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날 좀 봐요` 유혹의 손짓 [중앙일보] 갤러리는 좁다 … 백화점으로, 상품 속으로
백화점에서 유명작품 경매
은행 안에다 갤러리 만들고
가전·패션에 접목도 늘어


"이거 같은데?" "어머, 저기도 있네!"

10일 오후 서울 현대백화점 목동점. 아줌마 쇼핑객 삼삼오오가 모여 천장이며 에스컬레이터 난간을 가리킨다. 이들의 눈길을 끈 것은 다름 아닌 그림. 화가 김점선씨의 작품 24점을 휘장.광고판 등에 실사로 옮긴 작품들이 곳곳에서 쇼핑객의 시선을 낚아챈다.'김점선을 찾아라!'는 제목의 이벤트다. 맘에 드는 작품을 적어낸 고객 중 10명을 선정해 작품을 선물로 주는 고객 참여 행사다.

미술이 점잖은 미술관을 벗어나 대중 속으로 스며들고 있다. 특히 고객과 가장 가깝게 접촉하는 백화점과 은행 등 기업들은 미술을 마케팅에 적극 끌어들여 기업 이미지를 제고하는 한편 미술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친근한 대상으로 자리매김하는 데 효자 노릇을 하고 있다.

◆미술, 미술관 밖으로 나가다=국내 양대 경매사 중 하나인 K옥션은 박수근.김환기.장욱진 등 유명화가의 작품 140여점을 8일부터 13일까지 서울 현대백화점 압구정점 내 갤러리H에서 선보인다. 경매시장에 나올 이들 작품은 미술관에서도 기획전시가 아니면 웬만해선 보기 어려운 작품들이다. K옥션은 경매(14일)도 기존 경매장이 아닌 백화점 로얄프라자에서 이례적으로 열 계획이다. K옥션 양경희 팀장은 "일반인은 음악보다 미술을 더 어려워한다. 쇼핑하러 왔다가, 누굴 만나러 왔다가 우연히라도 이 그림들을 만나고 느끼길 바란다"며 "미술의 잠재고객을 찾는다는 의미에서도 공격적인 마케팅인 셈"이라고 말했다.

서울옥션은 28일 실시하는 경매 전 과정을 케이블TV(DCN)와 스카이라이프 채널(웨이브TV)에서 생중계할 예정이다. 서울옥션 이학준 전무는 "경매장에 못 오는 분이 TV를 보면서 전화응찰을 하게 하는 서비스다. 경매에 나오는 유명 작가의 작품을 TV 화면을 통해서라도 감상할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은행들도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우리은행은 올 상반기 강남.잠실.서초 PB센터에서 김창렬.안성하 등 국내외 유명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 고객에 고품격 문화 서비스를 제공했다. 외환은행 평창동 지점은 아예 점포 안에 30평 규모의 갤러리를 마련했다. 은행 벽면에 몇 점을 걸어놓는 곳도 있지만 본격적인 전시 공간을 마련한 것은 처음이다. 한국투자증권 압구정동 PB센터도 공간 한켠에 갤러리를 오픈해 한국작가의 작품을 전시했다.

◆"우리는 아트를 팝니다"= 미술품을 감상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를 산업 제품과 접목하는 시도도 활발하다. 지난달 첫선을 보인 LG전자 냉장고 '아트 디오스-모던 플라워'에는 꽃의 화가로 유명한 하상림의 그림을 문 전체에 옮겨놓았다. 가전에 불과했던 냉장고 하나로 주방이 갤러리처럼 품격이 높아진다는 취지에서다. 쌈지는 지난 3월 팝아티스트 낸시 랭이 디자인한 '디자인 바이 낸시 랭'라인을 선보였다. 로봇에 각종 오브제를 붙인 '터부 요기니' 등 낸시 랭이 즐겨쓰는 기법을 가방.티셔츠 등에 옮겨놓아 젊은 층의 인기를 끌고 있다. 제일모직 구호(KUHO)가 최근 내놓은 '하트 포 아이(Heart for Eye) 도네이션 티셔츠'에는 지퍼를 이용한 한젬마의 디자인이 담겨있다.

미술에 무관심한 대중을 찾아가고, 상품에 순수미술을 접목하는 적극적인 아트마케팅은 앞으로 얼마나 효과를 낼 수 있을까. 서진수 미술시장연구소장은 "예술의 가장 큰 장점은 경험재라는 것이다. 좋은 연극을 본 사람이 또 극장을 찾듯, 좋은 미술작품을 접하게 되면 자연히 미술에 관심을 갖게 된다"며 "좀 더 품격 높고 특별한 것을 찾는 현대인에게 크게 어필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지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