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가드닝 = 2021년 12월호]


중세수도원의 키친가든
집 뜰의 큰 사과나무에서 발견한 만유인력의 법칙

1665년 아이작 뉴턴은 영국 켄싱턴의 집 뜰에 앉아 있다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했다. 이 사과나무 는 뉴턴의 죽음 이후 접목을 통해 총 33그루가 품종을 유지하며 여러 나라에 퍼져 자라고 있다. 그중 두 그루가 우리나라 표준과 학연구원(KRISS) 앞마당에 있다고 한다.

집 뜰앞에서 쉬다가 만유인력을 발견한 뉴튼의 천재성도 놀랍지 만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볼 수 있을 정도로 풍성하고 큰 사과나 무가 정원에 있다는 것도 놀랄만하다. 우리나라 정원은 대부분 잔 디로 덮여 있으며 주변에 수국같이 꽃이 아름다운 관목이나 소나 무 같은 상록수로 둘러싸인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중세시대부터 시작된 유럽의 키친가든

중세시대 유럽의 수도원에서는 중정에 텃밭과 정원기능을 동시에 만족시켜주는 키친가든(Kichen garden)을 만들기 시작했다. 채소, 허브와 과실수를 심어 먹거리를 얻을 뿐만 아니라 보기에도 아름다운 텃밭정원이 오랜 역사를 거쳐 지금까지 이어지며 유럽 전역에 퍼져 생활화되고 있다. 그러자 영국의 토트네스 같은 도시 들은 키친가든이 앞마당, 옥상, 길가, 공원 등으로 퍼지면서 30km 범위 안에서 먹거리를 자급자족하게 된다. 나아가 건강한 식재료로 만든 요쿠르트, 맥주, 아이스크림 등 가공식품이 넘처나 며 결국 로컬푸드가 패스트푸드를 밀어냈다.

숲의 원리를 따르는 지속가능한 키친가든

채소, 과실수를 기존의 정원에 그냥 섞어 심는다고 잘 자라고 아름다워지는 것은 아니다. 아무도 돌보지 않아도 건강하게 잘 자라는 숲처럼 내 정원을 만든다고 이것저것 마구 심는다면 햇빛, 물 그리고 양분을 두고 서로 싸우게 되어 그야말로 쑥대밭이 될 것이다. 퍼머컬처 키친가든을 만들기 위해서는 식물들을 단순히 형태나 색깔만 고려해 정원에 디자인하기 보다는 몇 가지 원칙을 지켜야 한다. 천년을 유지하는 숲의 비밀에는 자연의 다양성, 자연의 패턴, 자연의 생태원리 그리고 생태적 공생관계가 촘촘히 엮여있다.

과일나무를 중심으로 숲을 닮은 키친가든 만들기

숲에는 키 큰 나무, 키작은 관목, 초화류, 지피식물, 땅속식물, 덩굴식물, 버섯류 등 9개층의 식물들이 각자 기능에 맞춰 조화롭게 살아간다. 키 큰 나무는 그늘을 제공하고 그 그늘 아래서 키작은 나무는 열매를 맺고 그 아래에 초화류들은 영양소를 축적하고 토양을 피복하며 익충을 불러들인다. 
나의 앞마당에 과일나무를 심어보자, 사람들 대부분은 “나무 아래엔 그늘이 질텐데 다른 식물들이 어떻게 자랄 수 있어?”라고 생각할 것이다. 정답은 아주 단순하다. 그럴 땐 반그늘에서도 잘 자라는 식물을 심으면 된다. 

 


사과와 어울리는 상생 식물군
TIP

① 수확하는 키 작은 식물
- 블랙커런트: 블랙커런트는 반그늘, 척박한 토양에서도 잘 자라 는 관목이다. 블루베리와 다르게 키우기가 까다롭지 않다. 또한 블루베리와 달리 새가 쪼아먹지 않는 장점도 있다. 그 이유는 블랙커런트의 잎과 수피에서 민트향이 나기 때문이다. 블랙커런트가 뿜는 특유의 향은 과일나무의 해충도 쫓아주어 일석이조의 효과를 볼 수 있다.
- 땅콩: 땅콩은 콩과식물로 과일나무에게 질소를 공급해준다. 땅 콩은 한여름 30도 이상의 무더위가 오면 생육이 더뎌지는데 이때, 무성해진 과일나무의 잎과 가지들이 만들어 주는 그늘 덕분에 땅콩은 최적의 생육환경을 제공받게 된다. 

② 잡초를 억제하는 식물 (컴프리는 북쪽에, 수선화와 백합과 식물은 남쪽에)
- 컴프리: 팔뚝만큼 자라는 컴프리 잎은 순식간에 토양을 덮어버려 잡초가 들어올 틈을 내주지 않는다. 다만 무성하게 자라는 만큼 다른 식물을 덮어버릴까 걱정스럽기도 하다. 여기서 중요한 건 그 무성한 잎들을 잘 이용하는 것이다. 내 정원에 잡초가 들어올 빈틈이 있다면 주저하지 말고 컴프리잎들을 베어 덮어버리자. 가장 친환경적으로 잡초를 제어하는 멋진 가드너가 될 것이다.
- 백합과 식물: 구근식물인 수선화와 백합은 땅속에서 재료 분리 대(Edge)역할을 해주어 잡초 뿌리가 과일나무 안쪽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바리케이트(차단하는) 역할을 한다. 겨울이 가고 가장 먼저 피는 수선화와 향기로운 백합은 남쪽에 심어 화려한 정원을 만들어보자. 키가 작은 왜성 품종을 선택한다면 공간을 더욱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③ 익충을 끌어들이는 식물 (수레국화, 양귀비, 배초향, 백일홍, 딜, 베르가못)
- 내 정원 과일나무의 가장 큰 역할은 탐스러운 열매를 열어주는 것이다. 열매가 잘 열리려면 꿀벌, 나비, 무당벌레 등 익충이 많아 수분에 도움을 주고 해충을 물리쳐야 한다. 이른 봄부터 꽃을 피우는 수레국화와 양귀비, 여름부터 서리가 내리기 전까지 꽃이 피고 지는 배초향, 백일홍, 딜, 베르가못은 보기에도 아름답고 수많은 익충도 불러들인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식물의 배치이다. 

배초향은 자람세가 빠르고 잘 퍼져나가기 때문에 적은 양을 구석에 심어야 하고 화려한 베르가못은 가장 앞쪽으로, 또한 다년생이기 때문에 처음부터 옮기지 않도록 자리를 신중하게 선택해야 한다. 수레국화와 딜은 요리에 많이 사용할 수 있어 이동동선 가까이에 배치해준다면 내 식탁이 풍성해질 것이다.

④ 영양분을 넣어주는 식물 (루핀, 야로우, 탠지)
- 루핀: 루핀은 콩과식물 중 꽃이 가장 아름답다. 아카시아꽃이 서 있는 모양과 같다고 할까, 과일나무와 가깝게 배치하되 아름다움을 주는 경관 기능도 놓치지 말자.
- 야로우: 야로우는 농부들이 싫어하는 식물 중 하나이다. 그 이유는 뿌리가 깊고 너무 잘 번지기 때문이다. 퍼머컬처 가드너라면 이 러한 식물의 성질을 잘 이용하면 된다. 야로우를 심을 땐 배수가 안 되는 땅에 먼저 배치하고 적은 양만 심어라, 내년에 그곳은 배수도 잘되고 퍼진 야로우들이 꽃을 피우고 있을 것이다. 
- 탠지: 탠지는 열매는 맺는 데 중요한 영양소인 칼륨을 만들어 주는 기능을 한다. 탠지는 우리나라 말로는 야생쑥국화로 불리운다. 야생이라는 이름만큼 키가 크고 양옆으로 뻗어나가며 무성하게 자라난다. 그렇기에 탠지는 딱 하나, 또는 두 개만 심어야 한다. 칼륨을 공급해 주는 건 탠지의 뿌리가 하는 기능이니 잎이 무성해진다면 과감히 잘라주고 노란 꽃은 절화로 사용하여 내 식탁을 아름답게 꾸며보자.

⑤ 토양피복을 하는 식물 (질경이, 백리향, 로먼캐모마일)
- 질경이: 누구나 잡초로 여겨 지나치는 질경이의 가장 큰 매력은 밟아도 푸릇함을 잃지 않고 오히려 낮게 잘 자란다는 것이다. 이런   과일나무나 다른 초화류를 수확하러 가는 길마다 일부러 질경이를 길러보자. 아마도 가장 가성비 좋은 정원관리법일 것이다.
- 백리향: 이 식물을 밟고 가면 신발에 묻어난 향이 백리까지 난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우리가 걷는 길, 발이 닿는 곳마다 백리향을 심어보자. 백리향은 건조한 환경에 잘 자라는 식물이라는 점만 잊지 말고 볕이 잘 드는 곳에 심어야 한다. 
- 로먼 캐모마일: 캐모마일은 다양한 종이 있다. 가장 잘 알려진 캐모마일은 저먼 캐모마일이다. 저먼 캐모마일은 키가 크고 일년생인 데 반해 로먼 캐모마일은 키가 30cm로 낮고 다년생이며 사과향이 나는 꽃이 핀다. 앞서 말한 백리향과 가까운 위치에 심고 그 근처에 작은 티테이블을 놓아보자. 정원에 찾아오는 손님께 생잎차를 우려 대접하기 멋진 장소가 될 것이다. 

⑥ 해충을 쫓아주는 식물 (민트, 메리골드, 바질)
- 3가지 식물은 이미 너무 유명해 모두들 알고 있는 해충방제 식물이다.
- 민트는 얄미운 이웃집 밭에 가 몰래 심고 오는 식물이라고 했다. 그런 만큼 가장 구석자리에 심도록 하자. 
- 메리골드는 앞서 말한 백리향과 로먼 캐모마일이 심긴 근처에 심어 주황빛을 더해 아름다운 티테이블을 완성할 수 있다. 
- 바질은 반그늘에 잘 자라는 허브이다. 과일나무를 기준으로 서쪽에 심도록 추천한다

출처 : 월간가드닝(https://www.dailygreen.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