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리한 파리지앵의 휴식 - 조르주 쇠라, '그랑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

[J플러스] 입력 2015-01-26 10:27:48
 

미스터리한 파리지앵의 휴식 - 조르주 쇠라, <그랑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



좀처럼 파악하기 힘든 비밀스러운 사람

우리에게 조르주 쇠라(Georges Pierre Seurat(1859.12.2-1891.3.29)는 점으로 그림을 그린 점묘법 화가 정도로만 기억된다. 19세기 후기인상주의를 대표하는 작가치고는 알려진 에피소드도 거의 없다. 부유한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난 신중하고 소심한 성격의 쇠라는 다소 외톨이 같이 생활했는데, 가족과의 대화도 별로 없을 만큼 내성적이었다.(그는 마들렌느라는 여인과 함께 살면서 아들도 하나 있었는데 이 모든 걸 어머니에게 조차 비밀로 했다고 한다.) 동료 화가 드가(Edgar De Gas)는 언제나 중절모에 빳빳하게 다림질이 잘 된 양복을 입고 다니는 쇠라에게 공증인이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고, 비술비평가 로저 프라이(Roger Fry)(로저 프라이는 쇠라 사후 1910년에 <마네와 후기 인상주의(Manet and Post-Impressionism)>라는 전시를 열어 쇠라, 세잔, 고갱, 고흐 등을 영국에 소개한 인물이다.) ‘다른 행성에서 지구로 떨어진 존재라고 쇠라를 표현한 바 있다. 그만큼 쇠라의 짧은 인생은 그의 친구들조차 그를 알 수 없는 사람이라고 느낄 만큼 비밀스럽고 베일에 가려져 있다. 1884년 쇠라는 파리 교외의 그랑 자트(Jatte는 불어로 얕은 볼이나 세면기를 뜻하는데 섬의 모양에서 나온 이름이다)섬의 모습을 그리기로 하고 작업을 시작한다. <그랑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는 점묘법이라는 색채학 개념을 바탕으로 한 과학적이고 혁신적인 회화 방법을 사용하였지만, 그 주제는 제목처럼 일상적이고 소박하다. 하지만 이 작품을 당대 생활상을 점묘법으로 그린 작품이라고 단순히 해석하기에는 그 안에 너무나 많은 의미층을 지니고 있다.





수수께끼 같은 일요일 오후



그랑드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png

조르주 피에르 쇠라, 그랑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 1884-1886, 캔버스에 유채, 207.5x308cm,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



햇살이 파리의 센강을 눈부시게 반짝이며 내리쬐는 일요일 오후. 여가를 보내려고 그랑 자트 섬으로 모여든 사람들이 강둑에 듬성듬성 앉아 저마다 휴식을 취하고 있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그랑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는 분명 많은 인물이 있는 야외 풍경을 그린 것 임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고요하다. 이것은 마치 사람과 풍경을 소재로 한 정물화같다고나 할까. 2×3m의 보기 드물게 커다란 화폭 속의 사람들은 하나같이 얼어붙은 것처럼 차갑고 경직되게 그려져 있다. 그림 중앙에 흰색 원피스를 입은 소녀만 제외하고는 거의 모두 옆모습을 하고 있고, 서있는 자세도 움직임이 적은 정자세가 대부분이다. 이것은 쇠라가 고대 이집트 미술(이집트 미술은 사람얼굴은 라인을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옆모습으로 그리고 자세는 똑바로 서있는 수직적이고 정형화된 양식을 가지고 있다.)의 영향을 받아 순간의 기록을 고전적 영속성으로 표현하고자한 것으로 해석된다. 그림을 자세히 보면 등장인물들은 서로 함께하고 있는 듯 보이지만 각 개인별로 고립되어 있고, 양식화된 형태와 표정 없이 가려진 얼굴은 몰개성적으로 보인다. 쇠라는 개인을 묘사하려기보다는 사회계층을 유형별로 등장시키면서 현대사회에서 고립되어가는 인간의 심리와 인공적인 속성을 나타내고자 한 것이다.

등장인물들에 대한 해석도 여러 가지이다. 그림에는 48명의 인물이 있고, 8대의 보트, 강아지 3마리, 원숭이 한 마리가 등장한다. 먼저 그림 오른쪽의 검은 양산을 쓴 여인은 코케트라고 해석되는데 요즘 말로 신분이 높은 요염한 여자라는 뜻으로 옆의 남자는 그녀의 부유한 정부일 것이다. 그녀가 애완동물로 데리고 있는 원숭이도 눈길을 끄는데, 원숭이는 그 당시 인기 있는 애완동물이기도 했지만, 매춘부를 지칭하는 속어이기도 했다. 그림 왼편 중앙에서 오렌지컬러 의상을 입고 홀로 낚시를 하는 여성 또한 몸을 파는 여성으로 해석된다. 그 이유는 프랑스어로 낚시를 하다(pecher)’죄를 짓다(pecher)’라는 단어와 스펠링이 비슷해서인데 쇠라시대에 유행한 말장난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쇠라가 이런 뜻으로 그림을 그렸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오히려 그림의 의도나 해석에 대해 침묵한 쇠라 때문에 수 십 년을 연구해도 그림이 말하고자 하는 답을 얻지 못한 현대인이 이끌어낸 이야기일수도 있다.

쇠라는 당시 인상주의 화가들이 스케치처럼 임의적으로 작품을 제작하는 것에 비해 매우 체계적이고 계획적인 과정을 통해 단단히 작품을 구성했다. 쇠라는 <그랑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2년간 작업했는데, 최종작품을 위해 60여점의 습작으로 예비 작업을 했다. 그가 남긴 습작을 보면 인물의 배치와 관계, 전체적인 배경 풍경의 설정 등 작품을 위해 끊임없이 연구를 거듭한 걸 알 수 있다. 그럼에도 이 작품에는 원근법의 불일치가 발견되는데, 이것은 쇠라의 작업실이 커다란 캔버스에 비해 너무 작아서 충분한 거리에서 작품을 살펴보며 작업하지 못했기 때문이라 여겨진다. 하지만 쇠라는 이 거대한 작품을 점묘법이라는 실험적인 방법으로 끈기 있게 완성해 나간다. 그림에서 보이는 반짝이는 강물과 햇볕이 풀과 나뭇잎에 닿아 부스러지듯 눈부시게 표현된 효과는 일일이 수없이 많은 점을 칠해서 얻은 것이다. 2×3이라는 거대한 화면을 일일이 그 작은 점으로 찍어 채우는 과정은 생각만 해도 노동, 아니 고행에 가깝다. 쇠라는 화학자인 미셸 외젠 슈브린의 색채의 동시적인 대비법칙”(색채의 인식은 그 색채 근처의 색으로부터 영향을 받는 다는 이론으로 , 보색끼리의 색채가 함께 있으면 두 색채가 모두 더욱 선명하게 인식된다는 주장)에 영향을 받아 연구하여 이러한 작업방식을 생각해낸다. 쇠라는 컬러를 팔레트에서 섞는 대신, 순수한 원색의 점들을 찍어 대비시키면 감상자의 눈에서 생생하게 혼합되어 보여 지게 된다고 믿었다. 이론대로라면 그림 전체의 색점은 멀리서 보면 함께 융화 되어 보여야 하지만 사실상 개개의 색점은 결코 완전히 섞여 보이지 않았다. 대신 붓으로 칠한 그림과는 확실히 차별화되는 독특한 아우라가 있는 작품이 탄생했는데, 쇠라는 이 기법이 마음에 들었는지 그 이후로도 계속 이 방법으로만 그림을 그렸다. 쇠라가 추구한 과학적인 회화제작법은 매우 힘든 노동과 오랜 작업시간을 요하는 것이어서 그는 10년의 작가생활동안 오직 7점의 작품만을 남겼다. 작품에 대한 열정과 정성이 너무나 과했던 까닭일까. 18913월에 디프테리아로 사망했을 당시 그의 나이 32세였다. 파리의 전위 예술가들은 혁신적이고 창조적인 방법으로 독자적인 예술의 길을 걸었던 쇠라의 죽음을 안타까움과 슬픔으로 추모했으며, 동시대 화가인 카미유 피사로(Camille Pissarro)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그를 따르던 사람들은 비탄에 잠겨있다. 그의 죽음은 예술계에 엄청난 손실이다.”





그 후 이야기

<그랑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1886, 마지막 인상주의 전시이기도한 제8회 인상주의 화가전에 전시된다. 작품의 크기와 혁신적인 기법이 부담스러웠기 때문인지 출품 작가들은 <그랑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옆에 함께 걸리는 것을 거부했다고 한다. 결국 <그랑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는 마지막 전시실에 홀로 걸렸고 소수의 옹호자를 제외하고는 논평에도 거의 언급되지 않았다. 그러나 현대미술이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던 미국의 시선은 달랐다. 부유한 수집가이며 시카고 미술대학의 보관인이기도 했던 프레드릭 클레이 바틀렛은 <그랑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의 대담한 혁신성과 우수함을 알아채고는 바로 사들인다. 구매한 그림에 너무나 만족한 바틀렛은 시카고 미술대학 미술관 관장에게 쓴 편지에 운이 좋게도 프랑스 현대회화에서 최고라고 생각되는 그림을 얻었다네!” 라고 썼다고 한다. <그랑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는 그렇게 바틀렛과 함께 대서양을 건넜다. 뒤늦게 프랑스 현대회화의 대표작이 미국으로 건너간 걸 후회한 프랑스는 <그랑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를 바틀렛이 구매한 금액보다 더 높은 가격으로 다시 구매하고자 했지만 그림의 가치만 더욱 올리게 했을 뿐 미국으로부터 그림을 돌려받지는 못했다. <그랑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1920년부터 지금까지 시카고 미술대학에 소장되어있으며, 시카고미술대학뿐만 아니라 시카고를 대표하는 상징이 되었다. <그랑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는 각종 광고나 단행본의 표지, 생활용품에 이르기까지 많은 분야에서 그 이미지가 재생산되며 현재에도 끊임없이 회자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