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이 자라는 속도를 따라, 나뭇잎이 물드는 계절을 따라, 그 자연스러운 흐름을 따라 자연을 이해하고 느끼며 표현한다. 마당 위로 자란 풀 한 포기 함부로 무시하지 않고, 몸을 낮춰 가만히 소통하고 또 소통한다.

“생태미술이란 자연 속에서 오감(五感)을 열어 자연을 주체적으로 이해하고 자유롭게 표현하는 과정입니다. 완성작을 향해 몰두하기보다는 보고, 만지고, 느끼는 표현 과정을 통해 자연과 세상의 질서를 배우는 것이죠. 아무것도 강요하지 않으며, 함부로 지시하지 않습니다. 무엇을 어떻게 표현할지는 스스로 깨닫습니다. 그 깨달음 속에 자신이 잘할 수 있는 것을 알게 되고, 잘해내는 자신을 바라보며 자존감은 자랍니다. 또 아이들은 자연을 관찰하고 생각하면서 마음으로 소통하는 법을 배우게 되죠. 꼭 너른 자연이 아니더라도 좋아요. 작은 화분 하나, 텃밭 한 뼘이라도 모두 생태미술의 소재이자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어떤 자연이든 아이들에게는 좋은 친구이자 훌륭한 스승이 되어줄 겁니다.”


생태미술가로서 전원의 삶을 선택하신 계기가 있으신지요?
수원에서 태어나서 평생을 서울에서 살았어요. 미술 교습소를 운영했던 당시, 수업하다가 답답하면 뒷산에 올라 자연 속에서 수업하곤 했어요. 뒷산을 찾을 때마다 아이들이 자꾸 꽃과 나무 이름을 물어보니까 나도 궁금해지는 겁니다. 그래서 공부를 좀 해봐야겠다는 생각에 여성환경연대를 찾아가 생태교육을 받았어요. 그렇게 생태교육을 받다 보니, 이걸 미술교육에 접목해봐야겠다는 욕심이 또 생기더라고요. 그렇게 생태미술을 시작하게 된 것이고, 조금 더 가까이에서 자연을 관찰하고 연구하면 도움이 될 것 같아 아예 시골로 들어오게 된 겁니다. 한창 시골 냄새 풍기는 집을 구하던 때 우연히 충남 홍성에서 무상으로 쓸 수 있는 빈집을 소개받게 되었고요.

생태미술이란 무엇이며, 어떤 방식으로 아이들을 가르치시나요?
아이들이 자연 속에서 오감을 활용해 무언가를 표현하는 것입니다. 사실 ‘생태(生態)’라는 말 자체의 의미가 상당히 광범위해요. 단순히 자연적인 재료를 가지고 놀면 생태미술이라고 하는 분도 있지만, 저는 조금 달라요. 자연의 과정을 이해하고 배우는 모든 행동을 생태미술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아름다운 자연을 누리는 생활 자체가 생태미술인 거죠. 삶 속에서 자연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그냥 마당에 꽃을 심어두고 일 년 내내 그 꽃을 관찰하며 변화를 이해하는 것도 생태미술이 될 수 있죠. 그 아름다움을, 자연의 흐름을 생각하며 내 안에 깊이 받아들이는 겁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일반 미술교육과의 차이점을 듣고 싶습니다.
미술교육 하면 결과물, 즉 완성작을 목적으로 두잖아요. 생태미술은 그 과정에 의미를 둡니다. 보통의 미술교육은 구도가 어떻고 공식이 어떻고 일정한 틀 안에서 교육하는데, 제가 추구하는 생태미술은 재료를 어떻게 활용할지 그 방법 정도만 알려주고, 그냥 표현하게끔 내버려둡니다. 이래라저래라 하지 않죠. 되도록이면 도구도 사용하지 않습니다. 이렇다 보니 같은 재료라도 아이마다 표현 방식은 모두 다릅니다. 창의가 실현되는 것이죠.


생태미술이 아이들 정서에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은 무엇인가요?
과정을 중요시하다 보니 교육이 일종의 치료가 되기도 합니다. 주로 발달장애아, 지체장애아, 성격장애아를 가르치는데, 늘 선생님들의 지시를 받다가 별다른 지시가 없으니까 처음에는 아이들이 조금 힘들어하기도 했어요. 어찌해야 하는지 판단이 안 서는 거죠. 그런데 일 년쯤 지나니까 알아서 창의적으로 행동하더라고요. 어떻게 했을 때 칭찬받는지도 알게 되고요. 그게 아이들의 자존감 회복에 도움을 줍니다. 자기가 잘하는 걸 스스로 알아가는 과정에서 정서가 긍정적으로 발전하는 것이죠. 또 자연 속에서 수업하기 때문에 안정된 마음을 유지할 수 있고, 말이 아닌 마음으로 소통하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시골과 달리 도시는 자연환경이 부족합니다. 도시에서도 생태미술을 누릴 수 있을까요?
생태미술은 꼭 깊은 자연 속으로 나가야 하는 건 아니에요. 아파트 단지에도 나무 가 있고, 베란다 화단에도 꽃이 피었습니다. 나무 한 그루, 꽃 한 송이뿐이라도 이를 일 년 내내 가까이에서 관찰하고 매만지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문만 열면 자연이 드넓게 펼쳐지는 시골이라면 더할 나위 없지만, 작은 자연이라도 곁에 있다면 그것이 생태미술의 소재가 되고, 감각의 도구가 되어줄 수 있는 겁니다. 잡초 한 포기라도 좋아요. 어디서라도 자연을 매만지고 바라보고 느끼는 게 중요합니다.

본명 대신 늘 작은산이라는 예명을 사용하시죠?
예전 여성환경연대에서 생태교육을 받을 때 팀을 꾸려 수업했는데, 우리 팀 이름이 작은산이었어요. 교육을 마친 후, 그 팀 이름을 제 닉네임으로 쓰게 된 거죠.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작은산이 만만하잖아요(웃음). 의미를 부여하자면, 작은 동산처럼 아이들에게 친근한 존재가 되고 싶어서랄까. 아이들에게도 선생님 말고 그냥 작은산이라고만 부르라고 하죠. 처음에는 차마 작은산이라고 못하고 ‘작은산 선생님’이라고 불러요. 그러다가 친해지고 익숙해지면 작은산이라고 부르기 시작하죠. 그런데 놀라운 건 5, 6학년쯤 돼서 머리가 좀 커지면 다시 스스로 작은산 선생님이라고 존칭을 사용하기 시작해요. ‘내가 너의 선생님이다’라고 주입하지 않아도 존중받을 행동을 보여주면, 아이들이 알아서 선생님으로서 존경하기 시작한다는 말입니다. 나중에는 아이들이 “작은산은 결코 작은산이 아니에요”라고 말하는데 짜릿한 감동이 느껴지더라고요. 관계 속에서 스스로 이해하고 느끼는 거죠.

선생님은 건강한 교육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우리가 생각하는 교육의 개념부터가 건강하지 못한 것 같아요. 상대를 내가 책임지려 하는 자세가 잘못된 거죠. 나는 아이들에게 기회를 줄 뿐이지, 내 마음대로 지시하고 가르쳐서 내가 원하는 모양새로 만들려고 하지 않아요. 보통은 내 의지만 앞서다 보니 앞에서 자꾸 당기려고만 하죠. 내가 경험한 것은 내가 느낀 것이고 내가 겪은 단계이지, 아이들이 느끼고 아이들이 밟아야 할 단계는 아니거든요. 천천히 자신의 단계를 밟아가면서 발전할 때 온전하게 성장할 수 있는 겁니다. 예를 들어 아이가 높은 소파에 계속 올라가려고 버둥거릴 때, 부모가 휙 들어서 올려줍니다. 그건 아이의 성취감을 뺏고, 발전을 가로막는 것이죠. 앞에서 강제로 당기기보다는 뒤에서 관리하고 돌보는 것이 건강한 교육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생태미술을 통한 또 다른 계획이 있으신가요?
지금까지도 그래 왔지만 특별한 계획이랄 게 없어요. 현재를 잘 살면 그만인 거죠. 내일 혹은 그 이후는 깊이 생각하지 않아요. 집짓기협동조합을 통해 새로운 보금자리를 짓고 있긴 합니다만, 그것도 특정한 목적이 있다기보다 그냥 평화롭게 잘 살기 위한 거죠. 자연처럼 자연스럽게 사는 거. 아이들과 자연을 만지고 느끼면서 그냥 그렇게 지낼 거예요.

작은산(본명: 한길순) 8년 전 빡빡한 도시의 삶을 쳐내고, 충청남도 홍성의 작은 시골 마을에 새 삶의 뿌리를 내렸다. 귀농 이전, 여성환경연대에서 생태교육을 수료한 후 이를 미술지도에 접목해 생태미술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지금은 지역 초등학교 특수학급 발달장애아, 지체장애아들과 함께 산과 들을 누비며 생태미술을 마음껏 즐기고 있다. 자연을 교실 삼아 냉이 꽃으로 왕관을 만들고, 토끼풀로 목걸이를 만든다. 환삼덩굴, 애기똥풀, 버찌 등 풀꽃과 열매를 비롯해 흙, 시냇물, 바람, 곤충까지 지천으로 널린 모든 생명이 하나하나 작품이 되고 배움이 된다. 자연이 가르쳐준 것처럼 그저 오늘을 잘 살기 위해, 오늘을 행복하기 위해 있는 그대로의 ‘자연스러운’ 삶을 하루하루 펼치는 중이다.

기획, 편집/ ㈜디자인하우스 DES사업부 글/ 이환길 사진/ 전문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