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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성년자 관람불가'가 아니라 '일반인 관람불가'? 그렇다. 세상이 많이 바뀌고 좋아졌다지만 요즘도 80년대처럼 일반인의 관람이 허용되지 않는 '불순한' 전시회가 있다.
대추리 역사관은 주인이 떠난 빈집을, 남은 주민들이 '대추리 사람들'이라는 이름의 역사관으로 만들었다. 따라서 이 역사관은 마무리 철거작업이 이뤄지면 굴삭기에 의해 처절하게 파괴될 수도 있지만, 류연복 화백은 그 기간 동안에라도 외로운 주민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고 싶다며 33점의 판화를 역사관에 기증했다.
류화백 전시작은 80년대와 90년대 초반에 제작한 '민중판화'가 대부분이다. 그 이유에 대해 그는 "지난 세월 만든 작품들을 살펴보니 그때 만든 작품들이 현재의 대추리의 상황과 맞아떨어진다는 걸 발견했다. 결국 10년, 15년의 세월이 지났어도 농촌의 상황은 변한 것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위의 작품은 시골에서 농사짓느라 53세가 되도록 결혼을 하지 못한 '농촌 청년'을 표현한 작품이다. 농촌에 산다고 신부를 만나지 못한 늙은 총각이지만 그래도 농사지을 땅이있어서일까, 웃음을 잃지 않는 '건강한 민중성'이 돋보인다. 그러나 이제 대추리에 더 이상 이런 '건강한' 웃음은 존재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은 대추리 문제에 대해 보상금을 받지 않냐고 반문한다. 그러나 그것은 자신의 '무관심'에 대한 '변명'일지도 모른다. 만약 자신의 부모님이 고향땅에서 쫓겨나는 상황이 되어도 '보상금 만세'를 웨칠 수 있을까? 자신의 자식들이 고향을 물었을때 미군기지가 되어 더 이상 갈 수 없는 곳이라 대답하면서도 '보상금 만세'를 웨칠 수 있을까? 남의 일이라고 '보상금 만세'를 쉽게 말해서는 안된다. 우리 민족에게 고향이란 탯줄의 의미가 있는 소중한 곳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 대추리에서 고향을 지키기 위해 남아있는 주민들은간절히 기도하고 있다.
고향을 잃지 않게 해주시옵소서.
그러나 대추리 문제에 대한 근본적 해결을 찾기란 쉽지 않아보인다. 미군기지 이전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결국 문제는 분단이고, 이 분단이 해결되지 않는한 제2, 제3의 대추리 문제는또 발생할 수 있다. 더 이상 고향에서 쫓겨나고 농토를 잃는 농민이 없는 세상이 오게하기 위하여 하루빨리 우리 민족끼리 대화를 해야한다.그게 바로남북의 지도자들이 해야 할 일이고, 그런 모습이 역사와 민족 앞에 부끄럽지 않은 모습이 아니겠는가? <화가 소개> 류연복 화백은 1984년 대학을 졸업하면서 서울미술공동체를 결성하여 벽화팀 '십장생'의 일원으로 벽화운동을 시작하였고, 1986년에는 정릉에 있는 자신의 집 담에 <상상도>라는 벽화를 그렸습니다. 1988년 <한겨레>창간때부터 1996년까지 <한겨레신문> 제호의 바탕이었던 '백두산 천지' 판화가 바로 류연복 화백의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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