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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윤은 누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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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allery|2006/10/08 (일) 08: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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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문화, 민족예술로 승화
부산 동래에서 '갯마을'의 작가인 오영수의 장남으로 태어남. 1971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 졸업. '현실' 동인으로 활동한 1969년 전후로 미술의 사회적 역할에 관심을 갖고 민화·불화·탈춤·굿 등 한국 전통문화를 연구,이를 민족예술로 승화시키는 작업에 힘을 쏟았다. 테라코타 및 유화 작업과 함께 특히 1980년 이후에는 목판화에 전념. '현실과 발언 창립전'(1980) 등의 전시회를 통해 한국 민중판화의 발판 마련에 주도적 역할을 함. 1986년 첫 개인전 중 간경화로 사망. 인간의 역동적인 움직임을 단순 명쾌하게 표현함으로써 민중판화를 '민족미술, 민족문화의 넓은 영역으로 이끌어간 예술가'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주요 작품으로 '마케팅 1-지옥도'(1980),'원귀도'(1984),'칼노래'(1985) 등이 있다. 새 # 오윤 '검은 새' 얼어붙은 시대, 날개를 접다 ! /윤자정 동의대 교수
하늘을 나는 새는 자유의 표상으로서 선망과 동경의 대상이 되어왔다. 다채로운 모습과 행태는 인간 심성의 거울에 다양한 의미와 이미지로 투영되어,신화와 전설,민담 속에서 숱한 이야기로 등장하기도 했다. 고래(古來)로 시인 묵객들의 각별한 소재가 되어왔음 또한 물론이다. 까마귀의 경우도 마찬가지. 고대 신화에서 까마귀는 주로 영조(靈鳥)로 등장한다. 게르만 신화에서는 주신(主神) 오딘의 어깨에 앉은 까마귀가 오딘과 인간계의 매신저 역할을 한다. 일본에서도 까마귀는 신성한 새로 취급되었고,우리 고대 신화에는 삼족오(三足烏)라고 해서 세발달린 까마귀가 신의 사자로 등장한다. 그러나 일반적으론 흉조(凶鳥)로 더 자주 취급된다. 대체로 오행사상의 여파로서,오행에서 북방은 검은 색이고 죽음을 상징하는데,몸체의 검은 색상이 이와 연결되어 까마귀는 죽음과 친숙한 불길한 새로 여겨진다. 동물의 시체를 파먹는 모습이 자주 목격되어 '시체까마귀'란 별명도 달고 있다. 그래서 거두어 주는 사람 없이,죽어서 버려지는 걸 '까마귀밥이 된다'고 하던가. 저 80년대 민중미술 작가 오윤의 '검은 새'(목판에 채색,16.8×18.4㎝,1980)에는 바로 이 까마귀로 짐작되는 검은 새 한 마리가 등장하고 있다. 그림(목판화) 속 이 까마귀는 영조와 흉조 사이의 어디쯤에 자리하고 있을까. 첫눈에 보이는 건 굵고 투박한 테두리와 그 테두리를 오가는 선들(나뭇가지),그리고 그 선 하나에 걸터앉은 새가 전부다. 모두 검정의 색상을 공유하고 있고,이 색상이 연한 회색의 배경과 새의 하얀 눈깔 때문에 강조되고 있을 뿐. 썰렁하리만치 단순해 보이는 그림이다. 그러나 나에게는 왠지 작가의 내면을 느끼게 만드는 눈물겨운 작품이다. 그 내면은 짙은 페이소스(pathos)와 자기 연민이다. 그런 점에서 이 그림은 고흐의 '까마귀가 나는 밀밭'이나 이중섭의 까마귀 그림 등과 맥이 닿아 있다. 제작 연도인 1980년,민주화의 격류가 넘치던 시절이었고 한편으로 권력의 탄압 또한 모든 것을 얼어붙게 만들던 시절이었음을 염두에 두면,철창에 갇혀 날기를 포기한 듯한 새를 통해 얼어붙은 시대를 시각적으로 증언하려 했을지도 모르겠다. 분명한 건 이게 고답적인 아카데미즘이나 대중과 유리된 모더니즘이 '겨울공화국'의 철권통치 속에서 우리 미술계에 횡행하던 시절,이 땅을 살아가는 이들의 한과 설움,질긴 생명력,신명을 가식 없는 굵고 건강한 선으로 목판에 새길 때의 작품이란 점. 오윤의 경우,기실 70년대와 80년대를 헤쳐 간 그의 삶의 궤적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작품'이었다. 그때 목판은 폐쇄적이고 무력했던 '제도권' 예술계였고,사용한 칼은 그 앞에서 끓어 넘치는 그의 몸 전체였다. 딱딱한 제도권 예술계를 맨몸으로 후벼 팠으니 그 몸이 얼마나 아팠을까. 안타깝게도 '실제로' 그는 많이 아팠다. 1983년 간경화증 판정과 함께 담당의사로부터 이대로는 1년을 못 넘기니 절대 안정과 휴식을 취하라는 얘길 들을 지경이었다. 입원 치료 중간 말없이 빠져나와 '기(氣)' 치료로 전환하는 등 이후의 곡절을 다 얘기할 순 없으리라. 사람 좋아하고 술 마다하지 못해서 투병 중에도 찾아오는 사람들 내치지 못하고 이미 독약이나 다름없는 술을 자주 입에 대었다. 상할 대로 상한 몸은 견디지 못하고 1986년 7월 5일,41세의 한창 나이에 결국 저승길로 떠나고 말았다. 한 시인은 그때의 상실감을 이렇게 읊었다. 그는 바람처럼 갔으니까 언제고 바람으로 다시 올 것이다. 험한 산을 만나면 험한 산바람이 되고 넓은 바다를 만나면 넓은 바다의 바람이 되고 혹은 칼바람으로 혹은 풀잎을 스치는 부드러운 바람으로 우리에게 올 것이다. 바람이 일어,바람으로 그가 돌아와 저 침묵의 새를 훨훨 날려 보내면 좋겠다. 타계 20주기를 맞아 삼가 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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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시간: 2006. 03.09. 09:4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