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려로 저명인사들의 멘토로… 가장 영향력 있는 사회운동가 법륜 스님
황경상 기자 yellowpig@kyunghyang.com
ㆍ법륜 스님은 누구인가

스님은 그때 개구리를 떠올렸다. 군사정권 시절, 다짜고짜 끌려가 밧줄에 묶여 고문을 당하면서 잠시 의식을 잃은 순간이었다. 어렸을 때 아무 생각 없이 싸리 회초리로 잡아 닭모이로 줬던 개구리가 죽어가며 덜덜 떠는 모습이 눈앞에 스쳤다. ‘살생하지 말라’란 부처님의 가르침을 새삼 실감하면서도 한편으론 모두 죽여버리고 싶을 정도로 분노가 치밀었다.

정토회 지도법사 법륜 스님(59)은 그때의 경험에서 “고문하는 그들보다 더 악한 마음이 내 속에도 있다는 걸 알게 되니까 그들에 대한 증오도 마음의 고통도 사라졌다”며 ‘나’를 깨달았다고 말한다. 상대를 탓하기보다 나를 먼저 보고, 세상을 바꾸려면 자신부터 바꿔야 한다는 철학은 이런 극한적 경험에서 비롯됐는지도 모른다. “지금 당장 내 눈을 뜨는 것이 먼저다.” 법륜 스님의 책 <깨달음> 마지막 페이지의 문구다.

법륜 스님은 3일 서울 서초동 평화재단에서 열린 인터뷰에서 “좀 더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것”이라고 다방면의 사회활동 이유를 설명했다. | 권호욱 선임기자 biggun@kyunghyang.com


▲ 고교 1학년 때 도문 스님 만나 출가
승려 아닌 법사로 20년간 불법 전파
1987년 민주화 이후 새로운 길 모색
정토회를 비롯, 환경·국제 구호 운동


지난달 말 미국 뉴욕타임스는 법륜 스님의 활동과 철학을 한 면에 걸쳐 소개했다. ‘레스토랑과 술집, 러브호텔로 가득찬 서울의 뒷골목에 위치한 사무실’에서 ‘은둔과 묵상보다 속세에서 자신의 사명을 위해 일한다’고 묘사된 스님의 삶 자체가 늘 스스로를 바로 세우길 요구받는다. 법륜 스님은 사람을 네 부류로 구분한다. 나쁜 환경에 쉽게 물드는 사람, 나쁜 환경을 일부러 멀리해 물들지 않는 사람, 나쁜 환경에 있으면서도 물들지 않는 사람, 나쁜 환경에 물들지 않을 뿐 아니라 그곳을 좋은 환경으로 물들이는 사람. 스님이 선술집에서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어느새 많은 이들이 되레 ‘물들었다’고 고백한다.

법륜 스님은 몇 년 전 불교계 내 설문조사에서 가장 존경받는 현존 인물로 꼽히기도 했다. 그가 이끄는 정토회는 규모가 작지만 조계종보다 더 큰 사회적 영향력을 지녔다고 평가받기도 한다. 그의 사회활동 영역은 평화, 환경, 민족문제, 국제구호 등 여느 거대 조직도 담당하기 힘들 만큼 광범위하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 등 사회 저명인사들의 멘토로서, 청춘콘서트 등에서 보여준 것처럼 다양한 계층의 보통 사람들의 멘토로서 존재감도 커지고 있다. 기도와 수행에서부터 고민과 방황, 결혼과 육아에 이르기까지 그가 낸 다양한 책들은 100만부가 넘게 팔렸고, 매일같이 열리는 강연은 대성황이다.

그 저력은 오랜 시간 빚어졌다. 중학교 3학년 때 불교학생회에 나가면서 불교를 알게 된 그는 고교 1학년 때 분황사의 도문 스님을 만나게 됐다. 그해 겨울 학기말 시험을 앞두고 법당을 나서는 그를 도문 스님이 붙잡았다. “저 스님, 오늘은 아주 바쁩니다.” “야 이놈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놈이 바쁘긴 뭐가 바빠?” 그 길로 절에 들어갔다.

2년 뒤 ‘복덕을 쌓으라’는 스승의 권유로 절을 나선 법륜 스님은 출가한 승려가 아닌 ‘최석호 법사’(본명)로 활동하며 20여년간 불법을 전했다. 1983년부터는 대학생불교연합회의 지도법사를 맡아 본격적인 사회민주화 운동에 합류했다. 1980년 신군부가 일으킨 ‘10·27 법난’의 부당성을 불교계에서 최초로 지적하다 구속되기도 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법륜 스님은 새로운 길을 모색한다. 싸우고 비판하는 방식의 운동은 모든 것을 감싸안는 불교수행과는 거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이후 100년’을 준비하는 더 근본적인 것을 모색해보자는 취지도 있었다. 3년간 많은 사람의 의견을 듣고 토론했다. 1989년 문경 봉암사에 들어가 100일 동안 침묵하며 절머슴살이를 했다. 결론은 네 가지 방향이었다. 환경문제, 기아·문맹·질병을 부르는 빈곤 퇴치, 종교·민족·계급 갈등 극복, 개인의 수행과 행복 달성. 그것이 각각 오늘날 에코붓다, 한국JTS, 좋은벗들과 평화재단, 그리고 정토회로 이어졌다.

1991년 도문 스님은 법륜 스님에게 출가를 권유한다. “도에 안팎이 어디 있느냐”는 대꾸에 도문 스님은 “밖을 고집하니 안이 생기지 않느냐”고 꾸짖었다. 당장 그날 삭발했지만 조계종 승적은 지금도 없다. 조계종 원로회 의원인 도문 스님으로부터 비구계를 받았지만, 1990년대 이후 바뀐 조계종의 수계 절차를 이행하지 않아서다. 법륜 스님은 승적 없는 것을 강연 소재로 삼을 정도로 개의치 않는다. 그것은 그가 존경한다는 서암 큰스님의 말이 그와 정토회의 철학에 밑바탕을 이루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 불교의 현실을 개탄하는 그에게 서암 스님은 이런 말을 했다. “어떤 한 사람이 논두렁 밑에 앉아서 그 마음을 청정히 하고 있다면 그 사람이 바로 중이고, 그곳이 바로 절이고, 그것이 불교라네.” 머리 깎고 승복 입고 산속에 있어야 스님이고, 절이고, 불교라는 고정관념이 깨졌다. 기성 종단을 비판하기보다 새로운 모델을 만들자는 결심이 섰다. 정토회를 비롯해 환경운동과 국제 구호 운동이 그런 토대에서 벌어졌다. 1996년 압록강 근처에서 굶주리는 북한 소년을 목격한 뒤 탈북 난민 수천명의 증언을 토대로 보고서를 만들어 국제사회에 알려 지원을 호소하기도 했다. 이런 공로로 2002년 막사이사이상을 받는다.

뉴욕타임스에 소개된 법륜 스님.


▲‘실천이 곧 수련’이란 점 어필돼
수많은 저명인사 멘토로 알려져
기존 불교나 스님의 맥락 넘어서


법륜 스님의 운동은 스스로의 삶부터 바꾸려는 노력에서 울림이 나온다. 끊임없이 자기 내면을 정화시키는 수행의 과정이 시민단체와 결을 달리한다. 1만일 동안 자신과 사회의 완성을 목표로 정진하는 ‘만일 결사’와 수행-보시-봉사의 추구는 대표적이다. 환경운동의 일환으로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 건물 화장실에 화장지를 없애는 대신 비데를 설치하거나 금요일 점심 한 끼를 굶어 구호 활동에 보태는 등의 활동도 그런 맥락이다.

법륜 스님과 많은 활동을 함께해 온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은 “실천이 곧 수련이라는 점이 요즘 사람들에게 어필하고 있다”고 말한다. “법륜 스님 자신이 투철하게 헌신적이에요. 누구도 따라갈 수 없는 실천가죠. 외국 갈 때도 인터넷으로 제일 싼 표를 찾고 사무실 집기도 다 어디서 주워 온 것들을 씁니다. 삶 자체로 감동받게 되는 분이에요. ”

자신들의 도움이나 조언을 받는 이들에게도 그 원칙은 적용된다. 한국JTS가 1994년 인도 불가촉천민 마을에 최초로 학교를 세울 때도 마을 사람들을 모아 우선 학교의 필요성을 인식시켰다. 그리고 그들에게 자발적으로 땅과 노동력을 제공하겠다는 약속을 받고 건설과 운영 경비를 부담했다. 그것은 한국JTS의 학교가 아니라 그들의 학교를 만들기 위해서다. 북한에 대해서도 법륜 스님은 북한 주민들의 생각 변화를 중요한 요소로 꼽는다.

법륜 스님이나 정토회는 우리를 믿고 돈을 내면 복을 받거나 내세에 좋은 일이 있을 거란 얘기도 하지 않는다. 나무가 세상 사람들을 기쁘게 하려고 꽃을 피우는 게 아니듯, ‘내가 좋아 하는 일이 다른 사람에게도 좋은 것’(自利利他)을 추구한다. 법륜 스님은 말한다. “봉사한다고 복받는다는 얘기 안 해. 당장 내가 어떡해야 행복할까를 생각하는 거지. 이렇게 사는 게 훨씬 행복하고 의미가 있다고 얘기하는 거야.” 정토회 자체도 자원봉사자들이 운영한다. 이학종 미디어붓다 대표는 “이제 종단 이름하의 사찰과 승려 중심의 불교는 비전이 없다”며 “틱낫한 스님이 프랑스에 세운 플럼빌리지처럼 한 스승의 이념이나 정신,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들이 종파를 초월해 모이는 방식으로 변모할 것이고 법륜 스님과 정토회가 그런 성공사례를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