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드디어 피부미용실 원장이 되다
남학생 제자 열 명 부럽지 않은 '손남림'
텍스트만보기 정호갑(mos0805) 기자
12월 1일 전자우편 한 통을 받았다. 손남림으로부터. 손남림 그는 학교 다닐 때 예쁘지도 공부도 잘 하지 않은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무척 말썽을 많이 피웠던 우리 반 학생 가운데 한 명이다. 그런데 그의 편지를 읽으면서 눈물이 났다.

드뎌 손남림이가 오픈을 했습니다. 쌤! 자신감 하나로 밀어붙였는데 막상 저질러보니 부담감이 앞섭니다. 별것 아닌 것 같은데도 10년 할 경험 다 해버린 것 같아요. 어른이 된 것 같기도 하구요. 조심해야 할 것도 많은 것 같고.

책임감 만빵입니다. 매일매일 주문을 겁니다. 쨔샤 너 잘 할 수 있어. 아자아자. 남 밑에서 일하다가 내 것이 생기니깐 애착이 많이 가요. 대충하던 걸레질도 한 번 더 하게 되고요. 뭔가 제가 스스로 일어섰다는 느낌이 아~ 이런 거구나. 더 열심히 공부하고 제 자신을 낮춰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선생님. 그거 생각나세요? 규희랑 나랑 말썽부릴 때. 규희가 나중에 돈 많이 벌면 양복 사드린다고 했잖아요. 제가 규희보다 더 좋은 거 사드릴게요. 그리고 공부 열심히 해서 꼭 대학 강단에 서는 모습 보여드릴게요. 기대하셔요.


▲ 손남림이 연 피부 미용실. 여러 화장품들이 제자리에 잘 정돈되어 있다.
ⓒ 정호갑
흔히들 여자 학교에 있으면, 있을 때는 재미있지만 뒷날 제자가 없기 때문에 가능하면 남자 학교로 옮기는 것이 더 좋다고 한다. 아직 남자 학교에서 아이들과 함께 하지 못했다. 기껏해야 17년 가운데 북경에 와서 2년 동안이 남자 아이들과의 만남의 전부이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현재 아이들과 함께 즐겁게 배우고 가르치면 그만이지. 뒷날 제자가 뭐 그리 큰 의미이겠는가?

내가 손남림이라는 이름을 알게 된 것은 1993년 교무실에서 있었던 작은 사건 때문이었다. 당시 그는 우리 학교에 입학한 지 얼마 되지 않은 1학년 학생이었다. 그런 그가 청와대에 투서를 쓴 것이다. 학교에서 공부를 너무 많이 시킨다고.

그 때에는 '자율학습'이란 이름으로 아이들을 학교에 남겨 공부를 시켰다. 이 아이는 그것이 못 마땅했던 것이다. 고등학교 들어와 갑자기 어려워진 공부에다 밤늦게까지 학교에 있다는 것이 힘든 모양이었다. 별 생각 없이 청와대로 그 투서를 보냈고 그 내용이 학교장에게 되돌아 왔다. 그로 인해 이 아이는 선생님들에게 유명(?)해졌다.

그 때 나는 3학년 담임이었기에 '그 놈 참 맹랑하네'하는 정도로 여기고 넘어갔다. 그런데 이 아이가 3학년 되던 해 우리 반이 되었다. 이 아이가 단짝인 아이와 더불어 서서히 애를 먹이기 시작하였다.

무단 조퇴, 무단 결석 등등. 이른바 백약이 무효라, 할 수 없어 자퇴서와 각서를 받아 두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별 효과가 없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의 이러한 처방이 단지 위협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알아차린 모양이다. 그리고 그는 자퇴를 당하지 않을 만큼만 애를 먹였다. 그는 고수였다. 고3을 무사히 넘기고 전문대학으로 진학을 했다.

그리고 잊고 있었다. 몇 년이 흘렀다. 그러던 어느 날 늦은 밤에 전화 소리에 잠을 깼다. "3회 졸업생 손남림인데…"하면서 말이 시작되었다. '무슨 사고를 쳤나'하면서 듣고 있으니, 졸업한 지도 4년이 지났으니 반창회를 하잔다. 그래서 좋다고 하였더니. 자기가 회장할 테니 나보고는 총무하란다.

그렇게 하여 그 때 우리 반 아이들 몇 명을 만났다. 그런데 그곳에 나온 아이들 가운데 이른바 명문 대학으로 진학한 아이는 한 명도 없었다. 미안했다. 학교 다닐 때 이들에게 별 관심도 주지 않았는데. 그런데도 모두 한결같이 나를 반가이 맞이하였다. 그리고 모두 대학을 졸업하고 자기 분야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 그들의 삶이 아름다웠다.

이렇게 남림이와 나의 만남은 다시 시작되었다. 그 후 남림이는 이른바 무슨 날이 되면 꼭 찾아온다. 술 한 병을 사들고. 그러면서 자기의 꿈을 이야기한다.

교수가 꿈이란다. 네가 어떻게 될 수 있는데. 사실 남림이는 전문대학 피부미용과 출신이다. 그래서 물으니 피부미용과에는 이론과 실기를 겸비한 교수가 많이 부족하단다. 외국에서 석사나 박사 학위를 받아왔지만 실기 경험은 거의 없다고 한다. 사실 피부미용과는 이론 못지않게 실기가 중요하다.

그래서 자기는 우선 3학년으로 대학에 편입하여 대학을 졸업하고 그 뒤 보건대학원에 진학하여 학위를 받아 꼭 대학 교수가 되겠다고 한다. 그러면 자기는 이론과 실기를 다 겸비한 교수가 될 수 있다고 한다. 너무 기특하다. 이렇게 자신의 길을 열어 가는 아이를 문제아로 낙인찍어 놓은 나는 문제 교사다.

나도 교수 꿈을 꾸고 공부를 시작하였지만 스스로 능력이 모자라 그만두고 말았는데, 너는 꼭 그 꿈을 이루길 바란다면서 북돋아 주었다. 지금 남림이는 모 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아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모 대학교 보건대학원에서 자기의 꿈을 키워가고 있다.

그렇게 나와 남림이의 만남은 이어졌다. 그러다 지난해 내가 중국으로 오게 되었다. 그동안 또 잊고 있었다. 지난 7월에 여름 방학을 틈타 잠깐 한국을 다녀왔다. 중국에 있다가 한국으로 나가니 만날 사람도 많았다. 하지만 꼭 남림이를 만나고 싶었다, 그래서 전화 연락하여 점심을 함께 했다. 그 뒤 전자우편이 왔다.

오늘 아침선생님 전화를 받고 선 얼마나 기분이 좋았는지 아세요? 우리 쌤이 나한테만 이렇게 전화 주셨다는 뭐랄까? 그런 자신감, 자부심! 물론 한동안 뵙지 못해서 넘 보고 싶었던 것도 사실이구요.

전 왠지 쌤만 만나면 쫌 주춤했던 내 생활에 엔도르핀 같은 활력소가 되거든요! 또 가스나 웃기고 있네! 그렇게 말하려고 했죠? 사실이에요.

선생님은 8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었어요. 참! 흰머리는 약간 늘었구나. 그래도 여전히 멋지십니다! 선생님 중국 가 계실동안 무슨 날만 되면 (항상) 찾아 뵈야 되는데 하면서. 꼭 그랬었는데. 이제 얼마 안 남았네. 내년이면 자주 찾아뵐 수 있을 것 같아요. 좋아라~~.

만나 뵐 때마다 니 교수 언제 될 꺼고? 그 말 꼬옥 새겨들어요. 누군가가 나를 인정해 준다는 그 자체로만 나에게 큰 힘이 되거든요. 저 꼬옥 잘 되서 선생님께 자랑하고 싶어요. 꼬~옥 그렇게 할 겁니다!


남림이가 힘이 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힘이 난다. 이렇게 예쁜 아이를 곁에 두고 있으니 어찌 힘이 나지 않겠나? 웬만한 남학생 열 명 몫을 톡톡히 하고 있지 않나? 그의 삶이 자랑스럽지 않나? 그의 젊음이 부럽지 않나?

▲ 손남림이 연 피부 미용실
ⓒ 정호갑
그의 꿈이 고스란히 담긴 피부미용실에 자리 잡길 바란다. 올 한 해도 이제 저물어 간다. 흐르는 시간만큼 그와의 만남은 깊어질 것이다.

다음에는 '손남림 드디어 교수되다'가 이어지길 하늘에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