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로 보는 논술] 잭슨 폴록 No.1
어떤 예술이라도 본질적으로 정치색 존재한다
최혜원 · 블루 로터스 아트디렉터 건국대 강사

■지배자의 정치적 목적에 이용된 예술

예술과 정치, 왠지 잘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이 두 분야가 실제로는 매우 가까운 사이다. 음악, 미술, 문학, 무용 등 모든 예술분야가 정치와 무관하지 않으며 정치적 권력 안에서 상호 교류하며 발달했기 때문이다. 즉 모든 예술은 정치적인 성향을 드러내든 그렇지 않든 간에 정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다.

가장 정치적이지 않을 것 같은 음악은 그 발생 초기부터 지배 권력자들을 칭송하고 기념하기 위한 의식의 도구이자 봉사의 수단으로 사용됐다. 무용도 마찬가지다. 제사장과 왕이 집전하는 종교적인 제의(祭儀)에서 무용은 지배자들이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피지배층을 교화하는 수단으로 이용됐다. 서양 발레의 전성기를 연 프랑스의 루이 14세(1638~1715)는 발레를 정치적으로 이용했듯이 정치적인 어용 예술은 계속해서 나타난다. 우리나라의 궁중무용과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 1447)' 같은 음악도 건국 왕조의 정당성과 그 덕을 기리고자 하는 정치적인 목적에서 제작된 것이다.



■서방 진영의 자유민주주의를 대변한 미국의 추상표현주의

현대로 오면서 예술과 정치의 관계는 더 내밀하게 이루어졌다. 지난 20세기, 자유진영과 공산진영으로 나뉘었던 '냉전 시대'에는 미국의 중앙정보국(CIA)이 막대한 자금력을 기반으로 할리우드 영화계를 비롯한 전 예술계를 배후 조종했다. CIA는 미국은 물론 유럽 문화계까지 좌지우지하며 영화는 물론 문학과 미술작품의 제작 방향에도 영향을 미쳤다. 소련 공산주의를 비판하는 동시에 미국의 자유 진영을 옹호하는 거대한 프로젝트를 추진, 냉전시대를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고자 했다.

미술계에서는 '추상표현주의'가 냉전의 도구로 이용됐다. 붓으로 그리는 대신에 물감을 반복해 뿌리며 작품을 완성하는 이른바 '액션 페인팅(Action Painting)'의 대가인 잭슨 폴록(1912~1956)를 비롯해 마크 로스코(1903~1970), 로버트 마더웰(1915~1991), 윌리엄 드 쿠닝(1904~1997) 등 대표적인 추상표현주의 작가들의 작품은 '자유로운 미국'을 상징했다. 특히 '액션 페인팅'은 어떠한 구속도 없는 상태에서 자유분방하게 표현하는 기법이기 에 억압된 소련의 공산주의 체재와 쉽게 대조시킬 수 있었다. 당시 소련 등 사회주의 국가들에서는 고된 현실의 모순을 폭로하는 현실주의 작품들이 대중의 열렬한 지지를 받고 있었다. CIA는 이런 현실고발적인 미술이 아닌 추상표현주의를 지원해 서방세계의 자유로운 '관념적 표현주의 예술'을 대대적으로 지원하는 정책을 추진한 것이다.



■'정치의 예술화'인 문화 정치

영국의 작가이자 다큐멘터리 영화제작자인 프랜시스 선더즈는 2003년 출간한 그의 저서 '문화의 냉전: 미 중앙정보국 CIA와 예술의 세계'에서 "CIA가 20여 년 동안 세계 각지에서 추상표현주의를 심는 작업을 지원해왔다"고 주장하며 그 실증적 증거들을 제시했다. 추상표현주의가 세계적인 선풍을 끌게 된 것은 이데올로기 반영의 결과라는 주장은 이후 정치적 도구로 이용된 추상표현주의에 대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이러한 문화정치를 독일의 평론가인 발터 벤야민(1892~1940)은 '정치의 예술화'라고 했다. 예술을 통해 느끼는 아름다움은 인간성의 자연스러운 발현이 허용된다는 전제 하에서 생성되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의 본성을 억압하는 모든 것은 거부돼야 한다. 벤야민은 "이 때문에 예술은 본질적으로 정치성을 띤다"며 문화 정치에 대항하는 '예술의 정치화'를 주장했다. 그는 또 "예술 외 다른 분야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는 독자성을 갖고 자율적으로 구성되는 '예술만을 위한 예술'과 단절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예술가 역시 치열한 시대를 살아가는 한 사람이므로 그의 작품에서 시대 현실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모두가 그 시대를 반영하는 작품이기에 결국 순수 예술이란 세상에 존재하기 어렵다. 어찌 보면 예술의 정치화는 당연한 결말인지도 모른다.


입력 : 2008.04.16 16: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