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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락꽃이 크다고 한 셋째 딸
옛날에 한 사램이 딸을, 딸을, 살림은, 살림은 우거지기 있는데, 아들은 없고 딸 삼형제 뿐이거던. 그러이 딸 삼형제 할 거는 없제. 그래 그 딸을 삼형제를 데불고 앉아여.
“그래 저 너는….”
맏딸더러,
“너는 꽃 중에 꽃 중에 무신 꽃이 제일 크노?”
이카이께네, 맏딸이 있다아,
“에이고, 목단꽃도 크고 함박꽃도 크고.”
이카고. 둘째 딸더러 물으이 그것이 맹 그카거던.
“맹 목단꽃과 함박꽃 그기 제일 크다.”
시째 딸, 막내이 딸더러 물으이께네,
“나락꽃이 제일 크다.”
카거든. 나락꽃이 제일 크다 카거던. 그칸께,
“저건 시건통머리가 하나도 없는 거. 저건 냉주에 키와가주고 첩첩산중에 치와야 되러다. 저 들녘에 저 너른 데는 못 치우러다.”
인제 그카고. 그카고 있다가 그래 인제 모도 아들이 컨다. 커이께네 인제 참 큰 딸하고 둘째 딸하고는 아주 참 들녁에 좋은 재상갓 집에 가여 골리가주고 그건 거 갖다 치우고, 이건 참말로 첩첩산중에 갖다 치와 놓거덩. 첩첩산중에 저 뒤에 소나무 골짝에 거 인자 갖다 치와 놓이, 그래 인제 신행을 인제 데불고 간다.
데불고 가이, 신행 데불고 간다고 가이 참 머 들녘에 모도 잔치꾼이 버글버글 그럴 줄 알았디이만 그것도 없고 아무것도 없고. 그래 인제 그 부자(父子)가 들어여. 저 만댕에 올라가여. 팔밭을(1)[주]팥밭. 꿍꿍 쫏고 있거던.
“저런 년은 꼭 이런 데 오기 마련이다.”
[청중:아바이가?]저런 년은 꼭 이런 데 오기가 맞다 이카거던. 그카거던, 그래 인제 거 가여 거 신행왔다 칸께 머 사돈이라카미 내리왔는데 보이 참 머 거 숯껑 굽고 하는 기 머 무신 꼬라지가 됐일라. 그래가주 있제.
이거 머 정심생이라꼬 딜랐는(2)[주]점심밥이라고 들여 놓은.거 보이께네 아무 것도 없고 조밥하고 그저 감자 삶아놓은 거거 뿌이거던. 그래 나왔어. 나와가주 고마 집으로 갔뿌리. 까짓거 딸이 뭐언동 뭐언동 실어놓고 그래 갔뿠다. 아바이가.
그래 갔뿌고 나이 그래 인자 거 또 신랑하고 또 시애비하고 또 인자 부자가 팔밭 쫏으로 간다. 저 만대이 팔밭쫏으로 올라가거던. 올라가가주고 팔밭을 꿍꿍 쫏는다. 그래 인자 정심을 해 이고, 저 참 감자죽을 낋이가 주고 정심을 해 이골랑 만대이 올라가이, 그래 거 새딕이가 정심을 먹골랑 니리오다 가이께네 아 정지문 앞에 요 쪼 밑에 쪼만한 밭데기 하나 있는데 서기가 환하이 뻗치거던. 그 밭에서.
서기가 환하이 뻗치이 ‘아 그야 이상하다. 저게 무슨 서기가 저래 뻗치노.’싶어서 그 가여 광주리 내라 놓골랑 거 가여 내라다(내려다)보이, 참삼밭에. 삼밭에. 그래가주고 그래 인제 또 재불(재차) 거 올라가가주고,
“아이고 이래 쫏지 말고 저 이래 안 쫏고도 먹고 살 수가 있으이께네 쫏지 마라.”
카거던. 신랑하고 시아바이하고 쪼는 데 가여. 그카이 그래,
“이거 안 쫏고는 먹고 살 수가 없는데 어예, 어예 살 수가 있노?”
이카이,
“고마 놔두고 니리가자꼬. 그래 니리가여 이 밭에 가여 저 괭이질 해보라.”
카는 기라. 참 밭에 가 괭이질 하이께네, 아 똑 배차뿌리(배추뿌리)겉고 똑 무시(무우) 머 쪼끔, 쪼끄마큼한 무시겉은 기 쑥쑥 나온다.
“아이, 이기 뭐언데 이걸 어예 캐가주고 먹노?”
이카고 있다이께네, 참 그기 삼이라. 이전에서 가여 동삼, 인삼 카만 아주 참 기롭은 (귀한)거 아인가. 그래서, 그래 인자 삼을 캐가주고 참 여게매이로 (여기처럼)짚이 있나. 쏙새오재기를 맨들어가주고 그걸 갖다 놓고 캐 담으이 오재기 한 오재길세. 한 오재기 그걸 인제 그래 고만 그 며누리가 있다가,
“그거 그래 밟지 말고 이걸 저짜아 시장에 가주나가만 장 복판에 갖다 피이놓으만 여 살 사람이 많은 챔이니.”
“그래 얼매썩 받노?”
카는 걸, 그래 인자 얼매, 돈 이전에 마이 엽전 아이가. 그래,
“올매 받을 거도 없고 그저 주는 대로 받으라.”
이카거던. 주는 대로 받으라 카이, 그래 인자 그걸 갖다 이래 피이 놓인께네 마당에 장꾼이 우 돌아댕기쌌디이,
“아이고 이거 무슨 삼이 이렇기 굵은 삼이 있노? 굵은 삼이 있노?”
카고 고마 자아.
“이거 얼매 하노?”
카이,
“그거 주는 대로 받는다.”
카인께네, 그저 참 돈을 쑥 내주고 쑥 내주고. 그저 받아가주고 그 오재기에다 또 좌아옇고, 좌아옇고 이랬는데, 아 그래가 삼을 한 오재기 지고 가가주고 올적에 돈을 또 한 오재기 지고 오거던. [웃음]돈을, 이전에 마 엽전이래더만 그래 한 오재기 지고 오이께네,
“아이고 이것만 해도 만판 살겠다꼬. 이 여게 살 수가 없고, 이걸 가주고 저 들녘으로 나가자.”
카이께네, 그래, 그래 참 돈을 한 오재기 지고 들녘으로 나오이, 산중 사람이 들녘으로 나오이 뭐가 뭐은동 아나. 새딕이가 들어여 그래저 땅도 사고 집도 사고 이래가주골랑, 그걸 가주 땅도 마이 사고 집도 사고 이래가주고 아 그래가주고 떠억 들어앉으이께네 참 이전에는 입 구(口)자 기와 집을 좋은 걸 사가주고 거 들어앉고, 땅, 땅 사가주 거 농사짓고. 이 한 해 농사지인께네 고만 곡식이 집에 우묵하이 개빈다(고인다).
그래가주고 그래 앉아여 참말로 그 돈을 가주고 또 인제 참 종도 하나 사고, 종도 하나 사고 이래가주고 그래 인자, 의복이고 뭐고 말카 고만 딴사람 안 되었삔나. 그래가주고 바랗고 앉았더랑구마.
그래가주고 일이년 지내고 나이, 일이년 지내고 나이께네 그래 그 여자가, 그 여자가 참말로 방에 들앉아 이래 보이 삽짝걸에 왠 거러지가 하나 와가주고 그래 저 동냥 좀 돌라 카거던. 거러지가 와가주고,
“에이고 애씨님, 저 삽짝걸에 거러지가 하나 와여 동냥돌라 캅니다.”
이카이, 그래 참 이래 내다보이께네 그기 저어 아바이라. 삽작걸에 와 섰는기 저거 아바이라.
“야, 동냥이사 머 주나 안 주나 고마 저 거러지를 저, 저 문깐채-그이전 대문 달만 문깐채 방 안 있나. -그게 좀 드가라 카그러, 드가라 카라 캐라.”
이카이,
“아이고 애씨님도 별 말씀 다 하십니다. 저 어설픈 거러지를 방에 와 드가라 캐요?”
이카거든.
“그카지 말고 여 들오라 캐라.”
그래 인자 문깐채다 앉히 놓고 그러구로 해는 빠진다. 문깐채다 앉히놓고 그래 거 해가 질풍하이 넘어가이 그냥 불도 꺼지고 어덥어지거던. 그래 이기 참 아랫방에 니리가 보이께네 아바이가 똑 꼬라지라 카는 똑 뭐겉이 해가주고 동냥자루를 둘러미고 그래 댕기더란다.
그래 지가고만에 동솥에다 물을 뜨뜻하이 디이(데워)가주고 그래가 그게 가가 모욕을 씨기고, 의복을 한 불 내다 입히놓인께네 참 신사가 됐뿠는데. 그래 의복을 한 불 내 입히고, 그래 날새고 하이께네 이래 머 손님이 왔다꼬 캐놓이께네 말캉 또 손님 왔다꼬 놀로 온다. 놀로 수북수북 오거던. 그래머 개 잡고 해가주고 손님 대접도 잘하고, 이래놓골랑 그래 참 저어, 참 아부지라 카고 이카고. 그래가주고 모도 손(손님)왔다 카인께네 거 모도 술도 받고 이래가주고 손님 대접도 잘하고 이랬는데.
그래 그 저 그 딸은 두 낱을 골리(골라) 치웠는 거 그거는 고마 망쪼가 됐뿌고 고마 참말로 걸배이가 됐뿌고, 저 아바이도 고만 딸 서이 치우
고 농사지이도 없고 하이 저도 고마 걸배이가 됐지. 이래가주고 그래 언제라도 고만 그 딸하고 사다가 그 딸한테서 죽더란다.
고마 나락꽃이 제일 크다 칸 거는 시근 없다꼬. 산중에 치왔는[조사자: 그래도 복은 가아가 제일 있네예.]그캐 복을 참, 크기사 나락꽃이 제일 크제. 거 목단꽃 함박꽃 암만 크만 거 뭐하나. 죽으만 그만인 거. 참말로 나락꽃이 제일 크제
* 꽃 전설
1. 할미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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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어느 산골에 한 늙은 할머니가 두 손녀를 키우며 그럭저럭 살고 있었대요. 그런데 큰 손녀는 얼굴이나 몸매가 아주 예뻤지만 마음씨가 착하지 못했어요. 이에 비해 작은 손녀는 비록 얼굴이 못생겼지만 마음씨는 비단결처럼 고왔어요. 어느덧 곱게 자라난 두 손녀는 결혼할 나이가 되었습니다. 큰 손녀는 이웃 마을에 사는 부잣집 아들과 결혼을 하게 되었답니다. 그러나 작은 손녀는 가난한 산지기에게 시집가게 되었대요. 손녀 둘을 모두 시집보낸 할머니는 어느새 아주 늙어 버렸고, 일도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되자 매일 매일의 끼니 잇기도 힘들게 되었어요. 하루는 할머니가 배고픔을 못이겨 큰 손녀 집으로 찾아갔답니다. 큰 손녀는 할머니를 보자마자, "할머니가 거지꼴을 하고 찾아와 이제는 살림살이도 부끄러워 못 하겠습니다." 하고 나무랐습니다. 할머니는 마음씨 고운 둘째 손녀가 그리웠어요. 그래서 할머니는 눈물을 흘리며 산너머 작은 손녀집으로 발길을 돌렸대요. 그러나 할머니는 높은 고개를 넘다가 작은 손녀가 살고 있는 마을이 가물가물 내려다보이는 고갯마루에서 쓰러지고 말았답니다. 그리고는 말 한마디도 못한 채 그 자리에서 세상을 떠나고 말았대요. 노쇠한데다가 그동안 굶주려 왔기 때문에 더이상 견딜 수 없었던 것이었어요. 이 소식을 전해 들은 작은 손녀는 할머니의 시신을 자기가 사는 마을의 뒷 동산 양지 바른 곳에 고이 묻어주고 그 곳을 늘 바라보며 슬퍼했어요. 그런데 다음해 봄이 되자 할머니의 무덤가에 이름 모를 풀 한 포기가 나오더니 꽃을 피웠는데, 그것은 할머니의 허리같이 땅으로 굽은 꽃이었어요. 이것을 유심히 바라 본 작은 손녀는 할머니가 죽어서 피어난 꽃으로 믿고, 그 꽃을 할미꽃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
2. 진달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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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선녀의 다리를 치료해 준 나무꾼이 있었는데 그것이 인연이 되어 선녀와 결혼하고 예쁜 딸을 낳았대요. 그 딸의 이름을 달래라고 지었어요. 어느덧 예쁘게 자라난 달래는 새로 부임한 사또의 첩이 되는 것을 한사코 거절했어요. 화가 난 사또가 달래를 죽이자, 나무꾼도 딸을 부등켜안고 울다가 그 자리에서 죽게 됐어요. 그런데 달래의 시체는 온데 간데 없어지고, 나무꾼의 시체에는 빨간 꽃이 피어 무덤을 만들었답니다. 그 후 사람들은 이 꽃을 나무꾼의 성인 진(陳)자와 딸의 이름인 달래를 합쳐 진달래라고 불렀습니다. 한편 진달래는 두견화라고도 하는데, 옛날 촉(觸)나라 임금 두우(杜宇)가 억울하게 죽어 그 넋이 두견새가 되었다고 하고 두견새가 울면서 토한 피가 두견화로 변했다고 합니다. |
3. 동자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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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강원도의 어느 산골짜기에 조그마한 암자가 있었는데, 그곳에는 스님과 어린 아이가 살고 있었대요. 어린 아이는 스님이 마을에 갔다가 부모를 잃고 헤메는 것을 불쌍히 여겨 데려 온 소년이었어요. 이름도 성도 모르는 어린 아이였어요. 그래서 스님은 어린 아이를 그저 동자라고 불렀습니다. 스님과 동자는 산골짜기에 사는지라 먹을 것이 그리 많지 않았어요. 스님이 그날 그날 쌀 등을 시주해다가 그것으로 밥을 지어 먹고 살았습니다. "동자야." 하고 불렀답니다. 그러나 동자는 말이 없었어요. 그 자리에 곧게 앉아서 죽어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스님은 죽은 동자를 바로 그 자리에 곱게 묻어 주었어요. 그런데 해마다 봄이 되면 동자의 무덤가에 이름 모를 풀들이 자라났습니다. 그리고 한여름이 되면 꼭 동자의 얼굴같은 붉은 빛의 꽃들이 마을로 가는 길을 향하여 피어나기 시작했답니다. |
4. 홀아비 바람꽃
꽃대가 하나 밖에 없어 외롭다는 처연한 모습의 홀아비바람꽃! 서젯골은 만장대의 서쪽 기슭에 자리잡은 약수터로 김해의 역사와 더불어 애환을 같이 하고 있다. 이곳에 흐르는 약수를 금령천(金靈泉)이라 하여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고 있다. 경관이 좋고 물 좋은 곳이니 아름다운 얘기와 전설이 없을 수 없다. 고려 후반기인 충선왕 때였다. 이때 향리들은 후기의 사회적 경제적 변동을 겪으면서 中小지주로 성장 했는데 그 자제들이 학문적 교양을 쌓고 과거를 통하여 중앙의 관리로 진출하는 경향이 높았고 이것이 젊은이들의 꿈이기도 했었다. 김해 무점에 사는 청년 김태은도 향리의 외아들로 태어나 자기와 같은 신분의
다른 젊은이들처럼 과거를 준비하고 있었다. 서젯골 금령천 부근에 자리잡고 그 물을 마시며 밤낮없이 열심히 공부한다. 그 덕분인지 태은은 과거에 무난히 합격하여 청운의 꿈을 이루는 것이었다. 이젠 결혼할 나이가 되어 부모들은 혼사일을 걱정했으며 여러군데 혼담이 오갔다. 숙고 끝에 논실마을 李 씨 집안의 따님과 결혼하기로 했다. 태은이는 꿈같은 신혼의 나날이 흘렸다. 서로는 깊이 사랑하는 사이가 된다. 하지만 3년이란 세월이 흘러도 부인에게는 태기가 없었다. 몇대 외동으로 내려온 집안에서 예사일이 아닌 것이었다. 부모님과 함께 온가족이 걱정이 되었다. 부인에게 이것이 강박관념이 되어 일어났는지는 몰라도 병이 나 버렸다. 여러 의원의 약을 먹였으나 백약이 무효였다.
온 가족 특히 남편의 병구환 지성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사랑하는 아내의 회복을 위해 온갖 정성을 다한 것이다. 부인은 자신의 여생이 얼마남지 않았음을 예감하는 것이었다.
"여보! 당신께 미안해요. 내가 죽거든 이 흰 모시저고리를 만지며 마음을 달래세요.
그리고 좋은 새아내를 만나거든 이 옷을 묻어주세요."
남편은 이 말을 듣고 부인이 얼마나 애처로와서 복받쳐 오르는 슬픔을 감출 수 없었다.
이 말을 남긴지 이틀 후 드디어 부인은 이승을 하직하고 태은이는 혼자 몸이 되었다.
진심으로 부인을 사랑한 태은이는 밤마다 저고리를 안고 자는 것이었다. 부모님은 재혼을 독촉했었다. 하지만 아랑곳 하지 않았다. 3년이 지난 어느날 우연히 어떤 낭자가 물을 길러가는 모습을 보았을 때 마치 감전이라도 된듯이 그 아름다운 모습에 넋을 잃게 되었다. 홀아비의 마음속에 회오리 바람이 일게 된 것이다. 누가 홀아비 바람을 탓할수 있으랴. 태은이는 낭자를 몹시 그리워하게 되었고 인연이 닿아 낭자와 밀회를 하게 된다.
이젠 전부인이 준 모시저고리를 만지기도 싫고 오히려 거북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한편 전 부인에게 미안한 마음도 피할 수 없었다.
'그 사람이 말한대로 이 모시저고리를 묻어 버리자'
그는 한손에는 호미, 한손에는 저고리를 들고 과거준비 때 오르내렸던 서젯골 금령천
약수터 아랫길 옆에다 모시 저고리를 묻었다. 그리고는 청혼의 절차를 거쳐 재혼을 한 것이다. 이렇게 하여 흰모시 저고리는 태은이의 곁을 떠난 것이다. 그런데 이듬해 봄 그 묻은 자리 위에 흰꽃이 여러 송이 피어난 것이다. 그리고 진한 향기가 났었다. 태은이는 이 꽃을 보면서 만감이 스쳐갔다. 후세 사람들은 이꽃을 "홀아비바람꽃"이란 이름으로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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