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뚱보 그리는 작가? 뚱뚱하게 그렸을 뿐”
한국서 개인전 페르난도 보테로
9월17일까지…“작가는 유니버설 해야”
한겨레 임종업 기자
» 한국서 개인전 페르난도 보테로(77)
“뚱보를 그린 게 아니라 대상을 뚱뚱하게 그렸을 뿐이다.”

지난 29일 그의 개인전이 열리는 서울 덕수궁미술관에서 만난 세계적인 작가 페르난도 보테로(77)는 ‘뚱보를 그리는 작가’라는 말에 짜증을 냈다. 달을 가리키는데 자꾸 손을 본다는 투다. “나는 컬러와 형태를 중시한다. 그러자니 부풀려 그리게 된 것이다.”

콜롬비아 소도시 출신의 그는 지역 신문 삽화를 그리다가 조국을 식민지로 지배했던 스페인으로 갔다.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에서 벨라스케스의 작품을 연구하면서 유럽인들의 그림이 작음을 알았다. 이탈리아로 간 그는 초기 르네상스 프레스코 벽화를 ‘발견’했다. 형태가 과장된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 파올로 우첼로 등의 작품을 보고서 평생 우려먹을, 색과 형태를 고루 안배할 수 있는 ‘뚱뚱하게 그리기’에 눈뜬 것이다.


» 셀레스티나
그는 추상미술이 주름잡던 1960~70년대 미국에서 “후지다”며 냉대받은 것이 뼈에 사무친 듯했다. 1961년 뉴욕 근대미술관에서 자신의 작품 <모나리자, 12세>를 구입한 게 이름을 떨친 계기냐는 물음에 1970, 71년 독일 순회전에서 호응을 얻자 비로소 여기저기서 연락을 해왔다고 답했다. “테마를 걱정하지 않는다. 그 때 그 순간의 느낌에 따라 색을 선택하여 화폭을 채워간다.” 두꺼운 돋보기에 학자풍인 보테로는 마티스, 고흐, 앵그르 등 독학한 미술사의 대가들을 자주 거론했다. 벨라스케스, 루벤스 등의 고전을 패러디한 것도 미술사에 자신을 자리매김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그 외에도 정물, 투우·서커스, 라틴 사람들 등도 다룬다. “콜롬비아의 국가 폭력, 미군의 이라크 아부그라이브 수용소 학대도 그렸다. 작가는 유니버설 해야 한다고 본다.”

그의 색은 빨강, 노랑, 코발트블루, 황토색, 초록 등 영낙 없는 남미풍이다. 자기 그림이 유달리 양감을 강조하는 편이어서 조각으로도 표현하기에 맞춤하다고 했다. 전시에는 회화 89점, 조각 3점을 선보인다. 모두 자신의 소장품. 9월17일까지. (02)368-1414.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