

퍼레이드 행진 중 경찰관과 아이의 대화

아이가 다칠까봐 걱정해 주는 경찰관의 모습입니다.

저 시대에는 경찰관 들이 꽤나 권위적이었을것 같지만 사진으로 본다면

정말로 아이(시민)와 교감을 하는 이상적인 경찰의 모습이 아닐까 합니다.

파리의 짚시...

사진기자가 이 사진을 찍기위해 얼마간 정말 노숙자들과 어울려 생활을 했다고 하네요.

그리고 그들이 반드시 불쌍한 사람만은 아니라는것을 말해주었답니다.

병사와 신부.

베네주엘라의 해군기지에서 총을 맞은 병사가신부님에게 매달려 있습니다.
신부님은 총은쏜(총소리가 난)곳을 바라보며 원망어린 시선을 보냅니다.
마치 쓰러지는 예수를 부축하는 피에타의 모습까지 연상시키네요.

군인은 강하지만그들도 인간입니다.

그들도 죽기전에는 어머니를 찾습니다.

2차대전에서그 악마같은 독일군들이 죽기전에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과 엄마를 외치던 모습이 생각 나네요.


손...

선교사와 우간다의 굶주린 아이의 사진입니다.

이 사진으로 인해 아프리카의 기근을 세상에 알리게 되었죠.

80년대 초반에 미국과 영국 아티스트들이 모여서 We are world를 부르던 것이 생각나네요
사진작가 마크 웰스는 이 사진을 사진전에 출품 안한다고 했습니다.

이유는,

남의 고통을 팔아서상을 안받겠다고 했는데출품을 했네요.

그리고 대상까지 받았습니다.

손...

선교사와 우간다의 굶주린 아이의 사진입니다.

이 사진으로 인해 아프리카의 기근을 세상에 알리게 되었죠.

80년대 초반에 미국과 영국 아티스트들이 모여서 We are world를 부르던 것이 생각나네요
사진작가 마크 웰스는 이 사진을 사진전에 출품 안한다고 했습니다.

이유는,

남의 고통을 팔아서상을 안받겠다고 했는데출품을 했네요.

그리고 대상까지 받았습니다.


탱크와 시민.

소련의 붕괴가 가속화 되는 과정에서 중국에도 봄이 찾아옵니다.

하지만 시민들의 봉기는 탱크앞에무참히 쓰러집니다.

천안문앞은 피바다가 되고그 탱크를 막는 용감한 시민을호텔방에서 사진작가가 찍습니다.

이분은 망명을 해서 살아계시다고 합니다.



고문의 흔적.

클린턴대통령의 자서전에 보면,

자신의 재임기간중에 가장 잘못한 일로 부끄러운 과오로
르완다 인종청소극을 막지 못한것을 적고 있더군요.

르완다의 후트족의 극우민병대에 의해잔인하게 고문을 받은 투치족의 청년입니다.

두 종족간의 전쟁은 아직까지 진행되고 있습니다


비애...

이게 무슨 사진인것 같으세요?
사진은 레바논의 베이루트의 외곽지역이

이스라엘의 포격과 폭격에 의해 잿더미가 된 마을입니다.
하지만,

레바논의 부유층의 자제들인듯한 한무리의 절은이들이냄새가 난다며 찡그리고 있네요.
어딜가나 돈많은 부유층 자제들은 철이 없나봅니다.

옆에 있었으면 계란이라도 던지고 싶어지네요.

남편의 장례식.

이라크전에서 전사한 남편의 장례식 전날 밤.
관 옆에서 마지막 밤을 함께 보내기를 원한 아내가
남편이 생전에 좋아했던 노래를 컴퓨터로 틀어놓은 채 잠든 모습.
"내가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고 그리워할 것인지를
말로 형용할 길이 없어당신에게 한가지 약속할게. 난 꼭 집에 돌아올거야"
- 이라크로 떠나기 전 남편의 편지 -



빗속의 오바마.

미국 대통령 중에서 가장 인간미가 넘치는 대통령이라고도 하지요.

이 선거유세기간중 경쟁후보는 우천관계로 연설에 나오지 않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은 연설에 나와서 이렇게 비를맞으며 선거운동을 했어요.

이런 모습에 대통령으로 당선된 것이 아닐까요?

이와 비슷한 정치 사진으로는 옐친 러시아 대통령 사진이 있는데

이사람은 제선에서 위기의 순간 Rock밴드 공연에서 춤을 춘 사진이 유명해 져서

위기를 넘겼다고 하네요. 하지만 당선되고 선거공약은 다 백지화 되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정치사진은 어떻게 이용되냐에 따라서 사진 한장의 힘이 막강하네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2002 아프가니스탄의 전쟁과 평화.

비둘기가 날아든 전쟁의 바다 속 평화 깃든 작은 공간

평화의 상징인 비술기가 아프카니스탄의 광장에 날아들었습니다.

아직 아프칸전이 아직 끝나지는 않았지만 이 사진을 서방세계에서

이젠 전쟁을 끝내야 한다는 운동이 일어 났다는데...

막아야해...

팔레스타인 사유지에서 이스라엘 군인에 맞서는 정착민.

여인 한명이 수백명의 군인들을 막고 있네요.

결국 이 한명의 벽은 무너지고 말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무차별한 폭행이 이루어졌다고 하네요.

2000 코소보 탈출.

by Lucia Perkirs_Courtesy of The Washington Post

철조망 사이로 아이가 넘겨지는 순간

자식부터 살리기 위한 부모의 마음이 느껴지는 사진이네요.

전쟁사진도 많지만 휴머니즘적인 사진도 상당수 존재하죠.

루즈벨트의 뒷모습.

이 사진은 기자가 몰래 찍은 사진이라고 합니다.

항상 앞만 보이고 자신만만해 보이는 지도자의 쓸쓸한 뒷모습도 흥미롭습니다.

한국전쟁 중 무너지는 대동강 철교 이건 설명 안하셔도

by 맥스 데스포 다 아실것 같습니다.

상당히 유명한 사진이죠.

우리나라 역사교과서 6.25전쟁 관련 부분에

반드시 나오는 사진이기도 하고요.

베트남 교전중...

전쟁중 생명을 살리려는 군인의 모습이 정말 멋지네요.

1973년 수상작인 후잉 콩 우트(Huynh Cong Ut)의 '전쟁의 공포'

기자는 사진을 찍은 즉시 아이를 병원으로 안고 갔다고 합니다.

여기에 나오는 발가벗은 여자 아이는 훗날 살아남아 UN에서 일하고 있고

사진기자와도 아직까지도 계속해서 연락을 한다고 합니다.

흔적...

전쟁의 참혹함을 나타내주는 사진입니다.

이 아이는 두 팔과 왼쪽눈 그리고 하반신을 잃었다네요... ㅠ

깃발.

2차 세계대전 당시 이오지마 섬의

수리바치 산 정상에 성조기를 세우는 조 로젠탈의 사진

이 사진은 영화 소재로도 나왔지요.

아버지의 깃발이라고...

이 깃발을 새우고도 전쟁은 계속 되었으나,

한장의 사진이 사람들을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회당수의 최후.
연설 도중 올라온 극우파 청년에게 복부를 깊히 찔린다.
이 사진은 뱃속을 찔렀던 칼이 빠져나오는 순간이다.
이 정치인은 곧바로 병원으로 옮겼지만 그 전에 죽고 만다.
이것이 일본의 낡은 사무라이 정신 이라는데...


비애...

팔에 총알이 박혔다.

동료는 눈을 잃었다.

그리고 병사는 서럽게 통곡한다.
그 옆에 가장 친한 친구가 잠들어 있는 비닐팩이 있기 때문에...


생명.

1989년 수상작 속에서 소방관 품에 안겨 인공호흡을 받고 있는 어린 생명.

즉시 아동병원으로 옮겨졌으나 6일 후 세상을 등졌다고 합니다.

사형 집행.

'베트콩 사형 집행(VIET CONG EXECUTION)'

1969년 현장사진 수상작. 68년 2월 월남 사이공,

AP통신 에드워드 T 애덤스 촬영.

사이공 거리에서 월남 장교 가족을 죽인 베트콩을 후송하던 2명의 월남 군인.

애덤스는 그들과 마주쳤다.

갑자기 다른 남자가 나타나 권총을 뽑았다.

격발 순간, 기자는 1.5m 거리에서 셔터를 눌렀다.

남자는 월남 경찰 책임자인 응우옌 응곡 로안이었다.

미국의 반전 운동가들은 이 사진을 과도한 전쟁의 상징물로 활용했다.

그러나 애덤스는 말한다.

“당신이라면 방아쇠를 당기지 않았을 것이라고 자신할 수 있을까.

그 자리에 서 보라. 그런 것이 바로 전쟁이다.”

좀 과격한 사진이기는 하나 총에 맞는 사람은

총을 쏘는 사람의 친구와 친척을 몰살시킨 주동자라고 합니다.

누구나 이 자리에 선다면 그런 분노는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라고도 생각되네요.

생 과 사.

말많고 탈많았던 사진입니다.

케빈카터의 사진으로 사진가의 도덕관에대해서

교과서처럼 나오는 사진이지요.

아이를 살리지 않고 사진을 찍었다고...

케빈카터는 이 사진으로 퓰리처상을 받았고

그에대한 비난으로 자살을 하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에 대한 충분한 변명거리는 있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