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 그리고 희망은 있다

가슴뭉클한 나의 존재감

이선미(sozu20) 기자

ⓒ 보림

정말 선물 같은 책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마거릿 와이즈 브라운의 <중요한 사실>. 빨간 리본이 곱게 묶여진 표지를 보면 누구라도 첫 장을 조심스럽게 넘기고 싶었을 것이다. 책의 첫 장을 넘기자, 포장된 책이 펼쳐진 그림이 한 장 나온다. 또 한 장 넘겼을 때는 여러 가지 '중요한 사실'들이 잔잔하게 펼쳐진다.


"숟가락에 관한 중요한 사실은 숟가락으로 밥을 먹는다는 거야. 숟가락은 작은 삽처럼 생겼고, 손에 쥐는 것이고, 입에 넣을 수 있고, 숟가락은 납작하지 않고, 숟가락은 오목하고, 그리고 숟가락으로 뭐든지 뜨지. 하지만 숟가락에 관한 중요한 사실은 숟가락으로 밥을 먹는다는거야."


누가 봐도 옳은 이야기다. 작가는 이런 이야기들을 차분하고 다정하게 독자에게 알려준다. 데이지에 관한 중요한 사실은 데이지가 하얗다는 것, 비에 관한 중요한 사실은 비가 모든 걸 촉촉하게 적신다는 것, 사과에 관한 중요한 사실은 사과가 공처럼 둥글다는 것, 하늘에 관한 중요한 사실은 하늘이 언제나 거기에 있다는 것.


'맞아, 맞아'하고 책을 읽다보면 어느새 예상치 못한 그림 한 장이 나온다. 바로 나를 비추는 거울이 번쩍이는 그림!


"너에 관한 중요한 사실은 너는 바로 너라는 거야. 예전에 너는 아기였고, 무럭무럭 자라서 지금은 어린이고, 앞으로 더 자라서 어른이 된다는 건 틀림없어. 하지만 너에 관한 중요한 사실은 너는 바로 너라는 거야."


너는 바로 너라는 것. 긴 여운을 남기는 '너는 너'를 생각하며 바로 옆 장에 펼쳐진 거울에 내 얼굴을 담아본다.


마거릿 와이즈 브라운의 <중요한 사실>은 어린이들뿐만 아니라 삶이 힘들고 지친 이들에게 다시금 자신의 존재감을 느끼게 해주는 책이다.


나라는 존재. 나는 나이기 때문에 존재한다는 것. 그것만큼 중요한 것이 어디 있을까?


ⓒ 풀빛

선물같은 <중요한 사실>을 읽고 나서, 또 한권의 책을 뽑아들었다. 숀 탠의 <빨간 나무>. 종이배에 올라타 눈을 내리깔고 있는 지쳐 보이는 빨강머리 소녀가 눈에 띈다. 종이배를 띄운 물 위에는 잔잔한 비가 내리고 있다. 아마도 그 비는 소녀의 지친 눈물과 같다.


"때로는 하루가 시작되어도 아무런 희망이 보이지 않는 날이 있습니다."


첫 장부터가 예사롭지 않았다. 어린이들에게 하루가 시작되고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니. 침대에서 일어난 빨강머리 소녀는 무표정에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모든 것은 점점 더 나빠지기만 하고, 어둠이 밀려오고, 아무도 날 이해하지 않습니다."


소녀에게 세상은 귀머거리 기계이고, 모든 일은 한꺼번에 터졌다. 그리고 아름다운 것들은 그냥 자신을 지나쳐 갔다. 아주 고요하지만, 아주 끔직한 세상. 때로는 자신이 누군지,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소녀. 그래서 소녀는 하루가 끝나가도 아무런 희망이 없는 것 같다고 한다.

그러나 문득, 바로 앞에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은 무엇이었을까? 바로 밝고 빛나는 희망의 빨간 나무였다. 나의 욕망, 나의 바람, 나의 희망을 한데 실은 빨간 나무. 시들시들, 땅바닥으로 내려놓은 소녀의 풀죽은 시선을 번쩍 빛나게 한 빨간 나무. 빨간 나무, 나의 희망.


두 권의 책을 읽으면서, 나 자신이 왠지 위로되는 기분이었다. 도서관에 오는 우리 아이들뿐만 아니라, 지치고 힘들어하는 나의 가까운 친구에게도 꼭 이 두 권의 책을 읽어주고 싶어졌다. 나의 존재감을 찡하게 느끼며, 희망에 찬 나직한 목소리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