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주민 80%가 장사 경험…`장마당 세대`가 시장화 첨병

자본주의의 상징인 `賃노동` 이미 보편화…장마당 매대 등 거래하며 사유권도 형성
시장화 방치할게 아니라 적극 개입 주문…개인예금 보장해줄 상업은행 설립 필요

  • 최희석 기자
  • 입력 : 2015.10.25 18:20:09
 
◆ 북한 시장화 보고서 / 통준위 '北 시장화 지원' 보고서 단독입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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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직속 통일준비위원회가 발주한 '북한 시장화' 보고서는 현재 북한의 경제를 '돌이킬 수 없는 시장화의 길의 걷고 있는 상태'로 평가했다.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이 탈북자들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2011~2014년 탈북자의 약 70%는 장사를 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 기간에 탈북자의 약 26%는 타인을 고용한 사례가 있는 것으로 조사돼 자본주의의 특징인 임노동(임금을 받고 노동력을 제공) 현상이 만연한 것으로 나타났다.

북한 시장화 보고서는 "북한의 주민들은 이미 장마당(시장의 일종), 매대(개인판매대) 등을 거래하면서 유사 사유권의 형성을 체험하고 있다"면서 "북한 가계 경제의 80% 이상을 배급이 아닌 개인적 경제활동으로부터 나오는 소득에 의존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현재 북한의 경제는 계획과 시장이 공생하고 있으며, 미용실·식당·리어카 짐꾼일·삯일·고리사채업 등에서 자영업이 등장하고 사적 자본축적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현재 북한은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 부과하고 있는 법인세, 부가가치세 외에 직접세인 소득세까지 부과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북한의 최근 발표한 6·28방침(2012년 6월 28일 발표한 인센티브 제공 방침), 포전담당책임제(농장에서 가족 단위로 경작하는 농업경영기법), 5·30조치(기업 등에 자율적 경영권을 부여) 등도 이같이 변화된 북한상을 반영한 결과라는 것이다. 보고서는 "특히 김정은 정권 출범 이후 '우리식 경제관리 방법'이라는 모토 아래 시행되고 있는 다양한 조치는 북한 당국이 주민들의 변화된 생활양식을 따라가며 균형을 잡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보고서는 이 같은 분위기를 반영해 우리의 대북 경제전략도 북한의 시장화를 방치하던 입장에서 벗어나 적극적으로 개입할 단계에 이르렀다고 진단했다. 보고서는 "장마당 세대 활용과 시장의 확산을 통해 북한이 개혁·개방의 길로 나설 수 있도록 유도할 필요성이 제기된다"고 결론지었다. 문제는 이 같은 북한 시장화 방안이 실제로 실행될 수 있느냐다. 현실적으로 북한 당국의 협조와 승인 없이는 추진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의 전략이 사실상 북한의 체제 변화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이는 자칫 북한 당국을 자극할 수도 있는 대목이다.

전문가들은 "남북 관계도 한 단계 진화할 때가 됐다"고 충고했다. 북한의 경제환경이 변하고 있는 만큼 기존의 인도적 지원과 남북 협력의 틀도 변해야 한다는 것이다. 보고서에서 "북한 자영업자들의 가장 큰 애로사항은 사업자금 마련, 단속·뇌물, 상품원자재 확보, 물류 등"이라며 "북한에서 자영업을 제도화된 합법의 공간으로 끌어내는 것이 관건"이라고 지적했다. 보고서 작성에 참여한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남북 관계가 더 진전돼야 가능한 방안들"이라면서도 "경제적 접근을 통해 긴장을 완화시키고 북한의 경제 수준을 끌어올리면 잃을 것이 생긴 북한 당국도 더 신중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보고서에는 개성공단을 활용한 시범사업 아이디어도 포함됐다. 한국산 초코파이와 샴푸가 개성공단을 통해 북한에서 인기리에 유통되고 있는 것처럼 생필품·소비재를 북한 시장에 확산시키는 루트로 개성공단을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개성공단 우수직원에 대해서는 금전적 포상 대신 장차 자영업자로 나설 수 있도록 창업교육 및 지원을 실시하자는 아이디어도 냈다.

보고서가 상당 부분을 할애한 북한 관광산업 육성 방안도 '진화된 남북 관계'를 전제로 한 것들이다.
 
보고서는 "관광은 사회주의 국가들의 개방과 시장화 수준 제고에 가장 효과가 높은 사업"이라며 "조속한 시일 내에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관광을 재개하고, 이미 합의된 백두산 관광도 실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향후 북한 동서해안에 크루즈 노선을 개설하는 방안 등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이를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남북한 간 금강산 관광 재개가 선행돼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통준위 측은 보고서가 제안한 정책들의 채택 가능성에 대해서는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서호 사무국장은 "북한 시장화 지원방안 관련 보고서를 통준위가 발주한 것은 맞다"면서도 "아직 통준위의 정식 정책으로 채택된 것은 없고 참고용일 뿐"이라고 확대해석을 경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