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록달록 ‘사람 향기’ 가득한 달동네… ‘한국의 산토리니’ 부산 감천동

부산 | 글 최병준 선임기자·사진 김창길 기자 bj@kyunghyang.com
부산에 가면 꼭 봐야 할 곳이 있다. 감천동 문화마을이다. 번화한 해운대나 광안리 앞바다만큼은 못해도 감천동은 관광객들로 북적거리는 여행지다. 여행자 대부분은 젊은이들이었다.

감천동은 부산의 달동네였다. 한국전쟁 당시 오갈 데 없는 피란민들이 산비탈에 판잣집을 짓고 살았다. 공동 우물을 썼다. 세월이 흘러 판자벽이 시멘트벽으로 바뀌고, 지붕이 현대식으로 교체됐다. 아니, 달동네도 관광명소가 되나? 그렇다. 빽빽한 골목길과 벽마다 칠해놓은 벽화와 장식물, 예술가들이 꾸며 놓은 공방…. 통영의 동피랑 마을과 함께 국내에서 가장 성공한 ‘벽화마을’이라고 할 수 있다. 집들이 레고블록처럼 올망졸망해서 어떤 이는 레고마을이라고 했다. 세계적인 관광지인 그리스의 산토리니와 닮아서 ‘한국의 산토리니’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다. 산꼭대기에 잉카 유적이 남아있는 페루 마추픽추에 빗대 ‘부산 마추픽추’라고 부르는 여행자도 있다.

밤에 만난 감천동 오갈 데 없는 피란민들이 모여 살던 산비탈 판잣집들의 변신. 2009년 예술가들이 작품을 세우고벽화를 칠하면서 여행 명소로 탈바꿈했다


낮에 만난 감천동 단독주택 옥상을 개조한 전망대 ‘하늘 마루’에서 내려다본 문화마을. 오밀조밀 박혀있는 집집마다 벽화가 그려져 있다. 소소한 풍경들이 동화 같다.


감천동 마을 입구 안내소에서는 지도 한 장에 2000원씩 팔았다. 동네 한 바퀴 둘러보는데 지도까지 필요하냐고? 감천 1동과 2동 주민센터에 등록된 세대 수는 1만3238. 지도를 보면 산자락 한줄기에 집들이 빼곡하게 들어선 산자락과 골목길이 상세하게 나타나 있다. 한 귀퉁이를 돌면 초미니 미술관이 나오고, 한 귀퉁이를 돌면 공방이다. 또 다른 귀퉁이에는 카페가 들어서 있다. 집과 집 사이의 좁은 골목은 두어명이 지날 만한 골목길이 트여 있다. 골목은 옆으로, 위아래로 이어져 있다. 마을 전체가 미로공원이다. 지도가 있으면 편하다. 그래도 헤매기는 한다.

입구에 들어서서 먼저 봐야 할 곳은 하늘 마루다. 하늘 마루는 단독주택 옥상을 전망대로 개조한 것이었다. 여기서 보면 한눈에 문화마을이 내려다보인다. 오밀조밀하고, 틈도 없이 알차게 집들이 박혀 있다. 집마다 장식과 벽화가 그려져 있다. 하늘 마루 바로 앞 집 지붕에는 새들이 내려다보고 있는 조각상이 보인다. 전영진 작가의 ‘사람 그리고 새’라는 작품이다. 새 여러 마리를 붙여놓음으로써 집 자체가 하나의 작품이 됐다. 감내 카페 위에도 전 작가의 새 조각상들이 앉아 있다.

특이한 모양의 집들도 보였다. 커피잔 모양을 한 집도 있고, 등대 전망대를 만들어놓은 곳도 있다. 골목길이 막히다 열릴 때마다 바다가 나타났다. 바다는 쨍한 파란색은 아니었다. 푸근한 햇살이 스며들면 수평선과 하늘의 윤곽이 칼처럼 정확하게 나뉘지 않는다. 한지에 먹이 번지듯, 햇살이 바다에 똑똑 떨어지는 따뜻한 바다였다.

감천동에서 가장 인기 있는 곳은 나인주 작가의 ‘어린왕자와 사막여우’란 작품이다. 차량이 벼랑으로 떨어지지 않게 길 끄트머리에 세워놓은 보호벽 위에 어린왕자와 사막여우 조각상을 앉혀 놓았다. 평일인데도 여행자들은 어린왕자와 사진을 찍기 위해 10분씩 기다렸다. 흔히 동화마을 하면 디즈니랜드나 롯데월드 같은 테마파크를 떠올리게 마련이다. 하지만 많은 여행자들은 감천동을 둘러본 뒤 ‘동화마을에 다녀왔다’며 자신의 블로그에 감천동 여행기를 올린다. 소소한 풍경들이 더 동화 같은 모양이다.

감천동은 어떻게 여행명소가 됐을까? 2009년 예술가들이 10개의 작품을 세우면서 변했다. 벽화를 새로 칠하고 골목에는 작품들을 들여놨다. 일부 예술가들은 공방을 만들어 여행자들과 함께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했다. 관이 엄청난 돈을 쏟아부은 것도 아니다. 예술가들의 아이디어가 좋았다. 예를 들어보자. 해진 바지에 흙을 채워 넣어 이정표를 만들기도 했고, 벽에 설치작품을 붙여놓기도 했다. 감천동의 아름다움은 해외 언론에도 소개됐고, <러닝맨> 등 국내 인기 연예프로그램의 무대가 되기도 했다.



감천동에서는 작가들의 작품을 찾아다니는 것도 재미다. 진영섭의 ‘골목을 누비는 물고기’, 문병탁의 ‘감천과 하나 되기’, 박은생의 ‘향수’ 등은 인기 설치작품이다. 이 밖에도 최장락의 ‘희망의 나무’, 하영주의 ‘포도가 있는 풍경’ 등 지도에 나와있는 작품만 모두 34개나 된다. 여행자들이 참여한 작품도 있다. 골목길을 돌다 우연히 만난 우징의 ‘김천 낙서 갤러리’엔 관람객들이 낙서를 빼곡하게 해놨다.

감천동 문화마을에선 셀카봉을 들고 인증샷을 찍어대는 여행자가 많다. 그만큼 특이하다.

곳곳에 카페와 분식집 등도 있다.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서 차를 한 잔 했다. 벽에 엽서가 가득 붙어있는 찻집이었다. 세계 각국의 엽서에 다양한 언어가 보였다. 감천동은 미술관과 고급 아파트가 들어선 달맞이 고개와 대비된다. 달맞이 고개는 세련됐다. 사람들은 세련된 것에 눈길은 줘도 정까지 주지 않는다. 감천동은 투박해도 정겨웠다. 감천동이 재개발돼 아파트촌으로 변하지 않은 게 다행이다. 거긴, 사람 향기가 나서 좋았다.

▲ 부산 감천동 길잡이


■ 교통 - 부산 토성동 전철역이 가장 가깝다. 토성동역 6번 출구에서 마을버스 사하1-1, 서구2, 서구2-2로 갈아타고 감천초등학교 앞 공영주차장에서 내리면 된다. 전철역에서 택시를 타면 3000~4000원 정도다. 괴정동 전철역에서 6번 출구로 나와 사하1, 사하1-1 버스를 타고 가도 된다. 감천동 문화마을(www.gamcheon.or.kr), (051)293-3443. 커뮤니티 센터는 대중목욕탕을 휴식공간으로 재구성했다.

■ 맛집 - 곳곳에 카페가 있다. 감내맛집은 마을에서 운영하는데 1층에는 감내분식(070-8111-5229), 2층에는 감내비빔밥(070-8111-5539)이 있다. 마을기업인 감내카페(070-7743-5558)도 있다.

■ 인근 명소 - 마을 앞에서 택시를 타고 보수동 책방골목(www.bosubook.com)까지는 5000원 정도. 헌책방들이 줄지어 서 있다. 책방거리 바로 아랫길이 부평깡통시장이다. 저녁에는 야시장도 열린다. 깡통시장 건너편은 국제시장이다. 걸어다니면서 볼 수 있는 관광지다. 감천동에서 가장 가까운 송도해수욕장은 남한에서 가장 먼저 생긴 해수욕장이다.