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gif 동해시의 문화유산 목록 및 해설

 

12.gif 관련자료

삼화사 三和寺

 

12.gif 동해시의 역사

 

〔고대〕

동해지역의 선사문화의 기원은 수만 년 전의 구석기시대로 올라간다. 1992년도에 처음 발견된 구호동유적에서는 중기구석기시대의 주먹도끼·찍개·찌르개·사냥돌 등의 뗀석기가 출토된 바 있다. 그리고 1995년도에는 발한동에서 구석기유적이 발굴되어 홍적세 후기의 간빙기 때의 문화층과 찍개·주먹대패·찌르개 등 뗀석기가 확인되었다. 이 유적의 연대는 90,000~120,000 B.P.로 중기구석시대 전기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고되었다. 또한 1999년도에는 구호동유적과 인접한 구미동 구릉지에서 중기구석기부터 후기구석기에 이르기까지 관련 문화층이 확인되었고, 찍개·긁개·밀개·찌르개·새기개·홈날 등 각종 뗀석기가 출토되었으며, 석기 집중면이 발견되어 석기제작 행위가 이루어졌음이 확인되었다.

 

〔신석기시대〕

유적은 하천유역의 모래언덕에 분포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는데, 현재까지 마상천유역의 망상동 지역에 2개 소, 전천유역의 송정동 지역에 1개 소로 모두 3개 소에 달한다. 이들 유적은 현재까지 정밀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유적의 정확한 범위 및 현상 등에 대하여는 알 수 없는 형편이다.

 

〔청동기시대〕

유적으로는 지석묘와 유물산포지가 있다. 지석묘는 송정동·부곡동·이로동 지역에 분포하고 있는데, 이는 청동기시대 무문토기인들이 남긴 무덤이다. 유물산포지는 시의 북부에 있는 마상천과 남부의 전천유역의 주변 구릉지에 집중 분포하고 있다.

이 지역은 삼한시대에는 실직국(悉直國)이었다가 102년(파사왕 23)에 신라에 병합되었다. 그 뒤 468년(장수왕 56)에 일시 고구려에 점령되기도 했으나 505년(지증왕 6)에 이사부(異斯夫)가 수복, 실직주(悉直州)를 설치했으며 757년(경덕왕 16) 삼척군으로 개칭하였다. 따라서 이 지역은 고구려의 남하정책과 신라의 북진정책이 충돌한 곳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부곡동 승지골에 세워져 있는 선돌은 이 지역을 두고 싸웠던 고구려와 신라의 정계비적(定界碑的)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당시 삼척군은 죽령(竹嶺)·만경(滿卿)·우계(羽溪)·해리(海利)의 4개 현을 영현(領縣)으로 두었다. 현재 부곡동 남쪽의 옛 북평읍지역은 삼척군의 직할지였고, 그 북쪽의 옛 묵호읍 지역은 명주군 옥계면과 함께 우계현에 속했던 것으로 보인다.

 

〔고려시대〕

삼척군은 995년(성종 14) 척주(陟州)로 승격되었다가 1018년(현종 9) 5도양계제가 실시되자 동계(東界) 소속의 삼척현으로 강등되고 우계현도 명주목(溟州牧)으로 넘겨주었다. 지금의 동해시가 명주와 삼척 양쪽의 관할을 받은 것은 이때부터였다. 명주목은 원래 고구려의 하서량(河西良)으로서 신라에 편입된 뒤 757년부터 명주라고 불리다가 936년(태조 19) 동원경(東原京)으로 승격되었다.

또, 983년(성종 2)에는 하서부(河西府)로, 986년에는 명주도독부로, 992년에는 명주목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이로써 명주목은 연곡(連谷)·우계의 2개 현을 속현으로 두게 되었다. 명주목은 그 뒤 1260년(원종 1)에 경흥도호부(慶興都護府)가 되었다가 1308년(충렬왕 34)에는 강릉부(江陵府)로, 1389년(공양왕 1)에 대도호부가 되어 조선으로 이어졌다.

 

〔조선시대〕

태조의 5대조 목조(穆祖)의 외향(外鄕)이었던 삼척은 1393년(태조 2) 부로 승격되었다가 1413년(태종 13) 다시 도호부로 승격되었다. 한편, 강릉대도호부는 1457년(세조 3) 진이 설치되면서 삼척·양양의 2개 도호부와 4군·2현을 총괄하게 되었다. 이때 옥계면과 옛 묵호읍인 망상현(望祥縣)이 설치되었다.

삼화동의 무릉계곡에는 102년에 쌓아서, 1414년에 삼척부사 김맹손(金孟孫)이 개축했다는 두타산성이 있다. 이 산성은 임진왜란 때 왜군이 삼척을 점령하자 많은 사람들이 피란했던 곳으로, 이 고장 사람들의 한이 서려 있다.

당시 이 고장 청년들은 의병을 조직하는 한편, 산성 밑에 허수아비를 만들어 군사가 많은 것처럼 위장함으로써 왜군이 산성 공격을 단념하고 철수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이때 왜군이 물가에서 빨래하던 한 노파가 무심히 하는 말을 듣고 돌아와 산성을 공격, 무수한 사람들이 살상당했던 것이다.

1631년(인조 9) 삼척도호부는 관할구역을 매곡(邁谷)·노곡(蘆谷)·덕번(德番)·북평(北坪)·박곡(璞谷)·미로(眉老)·소달(疏達)·장생(長生) 등으로 나누었는데, 옛 북평읍 지역에 해당되는 곳은 북평·박곡의 2개였다.

그 뒤 북평리는 1738년(영조 14) 북상(北上)·북하(北下)의 2개 면으로 나뉘었고, 1801년(순조 1) 다시 도상면(道上面)·도하면(道下面)으로 각각 개칭되었다. 박곡리는 1662년(현종 3) 견박면(見朴面)으로 개칭되었다. 1738년에는 일시 견상면(見上面)·견하면(見下面)으로 분리되었다가 통합되어 견박곡면(見朴谷面)으로 불렸다.

한편, 강릉대도호부내의 망상현은 1648년(인조 26) 망상리로 개칭되었다가 1705년(숙종 31) 다시 망상면으로 고쳐졌다. ≪여지도서 輿地圖書≫에 의하면 1759년 당시 삼척도호부 관내의 도상·도하·견박곡의 3개 면과 강릉대도호부 관내의 망상면, 즉 현 동해시의 총 가구수는 1,181호, 인구는 3,530명이었다.

 

〔근대〕

1895년 전국이 23개부로 개편될 때 삼척도호부는 강릉부 관할 삼척군으로 편제되었다가 이듬해 다시 지방관제가 개편되자 강원도 관할로 바뀌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삼척군 관내에 있던 도상·도하·견박곡의 3개 면이 통합되어 북삼면(北三面)으로 불리다가 1945년 북평읍으로 승격하였다. 한편, 강릉대도호부는 1895년 강릉부로 개편되었다가 이듬해 강릉군으로 바뀌었다. 그 산하에 있던 망상면은 1942년 묵호읍으로 승격되었다.

 

〔현대〕

1950년 6월 25일 북한 공산군이 동해·삼척·임원 등지에 상륙하여 무차별공격을 감행하였다. 이때 일대의 거의 모든 건물이 파괴, 소실되어 잿더미가 되고 적의 수중으로 떨어졌다가 이듬해 3월에 수복되었다. 1955년 강릉읍이 시로 승격하면서 강릉군은 명주군으로 개칭되었다. 1976년 명주군 묵호읍에 남부·중부·동부 출장소가 설치되었다.

1980년 4월 1일 삼척군 북평읍 일원과 명주군 묵호읍 일원이 통합, 동해시가 되었다. 1990년 부곡동 일부가 발한동으로 편입되었고, 1993년 단봉동·대구동 일부가 구미동으로, 어달동 일부가 묵호진동으로 편입되었다. 1995년에는 여운동 일부가 동회동으로, 대구동·구미동·추암동 일부가 구호동으로 편입되는 행정구역 조정이 있었다. 1998년 11월 18일 과소동(過小洞) 통폐합에 따라 15개 동을 10개 동으로 구역 조정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현재 동해시는 환동해권 중심도시로 동해항 항만시설 확충 등을 통해 항만산업도시로 성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