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중독사회를 넘어서]송전탑 주민 “수도권에 전기 보내려 마을이 제물로”

경기 광주·횡성·울진 | 김희연 기자 egghee@kyunghyang.com

입력 : 2015-05-19 22:05:40수정 : 2015-05-19 22:13:45

ㆍ울진에서 횡성 거쳐 가평… 300km 횡단하는 송전선로
ㆍ농토·마을 위로 지나가 주민들 피해·반발 불러

‘전기는 눈물을 타고 흐른다….’

송전탑 건설에 반대하며 10년간을 싸워온 밀양 할머니들이 시위 현장에서 들고 있던 손팻말에 쓰인 문구다. 스위치만 누르면 쓸 수 있는 전기는 편리하고 값도 싸지만 집과 사무실에 도달하기까지의 여정은 간단치 않다. 대도시에서 쓰는 전기의 대부분은 수백㎞ 떨어진 곳에서 송전선로를 타고 온다.

경북 울진 바닷가에서 만들어져 강원 횡성 등을 거쳐 경기 가평에 도달하는 ‘765㎸ 초고압 송전선로’. 송전탑이 지나는 300㎞ 구간 곳곳에서 바벨탑 같은 거대 철탑이 논을 가르거나 집과 축사 옆에 들어서 주민들의 일상을 앗아간 실상을 목격할 수 있었다. 전기가 눈물을 타고 흐르는 이유는 여기에 있었다.

원자력발전소가 밀집한 경북 울진의 야산에 세워진 송전탑들. 이곳에서 생산된 전력을 수도권 등에 송전하기 위해 세운 거대한 인공 구조물들이 살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 김영민 기자 viol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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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탑공화국의 오명

지난달 14일 찾은 경기 광주 삼합리에는 ‘마징가 제트’로 불리는 높이 100m가량의 765㎸ 초고압 송전탑이 마을 입구에 버티고 서 있었다. 2006년 송전탑이 생기면서 농토를 잃거나 마을을 등지는 주민이 속출했다. 송전탑 건설을 놓고 찬반으로 갈리면서 주민 간 갈등의 골도 깊어졌다. 그걸로 끝난 게 아니었다. 한국전력공사가 울진 원전에서 만든 전기를 수도권에 보내기 위해 2019년까지 765㎸ 송전선로와 신경기변전소를 건설하기로 하면서 삼합리 등 주변 마을이 다시 후보지가 된 것이다. 삼합리 이장 윤천상씨(63)는 “송전탑을 또 짓는다니 마을이 아예 제물이 된 느낌”이라고 말했다. 70·80대 고령자가 대부분인 주민들은 3만원씩 추렴해 반대 현수막을 내걸었다. 삼합리 옆 유사리 주민인 어영규씨(56)는 “농사일을 제쳐두고 엉뚱한 데 힘을 빼고 있으니 속이 시커멓게 탄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후보지 선정과 관련한 “회의록을 공개해달라”고 요구했지만 한전은 묵묵부답이다.

9년 전 송전탑이 세워질 당시 주민들은 초고압이 뭔지, 어떤 영향이 미치는지 알 도리가 없었다. 주민의견을 수렴하거나 설명하는 자리조차 없었다. 이후 ‘밀양의 비극’을 계기로 송전탑의 문제점에 눈뜨게 됐다. ‘철탑공화국 거미줄 같은 송전선로 밑에서 우리는 살 수 없다’ 마을 입구에 주차된 소형 트럭에 붙어 있는 문구다. 농작물을 실어 날라야 할 트럭이 시위용으로 서 있었다.

■ “먼 곳에서 고통받는 사람 있는 거 알아야”

강원 횡성에는 이미 80개의 송전탑이 들어서 있다. 횡성도 새 765㎸ 송전탑 후보지로 발표됐다. 후보지인 공근면 대책위원장 조병길씨(52)의 안내로 부창리 마을에 들어서니 논 한복판에 송전탑이 서 있었다. 시야가 닿는 곳곳에 논밭을 가리지 않고 송전탑이 솟구쳐 있었다. 횡성환경운동연합 김효영 사무국장은 “송전탑이 세워진 후로는 벌이 싹 사라졌다”며 혀를 찼다.

지난달 15일 도착한 경북 울진군 북면에는 한울원전이 들어서 있다. 북면 신화리 마을회관은 반경 1㎞ 거리에 원전 6기가 있고, 4기가 추가 건설될 예정이다. 지난 30여년간 방사능과 전자파 공포에 시달려온 주민들은 집단이주를 요구해왔지만 묵살됐다. 이장 장헌달씨는 “마을 기능이 상실된 곳에서 희망 없이 살고 있다”며 “제발 주민을 속일 생각 말고 모든 것을 투명하게 진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화리에서 평생을 살아온 장헌수 할아버지(80)는 집 뒤 송전탑을 가리키며 말했다. “우리는 이게(전기) 어디로 가는지도 잘 몰라. 동네라도 피해서 탑을 세워야 하는데 사방으로 에워싸고 있잖아. 이상도 하지. 마을에서 후두암으로 세상을 떠난 사람들이 10명이 넘어. 다 되돌려 놓았으면 좋겠어, 옛날로.” 마을회관에서 만난 주민은 “도시 사람들이 편리하게 살기 위해 대신 고통받는 사람들이 있다는 거, 이거 하나는 분명히 알아야 한다”고 했다. 송전탑을 반대하는 주민들은 목소리 큰 싸움꾼도, 대단한 대가를 바라는 이들도 아니었다. 올해 3월 말 현재 전국에는 4만851기의 고압 송전탑이 들어서 있다.

▲ 착한 전기 (1) 전기의 단위
전력은 ‘W’, 전력량은 시간당 생산 전력 ‘Wh’


TV를 보는 데 필요한 전력은 평균 130.6W다. 가로 100㎝, 세로 60㎝ 크기의 태양광 패널 1장이 100W의 전력을 생산하니 2장이면 TV를 볼 수 있다. 전기에너지의 크기를 가리키는 전력은 와트(W), 킬로와트(1㎾=1000W), 메가와트(1㎿=1000㎾), 기가와트(1GW=1000㎿) 등으로 표시된다.

일정 시간에 생산·소비되는 전기에너지의 양을 ‘전력량’이라고 하는데 100W짜리 태양광 패널이 1시간 동안 생산한 전력량은 100와트시(Wh)가 된다. TV를 6시간 동안 켜두면 소비전력량은 783.6Wh다. 한국의 4인 가정은 한 달 평균 337kwh의 전력량을 사용한다.

고리원전 1호기의 지난해 총 발전량은 4538GWh이다. 1.6㎿급 발전기 24기가 설치된 경북 영덕풍력발전단지의 연간 발전량은 96.68GWh이다.

<이재덕 기자 du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