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기관사가 본 전장연 시위

등록 :2023-01-16 19:01수정 :2023-01-17 02:36

내 안에 주저함은 없었는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회원들이 지난 2일 오전 서울 지하철 4호선 삼각지역 승강장에서 지하철 탑승을 시도하는 가운데 경찰이 배치돼 있다. 연합뉴스
[왜냐면] 황철우 | 서울지하철 2호선 기관사
 
경기 남양주시 모란공원 들머리엔 ‘우동민 열사 여기 잠들다’라는 안내판이 놓여 있다. 고인은 이명박 정권 때 국가인원위원회 사무실에서 농성하다 급성폐렴으로 숨을 거뒀다. 당시 국가인권위는 ‘장애인 차별 폐지’를 외치는 중증 장애인의 농성을 중단시키기 위해 전기와 난방을 끊고 엘리베이터 가동을 중지하고, 심지어 음식물 반입까지 허용하지 않았다. 고인을 편안하게 모실 비용조차 없었던 이들은 고인의 삶을 잊지 않기 위해 남모르게 공원 입구 나무 밑에 유골을 묻었다.올해 우동민 열사 추모제는 서울지하철 4·6호선 삼각지역에서 진행됐다. ‘장애인도 지하철을 타고 싶다’는 외침을 뒤로한 채 열여섯 대의 지하철은 삼각지역에 서지 않고 그대로 지나갔다. 역사 내 승객이 갑자기 몰려서 안전을 고려한 조치도 아니다. 수천 명의 시위대가 운집한 것도 아니다. ‘장애인 이동권 보장’의 요구를 막기 위해서다. 오세훈 시장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가 수용한 법원의 강제조정도 거부하고 직원과 경찰을 앞세워 장애인 탑승을 가로막았다. 255일 동안 진행된 장애인 권리예산 입법을 위한 지하철 탑승 선전전이 강제로 중단되었다. 서울지하철에서 장애인 탑승이 거부당한 첫 사례다.
 
그동안 서울지하철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4호선 혜화역에서 시작한 ‘출근길 지하철을 탑니다’라는 탑승선전전은 시작부터 승객의 많은 불편함을 초래했다. 장애인의 승하차 시간이 길어짐에 따라 열차 지연운행으로 지각이 속출했고, 객실 안 혼잡도는 높아졌다. 당일 열차 운행을 담당하는 승무원은 1시간 이상 연장운행을 해야만 했으며, 열차 지연운행에 대한 승객들의 빗발치는 항의를 고스란히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지하철 역사 내 안내방송은 “전장연의 불법시위로 지하철 운행이 지연되고 있다”로 시작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전장연의 장애인 권리예산 입법 투쟁으로 지연되고 있다”는 설명으로 바뀌었다. 지하철을 이용해 출근하고 한두 번 갈아타는 것은 장애인이라고 비장애인과 다를 수 없으므로 불법을 운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200여 일 넘게 진행한 탑승선전전은 4호선에서 3호선과 2호선을 거쳐 다시 4호선으로 이어졌다. 서울교통공사도 달리 막을 방법을 찾을 수 없었다. 이렇게 길게 진행될 일이 아니었다. 서울시장과 정치권이 장애인의 목소리를 귀담아들었다면 벌써 해결될 일이었다. 그들은 오히려 뒷전에 물러나 있으면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갈등만을 부추겼다. 그사이 이용 승객의 불편과 직원들의 피로감은 높아졌다.장애인의 지하철 첫 시위는 2001년 2월 ‘서울역 선로 점거’였다. 당시 4호선 오이도역 장애인용 리프트 사고로 장애인 부부가 숨지고 다친 것에 항의해 장애인들이 안전기준 마련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하지만 사고는 멈추지 않았다. 2002년 5월 광화문역과 9월 을지로입구역에서 중증 장애인이 자신의 몸과 선로를 쇠사슬로 묶는 시위가 이어졌다. 지하철 계단 옆 휠체어 전용 리프트의 안전기준 강화와 지하철 역사 내 승강기 설치를 요구했다. 그때도 시민들의 반응은 우호적이지 않았다. 하지만 장애인 단체의 지속적 투쟁과 시민사회의 연대로 현재 엘리베이터가 설치된 서울지하철 역사는 90%를 넘어섰다. 절박한 투쟁으로 권리보장을 얻어낸 것이다. 지금은 장애인뿐 아니라 어르신, 임산부, 환자 등 교통약자도 줄을 서서 이용하고 있다. 장애인의 죽음과 투쟁으로 이 시설이 만들어지고 유지되고 있음을 아는 이들은 별로 없을 것이다.아픈 곳, 소리 나는 곳에 먼저 손을 내밀기는 쉽지 않다. 특히 사회적 약자의 몸부림과 투쟁이 나와 조직을 불편하게 하면 침묵하거나 무시한다. 전장연의 지하철 탑승선전전을 대하는 시선도 다르지 않다. “장애인 권리예산 입법 투쟁을 하필이면 지하철 출근 시간에 하냐?”는 볼멘소리 앞에서 이토록 긴 시간 동안 책임을 방기한 서울시장과 정치권을 질타하는 목소리는 조직되지 못했다. 서울시장이 지하철 무정차 통과를 시도할 때, 투쟁 때마다 교통약자의 이동권 보장을 외치던 서울교통공사노조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연대는 당장의 어려움과 곤란함을 뒤로한 채 함께 비를 맞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장애인 투쟁이 길어지는 이유는 함께 비를 맞는 것을 주저하는 우리 내부에 있는 것 같아 그저 미안하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탄압이 거세지는 지금, 우동민 열사를 기억하며 그들과의 연대를 더 굳세고 튼튼하게 해야 할 한 해가 시작됐다.
 

"출근 좀 하자"…계속된 전장연 시위에 직장인도 불만 폭발

머니투데이
  • 정세진 기자
  • 유예림 기자
  • 2022.12.02 11:18
 
 
"하지 마세요. 대통령실 앞에서 하라고요! 지금 몇 개월째야 시민들 볼모로 해서 대통령실 앞에 가서 하라고."

2일 오전 7시 30분쯤부터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가 출근길 지하철 탑승 시위를 벌이면서 서울 지하철 4호선이 지연 운행됐다. 박경석 전장연 상임대표와 회원 70여명은 이날 삼각지역 양방향 승강장에서 지하철에 탔다 내렸다를 반복하며 내년도 예산안에 장애인 권리예산을 확대 편성할 것을 요구했다. 지난해 12월부터 이어진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 탑승시위는 이날로 47번째를 맞이했다.

4호선 열차에 들어선 박 상임대표는 '마지막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가 되게 해달라고 했다. 박 상임대표는 숙대입구역 방향 승강장에서 지하철 승하차를 반복하면서 오전 9시쯤 4호선 열차에 올라 "법은 공평하다 하지 않았냐. 그런데 왜 이렇게 지독히 불평등한 시민으로 살아가야 하냐"며 "이동하고 교육받고 살아갈 권리를 왜 장애인이 함께 누리기 힘든 거냐"고 말하고 열차에서 내렸다.
 

이 과정에서 일부 충돌도 있었다. 전장연 측은 오전 9시쯤 경찰이 선전전을 벌이려는 회원들의 휠체어를 억지로 들어 옮겼다고 주장했다. 시민들은 박 상임대표에게 욕설을 하기도 했다.
현장에서 만난 전장연 활동가 정모씨는 "신용산역 방면에서 지하철을 탑승한 뒤 내리고 5분~10분 정도 선전전을 하고 있었는데 경찰이 그걸 못하게 했다"며 "탑승자체를 못하게 하려고 줄을 서 있는 휠체어 탄 회원들을 억지로 옮기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정씨는 "한 명씩 옮기기 시작했고 우리는 그걸 막으려다 보니 갈등이 시작됐다"며 "경찰이 '끌어내'라고 하는 말을 들었다"고 주장했다.
이날 오전 9시쯤 서울교통공사 직원들이 전장연 회원들의 휠체어를 잡자 전장연 활동가들은 큰 소리로 '밀지 말라, 왜 자꾸 미냐'고 말했다. 이에 서울교통공사 직원들은 "나오세요"라며 고성이 오고 갔다.

박 대표와 활동가들이 열차에 탑승해 발언을 할 때면 삼각지역장은 역내 방송을 통해 "고의적인 열차운행 방해는 철도안전법에 따라 처벌될 수 있음을 고지한다"며 "전장연은 시민들의 불편함이 없도록 정시 안전 운행에 협조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서울 용산경찰서 관계자도 승강장 내에서 전장연 회원들을 향해 "용산역 업무 방해는 죄에 따라 처벌될 수 있다"며 여러 차례 경고 방송을 했다.

일부 시민들은 전장연 회원을 향해 욕설을 하거나 '출근 좀 하자'며 소리치기도 했다. 서울 도봉구 쌍문동에 거주하는 박모씨는 "쌍문역에서 (오전) 7시 50분에 탔는데 삼각지에 내리니까 (오전) 10시였다"며 "회사에 늦게 출근한다고 알렸고 추가 근무해야 한다"고 했다. 박씨는 오전 9시까지 삼각지역 인근 산후조리원으로 출근해야 했지만 이날 전장연 시위로 연장 근무를 하게 됐다고 말했다.

탑승 시위에 앞서 이날 박 상임대표는 "이제 장애인권리예산이 법적으로 국회에서 논의할 수 있는 마지막 단계에 있다"며 "상임위에서 통과된 예산안을 여야 원내대표가 책임지고 반드시 통과시켜 달라"고 말했다.

이어 "같이 출근길에 탔던 동료 11명이 불구속 기소됐다는 소식을 들었다"며 "진짜 경찰이 조사해야 될 사람은 21년째 외쳐도 법의 권리를 보장하지 않는 자들"이라고 했다.

경찰은 이날 오전 삼각지역에 250명의 경력을 배치했다. 경력은 6호선 환승통로와 4호선 사당방면 10번, 9번 승강장에 집중 배치됐다.

한편 전장연은 지난해 세계 장애인의 날을 맞이해 12월2일부터 2박3일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역에서 공덕역까지 이동하는 출근길 시위를 처음으로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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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 ( 약칭: 장애인차별금지법 )

[시행 2017. 7. 26.] [법률 제14839호, 2017. 7. 26., 타법개정]

        제1장 총칙

 제1조(목적) 이 법은 모든 생활영역에서 장애를 이유로 한 차별을 금지하고 장애를 이유로 차별받은 사람의 권익을 효과적으로 구제함으로써 장애인의 완전한 사회참여와 평등권 실현을 통하여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구현함을 목적으로 한다.

 제2조(장애와 장애인) ①이 법에서 금지하는 차별행위의 사유가 되는 장애라 함은 신체적ㆍ정신적 손상 또는 기능상실이 장기간에 걸쳐 개인의 일상 또는 사회생활에 상당한 제약을 초래하는 상태를 말한다.

②장애인이라 함은 제1항에 따른 장애가 있는 사람을 말한다

<중략>

이동권 보장되는 새해가 되길 바란다

입력 : 2023.01.16 03:00 수정 : 2023.01.16 03:03
박한희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변호사

지난주 월요일 새벽 재난문자 알림에 잠을 깼다. 강화도 인근 지진을 알리는 문자를 보며 강화에 사는 친구가 생각났다. 다행히 함께 있는 단체채팅방에서 괜찮다는 글이 올라왔고, 안심하며 다시 잠이 들었다.

박한희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변호사

코로나19 확산 이후 재난문자에 익숙해진 지 오래이다. 확산 초기에는 감염인의 개인정보를 지나치게 자세하게 알리는 등 감염병 예방과 무관한 정보들이 마구 오는 것에 문제제기도 있었다. 이에 행정안전부에서는 2021년 4월 ‘재난문자방송 기준 및 운영규정’을 마련하여 발송 근거와 체계를 정비하였다. 그럼에도 시시때때로 울리는 알람을 볼 때면 대체 기준이 무엇인지, 지침에 맞게 운영되고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들곤 한다. 그리고 최근에는 보내서는 안 되는 문자가 오기도 했다. 바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의 지하철 시위에 대한 재난문자다.

1월2일 오후 9시4분, 나를 포함해 많은 시민들이 ‘4호선 삼각지역 상선 당고개 방면 전장연의 지하철 타기 불법시위로 무정차 통과하고 있다’는 내용의 재난문자를 받았다. 이를 처음 보았을 때 든 생각은 ‘이게 재난문자로 보낼 내용인가’ 하는 황당함이었다. 그리고 잠시 시간이 지나며 서울시의 이 같은 행태에 분노가 올라왔다.

불법시위라는 법적으로 근거 없는 용어 사용부터, 지하철 시위가 재난문자방송 기준 및 운영규정에 따라 지방자치단체가 문자를 보낼 수 있는 자연재난, 사회재난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해당 재난문자의 문제점은 분명하다. 그런데 내가 화가 난 것은 단지 법적 근거가 없이 문자가 보내졌기 때문이 아니다. 장애인이 이동권이라는 기본적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고 시위를 해야 하는 이 상황을 만든 서울시가, 무정차, 손해배상 청구, 재난시위 등으로 전장연을 계속 낙인찍는 무책임한 태도 때문이다.

지난해 8월 국토교통부는 ‘2021년 교통약자 이동편의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해당 조사에서 장애인이 고령자, 임산부, 어린이 등 다른 교통약자와도 구분되는 특징은, 대중교통 이용률이 낮다는 것이다. 가령 지역 내 이동 시 주로 이용하는 교통수단을 물었을 때, 비교통약자나 임산부, 고령자의 경우 약 60%가 버스라고 답한 반면, 장애인은 40.4%에 불과했다. 이런 결과가 장애인들이 대중교통 이용을 꺼려서는 당연히 아니다. 장애인이 차별 없이 이용 가능한 저상버스 등 편의시설이 갖추어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노베이션 서밋 2023

 

지하철 역시 마찬가지이다. 모든 지하철 역사에 100% 엘리베이터 설치는 2004년 이명박 시장 때 서울시가 약속한 사항이다. 2005년에는 모든 교통수단, 여객시설 및 도로를 차별 없이 안전하고 편리하게 이용하여 이동할 수 있는 권리, 즉 이동권을 보장한 교통약자법이 제정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서울시의 약속 이행은 번번이 미루어졌다.

최근 서울교통공사가 전장연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법원은 ‘서울시가 2024년까지 전 역사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기로 한다’는 내용을 담은 조정 결정을 내렸다. 그럼에도 서울시와 교통공사는 전장연의 시위만을 문제 삼으며 이의를 제기했고, 추가로 6억원의 손해배상 소까지 제기했다. 이동권을 보장해야 할 자신의 책무는 외면한 채, 이를 공론장에서 해결하지 않고 오히려 전장연 시위를 낙인찍어온 것이 그간 서울시가 보여온 태도였다. 1월2일의 재난문자는 이를 단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다가오는 22일은 설날이다. 그리고 이날은 22년 전 지하철 4호선 오이도역 휠체어리프트가 추락하여 70대 노부부가 사망한 참사가 발생한 날이기도 하다. 이 참사는 장애인들이 이동권 보장의 필요성을 외치며 연대를 결성하고 투쟁을 활발히 전개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럼에도 20년이 넘게 지난 지금까지도 응답 없는 외침을 언제까지 반복해야 하는가. 2023년이 더 이상 차별과 혐오가 아닌 모든 사람의 이동권이 보장되는 한 해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