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거울 속에서도 가을이 깊어가기를!
텍스트만보기 안준철(jjbird7) 기자
▲ 가을 풍경
ⓒ 안준철
안녕!

조계산으로 가을 수련회를 다녀온 것이 지난주의 일인데 강원도와 전북 어디선가는 첫눈이 내렸다고 하는구나. 날씨도 갑자기 추워져 몸이 으스스한 것이 겨울 기분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아직 겨울은 아니야. 학교 교정에 서 있는 은행나무에 아직 파란 이파리가 남아 있는 것을 보아도 그렇지. 이렇게 늦은 가을을 한자어로 만추(晩秋)라고 한단다. 그래 지금은 늦은 가을, 곧 만추의 계절이야!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나는 습관적으로 지난 시간들을 돌아보곤 한단다. 어쩌면 나도 모르게 자연의 습성을 닮아가고 있는 지도 모르지. 가을걷이를 끝난 텅 빈 들녘의 마음이라고나 할까? 다행히도 나에겐 한 해를 마감할 시간이 조금 남아 있구나. 그것은 너도 마찬가지일거야. 문득 이런 생각을 해본다. 너의 결실이 곧 나의 결실이라고. 우린 처음부터 그런 인연으로 만난 사이니까.

▲ 가을 풍경
ⓒ 안준철
어제 집에서 사진을 정리하다가 문득 네 생각을 했단다. 너는 산을 못타 힘들어 뒤쳐지고, 나는 사진을 찍느라 뒤쳐져서는 우린 맨 꼴찌로 산을 오르고 있었지. 너무 힘들다고, 조금만 더 쉬었다 가면 안 되겠느냐고, 다시 내려올 것을 왜 이런 고생을 해야 하느냐고, 그런 불평들을 늘어놓는 사이에 지나쳐버린 가을 풍경들을 너에게 보여주고 싶었단다.

네가 아름다운 가을풍경을 놓친 것은 손거울 때문이기도 했지. 가을가뭄 때문인지 예년에 비해 단풍색깔이 별로였다가 산을 내려와서야 예쁜 단풍을 볼 수 있었는데 넌 거울을 보느라 정신이 없었거든. 넌 혹시 거울 속에 있는 네 자신을 가을풍경보다도 더 사랑했을까? 만약 그렇다면 난 안심이야. 세상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나'를 사랑하는 것이니까. 나를 사랑하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사랑할 수 없으니까. 모든 사랑은 '나에 대한 사랑'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이니까.

▲ 가을 풍경
ⓒ 안준철
넌 수업시간에도 자주 거울을 들여다보곤 했었지. 한 번은 앞으로 나와 기합을 받으면서도 거울을 보다가 나에게 된통 혼이 난 적도 있었지. 만약 이 세상에 거울이라는 것이 없었다면 너와 싸울 일도 없었을 거야. 넌 수업시간에 거울을 자주 들여다보는 것 말고는 달리 혼날만한 일을 한 적이 없으니까. 아니, 그 이상으로 넌 착하고 좋은 아이니까.

넌 혹시 거울을 들여다보며 네 자신과 만나고 있었을까? 그렇다면 난 안심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자신을 들여다보는 일이니까. 거울을 들여다보는 통에 수업내용을 놓치는 것도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니지. 하루에도 수십 번씩 거울을 들여다보고 있으니 언젠가 거울 속의 '너'가 거울 밖의 너를 향해 이렇게 말해줄 지도 모르니까 말이야.

'너 지금 뭐하는 거야? 다른 친구들은 다 열심히 공부하는데 넌 거울만 들여다보고 있으면 어떡해? 그래가지고 간호사가 되겠다던 네 꿈을 이룰 수 있겠어? 정신 차려 이것아!'

▲ 가을 풍경
ⓒ 안준철
솔직히 말하면, 나는 너에 대하여 안심이 안 된다. 넌 거울을 보면서 너를 만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네 얼굴 자체에만 신경을 쓰고 있기 때문이지. 내가 보기엔 가만 두면 더 좋을 것을 자꾸만 얼굴에 뭔가를 바르는 것도 누군가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 너무 지나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드는구나. 그렇다고 네가 밉상도 아니고 오히려 그 반대일 수도 있는데 말이야. 난 네가 네 자신에 대해서 좀더 당당했으면 해.

나도 나이를 먹었지만 가끔 거울을 본단다. 수업하다가 우연히 교실 뒤편에 있는 거울을 들여다볼 때도 있지. 그 거울 속에 드러나는 내 얼굴을 보면서 우선은 눈가의 주름이나 거칠어진 피부에 눈이 가는 것도 사실이야. 하지만 난 곧 이런 생각을 한단다.

'난 지금 잘 하고 있는 걸까? 요즘 아이들에게 너무 화를 자주 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이들에게 친절한 교사가 되겠다는 약속을 해놓고 아이들 핑계만 대고 있는 것은 아닐까?'

▲ 가을 풍경
ⓒ 안준철
▲ 가을 풍경
ⓒ 안준철
지금 너와 나 사이에 가까스로 평화가 유지되고 있는 것도 어쩌면 거울을 보며 이런 생각을 한 덕분일 거야. 이제 네가 먼저 노력하는 모습을 보고 싶구나. 결실의 계절인 이 가을이 다 가기 전에 말이야. 잊지 말기 바란다. 너의 결실이 곧 나의 결실이라는 사실을. 너와 나는 그런 인연으로 만난 사이라는 것을.

그리고 너를 위해 기도하마. 아직은 거울과 작별할 마음이 없을 테니 너의 거울 속에서도 가을이 깊어가기를! 열일곱 눈부신 나이의 늦은 가을 들녘을 건너고 있는 너의 삶의 열매가 풍성하고 견실하기를!

▲ 가을 열매
ⓒ 안준철
2006-11-09 19:07
ⓒ 2006 Ohmy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