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의 표상과 상징[연재: 성서와 문학]우리 문화, 그리고 성서의 '소' 이야기
홍성남 위원 | 승인 2010.03.24 03:48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소

  
소(丑 ․ 牛 / cattle)는 등뼈를 가진 척추동물이자 젖을 먹여 송아지를 기르는 포유류에 해당하며, 짝수의 말굽과 네 개의 위를 가지고 먹은 사료를 다시 반추한다는 점은 다른 가축과는 색다른 면이다.
 
십이지(十二支)의 소는 시간적으로 새벽 1시에서 3시, 달로는 12월을 지키는 방향신이자 시간신이다. 여기에 소를 배정한 것은 소의 발톱이 2개로 갈라져서 음(陰)을 상징한다는 것과 그 성질이 온순하고 인내력이 많아서 씨앗이 땅 속에서 움터 봄을 기다리는 모양과 닮았다는 것에 연유한다.

농경 생활에 기반을 둔 우리네 전통사회에서 소를 생구(生口)라고 불러온 것은 한 집안에 사는 하인이나 종을 말하는 것으로, 소를 식구처럼 여겼다는 의미이다. 소는 논이나 밭을 쟁기질하는 등 힘든 농사일을 하는데 필요한 노동력이자 일상생활에서의 운송수단이었고, 큰 일을 당할 때나 급한 일이 생겼을 때 목돈을 장만할 비상 금고의 역할까지 했다. 1950년~1970년대 초반의 대학을 우골탑(牛骨塔)이라 한 것은 소가 농촌 출신 영재들의 중요한 학자금 역할을 감당했던 것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때문에 소는 광우병으로 인한 소값 폭락 이전에는 재산 목록의 으뜸으로 꼽혔으며, 농가의 밑천으로 불렸다. 
 
농경사회에서의 소의 중요성은 제의나 의례에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고대사회에서는 신에게 제사를 지낼 때 소를 신성한 제물(희생 : 천지신명이나 종묘에 제사를 올릴 때 바쳤던 소를 의미함)로 쓰였고, 현재 소가 제물로 쓰이는 예(경북 영주의 성황제, 동해안 별신굿 범굿 등)가 흔하다. 단순한 가축 차원을 넘어선 소의 신성성이 면면히 내려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소를 잡아서 제사 지내고 그 발굽이 갈라지면 흉하고 합해지면 길하다고 생각했다. 황해도 평산의 소울음굿이나 경기도 양주의 소놀이굿, 경남 창녕의 영산쇠머리대기, 경남 진주, 경북 의령과 청도의 소싸움은 일상적인 놀이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풍요를 기원하는 농경의례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이는 소가 힘든 농사일을 도맡아하고 풍요와 힘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한편 소와 관련된 세시풍속으로 여러 가지가 있다. 정월의 첫 번째 맞는 상축일(上丑日)에는 소에게 일을 시키지 않고 쇠죽에 콩을 많이 넣어 잘 먹이고 도마질과 쇠붙이 연장도 다루지 않는 것은 소를 소중히 위하는 조상들의 지혜가 내포된 것이다. 정월 대보름에 소 밥주기를 행하는데 오곡밥과 나물을 쇠죽에 섞어 소에게 준 뒤 소가 밥을 먼저 먹으면 풍년, 나물을 먼저 먹으면 흉년으로 점을 치기도 한다.

'나경(裸耕)'은 성기가 큰 숫총각이 벌거숭이가 되어 목우나 토우를 몰고 밭을 갈며 풍년을 비는 풍속이다. 땅은 풍요의 여신이고, 쟁기는 남자의 성기를 상징하는 것으로, 다산력을 지닌 대지 위에 남자의 성기를 노출한 것은 풍성한 수확을 바라는 의미가 담긴 것이다. 이 풍속은 관동 ․ 관북지방에서는 예로부터 정월 대보름에 행해지던 것인데, 토질이 척박한 자연조건에서도 곡식의 풍년을 비는 간절한 염원과 무관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기능 외에도 소의 부속물인 뿔, 가죽, 뼈, 기름, 고기 등은 실생활의 주요 재료로 폭넓게 이용되었다. 소뿔을 가공한 화각공예품, 각대, 각궁, 각지, 안경테, 소가죽으로 만든 북 ․ 장구 ․ 소고, 각퇴(角槌, 편경 채) 등의 악기로 쓰였다. 또한 소뼈는 문자의 새김이나 길흉을 점치는 재료나 잡귀를 쫓는 부적의 역할, 소의 쓸개에 병으로 생긴 덩어리인 우황포룡환, 우황을 이용하여 만든 강심제인 우황청심원, 음식 관련 소고기 요리 등 다양한 쓰임은 ‘소는 하품 밖에 버릴 것 없다’ 라는 말에 함축되어 있다.

소가 지닌 타고난 생태적 성질과 그로부터 유래한 사회문화적 특성은 종종 종교, 사상, 언어나 구체적인 사물 등에서 상징적 요소가 되었다. 우직하지만 유순하고 성실하며, 끈질기고 힘이 세지만 사납지 않다는 소의 기질이 일상생활 곳곳에서 상징화되어 자리하고 있다.

유교에서의 소

  
유교에서 소는 의(義)를 상징한다. 호랑이의 위협으로부터 주인을 구한 소의 이야기는 주인에 대한 소의 우직한 충성심을 보여줌과 동시에 국왕에게 충성하라는 유교적인 가치를 전해준다. 선산부사 조찬한(1572~1631)이 1630년에 지은 <의우전>, 의로운 소의 행위를 여덟 폭에 담아낸 <의우도>, 의우총(의로운 소의 무덤)에 관한 전설이나 경북 상주에서 2007년 1월 죽은 의로운 소 이야기(자신을 친절히 돌봐주던 이웃집 할머니가 죽자 소가 집을 나와 할머니의 묘에서 눈물을 보인 뒤 곧장 집으로 가지 않고 이웃집 할머니 집으로 들어가 한참을 있고 나서야 발을 떼었다고 함)는 이러한 배경 속에서 전승되어 왔다고 볼 수 있다.
 
도교에서 소는 '유유자적'을 뜻한다. 소를 타고 피리를 불며 길을 가는 목동의 모습은 흔들림이 없는 유유자적의 여유와 한가로운 대인, 은자의 이미지를 수반한다. 소를 타면 소의 성질이 급하지 않아 웬만한 일에는 놀라지 않아 좋고, 진창이라도 가리지 않고 잘 가고 무엇보다도 걸음이 느려 길가의 풍경을 천천히 구경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선비들의 취향에 각별한 영물로 인식되어 권근, 이덕무 등의 시문, 김홍도 동의 기우에 관한 그림, 고사에 종종 등장한다.

선을 닦아 마음을 수련하고 해탈을 추구하는 불교에서는 소가 마땅히 찾아야 할 사람의 참된 본성을 나타내고 있다. ‘소가 말이 없어도 열두 가지 덕이 있다’는 속담도 유유자적하면서도 동시에 묵묵히 일하는 모습을 통해 진정한 덕을 깨우치게 하려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또한 사람의 진면목을 소에 비유하기도 하였다. 고려 때의 보조국사 지눌(1158~1210)의 호가 목우자(牧牛子, 소를 기르는 이, 즉 참다운 마음을 장양하는 사람을 뜻함)인 것이나 만해 한용운(1879~1944)이 만년에 그의 자택을 심우장(尋牛莊)이라고 한 것 역시 스스로의 진면목을 소에서 찾고자 염원하였던 것과 일맥상통 한다. 또한 풍수지리에서는 소가 누운 모양(와우형, 臥牛形)이나 뱃속 형태(우복형, 牛腹形)를 닮은 땅을 명당이나 길지로 여겼다.

인도에서 소고기가 금기되는 것은 힌두교에서 신성시하는 시바신의 탈 것으로, 신성동물로 여겨지기도 하지만 소는 인도 고금의 우유와 분(糞)은 그들의 주식과 연료의 생존수단에 말미암은 것이다.

꿈풀이에서 대체로 소꿈은 재물, 협조자, 조상, 자식 등을 상징한다. 꿈에 소가 집안으로 들어오거나 끌어다 매는 꿈은 부자가 된다는 속신이고, 소가 문 밖으로 나가는 꿈은 간사한 일이 생기거나 곤란을 일을 당하는 불길한 징조로 믿었다. 또한 ‘밥 먹고 나서 곧바로 자리에 누우면 죽어서 소가 된다’는 금기어는 전국에 걸쳐 있으며, 소의 우직하고 다소 미련한 면을 들어 ‘쇠귀에 경읽기’, ‘소 궁둥이에 꼴을 던진다’ 등의 속담은 몹시 우둔하여 깨닫지 못할 사람은 아무리 교육시켜도 소용이 없다는 의미로 사용되었고,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의 속담은 이미 일을 망친 뒤에 뉘우쳐도 소용없다는 의미이다.

우리네 조상들이 소를 인격시했던 이야기가 많이 전해오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화로는 황희(1363~1452) 정승이 벼슬하기 전에 길을 가다가 농부가 두마리 소가 밭을 가는 것을 보고 “두마리 소 가운데 어느 소가 잘 가느냐?” 라고 말했더니, 농부가 황희의 귓가에 대고 “비록 짐승이라 하더라도 그 마음은 사람과 더불어 같다” 라고 답한 것을 듣고 황희가 크게 깨달아 이후로는 남에게 부언장단하지 않았다는 일화, 조선초의 맹사성(1360~1452)이 소를 타고 고향인 온양을 오르내린 설화, 서거정이 말보다는 소를 즐겨 타고 관에 출퇴근하기를 좋아했다는 일화, 이이가 소의 공(인간의 노동 절감과 육식 제공)에 대한 仁愛의 보답으로 쇠고기를 먹지 않았다는 일화, 변영로(1898~1961), 오상순(1894~1963), 염상섭(1897~1963) 등이 비오는 백주에 대취하여 나체로 소를 타고 서울의 종로 거리를 지났다는 일화, 걸레 중광(1934~2002) 스님이 출가 전 제주도에서 소를 훔쳐 잡아먹고 후회한 일화 등이 있다.

  
일상생활에서 볼 수 있는 1960년대 우리네 물건에도 소의 상징적 요소들이 담겨 있다. 소의 특성들을 적극 활용하여 사람들에게 그 의도를 전하려는 것이 많다. 소표 탈곡기나 황소표 라디오, 쟁기질하는 소를 그린 담배갑은 친근하고 편안한 소의 성질을 상품 광고 이미지로 옮겨 놓은 경우이다. 황소의 힘세고 성실한 이미지는 민속씨름 경기에서 우승자에게 주어지는 황소 모양의 상패, 대학교(건국대)의 상징물, 과거 정당(민주공화당), 증권사 등의 로고에 이용되기도 했다.

성서에서의 소

다음으로는 소와 관련된 성서의 구절을 살펴보자. 창세기 18장 8절 “아브라함이 뻐터와 우유와 하인이 요리한 송아지를 가져다가 그들의 앞에 진설하고 나무 아래 모셔 서매 그들이 먹으니라”의 구절은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송아지를 제사드리고 음식을 나누어 먹었다는 의미로 보인다.
 
출애굽기 20장 24절 “내게 토단을 쌓고 그 위에 너의 양과 소로 너의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라 내가 무릇 내 이름을 기념하게 하는 곳에서 네게 강림하여 복을 주리라”의 구절은 소와 양들이 희생의 제물로 화목제가 시행되었음을 알 수 있고, 이스라엘이 여호와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는 강한 의미가 내포된 대목이다.
 
출애굽기 23장 12절 “너는 육일 동안 네 일을 하고 제칠일에는 쉬라 네 소와 나귀가 쉴 것이며 네 계집종의 자식과 나그네가 숨을 돌리리라”의 구절에서 소도 안식일에는 일을 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출애굽기 32장 4절 “아론이 그들의 손에서 그 고리를 받아 부어서 각도로 새겨 송아지 형상을 만드니 그들이 말하되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신이로다 하는지라”의 구절은 모세가 없는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여호와의 임재를 송아지의 우상으로 바꾼 점을 언술한 대목이다.
 
민수기 7장 3절 “그들의 여호와께 드린 예물은 덮개 있는 수레 여섯과 소 열둘이니 족장 둘에 수레가 하나씩이요 하나에 소가 하나씩이라 그것들을 장막 앞에 드린지라”의 구절에서 이스라엘의 족장들이 소를 예물로 드린 것을 기술하고 있다.
 
신명기 22장 4절 “네 형제의 나귀나 소가 길에 넘어진 것을 보거든 못본 체하지 말고 너는 반드시 형제를 도와서 그것을 일으킬지니라”의 구절은 사랑의 결핍을 지적한 것으로, 언약 백성인 이스라엘의 도덕성 높이려는 것에 기인한다.
 
신명기 33장 17절 “그는 첫 수송아지같이 위엄이 있으니 그 뿔이 들소의 뿔 같도다 이것으로 열방을 받아 땅끝까지 이르리니 곧 에브라임의 만민이요 므낫세의 천천이리로다”의 구절은 이스라엘 자손을 축복하는 모세의 언술로 여호와의 위엄을 소의 힘에 비견한 것이다.
 
사무엘상 6장 10절~11절 “그 사람들이 그 같이 하여 젖나는 소 둘을 끌어다가 수레를 메우고 송아지들은 집에 가두고 여호와의 궤와 및 금쥐와 그들의 독종의 형상을 담은 상자를 수레 위에 실으니”의 구절은 다른 신의 섬김으로 인해 잃었던 언약궤를 다시 되찾는 대목이다.
 
열왕기상 4장 23절 “살진 소가 열이요 초장의 소가 스물이요 양이 일백이며 그 외에 수사슴과 노루와 암사슴과 살진 새들이었더라”의 구절에서 솔로몬의 자산이 풍족한 것을 읽어낼 수 있다.
 
열왕기상 7장 25절 “그 바다를 열두 소가 받쳤으니 셋은 북을 향하였고 셋은 서를 향하였고 셋은 남을 향하였고 셋은 동을 향하였으며 바다를 그 위에 놓았고 소의 뒤는 다 안으로 두었으며”의 구절에서 솔로몬 성전의 바다를 열두 마리의 소들이 떠받치고 있는 장식을 그려내고 있다. 열왕기상 7장 29절 “변죽 가운데 판에는 사자와 소와 그룹들이 있고 또 변죽 위에는 놓는 자리가 있고 사자와 소 아래에는 화환 모양이 있으며”의 구절에서 사자와 소들이 조각된 것을 알 수 있고, 소가 풍요와 힘의 상징이기에 조각된 것으로 보아진다.
 
역대상 12장 40절 “또 근처에 있는 자로부터 잇사갈과 스불론과 납달리까지도 식물을 나귀와 약대와 노새와 소에 무수히 실어 왔으니 곧 과자와 무화과병과 건포도와 포도와 기름이요 소와 양도 많이 가져왔으니 이스라엘 가운데 희락이 있음이었더라”의 구절에서 다윗 왕국의 안정된 번영의 즐거움은 하나님의 통치에서 비롯된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욥기 1장 3절 “그 소유물은 양이 칠천이요 약대가 삼천이요 소가 오백 겨리료 암나귀가 오백이며 종도 많이 있었으니 이 사람은 동방 중에 가장 큰 자라”의 구절에서 욥은 부자임을 알 수 있고, 소 ․ 양 ․ 나귀 등은 부와 사회적 지위의 척도가 됨을 보여준 것이다.
 
욥기 6장 5절 “들나귀가 풀이 있으면 어찌 울겠으며 소가 꼴이 있으면 어찌 울겠느냐”의 구절에서 가능하면 초장에서 풀을 먹었지만 초장의 사정이 여의치 못한 것을 형용한 것으로, 불평하는 욥의 심정을 그려내었다.
 
욥기 39장 9절~12절 “들소가 어찌 즐겨 네게 복종하며 네 외양간에 머물겠느냐 네가 능히 줄로 들소를 매어 이랑을 갈게 하겠느냐 그것이 어찌 골짜기에서 너를 따라 쓰레를 끌겠느냐 그것의 힘이 많다고 네가 그것을 의지하겠느냐 네 수고하는 일을 그것에게 맡기겠느냐 그것이 네 곡식을 집으로 실어 오며 네 타작 마당에 곡식 모으기를 그것에게 의탁하겠느냐”의 구절은 하나님이 역설로 말씀하시는 대목으로, 인간의 힘으로 제어할 수 없는 동물들의 생태와 행동, 본능적인 지혜를 언술하고 있다.
 
에스겔 4장 15절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쇠똥으로 인분을 대신하기를 허하노니 너는 그것으로 떡을 구울지니라”의 구절은 쇠똥이 떡을 굽는데 연료로 쓰인 것을 기술하고 있다.
 
요엘 1장 18절 “생축이 탄식하고 소떼가 민망해하니 이는 꼴이 없음이라 양떼도 피곤하도다”의 구절은 꼴을 뜯어 먹고 사는 동물들이 초장이 말라 생명을 이어가지 못하는 절망적인 정황을 그려낸 것으로, 시대가 암울하여 재앙이 닥칠 징조를 예언한 대목이다.
 
신약성서 누가복음 13장 15절 “주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외식하는 자들아 너희가 각각 안식일에 자기의 소나 나귀나 마구에서 풀어 내어 이끌고 가서 물을 먹이지 아니하느냐”의 구절은 안식일에 소에게 노역을 시키지 않는 대신에 마구간에서 끌어내 초장에서 풀과 물을 먹게 했다는 언술이다. 안식일에 18년 동안 앓던 병자를 치유하신 예수의 행적에 대해 고루한 회당장이 안식일의 의미를 문제 삼자 예수가 안식일에 초장에 꼴을 먹이는 이들의 행위를 빗대어 올바른 행동이 무엇인지를 일깨우고 있는 대목이다. 
 
누가복음 15장 23절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의 구절은 잃었던 아들의 비유로 돌아온 탕자에게 아버지가 송아지 고기를 먹인 것은 죄인을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읽어낼 수 있다.
 
사도행전 14장 13절 “성밖 쓰스 신당의 제사장이 소와 화관들을 가지고 대문 앞에 와서 무리와 함께 제사하고자 하니”의 구절에서 소들이 희생의 제물(루스드라 지방의 제우스 신)로 쓰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히브리서 9장 12~13절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 가셨느니라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로 부정한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하여 거룩케 하거든”의 구절은 염소와 황소의 피 및 흠없는 송아지를 불살라 그 재로 그리스도의 영원한 속죄의 의미로 희생된 소가 신성한 의식의 제의용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이 밖에도 성서에 드러난 소에 관한 구절은 많으나 생략한다.

이상에서 보듯 소의 상징은 농사신으로서의 풍요와 힘, 종교로서의 의, 본심(진면목) 찾기, 도가적 은일, 희생, 제물, 축귀, 근면, 우직, 충직, 유슨, 고집, 부, 장식 등의 표상을 지니고 있다. 소는 열두 가지의 미덕을 지닌 동물이기에 동서고금의 세인들이 제각기 특별한 의미를 부여했던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최근 나이든 농부와 노쇠한 소의 고락을 다룬 다큐멘터리 ‘워낭소리’가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감명을 준 이유는 무엇일까?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바뀌면서 소에 대한 인식은 과가의 신성한 의미 부여보다는 우유나 고기를 제공하는 단순한 가축의 하나로만 여기는 오늘의 세태에서 소의 미덕을 다시금 생각해야 할 때가 아닐런지?
  
홍성남(한신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외래교수 / 고전산문전공)

홍성남 위원  webmaster@ecumeni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