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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달초 폭설이 내려 온통 설국으로 변한 월정사 전나무 숲길. 안일권 씨(펜션 '바람이 불어 오는 곳' 주인장)제공 | |
■ 설경보다 오래 기억되는 동화 같은 펜션 '바람이 불어오는 곳'
- 바람처럼 떠도는 국내 유일 '유랑 펜션'
- 전세형 펜션…홈페이지와 서비스가 자산
- 시골 사진관·라디오 방송 등 파격 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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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 유일의 유랑펜션을 자처하는 평창군 봉평면의 '바람이 불어 오는 곳'. | |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 무이리, 살얼음 아래로 맑은 실개천이 흐르고 얕은 언덕 너머로 뱀 꼬리 같은 스키장 슬로프가 빼꼼히 보이는 두메산골이다. 눈과 얼음에 싸인 겨울 평창을 헤매다 해거름 이곳에서 동화같은 펜션 하나를 만난 건 행운이었다.
'바람이 불어오는 곳'. 객실 네 개가 전부인 자그마한 펜션이다. 이름에 걸맞게 앞마당부터 객실 곳곳에 주인이 직접 만든 바람개비들이 돌아가고 있다.
'바람이 불어오는 곳'은 국내 유일의 '유랑 펜션'이다. 관리가 안돼 이러지도 저리지도 못하는 펜션을 장기 임대해 숙박을 놓는 일종의 전세형 펜션. 시설보다는 특유의 감성과 주인의 서비스를 브랜드로 내걸었다. 펜션 특징은, 남자들로만 이뤄졌거나 세 명 이상의 혼성팀은 받지 않는다. 반면에 혼자 집을 나선 여성 여행자에겐 객실료의 절반만 받는다. 여전히 남성 위주인 국내 여행문화에서 페미니즘을 앞세우고 있다. 주인은 뿔테 안경에 벙거지 모자를 쓴 아이 둘 딸린 마흔살 아저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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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씨가 강원도 평창에 터를 잡은 지는 만 1년. 서울서 잡지사 사진기자로 일했다고 한다. 그러다 도망치듯 서울을 빠져 나와 가까운 춘천의 강촌에 펜션을 꾸렸다. 손님이 들지 않아 애물단지로 전락한 펜션을 장기 임대했다. 바람처럼 떠도는 유랑 펜션은 그렇게 탄생했다. 춘천에서 3년의 임대 기간을 끝나자, 춘천에 가족을 남겨 두고 상호와 홈페이지만 달랑 들고 짐을 푼 곳이 이곳 평창이다. 올해말까지 임대기간이 만료되면 다시 평창을 떠나 제주도로 넘어 갈 생각이다. 주인도 집도 바람 부는 대로 떠나는 묘한 펜션이다.
유랑 펜션 '바람이 불어오는 곳'은 라디오 방송도 쏘아 올린다. 무선 주파수를 타는 정규 방송은 아니고 적막한 평창의 밤에 잠을 설친 주인 안 씨가 골방에서 혼자 DJ를 맡으며 튼 음악을 녹음해 홈페이지에 올리는 나홀로 방송이다. 혼자 북치고 장구치는 1인 진행이지만 꽤 세련됐고 선곡이 좋아 마니아층도 형성돼 있다. '이산'의 외로움을 덜고 여행자의 감성도 자극하는 1석2조의 효과를 발휘한다.
잠시 빌려 숙박을 놓는 임대펜션이지만 동화 속 별장을 떠올릴 만큼 펜션이 예쁘다. 펜션의 전체 골격을 빼면 소소한 소품 하나까지 뛰어난 손재주로 직접 만들고 다듬었다. 객실도 깔끔하고 조망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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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펜션 '바람이 불어 오는 곳'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아침식사. | |
가수 김광석의 사진들이 펜션 곳곳에 붙어 있고 온종일 그의 음악이 흘러 나오는 것도 이 펜션의 특징. 밤에는 그가 자살하기 직전에 가졌던 콘서트 영상이 빔프로젝트로 상영된다. 주인 안 씨가 김광석의 열혈 팬이어서다. '바람이 불어오는 곳'이란 펜션 이름도 그의 노래 제목에서 따왔다.
여느 펜션과 달리 아침 식사가 제공된다. 안 씨가 직접 차린 우동, 식빵, 삶은 계란, 계절과일, 우유, 주스 등이 소반 위에 정성스럽게 나온다. 고급 호텔의 룸서비스보다 훌륭하고 만족스럽다.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친절'을 표방하지만 한 번 왔다 간 여행자들 상당수가 다시 찾아올 정도로 중독성이 강하다. 투숙객들이 붙여 놓고 간 쪽지와 메모가 물고기 비늘처럼 벽면을 빼곡히 뒤덮고 있다. 겨울 여행을 갈무리하기에 이상적인 곳이다. www.moodda.net
강원도 깊은 곳에 박힌 평창은 대관령과 스키로 잘 알려져 있다. 높은 해발 고도로 겨울이 한 해 절반에 달하고 무시로 함박눈이 쏟아지는 다설 지역이다.
조선의 정도전은 평창 땅을 두고 '하늘이 낮아 고개 위가 석 자에 불과하다'고 한탄했을 만큼 기후가 척박하다. 덕택에 평창은 임진왜란 말고는 우리땅에서 일어난 대부분의 전란을 모면했다. 전쟁이 터진지도 모르고 지내던 촌사람들의 동화 같은 이야기를 다룬 영화 '웰컴 투 동막골'의 배경도 평창이다. 그덕에 근래 우리땅에서 그나마 겨울 같은 겨울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하지만 대관령이나 스키장은 몰려든 인파로 콩나물 시루가 따로 없다.
하여, 평창의 호젓한 겨울 풍경을 찾아 나섰다.
■월정사 그리고 전나무 숲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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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이 많이 녹은 월정사 숲길. | |
영화 '가을로'에서 백화점 붕괴로 숨진 민주가 다이어리에 남긴 글귀다. 오대산 월정사의 전나무 숲길은 국내에서 걷고 싶은 산책길 가운데 으뜸으로 꼽힌다. 도시의 소음이나 번잡함을 피해 고요한 겨울 감상에 빠져들기에 더없이 좋은 곳이다.
매표소를 지나면 곧바로 일주문이 나온다. 여기서부터 월정사까지 약 1㎞ 구간이 쭉쭉 뻗은 아름드리 전나무들이 에워싼 숲길. 보름 전쯤 무릎까지 쌓였다던 눈길은 그새 겨울비와 햇살이 야금야금 쪼아먹어 운치가 많이 퇴색했다. 그래도 흙길을 덮은 눈뭉치가 다져져 하얀 양탄자를 깐 것처럼 매끈하다. 길은 미끄럽지 않고 푸근하다. 숲길을 따라 흐르는 겨울 계곡. 물소리가 빙판 아래에서 돌돌거리며 새어 나온다.
흰 눈길과 푸른 전나무, 그 사이로 황토옷을 걸치고 행자 체험을 하는 단기 출가 승려들이 색의 대비를 이룬다.
숲을 지키는 전나무들의 평균 수령은 80년. 500년 된 최고령을 포함해 2000그루 정도 심어져 있다. 세월의 무게를 버티지 못해 제 몸뚱이를 자르고 바닥에 드러누운 노거수들도 눈에 띈다. 전나무 가지에 걸려 잘게 부서진 햇살이 길바닥에 그물처럼 얼룩진다.
숲길이 끝나는 곳에 월정사가 있다. 월정사는 643년 신라 선덕여왕 시절 세운 고찰. 당나라에서 돌아온 자장이 오대산이 문수보살이 머무르는 성지라고 여겨 창건했다. 오대산은 평창을 감싼 다섯 봉우리가 부처의 손을 닮아 이름 붙였다.
경내의 대표적인 볼거리는 대웅전 앞 팔각구층석탑. 고려 전기의 것으로 여겨진다. 석탑의 몸체마다 작은 쇠종이 달려 산을 내려온 작은 바람에도 그윽한 울림을 뿌려댄다. 석탑 앞에 무릎을 꿇은 석조보살상이 이채롭다. 가지에 꼬마 전등 수백 개를 걸어놓은 듯한 산사나무도 볼거리. 얼핏 크리스마스트리 같다.
월정사에서 계곡을 따라 7㎞가량 오르면 상원사가 나오고 그 위로 부처의 진신사리를 모셔둔 적멸보궁이 있다. 월정사에서 상원사까지 버스가 다닌다.
■방아다리 약수와 숲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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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창의 방아다리약수터. 200m 탐방로는 월정사 전나무숲길 못지않게 고즈넉하다. | |
약수는 조선 숙종 때 처음 발견됐다. 옛날 화전을 일구며 살던 아낙이 바위 한가운데 움푹 패인 곳에 곡식을 넣고 방아를 찧자 바위가 쩍 갈라지며 약수가 솟았다고 한다. '방아다리'란 별난 이름은 약수터 모양이 디딜방아를 닮았대서 유래됐다. 당시 조선 제일의 명수로 꼽힐 정도로 명성이 높았다. 일제 강점기에는 독립투사들이 약수로 병을 고치려는 중병 환자로 가장해 은신하기도 했다.
방아다리 약수는 전형적인 탄산 철분약수. 물에서 쇳내가 나고 맛이 약간 떫다. 사이다처럼 톡 쏘는 느낌이다. 위장병, 빈혈, 신경통 등에 효과가 좋다고 알려져 있다. 약수터 바로 옆에 민박집이 몇 채 있는데 병을 다스리기 위해 장기간 묵어가는 이들도 있다고 한다.
도로에서 약수터까지 이어진 200m 전나무 숲길도 월정사 못잖게 운치 있다. 그리 길지 않아도 국내에서 전나무 조림이 가장 잘 된 산책로란 평가를 받는다. 드라마나 광고에도 심심찮게 등장한다.
방아다리 약수터에서 2㎞ 정도 떨어진 곳에 신약수가 있다. 30여 년 전 약초를 캐던 노인에 의해 발견됐다. 방아다리보다 크지 않아도 물맛이나 약효는 그 못지않다고 한다.
■이효석의 자취를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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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평면의 효석문화마을 | |
평창은 이효석의 땅이다. 효석이 태어나고 묻혔고 그의 문학혼이 싹튼 곳이다. 효석은 유년시절 평창에서 경험한 이야기를 여러 작품 속에 녹여 냈다. 그 가운데 봉평면은 이효석의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실제 무대다.
봉평면 주민들이 직접 가꾼 효석문화마을의 광활한 메밀밭은 소금을 뿌려 놓은 듯 하얀 눈이 깔렸다. 효석문화마을은 효석의 흔적과 소설의 무대가 집약되어 있는 곳. 1990년 문화마을로 지정된 이후 소설 속에서 허생원과 성 씨네 처녀가 만났던 물레방앗간 등이 재현되어 있다. 흥정천을 가로지르는 섶다리도 보인다. 인근에 이효석 생가도 있다. 생가는 지난 2007년 지역 원로들의 고증을 거쳐 실제 위치에서 700m 떨어진 곳에 복원했다.
효석문화마을과 들녘을 지나면 언덕 중턱에 이효석문학관이 나온다. 언덕에 서면 봉평면 일원이 한눈에 들어온다. 문학관 앞으로 이효석의 흉상과 표지석 놓인 공원이 있다.
문학관에는 효석의 생애와 문학세계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꾸며져 있다. 육필원고, 초간본, 효석의 작품을 실은 잡지, 신문 등이 전시되어 있다. 효석이 집필하던 창작실도 재현해 놓았다. 언제나 말쑥한 양복 차림에 크리스마스를 즐기는 등 토속적인 그의 작품세계와 달리 그는 매우 서구 지향적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효석의 잘 알려지지 않은 모습이다.
■평창의 또 다른 풍경, 황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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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관령 황태덕장. | |
대관령 가는 길에 황태덕장이 몰려 있다. 대관령은 전국 최고의 황태산지다. 특히 대관령 인근 '하늘 아래 첫 동네'인 횡계마을은 황태의 본고장이다. 명태가 살을 에는 혹한과 눈밭 속에서 몸을 담금질한 것이 황태다. 명태가 산으로 간 까닭이 신기하다.
6·25가 끝난 직후 함경도에서 내려온 피난민들이 이북과 기후 조건이 비슷한 대관령 일원에 덕장을 만들고 동해에서 명태를 실어와 너른 게 황태의 유래다. 원래 황태란 표현은 없었으나 해방 이후 단단한 북어와 구별하기 위해 생겨났다. 국어사전에는 황태를 더덕북어로 풀이하고 있다.
명태 못지않게 황태도 이름이 제각각이다. 너무 추워 하얗게 건조되면 백태, 반대로 날씨가 따뜻해 검어지면 먹태라고 부른다. 바람을 못이겨 덕장에서 떨어지면 낙태, 몸통에 흠집이 있거나 일부가 잘려 나가면 파태라고 한다. 실수로 내장을 제거하지 않고 건조하면 통태가 된다. 이 밖에 크기순으로 왕태, 대태, 중태, 소태 등으로 이름이 갈린다. 여하튼 전지훈련하는 국가대표처럼 겨울산에서 몸을 단련하는 황태의 변신이 재미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