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력인플레` 덫에 걸린 한국

매일경제 | 입력 2011.07.20 17:51




치솟는 물가 이상으로 서민생활을 항상 짓누르는 게 있다. '학력 인플레이션'에 의한 고학력 거품이다. 개인 삶을 망가뜨리는 것은 물론이고 사회 전체적으로도 막대한 비용을 초래한다.

다른 나라에선 고졸자들이 주로 취업하는 은행 텔러(창구직원)를 한국에선 10년 넘게 대졸자들이 거의 100% 맡고 있다. 최근엔 MBA나 대학원까지 나온 고학력자들이 노리는 자리가 됐다.

김석동 금융위원회 위원장은 "직무 성격상 고졸 사원들이 충분히 할 수 있는 텔러를 대졸자나 심지어는 MBA 졸업자가 하는 것은 웃기는 일이고 금융회사 비용구조로 봐도 연봉을 수천만 원씩 더 축내는 엉터리 같은 일"이라고 말했다. 주변을 둘러보면 석ㆍ박사가 넘쳐난다. 한국은 2009년 국내 박사 학위자가 총 1만322명으로 한 해에 박사 1만명을 배출하는 시대를 열었다. 현재 국내에 거주하는 박사 학위자는 총 16만명 이상으로 추산된다.

20일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시 지방공무원 8ㆍ9급 합격자 415명 가운데 고졸 이하는 단 1명뿐이었고 대학원 이상은 9명이나 됐다.

은행 텔러나 9급 공무원 등은 이제 고졸자들이 아예 명함도 못 내미는 시대가 된 것이다.

공부를 많이 하지 말자는 뜻은 물론 아니다. 그러나 과도한 고학력 사회를 만들어 놓고, 국민 스스로가 교육비 부담에 허덕이는 악순환 구조가 된 것은 확실하다.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고졸자 중 80% 안팎에 이르는 과도한 대학진학률이다.

매일경제신문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한국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 수준으로 대학을 간다면 국민은 한 해 평균 9499억원에 이르는 등록금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대학생을 둔 가정이 매년 1조원가량을 안 써도 된다는 뜻이다.

2010년 기준 79.0%인 한국 대학진학률(대학 진학생 수/당해연도 고교 졸업자 수)을 OECD 평균 '대학입학률(대학 진학생 수/18세 인구 수)'인 56%로 낮추는 것을 전제로 계산한 수치다.

지방 학생들이 서울에 거주하는 비용과 교재비를 합하고, 고졸자로 취업해 4년간 돈을 번다는 기회비용까지 합하면 총비용은 2~3배로 늘어난다.

박상용 연세대 경영대학장은 "한국 경제구조는 고학력 수요가 절대 크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사회ㆍ문화적인 마인드가 고학력 사회를 부추겼지만 직접적으로는 교과부가 사립학교를 너무 많이 허가해 준 것이 원인이므로 대학 구조조정이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강만수 산은지주 회장은 "미국은 은행 텔러가 대부분 고졸 이하이고 상당수가 중졸 수준으로 알고 있다"면서 "국가가 발전하려면 경제활동인구를 늘려야 하는데 대학진학률이 높다는 것은 경제활동 진입이 애초부터 어렵다는 뜻이므로 적극적으로 고쳐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기획취재팀 = 김선걸 차장(팀장) / 김인수 차장 / 고재만 기자 / 서진우 기자 / 박용범 기자 / 박준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