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것이 책이기 때문에 사랑한다"
[서평]<애서광 이야기>
안소민(bori1219) 기자
언젠가 알고 있던 스님 중 한 분이 자신이 갖고 있던 많은 책을 어느 단체에 기부했다는 얘기를 듣고 나를 비롯해 내 주위사람 몇몇이 감탄사를 연발한 적이 있었다. 그 때 일행 중 한 명이 했던 말이 기억난다.

"그 스님은 정말 책 읽는 것을 좋아하신 분이었어. 우리처럼 책만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책 읽는 것'을 정말 좋아한 분이셨거든."

ⓒ 범우사
그는 '책 읽는 것'이란 단어를 유난히 강조해서 말했다. 듣고 있던 우리는 한바탕 폭소를 터트렸다. 책을 좋아하는 대개의 사람들이 그러하겠지만 나 역시 새 책을 접할 때면 설레고 두근거리는 가슴을 주체할 수 없다. 원하는 책을 손에 넣었을 때 그 행복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책은 반드시 소유해야만 즐거운 것은 아닌 듯하다. 간혹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거나 친구에게 빌릴 때의 즐거움도 꽤 크니까.

그러나 여기 <애서광(愛書狂) 이야기>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반드시 원하는 책은 손에 넣어야 직성이 풀리는 비블리오마니아(bibliomanias)들이다.

그들은 원하는 책을 얻기 위해서는 물불을 가리지 않으며 가진 전 재산을 모두 책 구입에 쏟아 붓는다. 또 원하는 책을 갖지 못하게 되면 초조, 불안, 강박관념 등의 정서불안증상이 나타나는 사람들이다. 즉, 책에 미쳐도 단단히 미친 사람들이라 할 수 있다.

심지어 세계 유일본으로 알고 있던 자신의 소장본과 똑같은 책을 누가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기라도 하면 미칠 듯한 실망감과 좌절감으로 인해 거액의 금액을 주고라도 그 책을 구입한 뒤, 그 자리에서 불태워 없애버리는 괴팍스러운 행동을 서슴지 않는다. 세계에 오직 하나뿐인, 나만의 책을 욕망하는 것이 이들 비블리오마니아의 특성이다.

무엇인가 모으는 데 '미친' 사람들의 이야기

이 책에는 총3편의 소설이 등장한다. <시지스몬의 유산>과 <애서광 이야기>는 비블리오마니아를 다룬 이야기이며 <보이지 않는 수집품>은 미술품 수집가에 관한 이야기이다. 결국 이 세 작품의 공통점은 '무엇인가를 모으는 데 미친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점이다.

<시지스몬의 유산>에서 애서광 규마르는 생전의 자신의 라이벌이었던 시지스몬이 평소 그가 그토록 열망했던 서적들을 남기고 죽자 그의 책들을 구입하고자 한다. 그러나 시지스몬은 50세가 넘은 미망인 에레오노르와 결혼하는 사람에게 그 책을 준다는 유언을 남긴 상태다.

그녀로부터 청혼을 거절당한 규마르는 그녀의 곁에서 책을 보호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책에 한이 맺힌 이 미망인은 책을 못 쓰게 만들기 위해 서재 천정에 구멍을 내거나 생쥐를 풀어놓는 등 갖은 방법을 쓴다.

오랜 세월 끝에 에레오노르는 규마르의 청혼을 받아들이고 규마르는 마침내 시지스몬의 그 희귀한 책들을 가질 수 있다는 생각에 기쁨으로 차오르던 찰나, 이미 못쓰게 되어버려 누더기에 불과한 책들을 보고 충격으로 그 자리에서 죽고 만다.

보들레르가 16살 때 지은 작품이기도 한 <애서광 이야기>는 책을 너무나도 좋아한 나머지 책방을 차리게 된 갸코모라는 사나이에 관한 이야기다.

갸코모는 세계에 단 하나뿐이라고 믿었던 자신이 소장한 서적이 몇 개 더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짓지도 않은 살인죄를 뒤집어쓰고 만다. 그는 법정에서 '세계에서 단 한 권밖에 없는 내 책이 어딘가에 또 있다는 것은 내겐 목숨을 잃는 것보다 더 괴로운 일'이라고 말한다.

책을 사랑하는 마음이 깊어 병이 된 사람들

물론 소설이기에 가능한 일이겠지만 이 정도 되면 책에 미쳐도 단단히 미친 사람일 것이다. 그만큼 책을 열망하는 비블리오마니아들의 마음을 느낄 수 있다. 이 작품엔 책을 탐하는 그들의 욕망이 문장 곳곳에서 잘 드러나고 있는데, 그것을 읽다보면 그들의 마음에 그대로 동화될 정도로 글들이 굉장히 사실적이며 탐미적이다.

'그는 그것이 책이기 때문에 사랑한다. 그 향기나 형태, 표제 등은 모두 그에게 있어 사랑의 대상이다. 그가 필사본 가운데서 가장 좋아하는 것은 오래 되어 읽기 어려운 날짜와 괴상한 고딕 문자, 장식 페이지의 채색에 사용된 두꺼운 금박과 먼지투성이인 페이지다. 더욱이 그 먼지의 향기는 그에게 있어서는 마치 값비싸고 향기 높은 향료와도 같은 것이다'(75쪽)

책을 사랑하는 마음이 이토록 깊을 수 있을까. 무엇인가를 깊이 사랑하면 병이 된다고 하였는데 그런 의미에서 비블리오마니아들은 책을 사랑하는 병에 걸린 사람들임에 틀림없다. 앞의 두 소설이 애서광에 관한 이야기라면 마지막 <보이지않는 수집품>은 과연 수집이란 사람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를 곰곰이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이 책은 문고판으로 출간되었으며 분량도 그리 많지 않아 금세 읽을 수 있다. 애서광들의 책에 대한 독특하고도 집요한 열정, 그 세계가 궁금하다면 이 책을 한 번 읽어볼 것을 권한다.
애서광 이야기/ 보들레르 외 2인 지음, 이민정 옮김/ 범우사/ 2,800원

*<애서광 이야기>를 읽고난 후 우리나라 조선시대에도 이러한 애서광이 있었다는 사실에 기억이 미치게 된다. 스스로 호를 '간서치(看書痴)'라 이름한 이덕무 선생이다. 추운겨울에 땔감 살 돈이 없던 그가 <한서>로 이불을 삼고 <논어>로 병풍을 쳐서 추위를 막았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그러나 이덕무 선생은 위 소설에 나오는 애서광들과는 차원이 다른 듯하다. 위 소설 속 주인공들은 책을 단지 '모으는 행위' 자체에 열광했지만 선생은 '책 보는 것'을 끔찍이 사랑한 인물이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