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기 아 2014.02.03 닌 표현의 시간…아이들 개성이 ‘활짝’

등록 : 2014.02.03 20:45 수정 : 2014.02.03 23:09

2013년 12월 서울 강명초등학교에서 졸업을 앞둔 6학년 학생이 ‘나는 누구인가’라는 주제로 자화상을 그리고 있다. 이부영 교사 제공

[함께하는 교육]

달라진 초등학교 미술 수업

미술시간이면 인물화와 정물화, 풍경화만 지겹도록 그리던 때가 있었다. 초등학교 자녀를 둔 학부모 세대들이 학교를 다니던 시절이다. 요즘의 초등 미술 시간 풍경은 달라졌다. 학부모들이 알아두면 좋은 점들을 살핀다.

초등학교 미술 활동이 달라지고 있다. 가장 큰 변화는 2013년부터 바뀐 초등학교 1~2학년 통합교과서에서 찾을 수 있다. ‘즐거운 생활’, ‘슬기로운 생활’, ‘바른 생활’로 나뉜 교과서는 사라졌다. 대신 ‘봄’, ‘여름’, ‘가을’, ‘겨울’, ‘나’, ‘가족’, ‘이웃’, ‘우리나라’ 등의 주제를 가진 통합교과서가 등장했다. ‘즐거운 생활’과 ‘슬기로운 생활’, ‘바른 생활’ 등의 교과내용을 주제별로 통합한 것이다. 특히 통합교과서는 주제별 학습 이후 그 결과를 다양한 예술활동을 활용해 정리·발표하도록 꾸며졌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라는 주제의 교과서를 배웠다면 학생들은 우리나라의 상징이나 자랑거리를 그림과 만들기로 표현해보게 된다. ‘가을’이란 주제를 익혔다면 추석에 먹는 송편과 전 등의 음식을 색깔 찰흙으로 만들어보기도 한다. ‘바른 생활’과 ‘슬기로운 생활’로 배운 내용을 ‘즐거운 생활’로 표현해보는 방식이다. 통합교과서 도입으로 미술활동의 비중이 높아지고 활용 폭도 넓어진 셈이다.

초등학교 미술 수업도 달라졌다. 현재 초등학교 자녀를 둔 학부모들의 학창 시절만 해도 풍경화와 정물화, 인물화 등 회화 중심이었지만 지금은 다양한 재료와 도구를 활용한 각양각색의 미술 수업이 이뤄진다. 경기도 진가초등학교 옥상헌 교사는 “2007년 개정교과서부터 순수미술뿐 아니라 사진과 영상, 애니메이션과 영상편집 등의 다양한 시각문화 영역이 미술 교과서에 실리기 시작했다”고 설명한다. 교직 경력 32년의 서울 조원초등학교 김정숙 교사는 “1980년대의 미술 교육이 그리기나 만들기 등 기능 향상에 치중했다면 최근에는 ‘컴퓨터로 내 명함 만들기’처럼 생활과 밀접하면서도 미적 감각을 기르는 방향으로 범위가 확대되고 있다”고 말한다. 과거에는 의식주도 실용성을 최우선으로 했지만 이제는 집과 옷, 음식 등에서도 색과 디자인, 형태 등을 중시하게 된 것과 같은 맥락의 변화다.

미술 시간은 국·영·수에 비해 교사의 재량 폭도 넓다. 옥상헌 교사는 “체험과 표현, 감상 영역 등을 상황에 따라 융통성 있게 재구성하기 편한 게 미술 교과”라고 말한다. 김정숙 교사는 “예전에는 교사용 지도서 외에는 참고할 만한 자료가 없었지만 지금은 미술 교육에 활용할 수 있는 책과 영상물도 많고, 교사들이 수업자료와 지식을 공유하는 인터넷 카페 등도 활성화되어 있다”고 말한다. 교사가 마음먹기에 따라 얼마든지 다양한 미술 수업이 가능해졌다는 말이다.

‘우리 학교’라는 주제통합수업 중 ‘나에게 사연이 있는 공간 찾아가서 그리기’, ‘학교 건물 입체로 표현하기’ 등의 미술 활동 모습이다. 이부영 교사 제공

‘우리 학교’라는 주제통합수업 중 ‘나에게 사연이 있는 공간 찾아가서 그리기’, ‘학교 건물 입체로 표현하기’ 등의 미술 활동 모습이다. 이부영 교사 제공

지난해 통합교과서 도입으로
미술 활동 비중 크게 높아져
정물화 등 회화 중심서 벗어나
사진, 영상, 점토, 생활용품 등
다양한 재료와 도구들 활용
흥미 만점에 자신감도 쑥쑥

똑같이 그리는 시대는 지났다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에게 미술 활동은 다른 교과보다 인기가 높다. 자신이 상상한 대로 마음껏 그리고, 만드는 데 대한 부담이 없는 덕분이다. 아이들의 그림에서 컵이 눈물을 흘리고 있는 등 의인화한 장면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서울 강명초등학교 이부영 교사는 이런 특징에 따라 초등학교 1~2학년 때를 ‘상상의 시기’라고 부른다. 그러나 3학년 이후 아이들은 사물을 사실적으로 인식하기 시작한다. 그림을 그릴 때도 사물의 형태를 있는 그대로 똑같이 그리려 한다. 자신이 그린 그림이 눈으로 본 것과 동떨어졌다고 느끼는 아이들은, 상대적으로 사실 재현에 능한 아이들의 그림을 보며 자신감을 잃기 쉽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될수록 미술 시간이 괴로워지는 이유다. 학창 시절에 미술에 흥미를 잃은 학부모들 역시 사실적 재현에 대한 강박 때문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교사는 “그림을 얼마나 똑같이 그렸느냐가 아니라 자녀가 무엇을 어떻게 표현했는지에 관심을 기울여주라”고 말한다.

이 교사는 색칠이 서툴다고 탓할 일도 아니라고 말한다. “초등학교 저학년들에게는 색 자체는 별 의미가 없다. 묵선으로 그린 동양화처럼 아이들은 선 위주로 그림을 그린다. 정선의 ‘인왕제색도’에서도 여름날 소나기가 내린 후의 푸름이 느껴지듯, 색을 칠하지 않았다고 해서 미완성 작품이라고 볼 이유도 없다.”

김정숙 교사는 “그림이란 내 눈과 마음으로 본 세계를 자신만의 생각과 상상으로 그리는 것”이라고 말한다. 형태와 크기, 색깔 등을 아이들 마음대로 그리도록 해주어야 하는 이유다. 사실적 재현에 대한 강박을 떨친다면 아이와 함께하는 미술 활동에서 학부모가 두려워할 것도 없다. 김 교사는 “부모의 그림을 본 자녀가 ‘사물과 똑같지 않게 그렸다’고 말한다면, 오히려 ‘나는 이렇게 생겼다고 생각해서 그렸다’고 반문하라”고 말한다.

자신이 본 것과 똑같이 그리지 못해 미술에 대한 흥미가 떨어지는 것을 염려해 미술 수업에서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리는 시간을 아예 배제하는 교사도 있다. 서울 동신초등학교 김명숙 교사는 미술학원에서 기법을 배워오면 잘 그릴 수 있는 풍경화나 정물화 대신, 재료를 준비하는 데 돈이 들지 않고 집에서도 얼마든지 구할 수 있는 재활용품 등을 활용하는 방식으로 미술 시간을 운영한다. 예를 들어 키위 팩에 지점토를 덧씌워서 작은 반달 모양의 탈을 만들고, 나뭇잎을 주워와 사람의 얼굴을 표현한다. 요구르트병 2개를 이어붙여 장승을 만들고, 페트병에 물을 담아 수족관을 꾸며보기도 한다. 아이들의 그림 그리기 ‘실력’이 드러나지 않는 미술 시간을 만들고 싶었다는 게 김 교사의 설명이다. 재료가 새롭다 보니 미술 시간에 빛을 발하는 것은 아이들의 축적된 학습력보다는 기발한 상상력이다. 국·영·수 과목은 차곡차곡 실력을 쌓는 게 중요하지만, 매번 새롭고 다양한 재료를 쓰는 미술 시간은 그때그때 주어진 재료를 남다르게 활용하는 것만으로도 근사한 작품을 만들 수 있다. 학습능력이 조금 떨어지는 아이들도 미술 시간에 자신이 만든 작품으로 얼마든지 친구들의 주목을 받을 수 있게 된다. 재료를 다양하게 활용하는 것이 미술에 대한 아이들의 흥미는 물론 자신감까지 북돋울 수 있는 셈이다.

그림에 이야기를 담아라

경기 안산의 학현초등학교 안도연 교사는 다른 수업시간보다 미술 시간이 가장 바쁘다. 반 아이들의 그림을 하나하나 들여다보며 아이에게 질문을 던진다. 미처 그림을 그리지 못하고 있는 학생에게는 무엇을 표현하고 싶은지를 묻는다. 아이들의 이야기를 스케치북에 끌어내기 위한 과정이다. 설령 그림을 완성하지 못했다고 해도 아이가 그리고 싶었던 마음속 ‘심상’이 그림에 담겼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안 교사는 말한다. 미술 활동에서 중요한 것은 글로 표현하기 어려워하는 아이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도화지 한 장에 자유롭고 편하게 그려볼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작품에 제목을 붙이는 습관도 권할 만하다. 그림을 그리기 전 제목을 구상한다면 어떤 이야기와 주제를 그림에 담을지 미리 생각해볼 수 있고, 그림을 그린 뒤 제목을 단다면 자신이 그린 그림의 주제를 한번 더 함축적으로 드러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부영 교사는 남자 소변기에 ‘샘’이라는 제목을 붙인 마르셀 뒤샹을 예로 들며 “어떤 제목을 붙이느냐에 따라 작품의 의미가 달라진다. 여기에 날짜까지 함께 적는다면 자녀의 성장과정을 담은 포트폴리오로도 활용할 수 있다”고 말한다.

안 교사는 “미술 활동의 목표는 결과물과 상관없이 나도 한번 표현해보고 싶다는 열망을 품게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초등 미술 활동의 창의성은 ‘완성된 작품’이라는 ‘결과’가 아니라 자신을 맘껏 드러내 보는 ‘과정’에서 발현된다.

도구 사용법부터 알려줘라

초등학교 미술 활동 비중이 커졌다고 해서 굳이 미술학원 등 사교육에 의존할 필요는 없다. 이부영 교사는 ‘가르칠 게 있다면 도구 사용법’이라고 말한다. 하나의 사물이라도 그리는 방법과 도구에 따라 천차만별의 그림이 탄생하는 만큼 물감과 붓, 연필과 크레파스 등 미술도구를 다양하게 경험하며 아이들이 상황에 따라 도구를 적절히 골라 정확히 사용할 수 있도록 돕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초등 저학년 때는 크레파스, 고학년은 물감을 쓰는 것으로 굳어져 있지만, 이에 얽매일 필요도 없다. 물감을 마구 흘려 방 안을 어지럽히고, 손도 지저분해진다며 아이들에게 붓과 물감을 쥐여주기 망설이기도 하지만, 도구 사용법을 정확히 알려주지 않은 탓이 크다. 가는 붓과 굵은 붓, 둥근 붓과 납작붓의 용도, 팔레트의 물감 짜는 칸과 물감 섞는 칸의 구분, 물의 양 조절 등을 익히게 해주어야 한다.

이 교사는 “물감을 섞어 새로운 색을 만들어 본 아이들은 빨강·파랑·노랑 세 가지 색과 흰색, 검은색만 있어도 얼마든지 다양한 색감의 그림을 그릴 수 있다”고 설명한다.

미술 활동은 손 근육이 얼마나 잘 발달했는지도 중요하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자르고, 붙이고, 떼고, 찢을 수 있어야 한다. 손을 자유롭고 섬세하게 움직이는 아이들은 악기도 잘 다룬다. 하지만 초등학생 가운데는 손을 자유자재로 쓰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스티커도 잘 떼지 못하는 아이도 있는 등 편차가 크다. 안도연 교사는 “컴퓨터 마우스와 스마트폰 터치패드에 아이들이 익숙해져 있다 보니 클릭 속도나 터치 능력은 뛰어날지 몰라도 손의 힘을 조절하고 섬세한 작업을 하는 능력은 떨어진다”고 말한다. 안 교사는 아이들에게 집안일을 시키라고 조언한다. “집에서도 청소기를 돌려 청소를 하다 보니 아이들은 비질도 해보지 않는다. 빨래 개고, 설거지하고, 비질을 하고 마늘과 콩깍지를 까는 등의 집안일이야말로 아이들의 손 근육 발달에 가장 효과적이다.”

김영우 기자 kyw@hanedu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