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속 110살 향나무가 사라졌다...어디로, 왜?

윤희일 선임기자 yh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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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03.18 15:29 수정 : 2021.03.18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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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중구 선화동 옛 충남도청사 구내에서 잘려나간 나무의 그루터기. 윤희일 선임기자

 

나무는 생명이 있다. 사람과 같이 숨을 쉬며 산다. 아니 사람이 숨을 쉴 수 있게 해준다. 그래서 나무와 사람은 늘 같이 살아간다.

그런데, 어느 날 도심에서 사람과 함께 살아가던, 사람들 곁에서 함께 숨을 쉬던 481그루의 나무가 싹둑 잘려나갔다. 그 중에는 110살, 105살 된 향나무도 포함돼 있었다.

대전 중구 선화동 옛 충남도청 담장 주변 등에서 벌어진 일이다. 담장 주변 등 옛 충남도청 부지 안에는 원래 1218그루의 나무가 있었다. 이 중에서 481그루가 무참하게 베어진 것이다.

옛 충남도청사를 ‘소통협력공간’으로 만든다면서 대전시 공무원들이 지난해 11월과 올 1월에 벌인 일이다. 그 과정에서 담장도 허물었다.

나중에 이를 안 시민들은 분노했다. 조사에 나선 대전시가 가서 나무의 종류별로 일일이 세어봤더니, 향나무 114그루, 사철나무 36그루, 측백나무 15그루, 회화나무 8그루, 히말라야시다 2그루가 이땅에서 사라진 것으로 나타났다.

시민들은 마음 아파했다.

대전시가 그루터기(밑동)가 남아있는 14그루의 나이테를 통해 나이를 확인해봤다. 그랬더니 110살, 105살, 55살 된 향나무가 잘려나간 사실이 확인됐다. 70살 측백나무와 68살 측백나무도 잘려나간 것으로 나타났다. 50살과 45살인 메타세과이어 2그루도 그루터기만 남기고 이땅에서 사라졌다.

잘려나간 다른 나무의 나이는 알 길이 없다. 그루터기가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시는 옛 도청사 내 우체국 등 부속건물을 리모델링하는 작업도 진행했다. 옛 우체국건물 등 건물 2동에서는 2층 바닥과 내·외부계단을 철거하는 큰 공사를 진행했다. 부속건물 3동 사이의 기존 연결복도를 철거하고 다시 설치하는 일종의 증축 공사도 진행했다.

대전시는 그동안 사용·관리해오던 옛 충남도청의 의회동과 부속건물을 증·개축해 회의·전시 공간 등을 만드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소통협력 공간 조성사업’을 추진해 왔다.

대전시가 나무를 베기 전의 옛 충남도청사 전경. 오른쪽 ‘3’으로 표시된 곳에 110살, 105살 향나무가 있었다. 대전시 제공

■소유자의 승인없이 이루어진 ‘멋대로 행정’

옛 충남도청사는 충남도 소유다. 나무를 베고 담장을 허무는 등 시설을 변경하려면 당연히 원래 소유자의 허가가 있어야 한다. 이건 법 이전에 상식이다. 하지만 대전시 공무원들을 그런 절차를 밟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그런 과정에서 소중한 나무가 이 땅에서 사라져버린 것이다.

이런 사실은 대전시가 그동안 진행한 감사에서 확인됐다.

서철모 대전시 행정부시장은 18일 감사결과를 발표하면서 “수목 제거, 담장 철거, 우체국 등 부속 건물에 대한 리모델링 공사는 사업부서에서 문화체육관광부를 4차례 방문해 협의한 사실은 있으나, 소유주인 충남도나 문체부의 공식적인 승인 없이 무단으로 사업을 추진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적법 절차를 거치지 않고 진행한 일이라는 사실이 확인됐다는 얘기다.

우체국 등 부속건물의 2층 바닥과 내외부 계단을 철거하는 등의 큰 공사(대수선)를 할 때는 관할 구청인 중구청과 건축협의 절차를 이행해야 하지만 이런 절차도 거치지 않은 사실이 확인됐다.

서 부시장은 “성과를 내야 하는 촉박한 일정 속에서 관련 공무원들이 절차를 지키지 않고 욕심을 낸 것이 원인”이라고 밝혔다.

대전시는 관련자를 징계하기로 했다. 징계 대상자 5명 가운데 담당 과장은 이미 사퇴했다. 대전시는 나머지 4명에 대해서는 감사위원회에 상정해 징계를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사라진 110살 향나무 등 481그루의 나무를 다시 살려낼 길은 없다. 모두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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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103181529001&code=610103#csidx4a262caa2dff990bdb84b02598e31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