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루한 전시는 가라!...문턱 낮추는 갤러리, 관객과 눈높이 맞추는 작가들

올댓아트 권재현 에디터 allthat_art@naver.com
입력2020-10-20 11:03 입력시간 보기
수정2020-10-20 11:12

갤러리가 달라졌다. 기발한 아이디어로 관객들에게 손을 내민다. ‘작품으로 말한다’며 점잖게 뒷짐지고 있던 작가들도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다. 은밀한 작업실을 공개하고 작품 제작 과정을 직접 시연도 한다. 문턱을 낮추고 관객들을 찾아 나서는 미술계의 달라진 풍속도다.

우한나 : 마 모아띠에
‘마녀의 공방’이라 불렸다. 소문만 무성했던 작가의 작업실이 마침내 베일을 벗었다.

전시장에 마련한 ‘작가의 작업실’   ⓒSongEun Art and Cultural Foundation and the Artist. All rights reserved.

전시장에 마련한 ‘작가의 작업실’ ⓒSongEun Art and Cultural Foundation and the Artist. All rights reserved.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조형예술과를 졸업하고 개인전 (사루비아다방, 2019), (삼육빌딩, 2018), (촉촉투명각, 2016)와 <슈퍼히어로>(인사미술공간, 2020), <사실, 시체가 냄새를 풍기는 것은 장점이다>(아트 스페이스 풀, 2019), <두 번의 똑같은 밤은 없다>(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2019) 등 다수의 단체전을 통해 독창적인 작품 세계를 펼쳐 온 우한나 작가 얘기다.

전시장 전경  ⓒSongEun Art and Cultural Foundation and the Artist. All rights reserved.

전시장 전경 ⓒSongEun Art and Cultural Foundation and the Artist. All rights reserved.

우 작가의 네 번째 개인전이 열리고 있는 송은아트큐브에 가면 작품을 정제되고 정돈된 형태로 진열해놓은 ‘쇼룸’ 외에도 그의 작업실 풍경을 모티프로 조성한 가상의 작업실을 만날 수 있다. 생생하면서도 뭔가 혼란스러운 작품 제작 현장의 느낌을 관객들이 ‘날 것 그대로’ 즐길 수 있도록 꾸민 공간이다.

우한나 작가의 작품 이미지   ⓒSongEun Art and Cultural Foundation and the Artist. All rights reserved.

우한나 작가의 작품 이미지 ⓒSongEun Art and Cultural Foundation and the Artist. All rights reserved.

작업실 공개는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라 할 만하다. 새로운 신체 장기가 생명력을 얻는 순간을 엿볼 수 있어서다.

이번 전시를 위해 공개한 작가의 작업실 ⓒSongEun Art and Cultural Foundation and the Artist. All rights reserved.

이번 전시를 위해 공개한 작가의 작업실 ⓒSongEun Art and Cultural Foundation and the Artist. All rights reserved.

우 작가는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후에도 시그니처 라인만큼은 시작부터 완성까지 직접 참여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실제 작업실은 아니지만 서울 강남의 한복판에 옮겨놓은 그의 작업실은 그의 감각과 취향, 섬세한 손길로 작품을 빚어내는 ‘마법’을 감상하기에 손색이 없다. 정제된 런웨이와 쇼룸에서 보던 그간의 작품과는 확실히 다른 면모를 만날 수 있다.

이번 전시의 또 다른 특징은 작가를 전면에 내세웠다는 점이다. 노골적으로 나서기보다 살짝 비틀었다. ‘디자이너 우한나’라는 이름을 무대에 올렸다. 가상의 작업실이 실제 작업실과 다르지만 무관하지 않듯이 ‘디자이너 우한나’ 역시 ‘작가 우한나’와 다르지만 동떨어질 수 없는 인물이다. 우한나 작가의 ‘부캐’인 셈이다. 작가가 연출한 디자이너 우한나는 트렌드를 이끌어가는 차세대 디자이너로서 과감하고 참신한 시도를 서슴지 않는다.

분야를 가리지 않고 혁신적인 작품 창작 활동을 이어 온 ‘본캐’와 용호상박을 이룬다. 작가는 디자이너 우한나의 이름으로 자신의 신작을 선보이고, 이로써 명품(brand-name product)이 명품(masterpiece)의 자리를 차지한 시대를 풍자한다. 나아가 아름답고 가치 있는 것으로서 앞으로 미술이 가야 할 방향을 묻는다.

우한나 작가의 작품 이미지  ⓒSongEun Art and Cultural Foundation and the Artist. All rights reserved.

우한나 작가의 작품 이미지 ⓒSongEun Art and Cultural Foundation and the Artist. All rights reserved.

톡톡 튀는 디자이너가 새로 선보이는 컬렉션 ‘마 모아띠에(Ma Moitie)’의 메인 테마인 ‘Organ’ 시리즈는 심장, 대장, 콩팥 등 패브릭으로 재탄생한 신체 장기로 구성했다. 2019년, 콩팥 한 쪽을 잃어야 했던 작가의 경험을 모티브로 삼았다. 하늘색 실크로 제작한 심장, 이태리산 수제 패브릭으로 재탄생한 간, 비건 인증을 받은 페이크 레더로 만든 남자의 성기 등 그녀가 디자인한 장기는 잃어버린 콩팥을 향한 슬픈 노래인 동시에 발랄한 연가이다. 몸의 일부를 상실한 데서 오는 소외가 낳은 우울함을 경쾌하게 표현하고자 했다. 결과는 성공적으로 보인다.

우한나 작가의 작품 이미지 ⓒSongEun Art and Cultural Foundation and the Artist. All rights reserved.

우한나 작가의 작품 이미지 ⓒSongEun Art and Cultural Foundation and the Artist. All rights reserved.

슬픔을 유쾌함으로 둔갑시키는 재주는 작가의 회화 작업에서도 드러난다. ‘무드 테라피 화화’로 부르는 그의 회화는 관객의 기분을 끌어올린다. 이번에 선보이는 파스텔톤의 회화 역시 우울한 기분을 행복감으로 은은하게 감싸는 동시에 숨겨진 강한 기운과 꿋꿋한 힘을 불러낸다.

우한나 작가의 회화 작품  ⓒSongEun Art and Cultural Foundation and the Artist. All rights reserved.

우한나 작가의 회화 작품 ⓒSongEun Art and Cultural Foundation and the Artist. All rights reserved.

■ 우한나 : 마 모아띠에
전시기간 : 2020. 9.23(수) ~ 2020.10.27(화)
전시장소 : 송은 아트큐브(서울 강남구 영동대로 421 삼탄빌딩 1층)

■ Replace : 민지훈 개인전
성수동에 위치한 대림창고 갤러리에서 을 열고 있는 민지훈 작가는 오는 10월 17일부터 매주 주말에 1시간씩(토, 일 오후 2시부터) 기계를 사용해 그림을 그리는 퍼포먼스를 직접 펼치며 관객들과 소통에 나선다. 민 작가가 물감을 섞거나 기계를 작동시키는 행위를 하면 기계는 캔버스 위에 물감을 뿌려 ‘유일무이한’ 그림을 만들어낸다.

이번 전시를 위해 자체 제작한 페인팅 머신을 사용해 그림을 그리는 작업 과정 영상. 영상 속 인물이 민지훈 작가다. | Youtube

이런 과정을 통해 전형적인 인간의 영역으로 인식되던 그림 그리는 행위까지 기계로 대체되는 모습을 표현하고자 했다. 작가는 이제 더 이상 창작자가 아니라 단순히 기계를 조작하는 관리자로 지위가 바뀌었다. 어찌해야 좋을 것인가.

The painting machine 2017 합판, 스테인리스 스틸, 실리콘 튜브, AC,DC모터, 인버터, 튜브리스 타이어, 아크릴 패널, 베어링 230 x 450 x 220cm | 민지훈 작가 제공

The painting machine 2017 합판, 스테인리스 스틸, 실리콘 튜브, AC,DC모터, 인버터, 튜브리스 타이어, 아크릴 패널, 베어링 230 x 450 x 220cm | 민지훈 작가 제공

이는 미술 뿐 아니라 현대사회에서 보편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현상의 단편이다. 되돌리기엔 너무 멀리 와 버렸다. 기계가 사람을 대신하고 기능을 대체한다는 뜻의 를 전시 타이틀로 정한 이유다.

작품 설치 전경 | 민지훈 작가 제공

작품 설치 전경 | 민지훈 작가 제공

민지훈 작가는 “우리의 삶 속에서 기계로 대체되고 교체된 것들, 그리고 우리가 의지하며 살아가는 기계라는 대상을 제대로 한번 이해해 보고 싶었다”고 이번 전시의 기획 의도를 밝혔다.

대림창고 갤러리에서 민지훈 작가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다. | 민지훈 작가 제공

대림창고 갤러리에서 민지훈 작가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다. | 민지훈 작가 제공

■ 민지훈 개인전 <리플레이스 REPLACE>
전시기간 : 2020. 9. 4 ~ 2020.10.30
전시장소 : 성수동 대림창고 갤러리
기획·후원 : 대림창고 갤러리

■ 구정아 개인전 <2020>
이번에는 삼청동 언덕배기 고즈넉한 공간에 자리한 PKM갤러리로 눈길을 돌려보자. 난데없이 스케이트파크가 갤러리 별관 정원에 등장했다. 두 개의 크고 작은 요람 형태로 디자인한 조각이다. 구정아 작가가 이번 전시를 위해 특별히 디자인하여 제작한 직경 8.1m, 높이 1.7m의 예술 작품이다. 보더(boarder)들에게 실제로 개방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우아한 갤러리에 ‘스케이트보드’가 웬 말인가. 그것도 모자라 대형 스케이트파크 조각 작품은 야광이어서 밤이면 빛이 난다.

Koo Jeong A resonance 2020 620 x 810 x 170(h) cm Courtesy of the artist & PKM Gallery

Koo Jeong A resonance 2020 620 x 810 x 170(h) cm Courtesy of the artist & PKM Gallery

‘에고, 망측해라~’ 싶다면 PKM갤러리의 설명을 한번 들어보자.

서브컬처로서의 스케이트보딩 문화와
주류 예술 장르로서의 순수 미술 간 또 다른 접점을 만들며,
관람객에게 신선한 인터렉티브 경험을 제공하고 싶었다
.

이를 위해 PKM갤러리는 전문 보더들의 스케이트보딩 이벤트를 게릴라성으로 연다. 운이 좋으면(?) 갤러리에서 스케이트보딩 퍼포먼스를 ‘직관’하는 경험과 마주할 수 있다. 스케이트파크 작업은 2012년 프랑스 바시비에르 섬에서 지역 재생과 젊은 세대 영입을 목적으로 첫선을 보인 이후 구정아 작가의 트레이드마크로 자리잡은 설치 연작 프로젝트이다.

Koo Jeong A resonance 2020 620 x 810 x 170(h) cm Courtesy of the artist & PKM Gallery

Koo Jeong A resonance 2020 620 x 810 x 170(h) cm Courtesy of the artist & PKM Gallery

전 세계 여러 장소에서 거주하며 활동하는 구정아는 파리 조르주 퐁피두 센터, 뉴욕 디아 비콘, 쿤스트할레 뒤셀도 르프, 스톡홀름 현대미술관, 서울 아트선재센터 등에서 개인전을 개최하며 세계적인 작가로 발돋움했으며, 베니스 비엔날레, 상파울루 비엔날레, 광주 비엔날레와 뉴욕 솔로몬 R. 구겐하임미술관, 런던 테이트 모던, 파리 루 이비통 파운데이션, 베를린 그로피우스 바우, 도쿄 모리미술관,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삼성미술관 리움 등의 유수 단체전에 참여했다.

구정아 작가 | PKM갤러리 제공

구정아 작가 | PKM갤러리 제공

오는 11월 28일까지 열리는 개인전에서 구 작가는 스케이트파크 야외 설치 외에도 회화, 드로잉, 조각 등 미공개 최신작 30점을 소개한다. 갤러리를 정오부터 일몰 이후인 저녁 9시까지 개방하는 것도 특이한 광경이다. 빛의 유무에 따라 달라지는 환경 속에서 관람객들이 보다 입체적으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라고 PKM갤러리는 밝혔다.

전시장 전경 | PKM갤러리 제공

전시장 전경 | PKM갤러리 제공

■ <구정아 : 2O2O>(Koo Jeong A : 2O2O)
전시기간 : 2020. 9.30 ~ 2020.11.28
전시장소 : PKM갤러리(서울시 종로구 삼청로 7길 40)
문의 : 02)734-9467

자료 및 사진 | (재)송은문화재단, 민지훈 작가, PKM갤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