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으로 더듬어 세상을 보는 ‘사진작가 꿈’

글 김여란·사진 정지윤 기자 peel@kyunghyang.com
시각장애인 조임숙씨, 사진대회 참가

카메라 줌을 당기자 화면에 ‘푸른 바탕’과 ‘흰 점’이 보였다. 1급 시각장애인 조임숙씨(60·사진)가 평생 직접 볼 수 없던 장면이 희미하게나마 다가왔다. 맑은 하늘에 떠 있는 한 마리 새였다. 카메라를 만나고 조씨는 “렌즈 속에 무한한 자유가 있는 걸 느꼈다”고 했다.

조씨는 2011년 봄 생전 처음 카메라를 만졌다. 서울 관악실로암사회복지관 사진교실 첫 수업시간 때 카메라를 손으로 더듬는 순간 몸에 전율이 흘렀다. 한평생 ‘사진 찍기’는 불가능한 일로 알고, 꿈조차 꾸지 않았던 그였다. 셔터 누르는 법부터 차근차근 배운 지 2년 반이 지난 지금 카메라는 그에게 ‘새로운 눈’이 됐다. 세 살 때 열병을 앓고 시력을 잃은 조씨는 색과 소리로만 세상과 만난다. 사물의 형체는 구분할 수 없다. 색깔은 예민하게 인식하지만 먼 사물에 대해서는 불가능하다. 그런데 카메라를 통하니 조씨가 볼 수 있는 세계가 그의 앞에 펼쳐졌다. 조씨는 “멀리 있는 걸 가까이 당겨 볼 수 있다는 걸 깨달은 순간 기가 막혔다”고 말했다.

함께 사진을 배우는 다른 시각장애인 대부분은 대강의 사물 형체나 구도는 파악할 수 있는 저시력 장애인이지만 조씨는 본인이 찍은 사진조차 거의 보지 못한다. 조씨는 “사진 찍으면서 안되는 게 너무 많아 안타깝지만, 누군가 제대로 찍었다고 말해주는 사진이 나오면 보물을 찾은 기분”이라고 말했다.

 

“어느날/ 아침이 오지 않는 곳으로 들어온/ 한줄기 광채/ 뜨거운 파장이 세포막을 두드린다.”

조씨는 문단에 등단한 시인이다. 그가 지난해 펴낸 3번째 시집 <그 노래 때문에>에는 사진을 만나고 난 뒤 쓴 ‘빛이 남긴 상처들’이 수록돼 있다. 시집 표지삽화는 조씨가 직접 찍은 동물과 꽃 사진이다. 시 외에 다른 취미나 꿈을 가질 생각을 못했던 조씨지만 지금은 시 잘 쓴다는 말보다 사진이 좋다는 말에 더 가슴이 뛴다고 했다.

조씨는 “이전에는 내 내면에만 몰두했는네 사진을 찍으면서 볼 수 없던 바깥 세상에도 진정 관심이 생겼다”고 말했다. 그가 쓰는 카메라 기능은 줌과 셔터가 전부다. 눈으로 색을 강하게 느낄 때는 스스로 촬영을 결정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함께하는 비장애인의 설명을 들으면서 피사체를 결정하고 구도를 잡는다. 셔터만은 조씨가 꼭 직접 누른다. 그는 “카메라에는 접사나 석양 모드 등 수많은 기능이 있다는데 나는 못 쓴다. 시각장애인을 위해 음성 지원 카메라가 나오면 좋겠다”고 말했다.

조씨는 다음달 1일 제1회 전국 시각장애인 사진대회에 참가한다. 그가 대회에 나가 남과 겨루는 일도 평생 처음이다. 조씨는 “어릴 때 동화구연대회, 웅변대회 같은 거 창피해서 한번도 나가본 적이 없다”며 “나도 대회에 나갈 수 있는 자격이 있다는 게 경이로운 기분”이라고 말했다.

지난 6월 중순부터 조씨는 상명대 시각장애인 사진교실 ‘마음으로 보는 세상’에도 나가고 있다. 유엔(UN)의 시각장애인 사진전에 출품하는 게 목표다. 조씨는 “내가 사진을 찍는 걸 보고서 모두가 자신에게 무한한 능력이 있다는 걸 깨닫고 삶에 감사하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