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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이 문화다] ② 대안학교 '온새미'
이호진 기자 다른기사보기
2013-03-11 [09:32:21] | 수정시간: 2013-03-11 [14:26:34] | 20면 ▲ 고등학교 2학년인 온새미 아이들이 지난 6일 스스로 만든 공연복을 입거나 들고 포즈를 취했다. 뒷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이 학교 대표인 류기정 씨, 앞줄 맨 왼쪽은 풍물 교사 안영란 씨. 이재찬 기자 chan@ |
팽팽할 여느 교실과는 다르다.
풍물수업시간인데 아이들은
장구와 북이 아닌 옷감을 들고
씨름하고 있다.
한복 천을 각자 쥐고 앉아
줄을 긋고 자르는데
'하하호호'가 끊이질 않는다.
"선생님 우리 가정수업 받는 것
같아예.",
"맞다 맞다."
지난 6일 부산 동래구 온천동의 한 풍물패 연습실에 모인 이 아이들은 '온새미학교' 최고 학년인 고등학교 2학년 학생들. 오는 5월 석 달 일정의 유럽 공연무전여행 때 입을 공연복을 직접 만드는 중이다. 급식 반찬도 텃밭에서 아이들이 직접 농사를 지어 조달한다니, 온새미(가르거나 쪼개지 아니한 생긴 그대로의 상태)다운 일이다.
풍물 공연 수입 모아 유럽 무전여행 준비
급식 반찬 텃밭 농사·밤새 달빛 걷기도
스스로 찾아서 공부… 검정고시도 '척척'
목공 선생님 마을공방 열어 주민과 함께
올해 초등생 7명 가세… 배움의 도전 계속
문화예술교육을 학교의 주요 커리큘럼으로 하는 온새미는 2006년부터 부산문화예술교육협의회 활동을 하던 류기정 씨가 부산교육연구소와 뜻을 모아 2009년 9월 중·고교 과정 비인가 대안학교로 설립했다. "예술의 힘은 치유지요. 스스로와 대화하고 성찰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성장하는 데 큰 도움을 줍니다." 도예가 류 씨는 협의회 활동을 하다 체계적인 교육의 필요성을 느꼈고, 교육문제의 대안을 모색하던 부산교육연구소 이사로 적극 참여하게 됐다. 낮에는 비어 있는 연구소 사무실을 학교로 활용해 보자는 아이디어가 결국 문화예술대안학교 설립으로 발현돼 그는 온새미의 대표로 재정과 운영 등을 맡고 있다. 첫해 3명이던 학생이 지금은 81명으로 늘었다.
■ 미래세대, 예술 속에서 자라다
교과과정의 중심은 국·영·수가 아닌 댄스와 밴드, 목공, 풍물과 판소리 등 문화예술 강좌다. "북 치고 장구 치는 데 흥미를 느끼는 친구들은 거의 없죠. 저도 그랬어요. 그런데 지난해 여름 8박9일 동안 서울까지 무전여행을 가면서 친구들과 풍물 공연을 했는데 장단을 맞추니까 신이 나더라고요. 보는 어른들도 함께 좋아하시고요. 이젠 풍물이 제일 재미있어요." 고 2 정산이의 말이다. 함께 땀 흘리고 연주하는 과정에서 친구들과 소통하는 기쁨을 맛봤다는 얘기다. 지난해 온새미 아이들은 부산지역 각계의 요청으로 초청 공연을 60여 차례나 벌였다. 공연 수입을 모아 오는 5월 떠나는 3개월 동안의 유럽 공연무전여행 경비를 마련하는 것이 주목적이었지만, 다른 사람을 즐겁게 하면서 스스로 자존감을 높인 것은 더 큰 성과였다.
여행을 중요한 교육과정으로 생각하는 온새미는 회동수원지에서 광안리까지 무박 2일로 달빛 걷기도 하고, 매년 인도·네팔도 다녀온다. 하지만 여행이라기보다는 행군에 가깝다. 걷다가 힘들면 동네 가게에서 박스를 구해 와 비닐을 깔고 그 위에서 침낭을 덮고 잔다. 몸이 약한 동생들의 배낭은 오빠들이 대신 메고, 언니들이 함께 걸어 준다. 이런 여행을 다녀올 때마다 아이들은 한 뼘씩 자란다. 아이들에게 풍물을 가르치는 '마당굿패 파루'의 안영란 씨는 "다른 고등학교 아이들도 가르치는데, 대화를 해 보면 온새미 아이들이 훨씬 마음이 열려 있고, 정서적인 성장도 빠른 편"이라고 전한다.
이철호 교장은 "이성과 감성을 같이 발전시켜야 하는 것이 교육인데, 우리나라 공교육은 예체능을 없애고 자습을 시키거나 국·영·수만 강조한다"며 "말도 없고 섞이지 않으려던 아이들이 댄스나 밴드 공연, 풍물 등을 하면서 마음의 문을 열고 자신감을 찾아가는 모습을 보면 학부모나 선생님들도 큰 감동을 받는다"고 말했다.
문화예술에 집중한다고 해서 공부를 제쳐 둔 건 아니다. 상급학교 진학을 위한 검정고시를 쳐도 탈락하는 아이는 거의 없다. 다그치지 않아도 스스로 찾아서 하는 공부의 힘이다.
■ 지역 살리는 거름도 결국 문화예술
온새미학교에서 목공을 가르치는 선생님들은 지난해 해운대구 반여3동과 남구 용호4동에서 마을공방을 열었다. 류 대표는 영도 절영해안산책로 입구 흰여울문화마을에 입주해 있다. 문턱을 낮춘 문화예술 공간으로 주민들이 부담 없이 찾아올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마을 재생한다고 공공기관이 많은 예산을 들여 건물 짓고 페인트칠하는데, 주민들이 스스로 참여하지 않으면 그것 역시 토건사업 아닐까요?" 류 대표는 예술을 매개로 마을을 재생하고 공동체를 회복하는 실험을 하고 있다.
추상적이고 생활과 먼 예술을 넘어 노동과 통합되는 예술 활동으로 주민들의 경제적 자립 기반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 스스로 필요로 하는 물건을 만드는 목공과 공예는 작업 과정에서 주민 간 소통과 협동을 이끌어 내기에 좋은 소재다. 주민들의 숙련도가 높아지면 마을기업 형태로 발전할 가능성도 있다.
온새미는 문화예술을 매개로 지역 곳곳에 동심원처럼 공동체의 복원이 번져 나가길 희망한다. 문화예술 공동체의 수평적인 확산과 함께 구심점인 온새미학교를 수직계열화하는 작업도 진행 중이다. 중·고교 과정으로 설립된 온새미학교는 올해부터 초등학생 7명을 받아 초등과정도 운영 중이다. 지금 고 2 아이들이 졸업하는 2015년에는 대안대학을 만들 생각이다. 배움과 나눔의 공동체를 추구하는 온새미의 도전은 계속된다. 이호진 기자 jiny@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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