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7.10.10 03:01
[아프리카의 세계적 현대미술가 엘 아나추이, 한국 첫 개인전]
납작하게 누른 수천 개 병뚜껑, 실로 꿰매듯 구리선으로 연결
"예술에 무슨 제3세계가 있나?"
2007년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팔라초 포르투니미술관 외벽이 황금빛 거대 설치물로 뒤덮였다. 구스타프 클림트의 '키스'를 연상시키는 작품의 정체는 아프리카 작가 엘 아나추이(73)의 '프레시 앤드 페이딩 메모리즈'. 납작하게 누른 위스키 병뚜껑 수천 개를 구리선으로 꿰매 옷감처럼 펼쳐놓은 작품은 세계 화단이 이 작가를 주목한 '사건'이 됐다. 2015년 아나추이는 베네치아 비엔날레에서 황금사자상(평생 공로 부문)을 수상했다.
지난달 하순 서울 소격동 바라캇 서울에서 만난 아나추이는 "작품으로 새 삶을 얻게 된 병뚜껑은 더 이상 버려진 것이 아닌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힘을 가졌다"고 했다. "각 사람이 모이면 하나의 공동체가 되듯 버려진 병뚜껑들을 모아 하나의 힘으로 묶어주고 싶었지요." 아나추이는 한국에서의 첫 개인전 '엘 아나추이: 관용의 토폴로지'를 위해 내한했다. 대표작인 병뚜껑 설치물 3점과 판화 6점을 선보인다.
![](http://image.chosun.com/sitedata/image/201710/10/2017101000158_0.jpg)
아나추이는 가나에서 태어났다. 가나가 영국의 식민지일 때 태어나 서구식 교육을 받고 자란 그는 "항상 주위를 맴돌며 조국의 문화를 타인처럼 바라만 보는 사람이었다"고 고백했다. 대학에 들어가면서 '내가 태어난 땅, 아프리카의 문화에 대해 알고 싶다'는 열망이 샘솟았다. 대학 근처에 있는 국립문화센터를 방문하면서다. "아프리카 토속작가들이 자유롭게 전통 음악에 맞춰 춤추고 연주를 하는가 하면 직물을 짜거나 나무판에 조각을 새기며 작업을 하고 있었어요." 그는 "서구식 학교 교육을 받을 땐 예술은 눈으로 경험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들은 온몸으로 즐기며 자신을 표현하는 게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환경과 문화, 전통을 연결하는 작업을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다. 병뚜껑, 나무 조각, 점토 등 주변에서 쉽게 보는 재료를 사용했다. "과거 인류가 동굴 안에서 살며 매일 마주한 벽에 그림을 그린 것처럼 저도 주변에 있는 것, 사람들 손길과 숨결이 닿았던 것을 사용합니다. 거기엔 왠지 DNA나 에너지가 남아 있는 것 같아서. 그것들로 작품을 만들면 사람 사이 연결고리가 생길 거라 믿었습니다."
환경과 문화, 전통을 연결하는 작업을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다. 병뚜껑, 나무 조각, 점토 등 주변에서 쉽게 보는 재료를 사용했다. "과거 인류가 동굴 안에서 살며 매일 마주한 벽에 그림을 그린 것처럼 저도 주변에 있는 것, 사람들 손길과 숨결이 닿았던 것을 사용합니다. 거기엔 왠지 DNA나 에너지가 남아 있는 것 같아서. 그것들로 작품을 만들면 사람 사이 연결고리가 생길 거라 믿었습니다."
![2007년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팔라초 포르투니미술관에서 선보인 ‘프레시 앤드 페이딩 메모리즈’.](http://image.chosun.com/sitedata/image/201710/10/2017101000158_1.jpg)
알루미늄 병뚜껑과의 첫 만남은 90년대 후반 우연히 시작됐다. "공터에서 입구가 꽁꽁 묶인 포대를 발견했어요. 위스키 병뚜껑이 잔뜩 들어 있었지요. 무작정 작업실로 챙겨와 쳐다보고 만져보고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나추이는 버려진 병뚜껑을 납작하게 누른 뒤 직사각형을 만들거나 반으로 갈라 펼친 뒤 꼬거나 도형 모양을 만든다. 이들을 구리선으로 연결해 섬세하게 엮는다. 노랑·빨강·초록 같은 색상은 병뚜껑 색깔 그대로다. 위스키 병뚜껑은 가나가 식민지였을 당시 서구에 의해 아프리카에 술이 들어왔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는 물건이다. 노예 제도와 식민 시대를 은유하는 상징이다. 아픈 역사만 담은 것은 아니다. 아나추이는 "무역을 통해 술(병뚜껑)이 미국·아프리카·유럽 세 대륙을 연결했던 것처럼 내 작품 또한 지구촌 사람들을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주요 작품이 런던 영국박물 관, 파리 퐁피두센터 등에 소장돼 있다. 2004년 광주비엔날레에도 참여한 바 있는 아나추이는 회화·조각·건축 분야에서 이름난 예술가에게 수여하는 '프리미엄 임페리얼 국제 예술상' 수상자로도 최근 선정됐다. 아나추이는 "예술에 제1세계, 제3세계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예술은 예술일 뿐"이라고 말했다. 전시는 11월 26일까지. (02)730-1949
아나추이는 버려진 병뚜껑을 납작하게 누른 뒤 직사각형을 만들거나 반으로 갈라 펼친 뒤 꼬거나 도형 모양을 만든다. 이들을 구리선으로 연결해 섬세하게 엮는다. 노랑·빨강·초록 같은 색상은 병뚜껑 색깔 그대로다. 위스키 병뚜껑은 가나가 식민지였을 당시 서구에 의해 아프리카에 술이 들어왔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는 물건이다. 노예 제도와 식민 시대를 은유하는 상징이다. 아픈 역사만 담은 것은 아니다. 아나추이는 "무역을 통해 술(병뚜껑)이 미국·아프리카·유럽 세 대륙을 연결했던 것처럼 내 작품 또한 지구촌 사람들을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주요 작품이 런던 영국박물 관, 파리 퐁피두센터 등에 소장돼 있다. 2004년 광주비엔날레에도 참여한 바 있는 아나추이는 회화·조각·건축 분야에서 이름난 예술가에게 수여하는 '프리미엄 임페리얼 국제 예술상' 수상자로도 최근 선정됐다. 아나추이는 "예술에 제1세계, 제3세계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예술은 예술일 뿐"이라고 말했다. 전시는 11월 26일까지. (02)730-19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