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쳐서 머물다: 남해돌창고 프로젝트 대정돌창고

김나래 기자

사진

노경

자료제공

와이즈건축사사무소

​인쇄소와 철물점에 에스프레소 머신이 들어선다. 원래 마감이 필요없던 건물의 거칠고 황량한 모습 그대로, 프랜차이즈 커피숍에 가기에는 어쩐지 마뜩찮은 사람들을 끌어모은다. 제각기 다른 이름과 내부 공간을 뽐내는 가게들이 물밀듯이 들어와 조용하던 동네를 이전과 다른 모습으로 바꾸고 지나간다. 국내에 이런 현상이 생긴 지 몇 년 되었다. 그런데 애초에 사람을 모으기 위한 공간도 아니었던 창고나 철공소에 이토록 몰려드는 이유가, 우리가 이런 장소를 그리워하기 때문은 아니다. 을지로의 공장이나 노포에 어릴 적부터 드나들며 자기만의 기억을 간직하는 사람이 과연 지금의 유행을 선도하는 세대에 몇이나 될까. 그렇다면 왜일까. 경상남도 남해군에 창고를 개조한 갤러리와 공방이 생겼다. 그곳에 가서 이 같은 질문을 다시 하게 됐다. 

남해에는 지역에서 나는 청석으로 만든 돌창고가 여럿 있다. 1973년 남해대교가 놓이기 이전, 외딴 섬이었던 남해에 곡식과 비료를 보관하는 창고는 필수였다. 그중 두 개의 돌창고, 지역의 이름을 딴 시문돌창고와 대정돌창고에서 남해돌창고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 2016년 여름, 문화콘텐츠 기획을 전공한 최승용은 남해에 가서 방치된 돌창고를 발견했다. 이 창고를 잘 꾸며 ‘미셸 푸코의 헤테로토피아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소유주를 수소문해 어렵게 사들였다. 이후 도예가 김영호와 함께 이 두 돌창고를 기반으로 여러 행사를 기획, 운영하고 있다. 남해돌창고 프로젝트라는 이름의  남해에서 살며 문화 공간을 만들려는 시도다. 산과 바다가 있는 남해에서, 아름다운 것들을 창작하는 사람들이 다양한 가능성을 펼치는 일종의 플랫폼을 조성하는 것으로 이 목표를 돌창고의 건축주와 와이즈건축이 확실하게 공유했다. 와이즈건축이 작업한 것은 대정리에 있는 대정돌창고로, 갤러리로 쓰이는 시문돌창고에서는 약 7km 정도 떨어져 있다. ​

 

 

창고의 반은 도예공방으로, 반은 사랑방으로 계획했다. 사랑방에는 2층 공간을 새로 만들었다.

 

산업시대의 유산인 폐창고를 건축가와 디자이너의 손으로 바꾸어내는 많은 리모델링 사례 중에서도, 곡물창고는 미술관으로 애용돼왔다. 2002년 완성된 영국 게이츠헤드의 발틱 현대미술센터는 제분공장의 곡물창고를 미술관으로 탈바꿈한 선도적 사례다. 그런가 하면 헤더윅 스튜디오의 자이츠 현대미술관도 있다. 곡물도정 장비와 연결된 수십 개의 저장고를 곡식 낱알의 단면 모양으로 잘라냈다. 기존 공간의 특성을 살려 드라마틱하게 연출한 이 거창한 미술관을 상상하고 남해를 방문한다면 소박한 첫인상에 자못 실망할지도 모른다. 남해의 돌창고들은 전혀 다르다. 건축가가 살릴 만한 요소라고는 없이 작고 투박하다. 장식이 일체 없는 정방형의 단순한 건물이다. 이 돌벽을 쌓기 위해 주민들이 직접 돌을 날랐다. 60년대 남해에 시멘트나 철근과 같은 건축자재가 풍부할 리 없었고, 석공이 돌산의 청색 돌을 육면체 모양으로 깨주면 산 위에서 주민들이 지게로 받아 내려오는 식이었다. 당연히 삐뚤빼뚤하다[이 벽의 시공을, 장영철(와이즈건축사사무소 대표)은 ‘남해돌쌓음’이라고 표현했다]. 어설픈 벽과 지붕, 문뿐인 자그마한 폐창고. 이런 공간은 건축가가 무언가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담아 힘껏 손보기에는 어렵고 손본 티도 별로 나지 않지만 사실 손은 많이 가는 번거로운 케이스다. 

건축가는 기존 대정돌창고를 최대한 살리려고 했다. 그래서 원래의 벽돌벽에 다른 재료를 덧입히거나 하지 않았다. 목재 트러스도 철거하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 다만 곡식을 보관하기만 하면 됐던 창고를 실제 쓰임새 있는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여러 방식의 보강이 필요했다.  일단 창고에서 공장으로 용도변경하면서 강화된 규정에 따라 내진과 단열 기준을 맞춰야 했다. H빔을 창고 벽의 내측에 설치해 기둥과 가새 역할을 하게 했다. 벽과 지붕에 단열재를 넣었다. 철골 트러스를 보강했다. 화장실과 작업실을 위한 상하수도 설비를 집어넣었다. 팬던트 조명을 매다는 등 전기 공사도 필수였다. 미니 포크레인을 문으로 넣다 뺐다 하며 터파기를 하고 지붕을 완전히 열어 H빔 등의 자재를 안으로 넣었다. 시공에 무려 열 달이 걸렸다.​

 

기존 대정돌창고를 최대한 살리려는 기조 아래 건축 법규에 맞추고 활용도를 높이기 위한 보강 작업을 했다.

 

건축주는 도예 공방과 사랑방을 요청했다. 매일 출근해 일하는 사람의 공간, 일회적으로 방문해 둘러보는 사람의 공간이다. 건축가는 창고의 중앙에서 이 둘을 나눴다. 평면으로 보면 오른쪽 반을 공방으로, 왼쪽 반을 사랑방으로 꾸린 셈이다. 워크숍이나 판매 같은 부수적 활동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시간을 집중해서 도자기를 만드는 데 쓸 건축주를 위해서 최선인 공간구성이다.  사랑방 공간에는 원래 없던 2층을 만들었다. 철골로 구조를 만들고 중간중간 합판을 끼워 넣은 특이한 슬라브다. 2층이 생기면서 내부 면적이 늘어나고 관람객의 동선이 생겼다. 공간을 더 풍부하게 활용하게 된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기존의 창 하나 없이 높은 천장의 단순한 큐브 형태가 주던 특유의 공간감을 이제는 찾아볼 수 없게 되어버렸다. 2층의 바닥 일부를 뚫었던 기존의 설계를 변경해 전체를 합판으로 막아 마감했다고 하는데, 못내 아쉬운 점이다. 

사방이 막혀 있던 건물의 가운데엔 마치 중정과 같은 계단실을 만들고 이 부분의 지붕을 뚫었다. 기존 석면 지붕을 걷어내고 합판 지붕을 새로 덮으면서, 계단실 위는 열어둔 것이다. 창고로 쓰였던 건물의 답답함과 어두움, 단조로움을 극복하고 채광과 통풍에 대한 요구를 만족시키기 위해서다. 이번 프로젝트에서 1층 바닥을 콘크리트로 마감했는데 계단실 바닥 부분은 남겨놓고 시공했다. 그래서 계단실 바닥에 흙이 드러나 있다. 여기에 보스턴고사리와 대나무 같은 식물을 심었다. 계단실 안에 하늘과 땅이 들어와 있다. 작은 창고 안 더 작은 계단실이지만 세심한 구석이다. 건물이 상하로 열렸고 숨을 쉬게 됐다. ​ 

 

 

다시 지붕을 본다. 돌아 올라가는 계단의 끝에, 자그마한 열린 공간을 마련했다. 빼꼼히 물 밖에 머리를 내미는 잠망경을 닮았다. 한 사람이 겨우 서서 주변을 볼 수 있다. 지붕이라고 해봤자 보통 건물의 2층 높이에 불과하고 전망대라고 하기엔 좁고 불편하다. 레진을 채워넣은 철제 그레이팅은 어딘가 의아하다. 그러나 기어이 이 위에 올라와 난간을 붙잡고 주위를 둘러보는 것은 이 돌창고를 방문하는 사람이 하게 되는 가장 극적인 공간적 경험이다. 사실 도시에서 찾아간 대부분의 구경꾼에게 남해라는 장소는 그 자체로 낯설고 독특하다. 창고의 지붕 위에 올라가 주변의 풍광, 앞산과 대정마을을 바라보면 그런 생경함과  '내가 지금 남해에 있다'는 비일상성이 다시 한 번 고조된다. 

지붕 전망대가 창고 안에서 바깥을 향하는 액자 같은 장치라면, 대정마을에서 창고 안으로 들어가며 마주치게 되는 문은 새롭고 특별한 공간에 들어간다는 기대감을 키운다. 철판으로 된 커다란 반원형 문이다. 장영철은 "원래의 창고에 나무 미닫이 문 위에 같은 재료의 원형 란마(欄間)가 있었는데 인상적이어서 그 느낌을 살리고 싶었다"며 동기를 밝혔다. 중간에 힌지가 있는 피봇 문을 밀어 회전시키는 방식이다. 

 

계단실 지붕을 열어서 마감해, 방문객이 지붕 전망대에 올라 주변 풍광을 바라볼 수 있다​.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 생각해보면, 창고와 공장 리모델링의 최근 유행은 그들이 공간적 특성을 가지고 있는, 양질의 공간이기 때문인 것 같다. 예전에 실용적이고 무심하게 지은 거칠고 날것인 장소의 매력을, 어떠어떠하게 꼼꼼히 계획하고 꾸민 곳에서는 찾기 힘들어서다. 일부러 설계해서는 그런 공간을 만들어낼 수 없다. 남해의 돌창고 벽은 지금 기술공에게 인건비를 주고서는 쌓을 수가 없다. 건축가는 대정돌창고를 고치면서 이를 영민하게 파악했다. 기존 돌창고와 이질적이지 않은 녹슨 H빔과 스테인레스 계단, OSB 합판 등의 재료를 이용해 직관적이면서 활용도 높은 공간을 완성해냈다.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는 것만 같은 대정의 논밭 사이에 잘 녹아 들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페인트로 벽화를 그리거나 생뚱맞은 특산품 조형물을 설치하거나 한옥을 새로 지으며 사람들을 모으려고 노력하는 지방 마을에서 하는 것을 멈추고 한 번 구경할만한 우수한 사례다. “또 다른 무슨 마을, 무슨 마을의 이름으로 결국 카페가 즐비한 관광지가 되어버리는 것은 싫다“며 뚜렷하게 주관을 밝힌 김영호를 응원하고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움은 남는다. 남해군 인구 4만 4천여 명의 평균연령은 53.4세다. 작년에 태어난 아기는 3명뿐이다. 어업과 농업은 어려워지고 있고 사람들은 떠난다. 비어가는 동네에 열정과 재능을 가진 젊은이들이 찾아온다니, 우선은 반길 만한 일이다. 게다가 이들은 휴식과 관광을 하는 게 아니라 눌러산다고 한다. 그러나 이들이 생소하고 불편할 수도 있는 지역주민의 입장이나, 결국 가끔씩 놀러 오는 누군가의 소비에 기댈 수밖에 없는 사업의 종류와 방식-미술품 전시, 공방, 카페 등-은 앞으로도 생각해보아야 할 문제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